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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들어가며 1장 가족 2장 슬픔 3장 모험 4장 자만심 5장 완벽주의 6장 기쁨 7장 위험 8장 압박 9장 희망 10장 회복력 11장 비탄 12장 두려움 감사의 글 용어 해설 |
Stephen Westa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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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이름을 물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단지 절차에 인간성을 더하고 잔인성을 덜어내고 싶었다. 힘겨운 숨결 사이로 그녀는 더듬더듬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법대생이었다. 내 딸 제마도 법대생이었고, 그로 인해 내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나는 오른손으로 그녀의 차디찬 손가락을 잡고는 왼손으로 머리칼을 어루만졌다. 그렇게라도 말뚝을 시야에서 가려주고 싶었다.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저 이제 죽는 거, 맞죠?”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때부터 나는 외과의사 노릇을 잠시 멈추기로 했다. 그녀의 말이 옳다는 것을 나는 부정할 수 없었다. 생의 마지막 시간을 고통스레 견디는 그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위로를 건네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 시간만큼은 그녀의 아빠가 돼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녀의 머리를 감싼 채 그녀가 듣고 싶었을 말을 들려주었다. 이제 곧 잠들 거라고, 깨고 나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와 있을 거라고. 말뚝도, 고통과 두려움도 사라져 있을 거라고. ---「들어가며」중에서 심장외과에 필요한 자질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반외과 수련을 거쳐야 했다. 모름지기 심장외과의는 훌륭한 손재주, 그것도 타고난 손재주를 갖춰야 했다. 대부분의 신체 기관은 외과의가 칼로 베고 톱으로 써는 동안 얌전히 자리를 지키지만, 심장은 움직이는 표적이요, 압력을 받는 혈액 주머니였다. 잘못 건드리면 격렬하게 피를 내뿜었고, 서툴게 다뤘다가는 리듬이 깨져 돌연 심정지를 일으킬 수 있었다. 둘째, 심장외과의는 심성이 단단해야 했다. 슬퍼하는 유족에게 죽음을 설명할 수 있고 수술실에서 질책을 당해도 씩씩하게 이겨내야 했다. 셋째, 심장외과의는 용기를 갖춰야 했다. 바쁜 상사의 일을 척척 넘겨받을 정도의 대담성과, 갓난아기들의 수술 후 관리를 책임지거나 외상 환자를 치료할 고문의가 빨라도 한 시간 뒤에나 도착한다는 비보를 응급실에 통보할 정도의 배짱은 필요했다. ---「1장 가족」중에서 직업적 성공을 위한 전략으로 머리 외상을 추천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내 머리 부상이 그해 중간 학기에 발휘한 효과는 가히 인상적이었다. 수줍고 내성적이던 소년은 이제 대담하고 용감하며 자기중심적인 청년이 되었다. 더 이상은 시험을 걱정하지도, 붐비는 강의실에서 발표자로 지명됐다고 당황하지도 않았다. 불과 몇 주 만에 나는 이를테면 교내 크리스마스 행사를 주름잡는 사회자에, 의과대학 사교 모임 총무에, 크리켓 팀 주장이 되어 있었다. 스트레스에 면역력이 생긴 듯하더니 어느새 습관적 모험가에 아드레날린 중독자가 되어 끊임없이 흥분을 갈망했다. 사사로운 문제들로 끙끙 앓던 과거는 이제 사라졌다. 요컨대 나는 그때 머리를 다친 이후로 대담해졌고 냉혹한 경쟁을 즐기게 되었다. 