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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나의 지나온 삶과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연대기: 청록 김주일(靑綠 金周鎰)을 기록하다 제1부 청록의 일생(一生) 1장 나의 유년 시절과 보릿고개 01. 나의 유년(幼年) 시절(1999년) 02. 목화 열매(2011년) 03. 소는 풀을 먹고, 나는 지식을 먹고(2000년) 04. 서당의 칼침 준 회초리(2001년) 05. 한글+한문 병기(竝記) 예찬(2006년) 06. 복숭아 장사(1995년) 07. 초등학교 7학년 졸업(2010년) 08. 새끼 돼지 한 쌍의 빚(2011년) 09. 가난은 나의 주춧돌(2004년) 10. 예천초등학교 39회의 애환(哀歡)(2011년) 11. 얼굴(2004년) 2장 공직의 출발점, 경제기획원 01. 5 16군사혁명과 경제기획원 설립(2008년) 02. 일본으로 발령(1998년) 03. 일본인 가정집 입주(2001년) 04. 신세계(新世界) 일본(1998년) 05. 직을 걸고 저지한 안정항(安井港) 확장과 경인운하 건설(2009년) 06. 한일 비교연구회 창립: 초대 회장으로(2006년) 07. 지난날의 회고와 향후 경제기획원의 위상(1991년) 08. 작은 정성으로 큰 도약(跳躍)을(1990년) 3장 자비 01. [山代昌希氏と私] 기고문(1996년) 02. 목적과 수단: 이발관 운영과 대학원 공부(1968년) 03. 일본 유학 시절 이모저모(2007년) 04. 호주 시드니 유학 시절 이모저모(1986년) 4장 나라 살림살이를 꾸려가다 01. 공직의 절반을 나라 살림살이 꾸려가는 자리에서 일했다(2011년) 02. 예산맨은 균형과 원칙, 기준을 중요시 한다(2011년) 03. 예산 편성의 기본방향과 내용(2012년) 04. 공평한 예산 편성은 거의 불가능하다(2011년) 05. 재정 건전화(2011년) 06. 쓸 돈은 적고 국가가 할 일은 산더미처럼 많다(2011년) 07. 나랏돈은 ‘내 돈보다 더 소중하다’는 생각을 갖고 일한다(2012년) 08. 수입(세입)과 지출(세출) 균형 맞추기(2011년) 09. 건전재정이 경제위기 막았다(2011년) 10. 예산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2011년) 11. 예산과목 재분류와 예산업무의 전산화 12. 상고(商高)출신 관료의 약진(2005년) 5장 서울특별시 근무의 보람과 성과 01. 일하는 보람을 가장 많이 간직한 서울시 근무(1987~1990년) 02. 서울시⇔동경도 간 우호도시 협정 체결 주역(2011년) 03. 제2기 지하철 건설자금 조달과 일본 ODA 자금 5억 불 도입(1987~1989년) 04. 외부에서 온 직원에게 훈장을 수여하다(1988년) 05. 지하철 건설과 운행에 얽힌 몇 가지(首題) 이야기들(1987~1989년) 6장 국회사무처에서 근무한 보람 01. 행정부의 예산 편성, 국회의 심의 02. 1994회계연도 예산(안) 본인 검토보고서 요약(1993년) 03. 1994회계연도 예산(안) 검토보고의 이모저모(1993년) 7장 경제관료에서 외교관으로 변신 01. 일본의 경쟁력 ‘경제수준보다 낮은 임금’에서 나온다(1997년) 02. 대일외교: 경제, 통상, 교류 협력에 관한 접근 방법(1998년) 03. 總領事館運營과 關聯한 改善事項, 本部建議文(1999년) 04. 한일 간 무역역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책은?(1996년) 05. 노후(老朽)된 외제 차(벤츠)를 국산 차(그랜저)로 대체한 이야기(1996년) 06. 월드컵 한일 공동 개최 어떨까(1995년) 07. ‘제10회 한국 JC특우회’ 아타미(熱海)에서 개최(1997년) 08. IMF 외환위기 당시 ‘나라사랑 외화예금하기 운동’ 앞장 09. 일본 국민성의 두 가지 속성(俗性), 立前本根와 質實剛健(2009년 5월) 10. 급격한 엔저를 몰고 온 일본경제구조를 다시 본다(1998년) 8장 국가와 사회, 국민에 진 빚을 갚기 위한 봉사활동 01. 대한적십자사 경영합리화 추진위원 겸 간사로 활동(2009년~2011년) 02. ‘대한적십자사 경영합리화 추진위원회’ 주요 업무 현안 파악 03. 실무중심으로 살펴본 개발연대 이야기 04. 본인이 ‘경제교육봉사단’에 참여, 가르치는 보람 05. 경제상식이 통하는 사회는 중 06. 우리가 정말 지켜야 할 것들(2010년) 07. 재일동포 3~4세(世) 어린이 서울 방문(2006년) 08. ‘국제화 시대의 청소년의 자세’ 특강을 마치고(2012년) 사진화보 ‘청록의 일생(一生)’ 제2부 청록의 시론(時論)과 제언(提言) 1장 복지는 아름다운 유혹 01. 복지를 위한 재원 마련 어떻게 할 것인가(2011년) 02. 복지 논쟁과 ‘애빌린의 역설’(2011년) 03. 의료보험제도 도입을 관철시킨 신현확(申鉉碻) 경제부총리(2008년) 04. ‘건정재정포럼 창립’ 발기인으로(2012년) 2장 한일 교류 협력 01. 한일 젊은 세대 간의 교류·협력을 활성화하자(2001년) 02. 한일 FTA(자유무역협정) 추진의 의의와 대응 전략(2005년) 03. 