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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제Ⅰ부 일왕의 칙령과 경성부 축소 제1장 일왕, 조선 13도제를 결정. 한성부는 경기도로 01 일왕, 칙령으로 ‘조선총독부 관제’ 공포 02 관보를 통한 ‘조선총독부 관제’ 공포 03 일왕, 칙령으로 ‘조선총독부 지방관관제’ 공포 04 ‘조선총독부 지방관관제’를 일본 관보에 싣고 일본 내외에 알림 05 ‘조선총독부 지방관관제’를 ‘조선총독부 관보’에 게재 06 1910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6호’로 각 도의 관할구역 결정 07 ‘조선총독부령 제7호’로 ‘한성부’는 ‘경성부’로 개칭 08 1914년 ‘조선총독부 경기도령 제1호’로 경성부 범위 축소 제2장 일제의 경성부 축소와 시구개정 계획 01 일제는 왜 경성부를 축소했는가 (1) 경성부 소속 북한산 (2) 의병들의 거점 북한산 (3) 1907년 이후의 주둔 일본군과 헌병대 (4) 1910~1914년 사이에 일어난 조선 내의 주된 의병들의 독립운동 02 총독부 청사와 조선신궁 건설로 경성부의 풍수지리를 파괴 03 북촌과 남촌 04 ‘경성시구개수 사업’과 남촌의 확대 05 일제에 의한 ‘시구개수’(시구개정) 사업 06 일제가 ‘시구개수’(시구개정)를 실시한 지역 07 도쿄시구개정을 본뜬 경성시구개정 제3장 칙령 제375호와 1914년 경성부 축소 01 칙령 제375호 토목회의관제와 정무총감 02 조선총독부의 의사결정 과정과 공문서 폐기 03 경성도시구상도 04 1914년 경성부 축소에 관한 잠정적 결론 05 도쿄시구개정과 데 라란데 제4장 칙령 제정 과정과 경성부 축소 01 통치 기구를 규정하는 법체계와 행정문서 02 칙령 발령까지의 의사결정 시스템 03 ‘조선총독부 관제’가 제정되기에 이르는 과정 04 일왕이 칙령을 공포할 때의 의사결정과정 제Ⅱ부 풍수지리로 본 한국과 일본의 수도 제5장 조선왕조실록으로 본 서울과 북한산의 관계 및 행정구역 변천 01 북한산(삼각산)이 서울의 조종산(祖宗山)이 된 근거 (1) “태조실록 3권, 태조 2년 1월 21일 정묘(1393)” - 신(神)을 정함 - (2) “태조실록 6권, 태조 3년 8월 12일 기묘(1394)” - 도읍을 정함 - (3) “태조실록 6권, 태조 3년 9월 9일 병오(1394)” - 도읍을 정함 - (4) “태종실록 28권, 태종 14년 7월 25일 병신(1414)” - 삼각산의 신위를 백악산에 옮겨 짝 지웠다 - (5)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변사” - 삼각산 = 한성부의 중악 - (6) “고종실록 43권, 고종 40년 3월 19일 양력(1903, 광무[光武] 7년)” - 다섯 방위의 큰 산, 진산, 바다, 큰 강을 봉하다 - (7) 조선왕조실록에서 경성(京城)이 나오는 사례 (가) “태조실록 4권, 태조 2년 8월 1일 갑술(1393, 홍무[洪武] 26년)” (나) “숙종실록 9권, 숙종 6년 7월 23일 경술(1680)” 02 조선시대 ~ 일제강점기, 조선(한국)의 지방행정구역 변천 03 조선시대, 대한제국 시대의 한성부 중앙의 모습 04 조선시대, 대한제국 시대의 한성부 전체 모습 05 경성과 ‘경성접근지지(京城接近之地) 제6장 풍수지리로 건설된 일본의 도읍 01 일본식 풍수지리로 건설된 일본의 고도(古都) 헤이안경(平安京) 02 총독에도(도쿄) 건설에 쓰인 인위적 풍수지리학 결론 |
