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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5
제 一 괘. 운상원 소리터에 들어서며·18 一 . 1950년대┃삶에 거문고를 들이다·22 제 二괘. 음악인 가문, 명인을 배출하다·23 좋은 땅에서 꽃이 피듯·23 ‘소희 고모’김소희 명창·25 국악, 자리잡다·27 왜 거문고였나·29 제 三괘. 거문고에 대하여·31 거문고로 연주하는 산조·33 김무길이 연주하는 거문고 산조·34 제 四괘. 김무길의 첫 스승, 한갑득·36 가르침의 현장이었던 종로구·36 거문고를 처음 잡다-숫놈과 암놈의 주고 받기·38 눈물 젖은 거문고·40 수만독 타라·41 김무길의 방은 시끄러운 한증막·44 나는 정신이상자가 아닙니다·45 인간 한갑득, 그에 대한 기억·47 제 五괘. 신쾌동 명인과의 만남·52 여러 유형의 입학생이 있었던 관광예술요원양성소·53 또 다른 거장, 신쾌동을 사사하다·54 재미없는 정악을 해야 된다고?·56 산조에는 유파가 있었다·58 애제자·60 거문고 공연에 술대를 빠뜨리다니·62 신쾌동의 아들·66 임방울 명창, 김무길에게 판소리를 권하다?·67 문화재 전수생이 되다! 하지만...·69 두 거장 사이에서 난처해진 제자·70 옛 스승의 눈물·72 신쾌동의 별세, 그리고 한갑득의 문화재 보유자 지정·75 二 . 1960-1970년대┃현으로 누비는 세상·78 제 六괘. 한일섭의 가르침·79 운당여관으로 후반기 교육 집합·79 한일섭의 구음 명강·81 산조아쟁을 만들어 아쟁 산조를 창시한 한일섭·84 제 七괘. 국극단 악사로 시작한 20대·86 평생의 의형이자 친구였던 서용석 명인·86 국극단 입단과 배필과의 만남·89 매력적인 국극 반주·90 이리꾸미 중 뜻하지 않게 발굴한 국악 영재·91 사업부를 피해 살 길을 찾다·94 제 八괘. 창단과 함께 입단한 서울시국악관현악단·100 서울시국악관현악단과 박헌봉 선생·103 창설 초기의 음악·105 첫 악단 생활·106 제 九괘. 국악의 중심지, 종로·110 청수장에서의 연습·111 궁궐에서의 연주·113 정식으로 통성명하게된 이생강·114 젊은 국악인들을 위한 새로운 특설무대, 요정·116 대기업 회장단, 요정에서 국악 요정(料亭)을 부르다·117 신용호 회장과 민속촌 막걸리·119 우리도 요정에서 좀 마셔보자!·121 풍류와 운치가 넘치던 이병철 회장의 별장·122 제 十괘. 사우디아라비아로 날아간 국악인·124 거문고를 관두기로 결심하다·126 배관공 김무길·129 무난히 통과한 필기 고사·130 위기의 면접·131 드디어, 사우디아라비아로·133 거친 모래 바람도 끊지 못한 국악의 연(緣)·136 사막의 나라에서 농악을 가르치고·138 귀국, 그리고 사업 구상·141 三 . 1980-1990년대┃중진이 되어 거문고계를 이끌다·144 제 十一괘. 국립국악원에서 맞이한 새로운 전성기·147 국립국악원에서 접근해오다·147 현을 다시 품고·150 입단 시험·151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기틀을 다지다·154 입단 초기에 있었던 재미있는 일화·156 아쟁 명인 박종선 영입전·159 민속악의 갈래를 개척하다·162 “저 사람들 뭘 하는 거야?”·168 제 十二괘. 흥미진진했던 외부 연주·171 우리가락 마당 활동·171 세실극장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연극을·174 국립극장 음향감독들의 암투·176 제 十三괘. 제자들과 함께한 시간들·179 화엄사에서의 수련·179 지리산을 바라보며 새로운 음악을 구상하다·181 양평 연수원·183 구전심수, 그 무형의 매력·184 四. 2000년대┃지리산 자락에서 시작된 거문고 인생 2막·188 제 十四괘. 남원에서 시작된 인생 2막·190 운상원 소리터의 개원·191 운상원 소리터의 작명과 용도·194 국립민속국악원의 실질적 사령탑이 되다·196 옥보고, 되살아나다·198 제 十五괘. 2022년의 김무길·203 좋은 터와 좋은 사람들·203 거문고 연주의 편의를 생각하며·205 김무길 명인이 판별하는 좋은 악기는?·208 80년 음악 인생을 돌아보다-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의 공연·211 2022년의 김무길·214 제 十六괘. 운상원 소리터를 나서며 - 편집자의 글·217 사진 저작권 일람·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