한국의 ‘효(孝)의 문화’와 일본의 ‘충(忠)의 문화’의 차이(2000년) 04. 일본 민주당 정권 탄생과 한 05. 민간외교: 한일(韓日) 협력위원회의 역할(2008년) 06. 제47회 한일 협력위원회 합동 총회에서(2011년) 07. ‘동일본 대지진’ 전화위복 될 듯(2011년) 08. 일본 대재난에서 살펴본 질서 문화의 실체(2011년) 09. 역대 일본 총리대신과의 만남 10. 일본 정치인, 학자, 경제인과의 교분 11. 다케시다 가계(竹下 家系)와의 교분 12. 마츠오 가계(松尾 家系)와의 교분 3장 언론 기고문(일반) 01. 우루과이 라운드(UR) 유예기간 활용, 발전 계기 삼아야(1990년) 02. 쌀 문제 이렇게 풀어 보자(2002년) 03. 농촌경제 IMF 전후보다 더 어렵다(2000년) 04. ‘21세기 농업개방화시대의 농민의 생존전략’ 강연을 듣고(2000년) 05. 부 (釜) 울(蔚) 민영전철 건설구상 브리핑(2010년) 06. 부산⇔울산 민영전철 건설구상(1999년) 07. 일본의 민영전철과 국철(JR)의 경제성과 편익성 비교(1986년) 08. 지방자치의 선진화와 지역개발(년) 09. 인권과 행복추구권, 그리고 눈치 안 봐도 되는 사회(2001년) 10. 새 정부에 바라는 농사꾼의 간절한 소망(2003년) 11. 처칠의 ‘영감을 주는 리더십’(2008년) 12. 우리나라 국가경제, 재정전문通, 폭넓은 인맥을 갖춘 일본通(1993년) 13. 오늘의 일본 왜 이러나(2013년) 4장 언론 기고문(예천군 관련) 01. 장년(壯年)이 된 예천군의회에 거는 기대(2011년) 02. 군(郡)사업추진계획 발표 신중해야(1996년) 03. ‘문화와 화합’에도 우승하는 군 되기를(2005년) 04. 세금의 쓰임새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2003년) 05. 생명수 ‘물’ 아끼고 절약하는 습관을(2001년) 06. ‘마른 수건에서 물을 짜낸다’(2000년) 07. 일할 맛 나는 생산적인 조직의 선행 조건(2001년) 08. 오만(傲慢)과 독선(獨善)적인 행정 행위, 그 피해자는 주민이다(2009년) 09. 못 이룬 지역사업들: 아쉬움이 남다(2010년) 10. ‘주민의 행복한 삶의 길’ 무엇이 행복지수를 높이는가(2011년) 11. 예천지역을 빛낸 현존인물 선정의 의미(2005년) 12. 살기 힘들면 떠난다(2008년) 13.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보인다(2002년) 14. 예천에 일본 수출 전용 김치 공장을(2000년) 15. 예천도 명품 특산물, 향토 자원 많이 있는데(2009년) 16. 생활권이 겹치는 행정구역 통합 공론화하자(2008년) 17. 예천⇔제주 간 비행노선을 살리자(2003년) 18. 부실 공사 추방 원년으로 되돌아가자(2000년) 19. 농경지로 개간될 뻔한 회룡포(回龍浦) 이야기(2010년) 사진화보 ‘청록의 시론(時論)과 제언(提言)’ 제3부 청록의 신변잡기(身邊雜記) 1장 나의 사랑, 나의 향리 ‘예천’ 01. 공직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서(1996년) 02. 개심사지 5층 석탑과 고평들 물바다의 추억(2011년) 03. 예천읍 상수도 시설 추진 과정, 남기고 싶지 않은 실체(2002년) 04. 보문면 고평동을 예천읍으로 편입시킨 뒷 이야기(2002년) 05. ‘예천터미널 신예천교 간 시가지도로’ 국비로 확포장하게 된 경위(2002년) 06. ‘예천⇔영주 간 지방도’ 전액 국비(세계은행 차관 포함)로 확포장하다(1980년) 07. 예천공설운동장 건설에 얽힌 일화 08. 시범구역으로 시작된 예천⇔안동 간 자동차 전용도로(2002년) 09. ‘한국농어촌공사 예천지사 신축’ 호화 신축 비판 언론보도와 관련하여(2008년) 10. ‘예천생산‘ 벽돌 최초로 일본으로 직수출 결정 11. 요코하마 총영사관을 방문한 예천인 12. 예천 우수 농 축 특산품 전시 판매장 개관(천호역)(2012년) 2장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내 삶의 이모저모) 01. 나의 사병생활과 측근에서 본 박정희(朴正熙) 군수기지사령관(2011년) 02. 박태준(朴泰俊) 포항제철 회장과의 인연(因緣) 03. 제16대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과의 인연(因緣)(2009년) 04. 제17대 이명박(李明博) 전 대통령과의 인연(因緣)(2012년) 05, 지암 남덕우(芝巖 南悳祐) 회장님과의 네 차례 인연(因緣) 06. 가까이서 모셨던 고마운 상사님들 07. 일본경제신문(日本經濟新聞)과의 연(緣)(1998년) 08. 韓日 友好親善 증진을 위한 양국 지도자 결연식장에서(韓國側 代表 人事 말씀)(2005년) 09. 국회의원이 코앞까지 온 이야기 10. 이런 일 하는 자치단체장이 되고 싶다(2002년) 11. 자치단체장 입후보의 변(辨)(2002년) 12. 예천 지방자치단체장 입후보 뜻을 거두면서(2002년) 13. 내 별명이 ‘난노호가 곤나호가 아루카’가 되다(1967년) 14. 