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간행사(이 책을 펴내며) ..005
-헌시 ..008 -축간사(발간을 축하하며) ..011 -간찰집 수록 인물 색인표 ..014 -우경 안정구 선생의 생애 ..017 -종환 안필형 선생의 생애 ..029 *간찰문 발신인 -김병국 金炳國 ..039 -민겸호 閔謙鎬 ..053 -민태호 閔台鎬 ..065 -이재면 李載冕 ..071 -김병주 金炳? ..077 -○수종 ○壽鍾 ..083 -민영익 閔泳翊 ..089 -홍재현 洪在鉉 ..095 -김흥균 金興均 ..101 -김경균 金敬均 ..107 -조용훈 趙龍? ..113 -조신희 趙臣熙 ..119 -이태용 李泰容 ..125 -민영환 閔泳煥 ..137 -민영준 閔泳駿 ..143 -이경하 李景夏 ..149 -김기석 金箕錫 ..155 -허습 許? ..161 -이봉의 李鳳儀 ..167 -박장하 朴長夏 ..173 -심상기 沈相耆 ..179 -김제봉 金濟鳳 ..195 -이명현 李明鉉 ..207 -이두현 李斗鉉 ..215 -심능호 沈能灝 ..221 -정약풍 丁若豊 ..227 -심윤택 沈胤澤 ..233 -부록〈죽산안씨대교공파종중〉 ..240 숭조비·세장비·유사비·공덕비·설단 분포도 용인 선영 세장비문 해설, 항렬표, 역대 족보 등 -안재식 작가 프로필 ..261 참고문헌 |
安珌炯
安在植
박상수의 다른 상품
|
조선왕조의 몰락과 한일합병, 일제강점기, 광복과 분단, 한국동란 등등... 격변의 시절을 지내며 144년간이나 서첩을 원형(原形) 그대로 보존하여 대(代)를 이어 전승하고, 출간까지 한다는 것은 가문의 긍지와 지극한 정성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간찰문을 살펴보면, 우경 안정구 선생이 큰아들(安東璨)의 장래를 염려하여 길을 터주려는 가슴 찡한 부성애가 편지 곳곳에 나온다. 그리고 당시 이조참판 민태호는 ‘상제(喪制)를 당하여 애통한 마음이 더욱 절실하지만 죽은 사람을 따라가지 못하는 슬픔’을 하소연하는가 하면, 금군별장(종2품, 경호실장급) 허습은 ‘상주인 처지에 완악한 목숨을 구차하게 보존하고 있지만 초(燭)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우니 급히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딱한 사정을 전한다. 형조판서 홍재현은 ‘왕대비를 10여 년간 모시며 명을 전달하던 정지사가 아랫사람에게 치욕을 당했으니 그 분함을 풀어달라.’ 그리고 포도대장 김기석은 ‘이웃 마을 임상서 어른의 집안 사정을 전하며 독촉을 늦추어 체면을 살려달라.’는 청탁도 나온다. 19세 민영환은 ‘조카가 내지 못한 세금이나 빚을 그의 삼촌에게 대신 내라고 하는 것은 부당하니 바로잡아줄 것’을 부탁하고, 충주목사 조신희(최초의 판사)는 ‘민영환의 민원이 삼엄하다면서 저리 배현을 가두고 세납 독촉’을 사정하는 내용도 있다. 홍문관교리 이태용은 ‘부친이 병을 겪고 원기가 다해 애태우고 있는데 도하에 돌림병이 불처럼 일어나 사망자가 속출하여 모두 두려워한다... 도통 민겸호 대감이 보국으로 승진하여 운미령(민영익)이 축하 모임을 28일로 정했다.’라는 사연, 그리고 흥친왕 이재면은 ‘숙직을 한 지 여러 날이 되었고, 왕세자 이척(훗날 순종)이 천연두에 걸렸다가 회복되었다.’라는 소식을 전한다. 당시 좌의정 김병국은 ‘집안이 불행하여 큰형님(영의정 김병학)이 갑자기 돌아가시어 가슴이 찢어지고 쓰라린 마음인데, 만나서 하소연도 못 하고 한갓 목이 메일 뿐’이라며 애통함을 전하고, 충청병사 이봉의는 ‘기한을 넘긴 군포를 갚지 못해 두렵다면서, 말씀하신 뜻대로 청나라 장수의 치료에 부응하겠다.’라고 응답하는 사연도 있다. 포침랑 심윤택은 ‘수십 일을 자리에 누워 앓고 있는데, 최근 집안 편지에 곡식이 끊어졌다고 하여 멀리서 염려되는 마음에 더욱 견딜 수가 없다.’라는 등... 당시 사회상이 구구절절 진경산수화처럼 펼쳐진다. 그때의 벼슬아치들과 요즈음 정치인들을 비교하면 씁쓰레하다. --- 본문 중에서 |