외과의에게 꼭 필요한 조정력과 손재주를 타고난 데다, 알맞은 성격유형까지 갖게 된 것이다. ---「3장 모험」중에서 그는 내가 여전히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꿰뚫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게 미국으로 건너가 저명한 의사들과 일해 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로서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단박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심장 이식술의 개척자 노먼 셤웨이 교수와 일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벤톨 교수는 따로 생각이 있었다. 그는 내 외과적 잠재력을 기꺼이 인정하면서도, 내가 정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사실을 다시금 강조했다. 만약 스탠퍼드의 셤웨이에게 간다면, 나는 오히려 더 삐뚤어질 수밖에 없었다. 내게는 존 커클린이 적합했다. 엄격한 교육자로 알려진 그는 메이오 클리닉을 나와, 앨라배마주 버밍햄에 신설된 병원에서 세계 최고의 외과 교육 프로그램 확립에 힘쓰고 있었다. 앨라배마주가 속한 디프사우스는 덥고 습한 지역이었다. 벤톨 교수는 이미 그에게 내 얘기를 해둔 상태였다. 커클린은 나를 엄하게 단련시킬 터였고, 이후에 나는 해머 스미스 병원으로 돌아와 상급 직책을 맡으면 될 것이었다. 이는 일종의 최후통첩이었다. ---「4장 자만심」중에서 마침내 나는 인공심폐기를 사용해 수술한 환자 116명과 인공심폐기 없이 션트수술이나 혈관 수술을 받은 12명으로부터 표본을 수집했다. 인공심폐기를 사용하지 않은 환자에게서는 독소의 혈중 농도가 상승한 사례가 없었다. 이는 곧 마취나 수술 자체는 심각한 염증 반응의 기폭제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흥미로운 부분은 지금부터다. 즉, 심폐바이패스를 시행한 모든 환자의 혈액에 다량의 독소가 방출되었고, 인공심폐기를 연결한 시간이 길수록 혈중 독소 농도가 높게 나타난 것이다. 또한 독소 농도가 높을수록 훗날 폐와 신장과 뇌에 기능부전이 생길 가능성도 높아졌다. 게다가 수술 후 심부전 역시 방출된 독소의 높은 농도와 관련이 있는 듯했다. 심폐 바이패스를 시행한 환자 가운데 11명이 사망했고, 독소의 농도 상승과 사망의 위험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이 실험을 통해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축적되었다. 자료가 워낙 방대하다 보니 진 블랙스톤이 그 결과를 상세히 분석해 의미를 파악하는 데만 몇 주가 걸렸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관류후증후군의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5장 완벽주의」중에서 수년 동안 나는 수많은 HIV 양성 환자를 방호복을 입지도 장갑을 두 겹으로 끼지도 않은 상태에서 수술해 왔다. 나는 스스로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왜냐하면 예민하고 초조한 상태에서는 오히려 사고를 당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었다. 세계보건기구의 평가에 따르면, 2000년 한 해 동안 바늘에 찔리는 사고로 감염된 의료진은 B형 간염의 경우 66,000명, C형 간염의 경우 16,000명, 에이즈의 경우 1,000명에 달했다. B형 간염 환자의 바늘에 찔린 의료진 가운데 10퍼센트가 결국 감염되었고, C형 간염의 감염률은 2퍼센트보다 낮았으며, 에이즈의 경우 0.3퍼센트에 불과했다. 다만 말기 에이즈 환자의 혈액은 감염성이 훨씬 더 높았다. ---「7장 위험」중에서 나는 서둘러 가슴을 절개했다. 망가진 심장이 기능을 멈춘 터라, 이미 혈액의 생화학적 지표가 엉망이었다. 소피는 이제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고, 혈액을 여과해 모든 문제를 바로잡으려면 아이를 인공심폐기에 무사히 연결해야 했다. 흉골을 가르자, 심장을 둘러싼 심낭에 남아 있던 상당량의 노란 액체와 감염성 찌꺼기가 눈에 들어왔다. 문제의 단백질 가닥들은 황색포도상구균과 뭉쳐 그 염증성 용액에 침전된 상태였다. 우리는 그것을 모조리 빨아내고 긁어냈다. 이어서 내가 바이패스용 도관을 삽입하자, 체외순환사는 인공심폐기를 가동시켰다. 이로써 당분간 소피의 안전은 확보되었다. 이제부터는 손상의 정도를 살펴야 했다. (중략)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손상된 승모판막 전엽과 후엽의 가장자리를 심낭으로 재건해 보기로 했다. 