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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색판
1. 쌍장고 머리 (대들'보) 2. 장고 머리 (대들'보) 3. 병 머리 (대들‘ 보, 도리, 평방) 4 병 머리 (대들' 보) 5. 병 머리 (대들' 보) 6. 연목초 (실내 연목) 7. 부연초 (부연 내부) 8. 목련초 (석가래 복판) 9. 고리금 (개판, 평방) 10. 저‘ 가락금 (개판, 평방) 11. 소슬금 (평방, 들‘보) 12. 십자 고리금 (평방, 들‘보) 13. 십자 고리금 (평방, 들‘보) 14. 고리 소슬금 (평방, 들‘보) 15. 세모금 (평방, 들‘보) 16. 여섯 십자금 (평방, 들‘보) 17. 고리금 (평방, 들‘보) 18. 꺾인 고리금 (평방, 들‘보) 19. 큰 고리금 (평방 들‘보) 20. 얽힌 고리금 (평방, 들‘보) 21. 세 고리금 (편방, 들‘보 기타) 22. 박쥐금 (개판) 23. 여섯모금 (편방, 들‘보 기타) . 24. 물레금 (평방) 25. 물레금 (평방) 26. 얽힌 고리금 (평방) 27. 거북이금 (평방) 28. 빗장금 (평방) 29. 쌍빗장금 (둘‘보 평방) 30. 작살금 (둘‘보 평방) 31. 바른 십자금 (평방) 32. 짝소슬금 (기둥 상부, 뒤’목) 33. 쌍십자금 (평방, 추녀 끝, 장여 끝) 34. 운문단 (별지화) (대들’ 보) 35. 모란 (별지화) (평방, 도리) 36. 화반초 (화반) 37. 용문초 (평방, 도리) 38. 운각초 (기둥 상부) 39. 룡두 (들;보 머리) 40. 과련초 (제궁) 41. 과련초 (제궁) 42. 축상 (별지화) (벽면) 43. 쌍장고` 머리 (성불사 대들’보) 사진판 44. 병머리 (심원사 대들‘보) 45. 병머리 (심원사 대들‘보) 46. 병머리 (심원사 액방) 47. 병머리 (성불사 대들‘보) 48. 병머리 (성불사 대들‘보) 49. 병머리 (성불사 대들‘보) 50. 병머리 (성불사 대들‘보) 51. 병머리 (성불사 대들‘보) 52. 병머리 (귀진사 대들‘보) 53. 소슬금 (심원사 액방) 54. 십자 고리금 (심원사 대들‘보) 55. 빗장금 (심원사 도리) 56. 소순 고리금 (심윈사 도리) 57. 고리금 (기자묘) 58. 고리금 (기자묘) 59. 도리초 (심원사 도리) 60. 도리초 (심원사 들‘보) 61. 도리초 (귀진사 도리) 62. 도리초 (귀진사 도리) 63. 도리초 (귀전사 도리) 64. 평방초 (기자묘 대들‘보) 65. 평방초 (기자묘 대들’보) 66. 부연초 (경복궁 부연) 67. 두공초 (귀진사 두공) 68. 소라반자 (심원사 천장) 69. 소라반자 (성불사 천장) 70. 소라반자 (귀진사 천장) 71, 소라반자 (귀진사 천장) 72, 반자초 (심원사 의부 상여) 73. 운각초 (심원사 의부 제궁) 74. 운각초 (심원사 닷집) 75. 운각초 (심원사 평교대) 76, 운각초 (심원사 주두) 77. 운각초 (성불사 닷집) 78. 운각초 (귀전사 닷집) 79. 운각초 (귀전사 도리) 80. 보바닥초 (십원사 들‘보) 81, 보바닥초 (귀전사 들‘보) 82. 장여바닥초 (심원사 내장여) 83. 평교대초 (심원사 대들‘보) 84. 순각판 (심원사 순각판) 85. 파턴초 (십원사 불단) 86. 통문초 (심원사 대들’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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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이 책은 1962년 북한의 과학원 출판사에서 발행한 「조선의 단청무늬」 이다. 원본 그대로 복원하여 출간 하였다. 다음은 원본에 실린 머리말중 이 책에 대한 내용이다. 공화국 북반부에서는 지난 전쟁 기간에 미제의 야수적 목적으로 파괴 소각 되였던 수다한 고건물들이 정성껏 복구 되였으며 평양 대동문, 을밀대, 련광전, 보통문, 개성 남대문, 황해북도 성불사 등을 위시하여 수다한 고건물들의 단청이 아름답고 화려하게 원상을 복구하게 되었다. 단청은 처음에 목조 건축물이 비나 바람에 맞아서 썩거나 상하는 것을 막아 내기 위하여 광물성 안료를 목재부분에 바르는 데서 시작 되였는바 그 연원은 매우 오랜 것으로 인정된다. 단청은 이렇듯 실용적인 목적에서 출발하였으며 처음에는 극히 단순한 형태였다. 그런데 시일이 경과하고 점차 보급됨에 따라 단지 실용적인 데만 머물지 않고 사람들의 미적인 요구를 가미하여 보다 복잡하고 아름다운 형식에로 발전하게 되었다. 단청무늬는 그의 기발한 구상과 복잡 다양한 변화, 화려하고 우아한 색조로 하여 오늘날 우리의 생활에서도 널리 리용될 수 있다. 더욱이 장구한 세월에 걸쳐서 우리 조상들의 고귀한 노력으로 창조되고 발전되였으며 또한 친숙하였던 까닭에 오늘 우리들에게도 무한한 애착을 느끼게 하여 준다. 우리나라에는 벌써 삼국 시기에 일정하게 발전한 단청이 있었다. 