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등롱
만원 우바스테 부악백경 황금 풍경 게으름의 가루타 여학생 추풍기 사랑과 미에 대해서 신록의 말 개 이야기 피부와 마음 속천사 직소 달려라 멜로스 고전풍 여치 청빈담 누구 수치 신랑 리츠코와 사다코 기다림 눈 오는 밤 이야기 죽청 친밀한 우정의 교환 메리 크리스마스 토카톤톤 비용의 아내 어머니 남녀동권 아버지 범인 향응 부인 철새 앵두 오상 가정의 행복 다자이 오사무 연보 |
Dazai Osamu,だざい おさむ,太宰 治,츠시마 슈지津島修治
다자이 오사무의 다른 상품
김유동의 다른 상품
“아줌마! 내일은 날씨가 좋겠네요.”
내가 생각하기에도 깜짝 놀랄 정도로 드높고, 환성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아줌마는 비질을 멈추고서, 얼굴을 들고, 이상하다는 듯이 눈썹을 찡그리면서, “내일 무슨 일이 있으세요?” 그 소리를 듣자, 나는 난처해졌다. “아무것도요.” 아주머니는 웃기 시작했다. “쓸쓸해지신 거로군요. 산에라도 올라가지 그러세요.” “산은, 올라가보았자, 금방 또 내려와야 하지 않아요? 시시하게. 어느 산에 올라가보아도 후지산이 보일 뿐, 그걸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지거든요.” 내 말이 이상했던지, 아줌마는 그저 애매하게 끄덕거리고 나서, 다시 낙엽을 쓸었다. 요는 게으른 것이다. 노상 이런 꼬락서니인지라, 나는 도저히 가망이 없는 인간이다. 이렇게 단정해버리기는, 나로서도 쓰라린 일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나를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괴롭다느니, 고매하다느니, 순결하다느니, 순진하다느니, 그따위 소리는 듣고 싶지도 않다. 써라. 만담이든, 촌평이든 말이다. 쓰지 않는 것은 예외 없이 게으름 때문이다. 어리석은, 어리석은 맹신이다. 사람은 자기 이상의 일도 할 수 없고, 자기 이하의 일도 할 수 없다. 일하지 않는 자에게는 권리가 없다. 인간 실격. 당연한 일 아닌가. 오늘 아침, 전차에서 본, 짙은 화장을 한 아주머니를 떠올린다. 아아, 더럽다, 더러워. 여자는 싫다. 내가 여자인 만큼, 여자의 불결함을 잘 안다. 이가 갈릴 정도로 싫다. 금붕어를 만진 다음의, 저 참을 수 없는 비린내가, 내 몸 하나 가득 배어 있는 것만 같아서, 씻어도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것 같고, 이처럼, 하루하루, 자신도 암컷의 체취를 발산시켜나가는 것일까 생각하면, 또 생각나는 것도 있으므로, 이대로 소녀인 채로 죽고 싶다. 문득, 병이 들었으면 생각한다. 엄청 무거운 병이 들어, 땀을 폭포같이 흘려서 말라빠지게 되면, 나도, 말끔히 청정해질지도 모르지 않나. 살아 있는 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착실한 종교의 의미도 조금 알아가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차피 나는, 맛있는 요리 같은 것은 만들 줄 모르니까, 차라리 모양만이라도 아름답게 꾸며서, 손님을 현혹시켜, 우물쩍 넘기는 것이다. 요리는 첫인상이 중요하다. 대개는 그것으로 어물쩍 넘어갈 수 있지. 하지만, 이 로코코 요리에는, 어지간히 미술 감각이 필요하다. 색채의 배합에 대해 뛰어나게 민감하지 않고서는 실패한다. 적어도 나 정도의 섬세함이 없어가지고는 말이다. 로코코라는 말은, 얼마 전 사전에서 찾아보았더니, 화려할 뿐 내용이 텅 빈 장식 양식이라고 정의되어 있어서 웃었다. 명답 아닌가. 아름다움에 내용 따위가 있을 필요가 있는가. 수수한 미美란, 언제나 무의미하고 무도덕하다. 당연하지. 그래서 나는 로코코가 좋다. 장녀는 26세.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철도성에 근무하고 있다. 프랑스어를 곧잘 했다. 키는 160센티미터에 살짝 모자랐다. 매우 말랐다. 형제들에게 “말(馬)”이라고 불리는 일이 있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로이드안경을 끼고 있다. 마음이 화려하고 누구하고나 금방 친구가 되고, 열심히 봉사하고는, 버려진다. 그것이 취미다. 우수, 적요(寂廖)의 느낌을 은근히 즐기는 것이다. 하지만 한 번, 같은 과에 근무하는 젊은 관리에게 열중했다가, 그러고는 역시 버림받았을 때에는, 그때만큼은 그야말로 진심으로 낙심했고, 멋쩍기도 해서 폐가 나빠졌다고 거짓말을 해서 일주일이나 누워 있었고, 그런 다음 목에다 붕대를 둘둘 감고서, 공연히 기침을 자꾸만 해 가면서 의사에게 갔더니, 엑스레이로 정밀하게 조사받은 끝에, 드물게 보는 강건한 폐라며 의사에게 칭찬을 받았다. 문학 감상은 본격적이었다. 실로 많이 읽는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힘이 넘쳐서, 스스로도 뭔가를 몰래 쓰고 있다. 그것은 책장 오른쪽 서랍 속에 감추어 놓았다. 서거 2년 후에 발표할 것, 이렇게 써 놓은 종이쪽지가, 그 축적된 작품 위에 반듯하게 놓여 있는 것이다. 2년 후가 10년 후로 고쳐져 있기도 하고, 2개월 후로 고쳐져 있기도 하고, 때로는 100년 후가 되어 있기도 하는 것이다. 개의 곁을 지나갈 때에는, 아무리 무섭더라도, 절대로 뛰어서는 안 된다. 싱글싱글 비루한 눈치 보기 웃음을 웃어가면서, 무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면서, 천천히, 천천히, 속으로는, 등덜미에 송충이가 10여 마리 기어 다니는 듯한 숨 막히는 오한을 느껴가면서도 서서히, 서서히 지나가는 거다. 