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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시인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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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잔에 따르는 걸 보면 욕심이 얼마큼인지
알 수 있단다. 나도 모르게 컵에 한가득 따라서 잔 받침에 옮겨 놓기도 여간 힘든 게 아니야. --- p.8 종일 커피를 못 마셨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앉은 밤이지만, 한 번 더 기도할게. --- p.14 서점에 자주 갑니다. 볼 일 보다 지나가는 길에 서점을 들리는 것이 아니라 서점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서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걷습니다. --- p.17 요즘 하는 혼자만의 한 가지가 있답니다. 기억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는 눈을 뜨고 마음속으로나 입 밖으로 한 번 말하고 눈을 감습니다. 그러면 몸과 영혼에 저장된다고 믿어집니다. --- p.22 세상을 떠나셨더군요. 아니, 돌아가셨다는 말이 맞을 것 같습니다. 죽음이란 사랑, 미움, 기쁨, 괴로움 같은 감정이 비로소 끝나고 자유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떠났다는 말보다는 돌아가셨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 p.24 편집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옆 동으로 들어갔지 뭐예요. 지난번 책을 쓸 적에는 출판사에 다녀오는 날이면 항상 지하철을 거꾸로 탔던 것이 생각납니다. 다행히 순환선이어서 오래 앉아 있으면 집에 올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아홉 달 동안 매번 지하철을 거꾸로 탔습니다. 오늘은 승강기에서 내리자 문 앞에 어린이 자전거들이 있었습니다. 덕분에 남의 집이란 것을 알았지요. 무심코 벨을 눌렀으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얼마나 놀랐겠어요. --- p.34 마라이! 당신 앞에 작은 화분을 들고 있는 사람이 보이면 나라고 생각하십시오. --- p.43 선생님이 몸소 보여주신 사물에 대한 관심이 외롭지 않게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됩니다. 선생님처럼 의자를 사랑하고 플라스틱 컵을 좋아하고 볼펜 한 자루를 몸에 지닙니다. 몸과 마음이 든든해지지요. --- p.55 어느덧 두려움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두려움은 또 오겠지요. 또 오는 두려움에 몸을 떨고 눈물을 흘리게 되더라도 ‘이것이 두려움이구나.’ 생각하겠습니다. --- p.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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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을 때보다 붙들고 쓰고 있을 때가 살고 있다는 증명이다
『다시 앉는 밤』을 쓴 작가 용윤선은 의자에 앉아 있으면 쓸 수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한다. 정해놓은 만큼 쓸 때까지 일어나지 않는다. 아마도 의자에 앉기 위해, 의자에 앉고 싶어서 쓰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밤새 꿈을 꾸고 몸을 씻고 커피를 정성스레 내려 마시고 밥을 챙겨 먹고 의식처럼 책을 읽고 그 다음에 쓴다. 무슨 이야기를 쓸 것인가에 대한 계획이나 소망은 없다, 무작정 앉아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썼다. 어떤 날은 밖이 어두워져 있고, 어떤 날은 생각보다 빨리 썼을 적도 있었지만, 빨리 쓴 날은 안절부절못해 작가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고칠 부분을 마음에 새기며 걷는다. 쓴 글은 해버린 말처럼 회한으로 남는다고 작가는 말한다. 쓰지 않을 때보다 붙들고 쓰고 있을 때가 살고 있다는 증명이라고 확신한다. 쓰지 않는 시간들은 쓰기 위한 시간을 위한 것이다.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죽었던 것처럼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