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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박찬수
인물과사상사 2021.12.30.
판매자
stayy5
판매자 평가 4 141명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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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 stayy5
  •  진보는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  특이사항 : 출간 20211220, 판형 152x223(A5신), 쪽수 292

책소개

목차

머리말 · 4

제1장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의 진보

김대중은 왜 진보라는 말을 쓰지 않았을까?
진보 다수파의 시대 · 15 | 오랫동안 ‘빨갱이’라는 비난에 시달린 김대중 · 17 | 진보라야 민주주의다 · 20

노무현의 진보는 리버럴에 가까웠다
참여정부는 진보를 지향하는 정부 · 23 | 실용적 진보, 실현 가능한 진보주의 · 26 | 분배와 정의에 방점을 찍다 · 28

노무현은 왜 단병호 앞에서 마음이 복잡했을까?
청와대와 민주노총의 ‘네덜란드 모델 보고서’ · 31 | 진보정권과 노동계의 불화 · 33 | 노조를 ‘적절한 관리 대상’으로 보다 · 37

문재인이 뉴딜을 코로나 시대에 불러낸 이유
문재인의 ‘한국판 뉴딜’ · 40 | 디지털 뉴딜은 데이터댐을 만드는 것이다 · 43 | 뉴딜은 정치 전략이자 기획이다 · 45

‘선출된 권력’을 어디까지 비판할 수 있는가?
‘선출된 권력’과 ‘선출되지 않은 법관’ · 48 |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게 전부다” · 51 | 국민이 선택하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낫다 · 53

진보에 필요한 것은 현실을 반영한 실천이다 : 강준만 인터뷰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이유 · 56 | 586세대의 역사적 자부심과 도덕적 우월감 · 61 | 진보의 유연성과 열린 자세 · 66

제2장 진보, 한계에 부닥치다

노회찬의 ‘진보의 세속화’
노회찬의 말과 언어 · 73 | 진보정당의 두 차례 분열 · 75 | 정치는 국민을 설득해서 동의를 구하는 것이다 · 78

진보정당은 왜 사회민주주의를 내걸지 못할까?
‘민주와 진보를 위한’ 국민승리21 · 81 | 사민주의는 개량주의인가? · 84 | 진보정당이 추구하는 또렷한 ‘사회의 상’ · 86

평등이 사라진 공정과 정의
공정은 ‘절차적 투명성’이다 · 89 | 개인주의와 능력주의 · 92 | 기회가 평등한 것은 아니다 · 94

젊은 세대에게 왜 연대가 필요한가?
사회적 상승 또는 계층의 사다리 · 98 | ‘사회적 공정’과 ‘사회적 정의’ · 100 | 세상을 바꾸지 않고 내 삶을 바꿀 수 없다 · 105

이제는 외면할 수 없는 북한 인권
“한국 정부, 무관심하다”는 국제사회의 시각 · 108 | ‘인권’보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 우선이다 · 111 | 인권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 · 113

진보정권과 민주노총의 불편한 관계
진보정권과 보수정권이 다르지 않다 · 118 | 민주노총을 바라보는 시민사회의 눈길 · 121 | 시효가 지난 민주노총의 구호 · 123

정규직을 뛰어넘은 ‘약자와의 연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살자’ · 126 | 사업장에 매몰된 노조운동을 뛰어넘다 · 129 | 약자를 돕고 사회연대의 중심이 되다 · 131

페미니즘 대중화, 성찰해볼 때가 되었다 : 정희진 인터뷰
페미니즘 대중화의 시대 · 134 | ‘페미니즘에 반대한다’는 것 · 138 | 여성가족부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 141

제3장 ‘진보 재집권’은 가능한가?

한국 사회의 보수화 변곡점
‘진보 재집권’과 ‘보수 정권 교체’ · 149 | 박정희와 노무현의 호감도 · 152 | 문재인의 지지율이 높은 이유 · 155

2022년 대선, 수도권이 승부처다
지역을 보면, 선거가 보인다 · 158 | 수도권은 ‘지역색 없는 지역’ · 161 | ‘경기도’ 지사 이재명은 청와대에 입성할 수 있을까? · 164

20대는 정말 보수화한 것일까?
젊은 표가 세상을 바꾼다 · 167 |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 · 170 | 20대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인가? · 174

안철수의 중도는 왜 보수로 기울어지는가?
중도가 선거 승패를 가른다? · 177 | 중도는 존립할 수 없다 · 180 | 안철수의 ‘중도 실험’ · 183