참으로, 나 자신의 비굴함에 대해 정이 떨어진다. 울고 싶을 정도의 자기혐오를 느끼기는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다가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은지라, 나는 모든 개들에게 볼썽사나운 인사를 시도해본다. 머리카락을 너무 길게 기르고 있다가는, 어쩌면 수상한 자라며 짖어댈지도 모르므로, 그처럼 싫어하는 이발소에도 열심히 다니기로 했다. 좀 더 온화한, 환하게 밝은, 멋들어진 것. 무엇인지 모르겠네. 예를 들면, 봄 같은 것. 아니 틀렸어, 푸른 잎. 5월. 보리밭은 흐르는 맑은 물. 역시, 아니다. 아아, 하지만 나는 기다립니다. 가슴을 울렁거리며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눈앞을, 줄줄이 사람들이 지나갑니다. 그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나는 쇼핑백을 그러안고, 조그맣게 떨면서 간절히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잊지 말아주세요. 매일, 매일 역으로 마중 나가서, 허전하게 집에 돌아오는 스무 살 아가씨를 웃지 마시고, 제발 기억해주세요. 그 조그마한 역의 이름은 일부러 가르쳐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가르쳐드리지 않더라도, 당신은, 언젠가 나를 볼 것입니다. 나는 일본 취객의 유머 감각 결여에 새삼스럽게 넌더리가 나서, 아무리 그 신사와 주인이 웃어대도, 이쪽에서는 알은체도 하지 않고 술을 마시며, 가게 옆을 지나는 연말 가까운 인파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신사는 문득 내 시선을 따라가,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가게 밖 인파의 흐름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갑자기 큰 소리로, “헬로,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외쳤다. 미국 병사가 걷고 있었던 것이다. 뭐랄 것도 없이, 나는 신사의 그 해학에만큼은 폭소가 터졌다. --- 본문 중에서 |
지금 일본의 작가들이 선정한 다자이 오사무 앤솔러지의 결정판
나츠메 소세키가 메이지 유신 이후 서구화의 물결에 휩싸인 일본 사회의 고뇌를 주제로 한 일련의 작품들로 현재까지 전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는 작가라면 다자이 오사무는 인생의 애수를 어릿광대의 목소리로 담아낸 주옥같은 명단편들로 일반 독자들의 압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다. 이번에 펴내는 다자이 오사무 선집은 에쿠니 가오리, 가쿠타 미츠요, 가와카미 히로미, 기리오 나츠코, 야마다 에이미, 가와카미 미에코, 다카하시 겐이치로, 마치다 고, 나카무라 후미노리 등 지금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꼽은 다자이 오사무 최고의 명단편들과 함께 일본 비평계에서 예술적으로 가장 완성되고 원숙한 시절의 작품들로 평가받는 대표적인 단편들을 더해 한 권으로 읽을 수 있는 다자이 오사무 앤솔러지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특유의 재치와 인생의 비애에 대한 심오한 통찰로 가득 찬 다자이의 단편들은 그 어두운 분위기 가운데도 반짝반짝 빛나는 사금파리처럼 독자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해왔다. 시대가 일변한 지금 오히려 다자이 월드의 매력은 동아시아를 벗어나 전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는 느낌마저 든다. 다자이는 결혼과 함께 창작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고 평가되는데 이 시기는 군국주의의 발호로 파멸적인 전쟁에 빠져들었던 일본 근대의 가장 어두웠던 시절과 겹친다. 경쾌한 필치로 다채로운 작품들을 발표했지만 그 속에 깔려 있는 인생에 대한 도저한 비애감은 그의 거듭되었던 자살 시도로도 쉬이 추측할 수 있다. 거짓된 세상에서 거짓으로 처신해야만 하는 소년의 불편함을 끌어안고 다자이는 짧은 생애를 엄청난 정력으로 창작에 몰두했다. 예술을 위해 부양을 방기한 가족에 대한 미안함, 사회에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처신하는 데 따르는 수치감, 좌절로 쉽게 치닫는 성향, 그리고 자신과 타인의 치부에 대한 극도의 예민함은 첫 장작집 『만년』부터 죽은 뒤에 발표된 『인간 실격』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 세계의 통주저음을 이루고 있다. 그의 바닥 모를 부끄러움은 병적이라고 할 수도 있고 미숙한 청소년의 치기라고 쉽게 치부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겪은 성장통의 기록인 단편들은 그러한 통과의례를 거쳐야 하는 모든 청춘들이 마음을 열고 귀 기울일 수 있는 친구이자 위안자였다. 다자이 생전의 청춘들도 그러했고 지금의 청춘들도 아마 그러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