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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 _ 머리말
제1장 화양촌(華陽村) 이야기 013 _ 화양촌 018 _ 어머니 032 _ 아버지 041 _ 유년시절의 동화(童話) 047 _ 화양촌 홍매(紅梅) 051 _ 개근상 057 _ 광주사범 병설중학교 062 _ 더부살이 068 _ 중형과의 재회 074 _ 전남과학고등학교 081 _ 반전(反轉) 087 _ 두부 장수 영감님 092 _ 소금장수 099 _ 원두막 104 _ 운동화 108 _ 노랑민들레 112 _막걸리 제2장 전방(全紡) 이야기 121 _ 사회생활 첫걸음 129 _ 총각씨름꾼 136 _ 건강 회복 141 _ 결혼 149 _ ‘데님지’ 개발 153 _ 일인은 만인을 위하여 만인은 일인을 위하여 158 _ 전성기(全盛期) 169 _ 인왕산 174 _ 호사다마(好事多魔) 181 _ 사진기 187 _ 방망치잠자리 193 _ 잃어버린 보석 도장(圖章) 198 _ 행복이 얻어지는 절차 제3장 지실(芝室) 이야기 205 _ 사진가의 길 211 _ 백두산과 남녘 들꽃 221 _ 천국을 거닐다, 소쇄원 226 _ 조선대학교 사계 230 _ 문학도의 꿈 236 _ 수필봄날과 색소폰 240 _ 장수촌 할머니 246 _ 빈 액자 251 _ 무등산 천왕봉 255 _ 박넝쿨 260 _ 불청객 265 _ 개미 270 _ 노루 엉덩이 273 _ 냄비 받침 278 _ 선비나무 281 _ 식영정 287 _ 소쇄원 애찬 290 _ 담양예총 296 _ 병상일기 1 302 _ 병상일기 2 308 _ 선조님께 인사 올립니다 314 _ 천문(天門)을 열고 320 _ 바보집을 짓다 327 _ 일산인성문화재단(一山人性文化財團) 332 _ 이삭 줍는 노인 336 _ 노년 339 _ 운명 342 발문_창작수필의 한 전형 『천문天門을 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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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며 문득 어머니의 젖무덤이 생각났다.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젖무덤을 더듬어 보내드렸어야 할 것을….
--- p.30 사랑채 앞마당의 대명매는 한때 세도가 당당했던 우리 가문의 역사를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쇠락해 버린 가세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연분홍 꽃망울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후손 대명매를 바라보면서 대대손손 영원히 불게 피어가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 p.50 영감님은 장날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두붓집을 열어놓고 있다. 나는 그 앞을 지날 때면 먼발치에서라도 그쪽에 눈길을 준다. 영감님의 얼굴은 늘 평온해 보인다. 그 어떤 잡념도 없는 것 같다. --- p.90 소금장수의 묘를 뒤로 하고 능선을 따라 올라가는데 기분이 묘해졌다. 마음이 쓸쓸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포근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그 시절의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절의 부끄럽고 감추고 싶었던 일까지 아름답게 생각되었다. --- p.97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를테면 설경 하나를 찍는 데도 여러 날이 걸렸는데 끝내 못 찍게 되면 다음 해의 겨울까지 기다려야 했다. 해 질 무렵 새들이 대숲으로 날아드는 장면을 찍을 때는 순간 포착하는 데 애를 먹었다. 셔터를 누르는 것은 순간이지만 인내하며 기다리는 시간은 더 오래 걸렸고, 기다린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7년이나 걸린 것이다. --- p.209 사실 나는 구불구불한 것보다 직선을 좋아했었다. 아마도 젊었을 때 설계 일을 해서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조금씩 변해갔다. 시골에 집을 지어 놓고 꽃을 기르고, 꽃 사진을 촬영하게 된 것도 내 생각을 변하게 한 요인일 것이다. 꽃잎은 둥글고 나무들의 잎은 둥글다. --- p.231 ‘소나무야 그래 알았어! 소나무, 네 곁에 불로초 한 그루가 노루 엉덩이 사이의 방울처럼 있다는 말이지?’ 나는 이렇게 속으로 말하고 있었다. --- p.272 나는 쓸쓸하지 않다. 죽음을 한 발 앞에 둔 노년의 삶이지만 세월에 연연하지도 않다. 이 아름다운 풍경들 앞에서 ‘누구와 함께 앉을까?’ 걱정하지 않는다. 나에겐 ‘밝은 달과 바람’이 있지 않은가? 나는 새벽에도 황혼녘에도 이곳 식영정, 소쇄원에 들러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을 그리며 그 자리에 서 있다. 내가 자연 속에 깃든 것도 하늘의 뜻인 것을…. 하서 김인후 선생의 〈자연가〉 ‘산도 절로, 물도 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를 읊으며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다. --- p.285 이곳 사람들은 천장이라고 하는 장례문화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매장을 하지 않고 독수리에게 바치는 장례문화다. 