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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많은 것들은 고요가 깊다
임해원
시와사람사 202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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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1
12 화티 1
13 화티 2
14 숲, 고해소 1
15 숲, 고해소 2
16 숲, 고해소 3
17 숲, 고해소 4
18 숲, 고해소 5
19 12월의 그림자는 길다
20 갈매못은 하늘에 뜬다
22 상응 1
23 상응 2
24 멈춰라, 고요
25 하심下心
26 만귀정晩歸亭
28 그 집

2
산다이 1 30
산다이 2 31
이방인의 뜰 32
꽉 찬 고요 34
왜? 35
입춘立春 36
늘 그 말 37
향일암 38
하염없다 40
나만 남았습니다 41
살구나무 아래 마음을 두다 42
상사호로 저문다 44
연꽃 피다 45
칠불사 일주문 앞 연못에는 간짓대 하나 걸쳐져 있다 46
개심사 저물녘은 어디로 가시는가 48
미황사 길 49
목어, 날다 50

3
52 그대, 나무 1
53 그대, 나무 2
54 꽃의 그늘
55 겨울 허수아비
56 겨울은
57 비렁길에 멈추다
58 이웃을 두다
59 나 죽어 나무가 되면
60 깊은 잠
62 너릿재길
63 능소화
64 바람에 베이다
65 백길리, 내 하누넘
66 저 길을 강이라 부르다가
68 소금이 온다

4
널배를 민다 70
다듬잇돌 71
바다의 문자 72
맨드라미가 일어섰다 74
며느리밑씻개 75
물결을 읽는다 76
가자, 겨울 통영 78
물에 이르다 79
섬, 바다의 베갯머리 80
봄동 82
옛집 우물가 감나무 생각 83
오월에는 84
유월, 혹은 流月 85
조릿대는 날마다 일기를 쓴다 86
성자 둘 88

5
90 겨울 하늘에 관한 짧은 기록
91 끈
92 내리사랑
94 내 것
95 너, 내 봄
96 동생이 생겼다
97 저녁 우화 1
98 저녁 우화 2
99 하찌 사랑
100 할랑이

|해설|
101 사막을 건너는 맨발의 순례자 /김종

저자 소개 1

광주 출생 경희대학교 가정학과 졸업 2004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23년 《시와사람》 신인상 당선 다박솔 동인 광주문인협회 회원 시집 『생각이 많은 것들은 고요가 깊다』 『드들강, 저 황홀한 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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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3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44쪽 | 202g | 125*200*20mm
ISBN13
9788956656656

책 속으로

숲은 賢者다
그가 무안해 할까봐 나도 마냥 흔들렸다
캄캄한 혼잣말에 물든 그를
누구는 징역소라 읽고
누구는 스스로를 내보이지 않는 노래의 검은 흉터라 쓴다

맨날
자기만 들여다보는 말더듬이들
나무를 껴안고 혼잣말을 다 비우지 못한다
하여
나, 귀 기울이네
됐다,
이제 됐다,
다만 견뎌낼 뿐

숲은 너그럽다
맨발로 사막을 건너던 성녀처럼
날마다
세상의 큰 꽃, 노을이더라
---「숲, 고해소 1」중에서

그늘받이가 된 볕받이
연두 따라 오르는 물소리, 새소리, 벌레소리
아이 보채는 소리, 투덜거리는 소리
온갖 소리가 어울려있는 거대한 침묵, 깊은 바다

죄 없는 죄책감들이 서로를 원망하며
쓸쓸함의 정겨움을 알아차리던 혼잣말들
나, 귀 기울이네
그 또한 다른 나의 이름이기에
무릎보다 마음이 먼저 꺾이던 날들
울 힘이 없는 그대 대신 울어 주리라

흉터에 새로 피는 잎은 없다
마파람에 누울 듯 버티던 푸른 의문들
성긴 어둠을 지켜내듯 더 높은 곳에 새 순을 틔운다

숲,
한 번도 잡아주지 못했던 타인의 여윈 손을 잡아주는 거기
---「숲, 고해소 2」중에서

나무를 쓰다듬자 혼잣말에 지친 이파리들이
우수수, 쏟아지네
한숨 자국 선명한 나이테 안에
다 담아내지 못한 말들은 나무 뒤에 캄캄하게 서있네
산 자들의 마을을 기웃거리던 바람
풀들이 구름처럼 일어서는 이 몽유의 높이를 가늠 못하는
저 바깥을 손짓하며 늘 그 길로 오네

아직 어두우나
숲의 언어는 여전히 동이 튼다고 쓰여 있어
오래 망설였을 거야
숲이 깨어나네
책장 넘기듯 가슴이 뛰네
저녁 못물을 지켜보듯
죄가 그리워지는 황혼 어른댈 녘까지 예서 머물겠네
---「숲, 고해소 3」중에서

아침을 데리고 온
꽁지가 붉은 새의 숨을 내 갈피에 넣는다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리고 나를 열댓 바퀴쯤 돌고 간
그 새가 나뭇가지 하나면 잠드는 것이 충분하다고 일러주네
내 피가 순해지고
그의 왼 손을 내 오른 손으로 잡고 걷던 길
누군가 불러준 휘파람이 있고
누군가에게 불러준 휘파람이 있어
그러다, 그러다 아무 마음도 못 만나고 돌아간 마음도 있다
나무에 그 새가 앉듯 내 어깨도 내어주려다
문득, 풍뎅이 여섯 발을 아무 미움 없이 부러뜨린 유년의 기억은
택도 없지, 접는다

가쁜 숨으로 가뿐히 날아가는 새를 보며
울컥, 고개 드는 하늘나리
쌓일 곳을 찾던 혼잣말들이 숨어들고
세상은 멀리서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숲, 고해소 4」중에서

가을은 산굼부리 갈대숲에 서있었다
바닷바람 앞에서 서두는 그들의 춤은 탈출이었다
기진한 그들이 분화구 언덕을 수의처럼 덮었다
세상 뒤 쪽에서, 더 뒤 쪽으로 숲을 밟고 건너갔다
오래 숨어있어 파래진 얼굴 산도라지도 따라갔다

생각이 많은 것들은 고요가 깊었다
한 바람에도 수천의 얼굴이 함께 누웠고
수천의 얼굴이 함께 어두워졌다
이 언덕이 이렇게 빛나는 한 때를 가졌다는 게
가슴에 더운 피를 돌게 해
구멍 숭숭한 돌들 사이에서 다시 깨어나지 않아도 좋았다
바람에 맞서는 그들의 춤은
마구, 또 일어나 적막을 덮는다
더 이상 젊지 않음을 알아차린 가을
갈대숲 은비늘에 찔린 서녘하늘을 감싸 안는다
---「숲, 고해소 5」중에서

잎사귀들
눈발에 불타듯 날린다
골짜기를 메우던 물길은 말을 줄이고
하늘은 무겁고
거울처럼 쨍한 웃음으로 바람은 날아가고
괜시리 급해지는 마음
손바닥 펴 다독여 보는 저물녘
이끼 켜켜 앉은 도시로 다들 돌아가고
나는 12월에 앉아있다
한 줄 글귀가 한 편의 시를 끌고 오듯 12월은
나를, 비틀거리는 한 생을 끌고 온다
그래도
투덜거리듯 혼잣말 건네며
따숩게 일어서는 섣달 그믐달
내 안에 고요가 열리면
꽃 같은 기억, 돌팔매 같은 기억들 위에서 흔들린다, 웃는다
12월의 그림자는 길다

---「12월의 그림자는 길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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