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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한명만 있어도 바뀐다 : 우리가 진보정치를 하는 이유
하루 일곱 명을 더 살릴 수 있다면 / 윤경선 한우와 복숭아 / 유영갑 저 여기 뼈 묻어야 해요 / 오미화 5년 만의 군정질문 / 김지숙 노동자들에게 ‘밥값’ 해야죠 / 국강현 [지방의원 앙케이트] 가장 소유하고 싶은 재능은? 2장. 여기, ‘사랑’이 있다 할머니들이 그림 그리며 외운 이름 / 오은미 교장선생님 꼭 당선되세요 / 송윤섭 생일이면 울리는 전화 / 백성호 100번째 동네청소 하던 날 / 손진영 같은 팀이니까! / 황광민 [지방의원 앙케이트] 내 마음 속 영웅, 현실 영웅 3장. 생활을 바꾸다 정치를 바꾸다 중고생 100원버스의 탄생 / 최미희 태양광 패널이 빼앗은 논과 밭 / 박형대 의원 활용, 어떻게 한다요? / 박현정 주민을 만나며 부끄러웠던 순간 / 강진희 악수가 뭐가 중요해요 / 손혜진 [지방의원 앙케이트]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4장. 주민이 만든다 양당천하 뚫고 서울 유일 진보구의원 되다 / 최나영 신문배달하며 만든 도서관 / 김은정 정치가 엄마들과 함께한 순간 / 박문옥 원탁회의로 시험 없앤 학부모회 / 김명숙 혁신 의회도 주민이 만든다 / 김태진 [지방의원 앙케이트] 나는 이렇게 죽고 싶다 기획, 대담 [기획] 주민에게 권력을! 주민대회 이야기 [기획] 학교급식노동자와 학부모들이 만나다 [대담] 진보가 집권하면 무엇이 다른가 /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 - 장진숙 진보당 지방자치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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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정치를 시작한 계기는 한우였다. 2008년 한우값이 떨어져 농민이 어려움을 겪을때 당시 유영갑 의원은 순천에서 ‘한우직매장’을 열었다. 농민은 안정적으로 한우를 판매하고 값도 제대로 받을 수 있었고 지역 주민은 안전하고 질 좋은 한우를 싸게 살 수 있었다. 2010년 한우값이 계속 떨어지고 농민의 분노가 커져갔다. 유영갑 의원은 ‘광주전남 한우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26p. 한우와 복숭아」중에서 2022년 12월 15일 전남 화순군의회 본회의장, 낯선 광경이 펼쳐졌다. 군수와 군의원 사이에서 날선 공방이 오간 것이다. 지방의원이 군수에게 질문을 하고 때로는 항의까지 하는 것은 의회에서 있을 법한 일이다. 그렇지만 화순군의회에서는 5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초선 의원 김지숙이 조용했던 화순군의회를 깨운 순간이었다. ---「44p 5년만의 군정질문」중에서 선거운동 기간, 지역에서는 “농민 위해 밥 굶어준 정치인이 어디 있었느냐”는 소문이 퍼졌다. 글씨를 모르는 여성 농민들은 명함에 있는 오은미 이름을 따라 그려가면서 외웠다. 허리가 아파 누워 지내시던 농민들이 지팡이를 짚고 투표장을 찾았다. 그렇게 오은미 의원은 다시 도의원이 되었다. ---「72p 할머니들이 그림 그리며 외운 이름」중에서 글을 배울 수 없었던 사연을 품고 살던 여성 농민들은 자신의 삶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어머니학교 학생들은 지역 공동체의 주인공이자 자랑이 됐다..송윤섭 교장선생님이 후보로 출마하자 학생들이 큰 힘이 돼 준 것도 물론이다. 마을을 찾을 때면 “우리 교장선생님 오셨다”며 반겨주셨다고. 한 학생은 “잘생긴 우리 안남어머니학교 교장선생님 꼭 당선돼세요”라고 적었다. ---「84p 교장선생님 꼭 당선되세요」중에서 특히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노원형 유급병가지원 조례’다. “노동자들이 아플 때만큼은 쉴 수 있게 해드리고 싶어요. 대기업이나 정규직 노동자는 아프면 유급병가를 쓸 수 있는 반면, 비정규직 노동자, 노동조합이 약한 회사의 노동자는 아파도 무급이에요. 그러다보니 아플 때 쉬지 않아 큰 병이 됩니다. OECD 국가들은 이미 다 유급병가를 지원하고 있는데 우리 현실이 낙후하죠. 제도의 빈 구석을 구에서 채우자는 것입니다. ---「182p 양당천하 뚫고 서울 유일 진보구의원 되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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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치는 끝났다? 지역으로, 현장으로 향한 진보정치인들
21명 진보정치인들의 공통점은, 지역과 현장을 일궈왔다는 것이다. 가방 두개만 들고 내려와 농사를 짓기 시작한 대학생, 사범대를 나왔지만 야학에서 만났던 어린노동자들이 눈에 밟혀 그만두고 현장에 들어간 교사, 예수의 삶에 착목해 농촌으로 향했던 신학생 등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주민 곁에서 꾸준한 정치활동을 펼쳤다. 동네에서 아이스팩을 모으고, 중고생 100원 버스를 만들고, 여성농민을 위한 한글 학교를 만들었다. 주민에게 생일축하전화를 걸고, 마을 이장을 하고, 매주 동네 청소도 한다. 아파트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고 최초의 ‘주민대회’를 만들기도 했다. “한 명만 있어도 바뀐다” 여기, 진보정치가 살아있다 진보정치가 풍파를 겪을 때에도 이들은 진보정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정당으로 출마하면 진작 당선 되었을 텐데’라는 주민들의 걱정에도 꿋꿋이 진보정당의 이름으로 활동하며 지역을 일궜다. 진보정치가 끝났다, 진보정치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여기, 현장에서 뛰고 있는 진보정치의 목소리를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