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청년패스
사진국가
19세기 후반, 일본 사진(들)의 시작
김계원
현실문화 2023.05.22.
베스트
사진 top20 6주
가격
25,000
10 22,500
YES포인트?
1,25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상품의 태그

카드뉴스로 보는 책

카드뉴스0
카드뉴스1
카드뉴스2
카드뉴스3
카드뉴스4
카드뉴스5
카드뉴스6
카드뉴스7
카드뉴스8

책소개

목차

책머리에
들어가며
1. 공무(公務)로서의 사진
2. 신구 사이의 골짜기에 걸터앉은 사진(들)
3. 사진과 국가의 공조
4. 책의 구성

제1장 ‘작지 않은 기술’: 19세기 후반의 지식 공간과 사진

1. 개성소의 사진 실험
2. 박진한 모사의 사진, 포토그래피의 번역어 사진
3. 인조물로서의 사진, 인조물을 찍는 사진
4. 유물과 풍속의 기록

제2장 그림자를 잡는 그림: 사진, 세계지리, 일본의 자기 표상

1. 세계라는 모자이크
2. 만국에서 지리로
3. 착영화(捉影?), 후오도쿠라히, 사진
4. 『만국사진첩』과 근대성의 구조
5. 자기 표상의 부재
6. 사진, 주체화의 기술

제3장 사라져가는 것의 포착: 구에도성(?江?城) 조사와 옛것의 기록

1. 저물어가는 성(城)의 시대
2. 호고가의 에도성 조사
3. 『관고도설』의 ‘일본풍’과 절충주의
4. 세기 고증학과 도보(?譜)의 의미
5. ‘사진’이라는 신구고금의 틈새

제4장 천황의 시선을 따라서: 메이지 천황의 순행과 명소 사진의 성립

1. 한 장의 기록 사진에서부터
2. 순행의 기록?목판화, 사진, 회화
3. 천람의 시선 구조
4. ‘명소 사진’의 성립
5. 천람에서 전람으로

제5장 북방으로의 우회: ‘홋카이도 사진’과 일본 사진의 원점

1. ‘홋카이도 사진’의 재발견
2. 홋카이도 개척과 사진술의 도입
3. 파노라마 사진
4. 『사진 100년』전과 ‘기록’의 의미
5. 프로보크 스타일
나오며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 소개 1

성균관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맥길대학(McGill University) 미술사학과에서 근대기 일본의 사진술 도입과 풍경 인식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일 근현대미술과 시각문화, 사진사, 물질문화, 기록과 아카이빙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진행 중이다. 최근 논문으로 「Sasa[]의 현행과 기록의 미술」(『한국근현대미술사학』 44, 2022), 「식민지 시대 ‘예술사진’과 풍경 이미지의 생산」(『미술사학』 39, 2020), 「불상과 사진: 도몬 켄의 고사순례와 20세기 중반의 ‘일본미술’」(『일본비평』 20, 2019) 등을 발표했고, 공저로 The Affect of D
성균관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맥길대학(McGill University) 미술사학과에서 근대기 일본의 사진술 도입과 풍경 인식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일 근현대미술과 시각문화, 사진사, 물질문화, 기록과 아카이빙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진행 중이다. 최근 논문으로 「Sasa[]의 현행과 기록의 미술」(『한국근현대미술사학』 44, 2022), 「식민지 시대 ‘예술사진’과 풍경 이미지의 생산」(『미술사학』 39, 2020), 「불상과 사진: 도몬 켄의 고사순례와 20세기 중반의 ‘일본미술’」(『일본비평』 20, 2019) 등을 발표했고, 공저로 The Affect of Difference: Representations of Race in East Asian Empire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16), 『예술의 주체?한국 회화사의 에이전시(agency)를 찾다』(아트북스, 2022) 등이 있다.

김계원의 다른 상품

관련 분류

수상내역 및 미디어 추천 분류
카테고리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5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442g | 135*205*26mm
ISBN13
9788965642831

책 속으로

무엇이 사진술을 바람직하고 믿음직스런 재현의 기술, 효율적이며 공리적인 기록의 매체로 인지되게끔 했을까? 19세기 후반 일본 사회가 사진을 절실히 필요로 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거창하게 보이는 질문의 요지는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사진에 관한 언어와 담론, 기술과 실천의 체계를 사회적으로 공유할 수 있었던 계기, 매체의 사회화와 제도화를 가능케 했던 조건을 묻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분명 기술 전래나 개발, 사진가 개인의 표현 능력을 훌쩍 넘어서 있다.
--- p.24