이준석의 세련된 보수 포퓰리즘
기득권이 된 제도 정치권에 대한 불만 · 187 | 진심일까, 쇼잉일까? · 190 | 2030의 언어로 말하다 · 193

‘국민과의 소통’이 뉴딜과 미국을 살렸다
루스벨트의 노변정담 · 197 | ‘사회주의자’ 또는 ‘독재자’라는 비난 · 199 | 진보는 어떻게 다수파가 되는가? · 202

민주당은 왜 ‘루스벨트 민주당’의 길을 가지 못했는가?
‘뉴딜 연합’과 ‘촛불 연합’ · 204 | 국민의 삶과 직결된 정책에서 신뢰를 잃다 · 207 | 과거의 승리가 미래의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 211

제4장 새 길을 찾다

촛불, ‘혁명적’이나 ‘혁명’이라 부르기엔 변한 게 없다
“국민의 삶은 나아진 게 없다” · 217 | 촛불의 동력은 무엇이었는가? · 220 | 촛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 222

세대 간 연대와 결합
민주주의의 퇴행과 포퓰리즘의 확산 · 225 | 민주주의 가치와 국민주권 회복 · 228 | 50대들이 ‘민주주의’로 돌아왔다 · 230

스페인은 ‘세대 갈등’을 어떻게 넘어섰는가?
“우리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 · 233 | 진보라는 ‘이념’에 얽매이지 않다 · 235 | 포데모스, 양당 정치 구도를 깨다 · 238

스페인의 포데모스와 포퓰리즘
‘인민’과 ‘정치 카스트’의 대결 · 242 | 정치 카스트 제도의 맨 윗자리를 차지한 특권층 · 246 |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 249

따뜻한 진보가 필요하다
이중 엘리트 정당 체제 · 253 |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다 · 257 | “나는 당신의 고통을 잘 알고 있다” · 260

증오의 정치를 뛰어넘다
한국의 정치적 갈등이 가장 심각하다 · 263 | 정치적 양극화와 대통령제의 위기 · 266 | “증오는 마음을 흐리게 한다” · 270

다시 민주주의로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선거 · 273 | 국회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이유 · 276 | 단 하나를 바꿔야 한다면 ‘국민입법제’ · 279

참고문헌 · 283

저자 소개1

박찬수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제5공화국 시절인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 그 무렵 수많은 학생이 그랬듯이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강제 징집되어, 동부전선 육군 7사단의 최전방 GP에서 군 생활을 했다. 1989년 3월 『한겨레』에 입사한 후 사회부와 국제부, 정치부에서 주로 정당과 국회를 취재했다. 지금은 편집국장과 논설실장을 거쳐 대기자(大記者)로 일하고 있다. 청와대 출입기자와 워싱턴 특파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제 작동 방식을 비교·분석한 『청와대 VS 백악관』(2009년)을 썼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NL 운동의 흐름을 다룬 『NL 현대사』(2017년)를 썼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2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92쪽 | 452g | 152*225*20mm
ISBN13
9788959066247

책 속으로

김대중만큼 진보적인 정치인을 찾아보기란 지금도 쉽지 않다. 1970년 10월 16일 야당인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뒤 가진 첫 기자회견을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진보적이다. 김대중은 “집권하면 극소수의 특권층만이 비대해지는 경제 및 사회 구조를 개혁, 전체 대중이 잘살 수 있도록 자유경제의 원리를 준수하는 동시에 정직하고 근면한 사람만이 성공하는 시민사회를 육성하겠다”면서 5개 분야의 정책 공약을 제시했다.

그때 내걸었던 공약은 미·중·소·일 4대국의 한반도 전쟁 억제 보장(4대국 안전보장론), 남북한 화해와 교류 및 평화통일론, 공산권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과 교역 추진, 향토예비군 폐지, 대중경제노선 추진, 초중등학교 육성회비 폐지, 사치세 신설, 학벌주의 타파, 이중곡가제 폐지 등이다.
---「김대중은 왜 진보라는 말을 쓰지 않았을까?」중에서

2019년 10월 낸시 펠로시(Nancy Pelosi) 미국 하원의장은 트럼프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면서 링컨을 인용했다. 하원의 탄핵 청문회를 열기 전, 펠로시는 의사당에 걸린 링컨 초상화를 보면서 “국민의 마음이 전부다”라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그때 트럼프는 보수 여론의 강력한 지지 속에 살아났지만, 2020년 11월 대선에선 민심의 심판을 피하지 못했다.