Yuji Hosaka,ほさか ゆうじ,保坂 祐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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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용역은 1914년 경성부가 축소되면서 북한산이 서울(경성부)에서 배제되는 경위 및 역사적으로 본 서울(한성부, 경성부)과 북한산의 의미에 대해 조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 p.7 1910년 8월 29일 일본이 대한제국을 병합하여 대한제국은 ‘조선’이 되었다. 그 후 1910년 9월 26일, 일왕이 반포할 ‘조선총독부 관제’에 관한 칙령안이 내각의 자문기관인 추밀원(樞密院)에서 결정되어 일왕이 그 칙령안을 재가하였다. 이렇게 하여 일왕의 칙령에 의해 ‘조선총독부 관제’가 공포되었고 조선총독부 설치가 결정되었다. --- p.17 1914년 1월 30일 ‘조선총독부 관보’에 ‘조선총독부 경기도령 제1호’가 게재되었다. 이를 통해 경성부가 원래의 한성부로부터 대폭으로 축소되었고 북한산(삼각산)이 경성부에서 제외되었다. --- p.34 경성부는 경기도 일부분인 작은 서브시스템(subsystem)으로 변질되었고, 면적은 36.18㎢로 축소되었다. 이것은 원래 한성부의 1/5 정도의 면적이었다. 바로 이때 북한산(삼각산)이 고양군으로 편입된 것이다. --- p.35 원래 북한산은 그 전체가 한성부(경성부)에 속하는 산이었다. 일제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1912년 6월에 출판된 『경인통람(京仁通覽)』을 보면 ‘경성부의 위치’라는 소제목 하에 북한산이 언급되어 있었다. --- p.41 그러나 1914년의 경성부 축소로 인해 북한산은 경기도 고양군에 편입되었고, 1936년 경성부가 일부 확대되었지만 북한산은 그대로 경기도 고양군에 남았다. --- p.42 일제와 조선총독부는 북악산을 배경으로 하는 땅의 풍수지리적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고 판단된다. 결국 조선신궁은 주작(朱雀)의 위치인 남산에 건립되었다. --- p.49 1910년 조선의 식민지화를 달성한 일본은 치안 안전과 거류민 보호가 가장 급선무였다. 그러므로 조선총독부는 각 지방에 시구개정’(시구개수)에 관한 훈령을 내림과 동시에 1912년 11월 6일 조선총독부 관보 제81호에 ‘조선총독부 고시 제78호’를 게재하였고, ‘경성시구개수 예정 노선’을 발표하였다. --- p.54 북한산을 제외한 경성부의 1914년 행정구역 변경을 미리 보여주는 그림설계도가 바로 ‘도시구상도’인 것이다. --- p.76 경성부로부터 북한산을 제외시키는 작업에는 그 근본에 일왕의 칙령, 예산 편성에는 일본의 제국의회가 모두 관여했다. --- p.104 1884년 시점에서 ‘경성’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고 있었다는 사실과 ‘경성’이 4대문 안쪽, 즉 성곽 안쪽을 지칭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한성부의 중심인 ‘한성’은 이미 1884년에는 ‘경성’이라고도 불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p.132 이처럼 일제는 경성부에 일본식 풍수지리를 적용했으며, 북한산을 경성부에서 분리시킨 것도 북한산이 조선 수도의 조종산으로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무시한 채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 p.150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의해 손상된 북한산의 지위와 소속을 원상복귀하기 위해 북한산 전체를 서울특별시 소속으로 되돌려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일왕을 정점으로 하여 자행된 일제의 만행을 완전히 청산하는 것이 독립된 대한민국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우선적 책무라 할 수 있다. 이에 책임이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기관과 개인은 하루 속히 북한산을 서울특별시에 복귀시켜야 한다. --- p.1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