정부의 명을 받들던 사진가들을 그저 주어진 일에 수동적으로 임하는 ‘업자’ 정도로 상정하면 곤란하다. 카메라와 화학 재료의 수급이 원활하지 않았던 메이지 초기, 열도의 사진가는 주로 도일 외국인 사진가를 통해 도구를 구하고 기술을 배웠다. 그러나 사진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또 다른 계기가 필요했다. 이를 제공한 것이 메이지 신생 국가였다. 정부가 발주한 사업은 매체를 ‘제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1세대 사진가의 일은 곧 정부의 일이며, 국가는 이들의 막강한 후원자였다. 그렇다면 초창기 사진사에는 또 다른 사람들의 명단이 필요해 보인다. 사진술을 공적으로 활용하는 기획을 발주한 주체, 사진이라는 실용 기술에 통치 기술을 접목했던 주체, 사진을 둘러싼 공통 언어와 감각, 활용 방식과 체계를 사회화했던 주체, 다시 말해 ‘공무(公務)로서의 사진’을 기획했던 정부의 지식인 관료야말로 문명개화의 시기에 사진이 폭넓은 사회문화적 자장 위에 펼쳐지도록 한 사진사의 또 다른 주인공일 것이다.
--- p.33

신생 정부는 해외 박람회를 앞두고 자국의 이미지가 필요했고, 박람회 전시품을 시각 자료로 남겨야 했다. 이때 사진을 홍보와 기록 수단으로 채택해 다루어봄으로써 매체의 쓰임새를 보다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중 문부성 박물국은 지식 생산과 기록의 수단으로 사진술의 효용을 가장 먼저 인지한 기관이다.
--- p.76~77

세계지리 속 일본의 위상을 바로잡는 근본적인 방안은 우치다가 참조했던 이미지, 다시 말해 일본을 극동의 타자로 묘사한 구미 여행 사진의 코드를 재작업하는 일이었다. 그의 해결책은 간단했다. 일본을 시각화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여지지략』의 ‘일본국’은 도판 한 장 없이 지도만 포함했다. 반면 일본 뒤에 실린 중국 섹션은 만리장성에서 전족 풍습까지 다양한 중국 문화를 묘사한 도판 10여 장을 수록했다. 가장 마지막 섹션인 오세아니아와 대서양 지역 또한 수십 장에 달하는 민속지학적 초상과 풍속 및 자연 풍경을 보유했다. 『여지지략』의 차별성이 400여 장에 가까운 도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이미지의 부재는 사실상 백과사전 전체 구조의 균형을 깨트릴 만큼 파격적이었다.
--- p.137

우치다의 공무가 1890년대 이르러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과 평행선을 그리며 전개되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탈아(??)’와 ‘흥아(興?)’ 사이의 줄타기 같은 근대 일본의 역사, ‘반개’로부터의 탈주, 아시아 타 국가들로의 침략, 그리고 연이은 전쟁은, 메이지 초기 지식인들이 세계를 피라미드로 구상할 때 이미 예견되었던 사건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문명개화’의 그림자를 잡는 그림이란 지정학적 권력과 표상의 질서를 수용하고 제국주의 이념을 따라가는 일과 동떨어질 수 없었다.
--- p.157~158

『관고도설』의 도판은 구미식 사물의 배열, 박진한 모사, 석판화의 리얼리즘, 세필 채색 등, 이질적인 시각 형식들을 능숙하게 종합해냈다. 이러한 『관고도설』의 절충주의는 ‘동양’의 골동품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던 외국인 독자에게 어필해서 이들의 수집과 구매를 이끌어냈다. … 물론 구미식 분류 및 배열, 기술 방식 역시 외국인 독자의 이해도를 높이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스의 말처럼 손으로 채색한 아름다운 도판은 구미 관객에게 더없이 매혹적인 이미지로 다가가 동양 취미를 추동한 강력한 원동력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에게 『관고도설』의 도판은 머나먼 이국 ‘일본’ 그 자체였다.
--- p.190

일본의 사진 제도는 천황제의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 강화하는 정치적 프로그램과 궤를 같이하며 성립했다. 그러나 제도의 힘과 법적 규제의 강제력이 절대적이지만은 않았다. 정부가 어진영의 판매를 금했지만 민간에서 천황 부부의 초상이 비밀리에 거래되었고, 이미 유포된 어진영이 회수되지 않은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순행 사진의 관행에도 여러 차례 변화가 있었다. 군주의 성스러운 시선을 의미하던 ‘천람’이 사진으로 기록되면서 ‘명소 사진’의 카테고리 아래 판매되기도 했다. 1910~1920년대에 유행한 풍경 사진 역시 순행 사진의 전국적 확산과 무관하지 않은 현상이었다.
--- p.223