독수리는 후각이 발달해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시신의 냄새를 맡는다고 한다. 독수리들이 떼지어 공중을 배회하고 있는 곳은 십중팔구 천장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장지에 따라온 가족과 친지들은 좋은 곳으로 가라고 기도를 하고, 시신을 독수리에게 내준다. 이때 장례를 집행하는 사람은 도끼질을 잘하는 사람이 맡는다.독수리들이 먹기 좋게 시신을 토막 내야 하기 때문이다. 설핏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꾼 것이다. 언젠가 여행했던 인도 라닥크의 꿈이었다. --- p.306 불가에서는 삼라만상의 조화가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헤어져야 할 사람은 같이 있으려고 애를 써도 헤어지게 되고, 만나야 할 사람은 의도적으로 멀리해도 결국 만나게 된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인연도 운명인 것이다. --- p.3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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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수필의 한 전형, 「천문(天門)을 열고」
_ 수필가 오덕렬 일산(一山) 송창근(宋昌根) 회장께서 자전 수필집 ??가던 길 멈춰 서서??를 상재(上梓)했다. 송 회장-회장이라 부르는 것은 수필반 회장직을 맡기도 했지만, 사회생활에서도 여러 회장직을 맡았기 때문에 회원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불렀다. 연세도 제일 높았다. 책의 구성은 3부로 나뉘었다. 제1부 ≪화양촌(華陽村) 이야기≫(17편), 제2부 ≪전방(全紡) 이야기≫(13편), 제3부 ≪지실 이야기≫(27편)으로 총 57편의 작품이 실려있다. 수필 공부를 시작한 지 9년째에 맺은 결실이다. 그러니까 ‘생오지 문예창작대학’의 수필반에서 공부를 시작한 것이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생오지 문예창작 대학에는 소설(문순태), 시(송수권), 수필(오덕렬)반이 개설되었다. 그때 내가 수필반을 맡게 되면서 송 회장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2013년 3월이었다. 수업 연한은 2년으로 수필반은 15∼20명 정도였다. 2년 수료증을 받고는 유야무야 떨어져 나가고 대학 자체가 광주로 근거지를 옮기는 바람에 계속성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수필의 끈을 놓지 않고 처음 먹은 마음을 밀고 나가며 계속하여 공부를 한 10여 분은 등단 절차를 마쳤다. 송 회장은 벌써 사진작가로 사진첩도 3권이나 냈고, 우리나라 사진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백인백경전’에도 초대되었고, 송 회장이 촬영한 소쇄원 사진이 대한민국 ‘우표’ 사진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분이다. 그런데 화첩을 만들 때 인사말이나 화제(畵題)를 다는 데 무척 애로를 느꼈기에, 그것을 극복하고자 수필 공부를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사연이 「행복이 얻어지는 절차」라는 수필에 잘 나타나 있다. 송 회장은 강의를 들으시면 강의 주제를 살려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학창시절 자취하던 집주인한테 들었다는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란 교훈에서 뒤처져 있던 학업을 수석 졸업으로 반전시키기도 했던 분이다. 정신 즉 마음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 결과는 그에 비례하여 나타날 것이다. 목표가 없다면 어떤 일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문학에는 알다시피 ‘토의문학’과 ‘창작문학’이 있다. 우리가 보통 ‘수필’이라고 하면 비창작 일반산문인 토의문학을 말한다. 처음 한 학기 말고는 계속 창작수필을 논의했는데 송 회장은 중간에 토의문학 쪽으로 등단을 했다. 등단 후에도 지금까지 창작문학 강의도 열심히 들었다. 이번 자전수필집 〈〈가던 길 멈춰 서서〉〉에 실린 57편의 작품에는 비창작 일반산문 작품이 대부분이다. 글은 자기의 표현이요, 자기의 역사다. 자기 삶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토의문학은 창작문학보다 자서전적인 측면이 많을 수밖에 없겠다. 특히 수필은 조용한 대화적 독백이니 자전적 성격이 강하다. 송 회장의 작품을 일별하면 작품화에 대한 감각은 사진예술의 예술적 감각이 문학 작품에 영향을 주어 실제 작품에서 반짝이는 심미안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발견한다. 또한 연륜에서 묻어나는 향토어 사용이 감칠맛 나는 장점으로 나타나고 있다. 제1부 ≪화양촌(華陽村) 이야기≫는 고향, 유년시절의 이야기들이다. 17편의 작품 속에 유년의 삶의 이야기가 솔직하게 그려져 있다. 