트럼프가 패배한 직후인 2021년 1월 6일, 그의 지지자들이 조 바이든(Joe Biden)의 선거 승리를 인정하지 않으며 워싱턴 의사당에 난입한 사건은 상징적이다. ‘다수 국민의 선택’에 기반한 현대 민주주의는 ‘기존의 법과 질서’를 상위에 두려는 위협뿐만 아니라, 선거에 승복하지 않는 강경파의 조직적 저항에 직면해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게 미국만의 일이 아니라는 게 위기의 본질이다.
---「‘선출된 권력’을 어디까지 비판할 수 있는가?」중에서

이 무렵 노회찬은 ‘진보의 세속화’를 주장했다. 진보정당이 위기가 아닌 적은 2004년을 빼고 거의 없었지만,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된 뒤엔 진보정당 입지가 훨씬 좁아졌다. 노회찬의 표현을 빌리면, “진보는 겁 많은 제1야당(민주당)도 자주 참칭하는 좋은 말이 되었고……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를 입에 올리고 박근혜 후보가 만 5세 무상교육을 외치는 시대가 되었다. 진보와 반진보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진보와 가짜 진보가 경쟁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노회찬은 이걸 돌파하는 무기로 ‘진보의 세속화’를 주장했다.
---「노회찬의 ‘진보의 세속화’」중에서

고도성장 시대와 달리, 지금은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열매를 따기가 어렵다. 좋은 일자리에 대한 젊은 세대의 강렬한 요청은 그런 상징적 표현이다. 이들의 고민에 공감하지 못하고선 한 걸음도 문제 해결을 진전시킬 수가 없다. 먼저 공감하고, 그 토대 위에서 세대 갈등의 담론이 아니라 일자리와 주택 등 개별 사안을 해결해나가는 데 정책적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정치란 바로 그런 것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가 정작 젊은 세대의 거센 비판을 받는 건 이 점에서 부족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을 잡지 못한 건 단적인 예다. 그 책임이 어디 문재인 정부만의 것일까? 진보정당과 언론을 비롯한 모두가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평등이 사라진 공정과 정의」중에서

C&M 정규직 노조는 설립 이듬해인 2011년부터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해 ‘비정규직 지부’를 만드는 일에 나섰다. 그때 정규직·비정규직이 만든 노조준비모임의 이름이 ‘함께 살자’였다. 그렇게 2년여간 조직 작업을 한 끝에 2013년 2월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지부’를 결성했다. 2014년 비정규직 조합원 109명이 계약 해지를 당하자, 정규직은 연대 투쟁에 나섰다. 비정규직 조합원 2명이 서울 프레스센터 앞 전광판에서 고공농성에 들어간 뒤 정규직은 전면 파업으로 이들을 지원했다. 결국 이 싸움은 희망연대노조의 승리로 끝났다.

지금 다시 이동훈 위원장에게 “정규직 조합원들이 어떻게 비정규직과 함께 싸울 수 있었습니까?”라고 묻자, 이동훈 위원장은 이렇게 답했다. “사실 다른 사업장과는 좀 다른 측면이 있었어요. 협력업체 직원들은 예전에 한솥밥을 먹다가 외주화가 진행되면서 회사를 나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죠. 그러니 외면하기 어렵고, 그분들이 처한 상황이 우리의 미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규직을 뛰어넘은 ‘약자와의 연대’」중에서

유권자 절반이 몰려 있는 수도권의 지역화는 야당인 국민의힘엔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예전엔 진보 성향이 강한 서울에선 고전하더라도 경기·인천에서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자신감은 더는 가질 수가 없다. 민주당도 부담은 있다. 2012년 이후 전국 선거에서 민주당이 선전한 건, 수도권에서 상당한 격차로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을 따돌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도권이 흔들리면, 민주당도 심하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여든 야든 수도권을 이기지 못하면 전국 선거에서 이기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대통령 선거는 수도권에서 5%포인트 격차만 나도, 득표수로는 100만 표 이상의 차이가 난다. 아무리 영남 또는 호남·충청을 석권해도 이 격차를 넘어서기란 쉽지 않다. 경기도 지사 출신을 첫 집권당 대선후보로 밀어올린 ‘수도권의 지역화’가 이재명 후보를 청와대에 입성시키는 데까지 나갈 수 있을까?
---「2022년 대선, 수도권이 승부처다」중에서