경로연금대상자가 된 감회(2002년) 15. ‘이런 인생 저런 인생’ 녹화 방영: 안동 MBC(2000년) 3장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에 대한 향수 01. 박정희(朴正熙)의 철학: 우리도 할 수 있다(2010년) 02. 실무자가 겪은 그가 이룬 업적과 치적(治績)(2010년) 03. 신(新)행정수도 이전 구상(2011년) 04. 역사적 공과(攻過)는 그 시대의 잣대로 평가해야 05. 경제개발 자금 조달의 동력이 된 파독 광부, 간호사 06. 10월 유신의 배경이 된 안보위협과 중화학공업 육성 07. 새마을운동과 녹색혁명(1965년~1977년) 08. 위대한 지도자 박정희 09. 애림사상(愛林思想)과 산림녹화(山林綠化) 10. 1970년대 관광정책 11. 무역(수입+수출) 규모 1조 달러 시대(2012년) 12. 한누리 포럼 창립(2010년) 13. 제18대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국정과제(2012년) 4장 농촌생활에 삶의 즐거움이 있다 01. 情과 땀이 서린 故鄕山河가 좋아(2010년) 02. 농촌생활에 삶의 즐거움이 있다(2007년) 03. 5월은 계절의 여왕이다(2009년) 5장 여행은 즐거워 01. 지구는 크고, 세상도 넓더라 02. 되돌아보고 싶은 관광지와 유물. 유적, 인상에 남는 여행지 03. 다시 가보고 싶은 관광지 04. 아직도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너무 많이 남아 있다 05. 국내외 여행 중 희귀한 돌(石), 야생화(花) 수집 06. 크루즈로 떠난 서부유럽여행(2013년) 07. 민둥산을 푸른 숲으로 가꾼 이야기(2013년) 6장 나의 골프 사랑 47년 01. 골프를 시작하게 된 동기(2011년) 02. 어학연수를 위해 골프의 천국 호주(시드니)에 가다(1993년) 03. 주한 일본대사관 공사 송별 골프가 문제가 되다(1993년) 04. 처음 해 본 ‘Hole in one’의 짜릿한 감동(2000년) 05. 골프와 관련된 일화 세 가지(2002년) 06. 새로운 골프 동우회가 탄생할 때 초대 회장은 본인 몫이다(2009년) 07. 골프 훈수 들기 7장 나와 나의 가족 이야기 01. 어머니, 그리운 나의 어머니(1998년) 02. 고향 노인정 이야기 ‘차 한 잔의 명상’(1994년) 03. 국회 예결위 계수조정소위 문 앞에서 서성대는 아들을 보면서(2011년) 04. 아비의 부족함을 자식에게 채우려고 욕심부린다(2011년) 05. 가장 아끼고 기대했던 막내 동생을 잃고(2011년) 06. 문단에 등단한 제수씨의 수기 07. 나에게 힘을 실어준 내 가족 08. 靑綠(周鎰) 家系人的構成 09. 안동김 예천군화수회 회장에 취임하다(2011년) 10. 崇祖堂 公園 造成 趣旨文(2013년) 사진화보 ‘청록의 신변잡기(身邊雜記)’ 발문 1 ‘나의 삶과 걸어온 길’을 마감하면서 발문 2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 출간후기 [민둥산을 푸른 숲으로 가꾼 이야기]를 출간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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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의 승진과 열 곳의 과장보직, 열 곳의 정부 독립기관 근무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저자 김주일
‘개발연대에서 선진화까지!’ 한국경제사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평생을 정진해 온 김주일 대사의 총영사의 진솔한 회고록 『민둥산을 푸른 숲으로 가꾼 이야기』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으로 한국경제 발전과 한·일 우호 증진에 한평생을 바친 청록(靑綠) 김주일! 열 번의 승진과 열 곳의 과장보직, 열 곳의 정부 독립기관 근무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김주일 전 대사(서울시 투자관리국장, 경제기획원 경제교육기획국장과 예산총괄국장,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주일본 대한민국대사관 경제담당공사 총영사 등)가 공직을 떠난 지 10여 년의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 그가 조심스럽게 지나온 삶을 기록한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공직에 있던 40년간 민둥산을 푸른 숲으로 바꾸어보겠다는 각오로 나랏일에 임해왔다.”라는 말로 첫 말문을 연다. 그렇게 이 책을 통해 개발연대 전후에 정부와 그가 추진했던 경제 관련 정책의 모든 것을 풀어 놓는다. 또한 공직 생활 40년간 어떤 잣대로 일을 기획·추진했고 평가했는가 그리고 향후 한국경제의 발전을 위해 국가는 진정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숨김없이 털어놓는다. 