고구려 무덤들 중에는 내부 벽면에 가득히 벽화를 그려 놓은 것이 많은바 그 중에는 묘실네 구석과 고임, 천장, 도리들에 실지 건물의 기둥, 두공, 도리, 천장을 련상시키는 형태를 그려 놓고 거기에 단색 훅은 몇 가지 채색으로 무늬를 그려 놓은 것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큰 벽면에 사실적으로 그려진 그림 가운데서 나오는 건물들에서도 기둥 부분을 알락달락하게 칠하여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고구려 때에 벌써 상당히 발전된 형식의 단청이 있었으며 그것이 또한 비교적 많이 보급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또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에서도 왕궁을 비릇한 건물들에 다채로운 색을 칠하였던 것이다. 고려시기에 들어와서 불교가 성행함에 따라 불교 사원 건축이 증대하였고 동시에 단청 시공이 더욱 발전하였다. 이렇듯 일찍부터 발전한 단청 기술의 전통은 그 후 시기에도 더욱 훌륭하게 계승 발전되였다. 그리하여 현재 남아있는 단청은 무늬 구상에 있어서나 색채의 배렬에 있어서 매우 다양하고 세련된 높은 수준의 것으로서 우리 나라 건축 장식 미술의 우수한 전통의 하나로 되고 있다. 단청은 일정한 시일이 경과하면 태양 광선, 풍우 등의 작용에 의하여 탈색 또는 퇴색하게 되므로 자주 고쳐 칠하여 왔다. 그러는 과정에 점차로 무늬나 채색에서 변화 발전을 가져 오기는 하였으나 대체로 보수할 때에 전연 다른 것으로 고쳐 칠하는 경우는 드물고 먼저 것을 그 대로 복원하는 방향에서 진행하였기 때문에 현재 남아 있는 고건물들의 단청은 그 건물 창건시의 단청의 모습을 비교적 잘 전하여 주고 있다. 공화국 북반부에 현존하는 심원사나 성불사의 단청은 고려 시기 단청의 특징을 보존하고 있다. 단청은 〈초단청〉, 〈삼토 단청〉, 〈청로 단청〉, 〈범단청〉, 〈홑단청〉, 〈중단청〉, 〈모루 단청〉, 〈오토 단청〉, 〈휘단청〉, 〈금단청〉등 실로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나 그 내용의 특성으로 보아 〈범단청〉, 〈모루단청〉, 〈금단청〉의 세 가지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범단청〉이란 무늬와 색조가 가장 간단하고 단조로운 것을 말하는바 객사, 향교, 사당, 성루 등에 많이 칠하였고 부분적으로는 불교 사원의 대수롭지 않은 건물 후면에도 칠하였다. 〈모루단청〉은 전자보다 무늬의 구성이 비교적 복잡하고 색조도 다양한 것으로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색조나 무늬는 〈금단청〉에 근사한 점이 많으나 〈금단청〉과 구별되는 것은 아직 청토 부분이 남아 있으며 색 계렬도 간소하고 특히 금무늬보다는 별지화를 많이 그리는 점이다. 〈금단청〉은 색조나 무늬가 단청 가운데서 가장 복잡하고 화려한 것으로서 이름 그 대로 비단과 같이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나라 목조 건축은 양식적으로 보아 〈포집〉과 〈익공집〉의 두 가지로 구분하며 또 그의 용도에 따라 궁전, 사찰, 문루, 주택, 객사, 향교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건축에는 어떠한 단청을 해야 한다는 확고한 원칙이나 규정은 없었다. 즉 익공집이냐 포집이냐 하는 것으로서 단청을 달리 하지는 않았다. 단청이 화려하게 되는가 옷 못 되는가 하는 것은 경제 조건과 시간 타산에 의하여 좌우되였다. 즉 향교, 묘사, 객사, 문루 등에는 대체로 〈범단청〉을 많이 하였으며 〈금단청〉은 궁전이나 사찰에서도 가장 중심적이며 중요한 건물에 칠하였던 것이다. 본 무늬집에 수록된 내용은 두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첫째 원색판으로 된 부분은 현재 생존하는 단청공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원본 150 매 가운데서 선택한 것이다. 둘째 사진관으로 된 부분은 현존하는 고건물 중에서 취사 선택하여 묘사한 것으로서 이 자료들은 국립 중앙 력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한 건물의 단청을 계통적으로 나란이 그려 놓기보다는 현재 우리들의 생할과 생산에서 널리 리용될 수 있으며 또한 보다 화려하고 정교한 〈금무늬〉와 〈휘무늬〉를 주로 하여 편집하였다. 사전판으로 된 것 들은 실지로 고건물에 남아 있는 것이며 원색판으로 된 것보다 년대도 오래다고 볼 수 있으며 색조의 우아함과 부드러움이 더 나은 데가 있으나, 원색판들은 보다 후기의 것인 까닭에 색채 수가 훨씬 많고 특히 〈금무늬〉에서 우수한 것이 많기 때문에 후자를 원색으로 하면서 고쳐 그릴 때에 전자가 가지고 있는 색조의 아담한 면을 후자에서 살리는 방향에서 노력 하였다. 과학원 고고학 및 민속학 연구소 민속학연구실 1961년 9월 1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