안철수 대표가 갈수록 보수 본류로 다가서는 건 그런 점에서 필연적이다. 그는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를 했고, 2022년 3월 대선에 또다시 출마했지만 완주 여부는 불확실하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의 단일화 가능성은 대선 막판까지 열려 있을 것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정치적 견해가 다른 유권자를 하나로 묶을 수는 없다. 정치에서 승리하려면 분명한 정치적 지향을 내보여서 진보 또는 보수 지지층의 지지를 확고하게 받는 게 중요하다. 두 발은 분명하게 진보를 딛고 서되 타협과 포용의 유연한 자세를 보이는 것, 이것이 필요하다. 진보와 보수를 오가며 세 번째 대선 출사표를 던진 안철수 대표의 행로는 ‘중도 실험’의 무망함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 듯싶다.
---「안철수의 중도는 왜 보수로 기울어지는가?」중에서

스페인에서 1990년대에 본격화하기 시작한 세대 갈등이 정치 현상으로 분명하게 드러난 건 2008년 금융위기 이후다. 세계적 금융위기로 경제난이 심해지고 실업률이 치솟으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확산되었다. 특히 젊은 층의 실업률이 40%에 달한 게 불을 붙였다. 이 거대한 불만의 흐름을 정치 행동으로 담아낸 건 2014년 출현한 새로운 정당 포데모스(Podemos)였다. 좌파 성향이지만 정당 이름에 ‘사회(social)’ 또는 ‘민주(democracy)’라는 단어를 쓰지 않은 게 눈에 띈다. 더는 진보라는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전통 진보와 길을 달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스페인은 ‘세대 갈등’을 어떻게 넘어섰는가?」중에서

반대로 진보 세력은 ‘윤석열 검찰’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사퇴시키려 그의 가족 전체를 만신창이로 만든 사실에 분노했다. “가족을 도륙당했다”고 조국 전 장관이 말할 정도로 검찰의 ‘조국 수사’는 한참 도를 넘었다. 오죽하면 홍준표 후보가 “검찰이 보통 가족 수사를 할 때는 가족 중 대표자만 수사를 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과잉 수사를 했다. 집요하게 조국 동생을 구속하고 5촌 조카 구속에 딸 문제도 건드렸다”고 말했을까 싶다.

조국 전 장관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보수와 진보 간에 벌어지는 격렬한 증오의 싸움, 그 싸움의 칼날 위에 맨발로 서버린 셈이 되었다. 그 대가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 역시 장모와 아내를 둘러싼 논란까지 집요하게 파헤쳐지는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증오의 정치를 뛰어넘다」중에서

출판사 리뷰

노무현의 만원버스와 노회찬의 6411번 버스

노무현과 노회찬이 버스를 통해 진보의 지향을 말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버스가 가장 서민적이고 대중과 함께하는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버스 승객이 꽉 찼을 때 진보는 ‘저 사람들도 태워주자. 어렵더라도 같이 타고 가야지’라며 사람들을 헤쳐서 길을 터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대, 함께 살자는 게 진보의 가치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그래도 진보적인 승객들이 있는 버스라면 누구나 올라탈 수가 있었다. 그런데 저성장이 일상이 된 시대에는 입석이라도 버스에 올라탈 수 있는 여지가 매우 좁아졌다. 버스 바깥에 오르지 못한 수많은 사람이 남아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동안 진보는 버스에 올라탄 이들을 포용하고 함께 가는 데는 익숙했지만, 버스 바깥 사람들의 존재와 그들의 분노에 대해서는 깊게 인식하지 못했다.

노무현은 진보와 보수의 차이를 사회적 약자를 위해, 더 균등한 분배를 위해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 차이에서 비롯한다고 말했다. 노무현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진보의 가치’를 강조했다. “연대와 사회정의를 이상으로 하는 진보주의는 민주주의 안에 내재된 가치다. 진보라야 민주주의다”고 말할 정도였다.

2007년 6월 참여정부평가포럼 월례 강연의 연설에서 노무현은 “참여정부의 정체성은 무엇이냐. 참여정부는 진보를 지향하는 정부”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그러면서 “참여정부의 진보는 민주노동당의 진보와 어떻게 다른가.……‘시장친화적인 진보’고 ‘개방 지향의 진보’다. ‘배타하지 않는 자주를 주장하는 실용적 진보’다”고 말했다. 노무현은 진보라는 개념을 사회주의와 노동과 평등에 자주라는 가치를 더해 확장시켰다. 그래서 왼쪽에 비해서 ‘나는 실용적 진보, 실현 가능한 진보주의다’라고 이야기했다. 노무현은 진보의 이념 경직성에 도전을 한 것이다.