개척사와 중앙 정부는 기록 사진을 적시적소에 활용했다. 특히 민간에게 개척의 현황을 알려 이주를 도모하는 일에 사진만큼 좋은 홍보물은 없었다. 예를 들어 개척사는 1881년 도쿄에서 개최된 제2회 내국권업박람회에 10장의 기록 사진을 출품했다. 1918년에 삿포로에서 열린 개척 50주년 기념박람회에서는 전시장 중앙에 10층탑을 세우고 내부를 19세기 말의 기록 사진으로 가득 채웠다. 거대한 사진 디오라마를 별도로 제작하여 지난 50년간 북방이 걸어온 진보의 발자취를 드라마틱하게 재현하기도 했다. 기록 사진의 재활용 또한 활발히 추진했다. 홋카이도 도청은 1920년대까지 매년 발간하는 지역 백서에 전·후 비교 사진(before-and-after photography)을 넣어 발전을 거듭해온 북방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입증했다. … 요컨대 홋카이도 기록 사진은 20세기 전후까지 엽서, 교과서, 신문, 자료집, 국내외 전시, 잡지를 통해 지속적으로 복제, 유포되었고, 식민지의 성공적인 근대화를 표상하는 이미지로 기능했다.
--- p.286~288

파노라마의 시선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하며 끊임없이 변모하는 사회적 현실을 읽기 쉬운 조형 기호로 축소하여 언제든지 취할 수 있는 가용 자원으로 환원한다. 파노라마가 ‘제국주의 탐사의 회화적 양식 체계’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³아이누와 둔전병, 그리고 근대화 프로젝트에 동원된 이주 노동은 사진에 쉽게 기재되지 않는 미세한 존재, 다시 말해 이름도 얼굴도 없는 무명의 객체로 묘사된다. 다모토의 사진은 파노라마의 시선과 개척사의 권력을 동기화시켜 시각적 지배와 정치적 권위의 틈을 매끈하게 봉합했다.
--- p.286~288

일본이 고도 성장기를 지나 1970년대에 대중 소비 시대를 본격적으로 맞이하자, 국철은 외국인, 신흥 중산층 그리고 새로운 소비 모델로 부상한 젊은 여성층을 타깃으로 하는 국내 관광 상품 ‘디스커버 재팬’을 기획했다. 역설적이게도 ‘디스커버 재팬’은 프로보크의 ‘아레 부레 보케’를 홍보 형식으로 차용했다. 뿌옇고 흔들리고 초점이 나간 사진이 교토나 나라와 같은 일본 고대 도시의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관광포스터가 될 때, 프로보크 스타일은 저항의 언어가 아니라 유행의 아이콘으로 탈바꿈되어버렸다.

--- p.325

출판사 리뷰

“무엇이 이토록 방대한 양의 기록을 남기도록 추동했을까? 왜 이 사진들은 기가 막히게 잘 찍히고 아름답기까지 한가? 카메라 강국, 사진 재료의 제조국, 그것도 모자라 배에 무거운 카메라를 싣고 조선에 들어와 전국을 돌며 사진을 찍고 조사하여 출판과 전시, 아카이빙을 했던 나라. 세기의 언어로 ‘문명국’, 지금의 언어로 제국이 아니면 불가능한 프로젝트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진 국가’ 일본의 존재감을 보다 견고한 학문적 틀로 접근할 수는 없을까?” ? 책머리에서

일본은 어떻게 ‘사진 국가’가 되었는가?
근대의 초입에서 공유된 사진의 힘


일본을 ‘사진 국가’라고 명명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광학 기술에서부터, 화학 및 재료, 카메라 제조, 나아가서 출판 및 전시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명실상부한 최강의 사진 국가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것이 사진 국가의 전부는 아니다. 사진 국가의 정말로 무서운 힘은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다른 영역에 있었다. 각종 조사와 기록 사업을 포괄하는 방대한 아카이브 혹은 기록 체계가 그것이다.