고향과 어머니, 그리고 유년 생활의 기억들은 작품 소재의 보고이기도 하다. 송 회장의 고향은 전남 담양군 창평면 장화리 2구 화양촌이다. 초등학교를 다니며 유년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아버지는 3살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얼굴도 모른다. 다만 선산(先山)으로 가는 길목의 큰 바위에 새겨져 있는 ‘홍주송씨세천(洪州宋氏世阡)’이란 필적이 아버지의 유일한 족적일 뿐이다. 홍주 송씨(洪州宋氏)는 충청남도 홍성군을 관향으로 한다. 중시조 때 전라북도 순창군에 내려왔다가 전라남도 담양군에 이거(移居)하였다고 전한다. 고향 방언으로 ‘아장살’이 있다. 어린이 무덤을 말한다. 내가 10여 년 넘게 연구해 온 ≪전라방언문학용례사전≫에 30여 개의 방언이 올려 있다. 「어머니」에 등장하는 ‘석탄주(昔呑酒)’-너무 맛이 있어 ‘삼키기 아깝다’는 가용주-이야기에는 전통을 이어가는 눈물겨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노랑민들레」는 사랑이 눈떠가는 아름다운 얘기다. 〈이것저것 놀이〉로 분석해 보자. 소재[은유]: 노랑민들레=같은 반 여학생, 왜[동일성]: 순수한 사랑, 원관념[주제]: 여학생의 마음, 보조관념[제재]: 노랑민들레, 형상화[창조]: 노랑 민들레 이야기로 여학생의 순수한 사랑을 그려낼 수 있다. 「두부장수 영감님」과 「소금장수」는 좋은 작품이다. 제2부 ≪전방(全紡) 이야기≫는 중장년 시절의 역사다. 모두 13편이다. 모두 젊은 시절 자기 직장에 대해 불태운 열정을 그려놓아서 독자들은 자기 삶을 돌아보며 읽게 될 것이다. 자기 직장을 사랑하며 후회 없이 직장만을 위해 바친 젊음이 돋보인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는데 직장으로 달려가 입은 옷 그대로 적시며 하수구 물빠짐을 원활하게 하여 수해를 막은 얘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애사심이 아니다. 제3부 ≪지실 이야기≫는 송 회장이 현재 살고 있는-2000.1.1. 환갑을 맞아 가사문학면으로 이사한―집과 관련한 작품들이다. 그 중 특히 다음 두 작품은 우리 수필사 어디에 내놔도 당당한 작품이다. 「노루 엉덩이」는 수필이 창작적인 변화를 거듭하여 마지막에 나타나는 〈산문의 詩〉 작품이다. 〈산문의 詩〉는 ‘詩를 품은 산문’으로 집중적으로 비유를 창작한다. 완전한 산문 형식의 시문학인 것이다. 산문이 시화(詩化)했다는 말이다. 〈산문의 시〉 문학 정신은 〈현대문학 이론이 말하면 말하고, 말하지 않으면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문의 시〉는 창작 산문의 본질과 핵심인 〈산문 속의 시 창작〉의 정수(精髓)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양식인 것이다. 다음으로 「천문(天門)을 열고」의 서두 문장을 보자. ‘나는 언제부터인가 사후의 세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사후 세계는 분명 존재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사후의 세계를 상상해 봤다.’ 이 작품을 어떻게 마무리 하였을까? 종결 문장을 살피자. ‘이승으로 가는 길로 들어서면 어머니를 못 보게 될 것인데 이를 어쩌나 머뭇거리고 있는데, 순간 저승 집을 짓고 있는 도리쟁이 목화밭으로 돌아와 있다. 꿈이 현실의 세계로 되돌아온 것이다.’ 서두 문장과 종결문장을 합하여 200자 원고지로 치면 1장이 조금 넘는 분량이다. 송 회장이 쓴 「천문(天門)을 열고」는 17.8장이니 16.8장의 내용은 송 회장의 상상의 세계를 말한 것이다. 곧 허구라는 얘기다. 그 구성으로 보면 찰스 램의 「꿈속의 이이들」과 꼭 같다. 그러니까 〈엘리아 수필집〉(1823) 이후, 200년 만에 한국의 송창근의 「가던 길 멈춰 서서」(2021)의 작품 「천문(天門)을 열고」가 구성에서 똑같은 창작수필인 것이다. 송 회장이 사진에 입문하여 2년 만에 사진작가 인정에 필요한 50점을 확보하고, 백두산을 4번이나 찾아가 백두산 야생화를 찍은 것이나, 40개여 국을 찾아다니며 대표적인 문화유산과 삶의 현장을 촬영했다. ‘소쇄원 48영(詠)’을 촬영하는 데 7년을 고심했다. 그리하여 사진 문화상을 받았다. 솟구치는 예술혼에 대한 정력 말고는 이런 열성적 활동을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수필을 쓰는 데도 이런 면을 보였다. 수없이 주고받은 이메일을 통한 작품 퇴고의 의견 교환과 전화통화…. 처음부터 끝까지 요점 정리를 빼곡히 한 메모장, 건강을 이겨낸 불굴의 의지…. 한 마디로 불광불급(不狂不及)을 말해주고 있다. 미치지[狂] 않고서는[不], 일정 수준에 이르지[及] 못한다[不]는 교훈일 수밖에 없다. 이 정신이 오늘의 송 회장을 있게 한 원동력이다. 문학이란 것을 처음 공부하려는 송회장의 「문학도의 꿈」의 첫 문장을 함께 보자. ‘오늘은 생오지 문예창작대학 입학식 날이다.’ ‘내가 뒤늦게나마 글공부를 시작한 것은 분명 내 인생의 반전이다.’ 이것은 마지막 문장이다. ‘인생은 반전이 있어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분이다. 그렇다. 수필 공부가 송 회장의 인생 반전의 매개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다시 송 회장의 남은 인생 반전을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