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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너희들이 보약이다 찔레꽃 천만다행 산수유 잠깐만요 고마운 사람 장마철 아욱국 노환 개나리꽃 나이테 기관지염 정월대보름 내 편 수술실 2부 국어선생 아주 잠시 봄 처녀 ‘배화교’ 본당에서 티눈 테너, 첼로를 위한 (임이 오시나보다) 작별 공감 시대 개인전 인생 갈대 백운사에도 단풍이 적벽을 지나며 용서하옵고 귀갓길 친밀한 내 사람들아 3부 열아홉 살 순덕이 자서전 쓰기 외출중입니다 뒤태 깍쟁이 남산길 자갈길 민들레 부적 거름 소인 없는 멧세지가 망망대해 미나리 보름달 주님은 덤으로 4부 가을비 9월이니까 나는 서 있네 진눈깨비 또 봄날 서울 청숫골 화살기도 연분홍 우산 동지죽 최선의 방어 왜냐고 광교산 솔밭에 가면 두메 양귀비 세 동무 난 외로울 때 시력 근황 파도 봄날 같았던 구상 선생님 강물로 흐르소서 해설 | 빛나는 은수자(隱修者)의 시간을 위하여/이성림 |
『잠깐만요』는 그간 열다섯 권이 넘는 저서를 펴내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쳐온 조순애 시인이 십여 년 만에 선보이는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사소하고 또 연약하여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존재들에 자분자분 눈길을 던진다. “내 곁을 돌아보지 못한/ 보고도 외면했던/ 스스로 눈을 가린 죄”(「용서하옵고」)를 고백하는 그 “연민의 시선”(「장마철」)에는 “서로의 상처를 감싸는 마음”(「동지죽」)이 담뿍하다.
표제작인 「잠깐만요」는 버스 안에서 거동이 불편한 화자를 위해 “잠깐만요”를 외쳐준 청년의 이야기다. “그 후로 내내 ‘잠깐만’이 내 가슴을 때렸다”라는 구절처럼, 이 시집은 “느림도 미학”(「나이테」)으로 여기는 시인이 세속의 시간에서 비켜서서 바라본 세상의 풍경을 그린다. 꽃 한 송이, 이파리 하나 등 자연물부터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 나아가 ‘순덕이’라는 이름의 수호천사까지 시인이 풀어내는 세상의 이모저모는 다채롭다. 시집에 수록된 64편의 시는 그 하나하나가 “잠깐만”이라는 외침이다. 시인은 큰 소리가 아니라 다정하고 청정한 시로써 삶에 치어 바쁘기만 한 우리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시인과 더불어 잠깐 멈춰 서서 둘러보는 세상은 새삼스럽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봤음 직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낯익지만, 곁에서 시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범속하지 않다. 시인은 우리에게 “세월 속에 흘러갈/ 영영 잊고 말았을 얼굴들”(「고마운 사람」)을 되돌아보게 하며, “산다는 것은/ 마음을 묻고 싹을 내야 할 고장을 찾는 일”(「서울 청숫골」)임을 알려준다. 또한 자신의 투병 생활과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 등을 통해 삶의 소중함과 그 의미를 되짚기도 한다. 시인은 “자꾸만 뒤처지는 내 걸음이지만/ 걷고 있는 내가/ 많이 자랑스럽니다”(「외출 중입니다」)라고 말한다. 뒤처지고 멈춰 섰을 때라야 비로소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있어서다. 시집을 읽으며 시인과 함께 뒤처지고 멈춰 서다 보면,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삶답게 하는 것은 등수나 금전 등 숫자로 치환되는 가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숫자 말고도 우리는/ 영혼과의 만남도 있음을”(「국어 선생」) 깨닫게 된다. “서로 마주 보기만 해도/ 우두커니 앉은 자리도/ 여기가 보약이다”(「너희들이 보약이다」)라는 시인의 전언은 앞서가고 앞지르는 데 지친 우리에게 큰 울림을 남긴다. “내 보약은 지금 이 자리”라는 구절이 더욱 빛나는 까닭은 그것이 막연한 관념이 아니라 시인이 온몸으로 통과해 온 고통에서 길어 올린 표현이기 때문이다. 『잠깐만요』의 시는 읽기에 어렵지 않다. “위로하고 용기 얻고 이런 거/ 세밑 일기장 펴 놓고 찬찬히 정리한다”(「나이테」)라는 시구는 이 시집의 성격을 잘 말해준다. 『잠깐만요』를 읽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살리는 보약과도 같은 지금 이 순간에 잠시 머무르며, 위로받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