『사진 국가』는 19세기 중후반부터 사진과 국가 간의 연대 혹은 공모가 개시되었던 시점에 주목해 19세기 기록 사진의 정치적 의미를 살핀다. 막부 말기와 메이지 시기의 일본은 사진의 힘, 사진의 문명적 활용 가능성을 철저하게 파악하고자 했다. 저자는 그렇게 해서 확립된 것이 사진을 매개로 한 근대적 기록, 정보화, 시각화의 체계였다고 말한다. 사실 이 체계의 무서운 힘은 식민지 조선에서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조선의 고고학, 민속학, 인류학적 조사 사진을 비롯해, 식물, 어류 등의 자원에 이르기까지 식민지 조선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사진으로 담고 있는 제국 일본의 아카이브를 대면하게 되면, 한편으론 그 치밀함에 소름이 돋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방대한 양적 규모에 놀라게 된다. 『사진 국가』가 비록 식민지 조선을 다루고 있진 않지만, 저자는 식민지 아카이브 사진의 기원이 바로 메이지 초기의 이 기록 사진에 연원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 국가의 초석인 된 이 아카이빙 체계는 활용도가 매우 높아 일단 만들어지면 “모든 대상을 균질하게 만드는 무서운 힘을 가진다. 그 힘을 추동하는 것은 거대한 권력의 작동이라기보다는, 사진 사이즈, 포맷, 앵글, 각도, 조명의 표준화와 같은 지극히 미시적인 맥락”(11쪽)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데서 나온다. 그래서 이 시각 체계에서는 그 대상이 식민지 조선이든 홋카이도든 관계없이 장소 간의 맥락, 미세한 차이가 제거되어 모두 비슷한 풍경으로 보이게 된다. 그런데 이런 사진들은 왜 우리 눈에 잘 띠지 않고 특별한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들이 유명 사진작가의 작품이 아니기에, 예술로 인정받지 않기에, 혹은 풍경이나 초상처럼 우리가 아는 사진작품이 즐겨 다루는 소재나 주제도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해 보이는 이 사진들이야말로 작품들은 결코 수행할 수 없는 역할을 담당했다. 바로 ‘사진 국가’를 태동시킨 것이다. 사진은 국가와 공조하면서 문명개화를 향해 다른 무엇보다 힘찬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그 사진들의 강력한 후원자가 바로 국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근대의 초입에서 일본이 이처럼 사진을 절실히 필요로 했던 것이 무엇 때문이었을까? 저자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통상적인 사진의 역사가 중점을 두고 기술하는 사진가 개인의 표현 능력 문제를 훌쩍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진 국가』는 이미 19세기 중후반부터 만개한 사진에 관한 다양한 언어와 담론, 그리고 사진 관련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다양한 주체들의 노력, 사진이 국가 공무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한 주체인 관료(공무원)와 그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계기, 1930년대에 이르러 지역의 민간인이 사진과 국가의 연대를 적극 도모하는 일 등을 꼼꼼하게 추적한다. (영업) 사진가와 지식인 관료, 국가, 지역민 모두가 문명개화, 나아가 제국의 팽창을 향해 질주하는 프로젝트에서 ‘사진 국가’는 필연적인 산물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사진의 쓸모를 어떻게 인식하고 활용했나?
만국박람회 참가에서부터 천황의 순례까지


사진은 이미 1850년대의 막부에서부터 사진의 전례 없는 기록성으로 주목을 받았다. 서구에서 사진의 발명을 공식화한 지 불과 십수 년 남짓 지난 시점인 셈이다. 이후 메이지 정부에서 사진은 국가의 비전을 가장 명확하게 투사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각 장치로 인식되었다. 저자는 사진이 일찍부터 국가 차원의 기록, 정보, 시각화의 체계로 구상되기 시작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손으로 그릴 필요가 없는 기계적 공정, 대상과의 실질적인 대면을 요구하는 재현 메커니즘”(27쪽), 그리하여 대상을 정확하게 모사하고 이를 다시 복제해 쓸 수 있는 사진의 경제적 효율성을 신정부의 관료들이 놓칠 리 없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들에게서 사진의 의미와 효과가 이 매체에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고 본다. 낡은 질서를 개편해서 새로운 ‘일본’을 세우려는 국가의 요청 혹은 필요에 따라 피사체를 기록하는 ‘치술의 일조’였던 것이다. 메이지 정부를 이끌던 이 관료들은 사진으로 유물을 조사해 해외 박람회에 출품하고(1장), 구미에서 생산된 사진을 참조해 세계를 일본식으로 도해한 각종 지리서를 편찬했다(2장). 또한 사라져가는 고건축과 고기구물을 조사해 사진으로 기록하고, 이를 출판해 구미 독자에게 일본을 더없이 매혹적인 이미지로 어필하는가 하면(3장), 카메라를 천황의 순행에 동행토록 해 순행 사진을 전국적으로 확산하게 했다(4장). 막대한 예산을 배정해 홋카이도의 식민 개척 상황을 기록한 사진은 정부가 추진 중인 근대화 청사진으로서 국내외 박람회에 출품되어 일본의 근대화 사업을 힘주어 자랑하는 중요한 장치였다(5장). 『사진 국가』는 이처럼 사진의 쓰임새가 공적으로 사회화되는 계기에 초점을 맞추면서, 사진의 다양한 활용에 담긴 이야기를 충실히 기술한다.