노회찬의 진보는 2012년 진보정의당 당 대표 수락 당시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라는 연설에 녹아 있다. 노회찬은 “새벽 4시에 구로에서 출발해 개포동까지 가는 6411번 버스에는 50~60대 아주머니들로 가득 찹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이런 분들에게 우리는 투명정당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이 손에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습니다.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는 정당, 투명정당, 그것이 이제까지 대한민국 진보정당의 모습이었습니다”고 반성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대중 정당은 달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 실현될 것입니다”고 말했다. 노회찬는 “정치는 엄연한 현실이고 진보주의자의 기본 덕목은 실사구시다”고 말했는데, 이것이 바로 노회찬이 말한 ‘진보의 세속화’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과 리버럴리즘

노무현의 진보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리버럴리즘’에 맞닿아 있다. 노무현이 말했던 진보가 사실은 미국의 리버럴(liberal) 개념에 가장 가까운 것이었다. 사회주의를 거부하면서 ‘분배와 정의’를 위한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옹호하는 것이 루스벨트가 세운 미국 민주당의 진보주의(liberalism)다. 루스벨트는 뉴딜을 통해 광범위한 사회적 연대를 만들어내 미국 사회를 바꾸고 보수 우위의 정치 구도를 뒤바꾸었다. 루스벨트의 뉴딜은 수많은 한계를 지녔지만, 끊임없이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을 설득한 점만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루스벨트는 왜 뉴딜이 필요한지 국민에게 끊임없이 설명해서 지지를 넓혔다. 루스벨트의 라디오 연설이 대표적이다. 이 라디오 연설은 화롯가에 앉아 조곤조곤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형식이라 노변정담(爐邊情談)으로 불렸다. 노변정담의 평균 청취자 수는 약 5,400만 명에 달했다. 노변정담은 쌍방향 소통이었다. 일주일 동안 백악관에는 45만여 통의 편지가 쏟아졌다. 편지의 주요 내용은 요약해서 대통령에게 보고되었고, 다시 재분류되어 해당 부처로 전달되었다. 루스벨트는 “소득을 더 공정하게 배분하지 않으면 현 체제를 지속할 수가 없다”고도 말했다.

뉴딜의 목표는 흔히 ‘3R’로 표현된다. 구제(Relief), 재건(Recovery), 개혁(Reform)이다. 우리가 ‘뉴딜’ 하면 떠올리는 대규모 토목·건설사업과 일자리 창출이 바로 ‘구제’나 ‘재건’에 해당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미국 사회를 바꾼 것은 세 번째 목표인 ‘개혁’이었다. 뉴딜 개혁 입법은 하나하나가 엄청난 논란과 반발을 불러왔다. 루스벨트에게는 ‘사회주의자’, ‘볼세비키’, ‘독재자’라는 공격이 가해졌다.

그러나 이것이 뉴딜의 가치를 훼손하지는 못했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뉴딜은 미국 사회를 바꾸었다. 1935년 7월 제정된 와그너법은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보장하고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금지했다. 이로써 노동조합이 강력한 정치 세력으로 등장할 수 있는 길을 텄다. 실업보험과 노인연금을 담은 사회보장법도 의회를 통과했다. 연금을 납입하는 이들에게만 적용되는 매우 제한적인 입법이었지만, ‘공적 복지’ 개념을 거부했던 미국 사회의 인식을 바꾸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컸다. 미국 정치사에서 전무후무한 대통령 4선은 그렇게 가능했다.

루스벨트 시대에 미국 정치 지형은 180도 바뀌었다. 1932년 루스벨트 집권 전까지 70년간 민주당 출신 대통령은 단 두 사람이었다. 이 기간에 민주당이 백악관과 상하 양원을 모두 장악한 시기는 6년에 불과했다. 그러나 루스벨트 이후, 즉 1932년부터 1980년까지 48년간 민주당은 12차례 대선 중 8차례를 이겼고 불과 4년을 제외한 44년 동안 상하 양원 모두에서 다수당을 차지했다.