심장을 에워싸는 그 섬유성 막은 사용하기에 가장 적합한 재료였다. 하지만 소피의 심낭은 세균이 득실거리는 상태라 별수 없이 나는 소의 심낭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 멸균된 조직판은 심장 및 혈관의 재건이라는 특수한 목적을 위해 관련 업체에서 제조한 것이었다. 나는 그 심낭 패치를 타원형으로 잘라 흐물거리는 심장벽에 꿰매 붙인 다음, 그 위에 다시 여린 판막엽들을 덧붙였다. 이로써 판막은 구멍이 더 작아졌지만, 혈류를 방해할 만큼 작아지지는 않았다. 또한 한쪽에는 인체에서 채취한 대동맥 조각을 덧대어 재건 부위를 보강했다. 만약 피카소나 조각가 헨리 무어가 봤다면 자랑스러워할 만한 역작이었다. 이제 소피의 심장에는 죽은 사람과 죽은 소의 일부분이 포함돼 있었다. ---「9장 희망」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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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공업도시 스컨소프에서 태어나 금욕적이고 독실한 부모 아래 자란 저자는 세상을 3차원으로 시각화하는 능력을 타고난 데다, 대뇌의 편재화 생략으로 양쪽 뇌가 고르게 발달해 양손잡이로 성장했다. 협응력과 빠른 손재주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내향적인 성격으로 용기가 부족했던 대학 시절, 저자는 럭비 경기 중 상대편 선수와 충돌해 머리를 다치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전전두엽이 손상되어 사이코패스적인 냉철함을 얻었다. 이후 다리를 순식간에 절단한다고 ‘조스’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과감하게 수술을 해치우고 어려운 수술을 익히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으나, 수술 외 업무나 병원 규칙을 도외시함으로써 교수들의 눈 밖에 나기에 이른다.
결국 ‘엄격한 교육자’로 알려진 미국 앨라배마 의과대학의 존 커클린 교수에게 수련을 받고 오라는 최종선고를 받는다. 커클린 교수는 1955년 메이요클릭닉에서 인공심폐기를 사용한 직시하 심장 수술(개심술)을 성공시켜 명성을 얻었고, 과학적인 접근법과 특유의 집요함으로 유명했다. 약간의 자유도 허락되지 않은 곳에서 규칙에 순응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저자는 심장이식과 인공심장 연구가 활발하던 1980년대 미국에서 심장 수술의 결정적 후유증 중 하나인 ‘관류후증후군’의 원인과 해결 방법을 발견해낸다. 이후 영국으로 돌아가 옥스퍼드 대학병원에 심장센터를 설립하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다. 분당 5리터의 피를 내뿜는 기관인 심장을 수술한다는 것은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저자는 선천성 심장 기형으로 태어난 ‘청색아’들에게 새 생명을 선사하고, ‘드라큘라 백작처럼’ 환자의 피를 수시로 빼고 체온을 낮추어 수혈 없이 심장 수술을 단행했으며, 심장 판막을 재건하거나 소의 판막을 이식하는 등 심장학 발전의 중심에 서 있었다. 유럽과 미국에서 심장 수술 후 사망률이 25%였던 때, 홀로 6%라는 독보적인 기록을 세우면서 온갖 시험대에 올랐다. 그중 병원의 재정을 고갈시킬 정도로 비용 부담이 많은 외과의로서 공공의료의 허점을 극복하는 것이 괴로웠음을 토로한다. 심장외과 분야가 각광을 받을 때부터 지원자가 나타나지 않는 고단한 현재까지를 내부자의 시선으로 돌아보는 이 책에는 죽음에 저항하는 의사의 손에서 새로 태어나는 환자들의 삶도 함께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모습은 독자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선사하고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완전히 믿을 수 있다… 이 책은 진정성에 대해서는 틀림없는 느낌을 준다.” 《데일리 텔레그래프》 “이 기록을 흥미롭게 읽도록 만드는 것은 취약성에 대한 저자의 예상치 못한 인정이다.” 《타임스》 이주의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