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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
총 한 마리 연습 입술 칼 숨 쉬는 삼각형 칠중살 혼 수장 구멍 바람 길 길 찾기 문자 해 쌀 나무 눈깔 나무 햇빛 칼날 숨통 문 깃발 바람 나비 커피 물 강바닥 달 인연의 끈 하얀 옷고름 지하 흙 땅 줄자 쓰레기 소리 파동 비명 씨 자궁 비녀 붉은 꽃 몸 콩팥 알 화살 특공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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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 꿰듯이 엮어놓은 ‘바리’ 그리고 ‘꿈’
국제엠네스티에 의해 ‘올해의 양심수 3인’으로 선정된 바 있는, 그림 한 점으로 인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당하기도 했던 홍성담 화백의 그림소설 『바리』가 출간되었다. 화백이 아닌 작가 홍성담의 이름으로 낸 『바리』는 서사무가 [바리데기]를 주제로 한 작가의 꿈을 구비 구전 양식을 빌려 구슬 꿰듯이 엮어놓은 그림 소설이다. 홍성담은 화가로서 자신의 무의식에 어른거리는 세계를 그림으로, 또 글로 옮겼다. 그 과정에서 “이 책에 있는 글은 그림 같고 그림은 글 같은 어지러움을 일으”키기도 한다. 독자는 책을 덮는 순간, “장자의 호접몽을 떠올릴 필요도 없이 지금 우리가 사는 땅의 현실이 꿈보다 더 꿈을 닮아서 이 부족한 책을 내면서도 전혀 부끄럽지 않다”는 작가의 말을 자꾸 되뇌게 된다. “인생 어딘가에 비밀스럽게 숨겨놓은 비나리 웅얼거림” 같은 이야기와 그림 속에서 언제, 어느 순간 곁에 와 있을지 모르는 바리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모든 목숨붙이의 현현(顯現) 서사무가 [바리데기]에 등장하는 바리는 병든 부모를 구하기 위해 저승의 문턱을 넘는 인물로 묘사된다. 숱한 고난을 겪은 후 손에 넣은 생명수로 부모를 구한 바리는 아비인 오구대왕이 치하의 의미로 나라의 절반을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한다. 그러고는 “누구나 죽으면 반드시 한 번은 건너가야 할 삼도천을 주재하는 무당으로 좌정”한다. 그러나 홍성담의 『바리』에 등장하는 바리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는 그녀에게 대뜸 물었다 ‘네가 하는 일에 만족하는가?’ ‘나라의 절반을 갖는 것보다는 훨씬 멋진 일이다 무엇의 절반이란 항상 문제를 원점으로 되돌릴 뿐이다 모든 것을 갖지 못할 바엔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것이 훨씬 더 낫다’ 바리는 죽은 부모를 살린 대가로 나라의 절반을 주겠다는 아비의 제안을 거절하고 피안의 강을 지키는 무조(巫祖)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두고 무욕의 결정이라고 칭송했다 그런데 사실은 아비의 제안을 그녀는 아주 섭섭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그는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17쪽, 「바리」 중에서) 작가의 말 드로잉 수준의 바리데기 꿈 그림들에 다시 색을 입혀서 새롭게 그렸다. 그리고 그림에 글을 붙여서 내 블로그에 올렸다. 그중에는 이미 20년이나 지난 꿈 그림도 있었지만, 오래된 그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영화를 보듯이 당시의 꿈이 그대로 되살아났다. 나는 신기했다. 그것을 글로 설명하는 작업은 의외로 쉬웠다. 당시 꿈속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면 그만이었다. 그림과 글이 그런대로 서로 보완 관계를 유지하면서 꿈이 보여주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해볼 수 있겠지 싶었다. 한 장의 그림에 주어진 이야기는 그것 자체로 완성된 형태를 갖기도 하지만, 또 다음 장과 서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전체적으로 일정한 얼개를 구성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바리데기를 주제로 한 꿈을 서사무가의 구비 구전 양식을 빌려 구슬 꿰듯이 엮어놓은 것이다. (중략) 이 책을 자리매김할 수 있는 마땅한 장르는 없다. 나 역시 장르 따위의 조건에 함몰되어 기껏 재능의 노예가 되는 것은 싫다. 아무튼, 이 책은 말 그대로 ‘꿈·그림 노래’라고나 할까. 누구나 자신의 인생 어딘가에 비밀스럽게 숨겨놓은 비나리 웅얼거림이다. ―[바리를 만나기 전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