정전(canon)에서 비껴나 있는 복수의 사진(들)
다종다양한 개념의 사진(들)과 그 경계를 추적하다


『사진 국가』는 국가가 요청한 방대한 조사?기록 사업에서 공적인 기술로 인정받고 활용되는 맥락을 꼼꼼하게 재구성해낸다. 그때 사진은 결코 단일한 언어, 개념, 물질로 규정되지 않았다. 이 사진들은 개인의 작품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구미의 대문자 사진 개념에서 보면 이질적인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저자는 서구의 정전화된 대문자 사진의 개념으로는 당시의 사진이 수행해낸 쓰임새, 담론, 제도 등을 포괄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사실 대문자 사진은 이 매체가 펼쳐낼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 수많은 사진‘들’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메이지 근대의 프로젝트를 기획한 지식인 관료들에게 사진은 ‘문명’을 전유하면서 ‘문명’으로 나아가는 요긴한 소품과도 같았지만, 그들이 처음부터 이 소품의 쓰임새를 완벽히 파악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매체와 기술을 직접 체험하는 과정을 통해 사진에서 기대했던 활용 가능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현할 수 있었다. 저자는 “식민지 아카이브 사진의 기원이 된 메이지 초기의 기록 사진을 조사하다 보니, 막상 사진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개념이었고, 사진이 아닌 물질과 매체까지 아우르는 이질적인 ‘사진(들)’이 어지럽게 얽힌 혼성의 풍경이 펼쳐”(11쪽)져 있었다고 말한다.

『사진 국가』는 대문자 사진의 역사에서 사진(들)의 역사, 사진의 역사(들)로 나아가는 방법을 제안한다. 저자는 여기저기 산재한 문헌과 아카이브에서 당시에 통용되던 사진과 관련한 다양한 언어와 담론, 제도에 주목해 이것들을 이질적인 개념어로 순차적으로 정리해 보인다. ‘박진한 모사’로서의 사진(1장), 그림자를 잡는 그림을 뜻하는 ‘착영화’로서의 사진(2장), 사진과 석판화, 채색화의 혼합물로서의 절충주의 사진(3장), 천황의 시선을 따라가는 시선의 기록으로서의 사진(4장), 파노라마 사진을 횡축의 두루마리 비단에 부착한 ‘사진 두루마리’(5장) 등은 확실히 구미 사진에서 볼 수 없었던 특이한 양상이다. 저자는 이토록 여럿인 사진의 개념과 실천, 물질과 담론을 과연 단일한 의미의 ‘사진’으로 묶어 사유할 수 있는지 반문한다. 오히려 ‘사진’을 ‘사진적인 것’들로 펼쳐내는 작업, 복수형 ‘사진(들)’의 유연한 경계를 포괄하는 작업이야말로 사진에 관한 새로운 역사 서술의 방법론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사진(들)의 역사, 사진의 역사(들)이 있었다면, 이질적인 주체들도 있었다. 『사진 국가』에는 저명한 작가로서의 사진가도 등장하지 않고, 형식이나 주제에 기반한 이미지 분석과도 거리를 둔다. 대신에 영업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업자들이 소환되고 사진을 공무에 활용했던 지식인 관료가 등장한다. 각각의 장은 이들의 에피소드가 주를 이룬다. 또한 1930년대 후반 들어, 사진과 국가의 연대를 새로운 차원으로 주도하는 주체가 등장하는데, 지역의 민간인이 그들이었다. 중산층이 확대되고 카메라가 대중화되면서 민간인 스스로가 자체적인 조사와 기록, 수집과 배열, 출판과 전시 행위의 적극적인 주체가 된 것이다. 이에 또 다른 종류의 기록 사진이 거대한 국가 아카이브의 한 축을 구성하게 된다. 이 모든 주체들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의 사진사에서는 누락된 것들이기에 사진사에서는 이질적인 장면일 수 있다.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이들은 사진과 더불어 국가주의적 기획에 박차를 가하면서 비로소 매체에 대한 감각, 기술의 속성, 물질의 체계를 이해하는 사진술의 주체이자 사용자의 자격을 획득할 수 있었다고 본다. 이들이 구축해낸 사진이라는 사회적 네트워크 속에서 비로소 국가 공무에 필요한 기록, 정보, 시각화의 강력한 아카이빙의 체계가 나올 수 있었으며, 일본은 그렇게 일찍부터 ‘사진 국가’가 되었다.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22,500
1 22,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