|
우경 안정구 선생은 본관이 죽산(신)이고 용인 출신이다. 문성공 회헌 안향(安珦) 선생 후손으로 죽산안씨 대교공파종중 중시조인 대교공 신손(信孫)의 14세손이다. 1828년 부친 안종벽(安鍾璧, 성균진사)과 모친 함평이씨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나 1852년 25세에 식년시(式年試) 무과급제하였다. 그 후 인차외만호·훈련원주부·도총도사·무신겸선전관·훈련원첨정·사천현감·부호군을 거쳐 정3품 당상관인 통정대부에 오르고, 1879년 충주영장으로 김옥균과 함께 관직을 제수받았다. 1880년 종2품 오위장, 다음 해에는 삭주부사(朔州都護府使, 평안북도)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조선말 혼란기인 와중에 대홍수가 겹쳐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1881년 향년 54세로 순직하였다. 나라에서는 살신성인으로 오로지 백성들과 고난을 함께하다 순직한 우경 안정구 선생의 애민정신을 기리고자, 생가가 있는 고향 용인시 백암면 용천리로 운구(運柩)하여 예장으로 치제(致祭)하며 애도하였다. 이 책에 실린 친필 편지 27인은 다음과 같다. 흥친왕 이재면, 충정공 민영환, 영의정 김병국, 대제학 민태호, 병조판서 김기석, 무위대장 이경하, 서화가 민영익을 비롯하여 민겸호·김병주·홍재현·김흥균·조신희·이태용·민영준·허습·이봉의·박장하 등등... 이들은 철종·고종 시대를 살았던 관하 백성, 유생, 능참봉, 사사, 현감, 훈련판관, 내금위장, 포도대장, 도승지, 기사장, 시종무관장, 대사헌, 육조 판서, 도총관, 영의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으로 이뤄진 것이 특징이다. 이렇듯 조선왕조 마지막 사대부들의 간찰 모음집은 그들의 유려(流麗)한 필치(筆致)와 서체(書體)의 예술성, 그 내용의 다양성으로 보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도 손색이 없을 만하다. 그 당시 정제되지 않은 일상적 생활상, 꾸밈없는 감정과 시대 상황, 벼슬아치들의 안부와 청탁, 처세 등을 고스란히 알 수 있고, 생활사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까지 연구, 발표되지 않은 새로운 인물들도 섞여 있으므로 그들의 인물 탐구에도 기여하리라 본다. 이 책의 특징적인 구성은 다음과 같다. ①간찰문(초서·행서)을 원형 그대로 스캔받아 게재하여 서체의 예술성을 살렸다. ②원본축소본에 번호를 기재하여 편지의 작성 순서를 누구나 알게 하였다. ③탈초(脫草) 한자에 한글로 독음(讀音)을 달아 한문 공부하기 편하게 하였다. ④간찰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프로필을 진솔하게 기록하였다. ⑤주석을 상세히 기재하여 낱말이나 문장의 뜻을 쉽게 풀이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