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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티와 다른 사람들
이야기에는 여섯 사람이 등장합니다. 슈퍼히어로에 집착하는 수줍은 꼬마 러스티 브라운, SF소설가 출신의 괴짜교사이자 러스티의 아버지인 우디, 러스티 반에 전학 온 남학생 초키 화이트와 초키의 누나 앨리스, 러스티를 괴롭히는 덩치 큰 소년 조던(제이슨) 린트, 이들을 가르치는 교사 조앤 콜이 그들입니다. 그들의 나이, 신분, 관심의 스펙트럼은 다양합니다. 책은 이들을 면밀히 그려내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아서 얼음 결정처럼 얼어붙어 있는 풀리지 않는 서사는 독자가 채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초등학교 과제에서 금상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 딸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쓸쓸한 얼굴, 10대 소년의 충족되지 않는 자기애와 통제 밖 환경, 중년의 구부정한 몸으로 쏟아지는 눈, 죄책감과 치매에 휩싸인 실패한 노년의 환각 등 요람에서 무덤에 이르기까지 인간 삶이란 어디 하나 비참하지 않은 순간이 없습니다. 만화에 관한 만화, 책에 관한 책 “책만큼 인간의 은유로 적절한 것은 없습니다. 앞면이 있고 뒷면이 있으며 껍데기보다 안쪽의 세계가 두툼하지요. 이미지를 일궈내고 이를 미학적 경험으로 전환하는 인간 고유의 능력을 사용하는 유일한 시각매체는 만화입니다. 『러스티 브라운』은 예술가, 작가, 만화가가 덧없고 불확실한 어린 시절의 감각, 사랑, 형언할 수 없지만 필수불가결한 공감의 매개를 그래픽으로 나타내려는 18년의 실속없는 시도를 압축한 결과물입니다.” ? 크리스 웨어 우표만 한 크기의 작은 칸들과 그 사이를 채우며 이따금 소리 지르는 의성어와 접속사는 묘한 노스탤지어를 자아냅니다.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무력하며 무감정한 인물들 너머로 만화가가 그려 넣은 느낌표와 기울임꼴, 의성어, 접속사는 꽤 경쾌합니다. 여러모로 황량한 인간 군상이고 실망과 절망에 전 이들이지만, 한 사람의 막다른 골목과 낭떠러지 운명을 초월하는 돌파구를, 그 작은 틈을 이 책 말미의 ‘인터미션’이란 문구는 열어둡니다. 크리스 웨어는 더스트재킷에 『러스티 브라운』과 작가 자신에 관한 이야기(조소에 가까운 추천사까지)를, 책 산 사람들만 이해할 만한 이야기(재킷을 어떻게 접으라든지, 어떻게 보관하라든지)를 적었습니다. 읽기 어렵지만 바로 그 때문에 그의 책을 그 어떤 만화보다 오래도록 쥐게 되고, 긴 물리적인 시간을 쏟은 탓에 잊기 힘들어집니다. 양손을 가득 채우는 무거운 양장의 세계는 책을 인간과 인생에 대입하는 클리셰를 생소하게 느끼게 합니다.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감히 글과 그림으로 형용하려는 시도의 결과물은 이 만화를 읽어 치우려는, 금방 해치우고 더 중요한 걸 하려는 독자의 속도를 늦춥니다. 기억의 재현과 불완전한 도구 크리스 웨어는 첫 만화책인 『지미 코리건』(한국어판 세미콜론, 2009년 출간)의 마지막 페이지를 마친 다음 날, 곧바로 새 종이를 꺼내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고 그것이 『러스티 브라운』이 되었습니다. 빌 클린턴이 대통령이던 시대였고, 공중전화가 있었고, 세상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네브래스카의 어린 시절을 작은 캐릭터들로 채우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는 잠자코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우리를 앞지를 것이라고. 기억은 개인의 서사를 유지하는 엔진이고 나의 지속성을 보장하지만, 매우 불완전하고 편협한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도구로만 스스로를 도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화는 기억의 예술입니다. 그의 이야기에 들어가는 모든 낱말과 그림, 몸짓, 생각, 꿈, 후회는 어떻든 만화가의 기억이라는 깔때기를 통해 걸러져 나왔고, 그러니 모든 그의 만화는 자전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고 자란 오마하를 배경으로 그렸고, 등장시킨 모든 인물마다의 자질을 집적한 한 인간으로서, 웨어는 타인을/과거의 자신을/자기가 만든 인물들의 다른 자질을 이해하려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