대한민국 경제사의 실무자적 주역이자 산 증인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날이다. 올해가 2013년이니 정확히 65년이 된 셈이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크게 분류하면 건국과 한국전쟁, 정부주도의 산업화시대, 민주화시대, 정보화 선진화 시대로 나눌 수 있다. 그 중심의 틀은 역시 눈부신 경제발전 과정일 것이다. 깜짝 놀란 전 세계인이 한강의 기적이라 명명한 우리 경제발전사는 인류 역사에 남을 업적이자 대한민국의 미래를 빛나게 할 위대한 유산이다. 하지만 이 모든 업적이 그냥 거저 얻어진 것은 아니다. 과거 허허벌판이었던 대한민국의 맨땅 위에 두 주먹으로 정부주도 산업화시대, 즉 개발연대를 이끌어 온 우리 세대의 피땀 어린 노력이 있었기에 달성할 수 있었던 성과이다. 이 모든 과정을 직접 참여하여 모든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사람은 이제 몇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중에 김주일 전 대사가 있다. 한국 경제가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던 1969년부터 20여 년 동안 저자는 경제기획원에서,,외교부 에서 경제정책과 외교행정을 주도했으며,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경제와 외교에 대해 안팎으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책에는 파란과 격동이 점철했던 개발연대의 여러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또한 경륜 있는 원로로서 한국 경제가 나아갈 길에 대해서도 현실적 청사진과 전략적 대처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오직 나라를 위한 걱정이 평생 꺼지지 않는 열정으로 보통 ‘명의’라고 하면, 사람들은 으레 편작(扁鵲)을 떠올린다. 하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죽은 사람도 살린다고 알려진 중국의 전설적인 의사 편작에게는 두 명의 형이 있었다. 큰형은 병이 생기기 전에 예방하고, 작은형은 병의 초기 단계에 고쳤으며, 편작은 중병환자만을 고쳤다. 그러나 편작은 오늘날까지 기억되는 반면 그의 형들이 명의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세상은 중병에 걸린 사람을 고치는 편작을 명의로 인정하지만, 병에 걸리지 않게 미리 예방한 ‘예방 명의’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정치인은 편작과 같은 명의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나라 살림을 맡아 하는 공직자는 편작의 형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김주일 전 대사 또한 경제 정책을 추진할 때 편작의 형과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자신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온갖 큰일에 관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그는 평생 그렇게 일을 해왔고 다른 누군가가 또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듯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은 것만은 아니다. 경제 위기와 실업난에 쫓겨 아무 열정과 의지도 없이 젊음은 허비하는 청년들에게 자신이 걸어온 길을 똑같이 걸어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국경제사의 중요한 사료로서도 가치가 크지만 대한민국이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무엇인가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더 의의를 가진다. “자신의 경험담이 한국경제와 공직에 몸담고 있는 후배들의 성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정성스레 원고를 집필하였다.”라는 출판 소감은 그래서 더욱 감동적이다.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오랜 명제는 인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진실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우리가 이 책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 책의 첫 장을 여는 일은 그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