다시 말해 1900년부터 1932년까지는 ‘공화당 시대’였다가 1932년 루스벨트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1980년까지 반세기 동안 ‘민주당 시대’가 이어졌다. 루스벨트 시대를 거치며 미국 사회가 근본적으로 재편된 것은 분명하다. 뉴딜의 진정한 유산은 바로 이것이다. 뉴딜은 말 그대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대응을 국민에게 약속한’ 것이다. 그리고 ‘진보 다수파의 시대’가 현실에서 어떻게 가능한지를 뉴딜 연합은 보여주었다.

‘낡은 진보’를 뛰어넘는 ‘진짜 진보’

2020년 4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180석을 얻는 초유의 압승을 거두자 언론에서는 ‘진보의 시대’, ‘진보 다수파의 시대가 열렸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언론이 ‘진보 다수파의 시대’에 주목한 이유는 분명했다. 진보정권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장악했을 뿐 아니라, 입법부 선거에서 전체 의석의 5분의 3을 넘는 엄청난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 총선 결과를 진보라는 개념의 확장으로 보든 또는 변질로 보든, 적어도 국민들이 우리 정치 지형을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민들은 촛불 정부이자 진보정권인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과 위선을 거세게 비판했다. 지지층도 실망하거나 분열했다. 거기에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개혁은 지속적이고 광범위하게 지지를 받을 수 없었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는 젊은 세대의 날 선 비판도 받았다.

소득주도성장의 좌절과 부동산 정책 실패, 비정규직과 일자리의 부족, 사회적 양극화 등은 단적인 예다. 특목고를 폐지하고 다양한 계층·집단의 대학 입학 기회를 확대하려 애쓰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거기에 ‘사회적 불평등 해소’ 요구에도 성공적으로 응답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사회·경제 정책에서 유능함과 정교함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지 못했다. 이는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논란을 계기로 폭발했다. ‘기회의 평등’을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에서 오히려 기회의 불평등과 과정의 불공정이 드러났다고 젊은 세대는 여겼다.

그러니 젊은 세대가 개인주의와 능력주의에 환호를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면 그에 따른 성과와 보상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의 능력주의는 철저히 ‘개인적 능력주의’다. 기회의 평등을 넘어서 사회 전체적으로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자는 이야기는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인국공 사태든 공공의대 설립 논란이든, 개인적 공정의 틀에 갇혀 사회적 ‘평등과 분배’의 노력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없애고, 공공 의료서비스의 기반을 확대하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진보의 가치다.

2022년 대선, 증오의 정치를 끝장내자

2016년 겨울, 촛불이 지향했던 것은 정말 무엇이었을까?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군 촛불시위는 구체적으로 한국 사회가 무엇을 달성하고 어떻게 변화하기를 바랐던 걸까? 지금 촛불의 염원은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 것인가? ‘촛불의 과제’ 또는 ‘촛불 정신’이라는 말로 한꺼번에 뭉뚱그리기에는 그 기대와 가치가 너무 광범위하고 제각각이었던 건 아닐까? 이제 열정의 구름을 걷고 좀더 냉정하게 촛불의 지향과 의미를 새길 필요가 있다. 그래야 실망과 좌절이 아닌, 새로운 전진을 위한 도움닫기가 가능하다. ‘진보나 보수나 다를 게 없다’는 식의 환원론이나 ‘문재인 정부가 무엇을 잘못한 게 있나’라는 일방적 옹호로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그렇다.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매우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역설적이지만, 이제는 희미해진 촛불의 의미를 어떻게 계승하고 되살릴 수 있을지가 2022년 대선에 달려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2022년 대선이 단순히 정권 교체 또는 정권 유지의 차원을 넘어서는 이유다.

2022년 대선은 ‘증오의 정치’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이를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토론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정치의 양극화를 넘어서지 않고 우리 사회는 거의 모든 현안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증오와 보복의 정치가 개인을 얼마나 파괴하고 사회를 분열시키는지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에서 볼 수 있었다. 이런 정치적 증오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와 타협의 길을 차단하고 있다.

노회찬은 “진보 정치가 제대로 되려면 운동권을 극복해야 한다. 운동권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건 흘러간 옛날 이야기다. 신앙과 정치는 다르다. 신앙은 자기를 간직하면 되지만, 정치는 끊임없이 국민을 설득해서 동의를 구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넬슨 만델라는 “증오는 마음을 흐리게 합니다. 증오는 전략을 실행하는 데 방해가 됩니다. 지도자는 누군가를 미워할 여유가 없습니다”고 말했다. 2022년 3월 제20대 대통령 선거는 ‘증오의 정치’를 넘어서는 쪽이 승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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