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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한껏 무용하게 (큰글자책)
뜨개질하는 남자의 오롯이 나답게 살기
이성진 저
샘터 2023.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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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품사는 웬만해선 바뀌지 않는다

뜨개질을 시작하기에는 여름이 좋다

아무튼, 첫 코는 걸러도 괜찮으니까
오히려 예쁜 쓰레기가 낫다
뜨개질에서 가성비를 논한다는 바보 같은 생각
일차원의 선을 이차원의 면으로 짜내는 작업
실을 당기며 힘을 빼는 법을 배우다
단수링이 안 보이네요
일단 오늘은 여기였소

얼마는 둘러 오느라 퍽 늦을지도 모른다

엉킨 실을 풀어볼 용기
시선의 색깔
한참 전에 잘라야 했던 것을
세상의 방향성은 바꿀 수 없다 해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의 무게
또라이 덕택이라 하기는 뭣하지만
어느덧 주머니에 외로움 하나쯤은
손재주와 손글씨는 다른 결을 가진다
아빠가 유달리 스펀지 케이크를 좋아했던 이유

내 삶은 나의 어법에 따라

1쿼터, 그 스물여섯의 여름
세상 어딘가에 나의 도시라 부를 만한 곳이 있다는 건
시선을 안쪽에 두는 연습
문어발식 경영은 이제 그만할게요
다름과 틀림 사이, 그 모호한 경계
‘우리’라는 표찰
그런 바보 같은 짓이 또 없다
투박한 것이 그리 싫지는 않습니다
대바늘뜨기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오늘도 한껏 무용하게

에필로그: 지금, 자유롭나요?

저자 소개 1

공간과 장소, 도시의 다양성을 탐구하기 위해 대학에서 씨름하는 중. 시간이 날 때면 사르트르와 니체의 생각을 아껴 먹는다. 저서로는 『유럽에서 살아도 괜찮을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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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7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180쪽 | 210*290*20mm
ISBN13
9788946422520

책 속으로

오래전부터 ‘~답다’는 말에 달콤쌉싸름한 무언가를 느꼈던 것 같다.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 군인은 군인다워야 한다고 핏대를 세우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번번이 순종의 자세를 취했다. 소수의 반항아를 상대로는 별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목매지 말라고 같잖게 조언하는, 어지간히 냉소적인 사람이었다. 자기다움을 외치던 그들에게 이런 인간이 어떤 모습으로 보였을지는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짐작할 수 있었다.
---「프롤로그」중에서

누군가를 위해 준비된 사람이 되고자 함은 실로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 길을 걷겠다는 당신을, 잘해주고 싶은 사람을 기다리며 오늘을 양보할 줄 아는 당신을 나는 기꺼이 응원한다. 언젠가 한 번쯤은 서로가 준비된 사람으로 만났으면 한다. 이왕이면 그곳이 내가 뜨개질에 한창인 부산의 어느 여름, 지하철 1호선이었으면 좋겠다.
---「뜨개질을 시작하기에는 여름이 좋다」중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사라지는 시대일수록 고유함을 빚는 행위는 빛이 난다.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좋든 싫든 경제적 가치라는 척도로 평가받지만, 고유한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고 어느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달콤한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한 겹 한 겹 나만의 경험을 얹고 그 사이사이에 나만의 작품으로 채워 바른다면 나는 나다운 사람으로 비로소 완성일 테다. 뜨개질의 쓸모를 ‘실제로 쓰기에 알맞은’ 데에서만 찾을 이유는 없다. 고유한 것들이 아름다운 이유가 제각기 자신만의 척도를 가지기 때문이라면, 그에 따라 뜨개질은 과정부터 결과까지 오롯이 쓸모 있다.
---「오히려 예쁜 쓰레기가 낫다」중에서

무슨 수를 써도 가성비라는 이름의 체를 마음에서 떼어낼 수 없다면, 나는 계산적인 체의 구멍이나마 좀 넓혀보기로 했다. 뜨개질의 최종 산물인 목도리의 가치를 발굴함으로써 말이다. 일단 뜨개질이라는 행위의 노동 가치는 작지 않았다. 비싼 가격의 실은 덮어두고서라도 틈틈이 들인 막대한 시간을 다른 노동에 투입했다면 적잖은 돈을 손에 쥐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는 허공에 내지른 주먹이었다. 현대 주류 경제학에서 노동 가치는 쉽사리 인정받지 못한다. 더 중요한 대접을 받는 건 소비자의 효용, 희소성 따위다.
---「뜨개질에서 가성비를 논한다는 바보 같은 생각」중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일에 예고가 없듯 애장품이 마음에서 떠나는 일도 한순간임을 안다. 관계 맺음의 순간부터 헤어짐은 각자의 코스를 따라 이쪽으로 마라톤을 시작한다. 더러는 금방 도착할 테고, 얼마는 둘러 오느라 퍽 늦을지도 모른다. 계피와 호두 냄새가 한껏 밴 오븐 역시 세월의 태엽을 돌리다 보면 그렁저렁한 애물단지가 되어 있으렷다.
---「얼마는 둘러 오느라 퍽 늦을지도 모른다」중에서

몹시 엉켜버린 실을 풀고 있자면 나와 얽혔던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오른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실의 또 다른 이름이 된다면, 인간관계가 엉킨다는 건 어쩌면 괴로운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애당초 깊어질 건더기 하나 없는 관계라면 꼬일 일도 없었을 테니, 엉킨 관계는 끈끈한 사이로 가는 길에 거치는 통과 의례쯤 될까. 관계에 뒤틀림이 생기는 걸 병적으로 경계할 바에는, 엉킨 관계를 어떤 식으로 부드럽게 풀지를 고민하는 게 낫다. .
---「엉킨 실을 풀어볼 용기」중에서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경험으로 틈틈이 무장한 정신은 과거와의 포옹을 거부할 것이다. 우리가 이따금 떠올리는 때 묻지 않은 순수는 어느새 추억이 꾸며내는 환상이 되었다. 편리함과 풍요로움은 우리를 매 순간 다른 종으로 진화시킨다. 인간성이 희미해지는 방향. 역사 발전의 흐름이 그쪽일지라도 속도를 조정할 힘 정도는 그 종에게도 남아 있지 않을까. 불행 중 다행으로.
---「세상의 방향성은 바꿀 수 없다 해도」중에서

삶의 의미는 어느 날 문득 찾아지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찾아가는 것, 어떤 이상향에 도달한 상태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혹은 멈추고 싶을 때까지 달려가는 뜀박질이다.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다 보면 삶의 의미와 삶 자체는 비슷한 모양이 될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달려가다 언젠가 뒤돌아보며 말할 것이다. 그 모습이 어찌 됐든, 실로 귀한 삶이었다고.
---「나의 삶은 나의 어법에 따라」중에서

비탈길로 내리닫던 의식의 수레를 가까스로 부여잡았다. 명상으로 한숨 돌리고 나니 손에 뜨개바늘이 있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닿는 만큼만 손을 뻗었다. 한 코, 한 코, 그리고 한 단. 욕심내지 않고 동작하는 만큼만 이루어지는 세상이 거기 있었다. 겉뜨기와 안뜨기를 꼬아 뜬 목도리, 보라와 아이보리를 배합한 모자. 뻗은 손에 잡히면 해도 될 일이라 여겼고 잡히지 않으면 그냥 놓아주었다.
---「문어발식 경영은 이제 그만할게요」중에서

나와 같지 않은 모습을 그 사람의 독특한 개성으로 바라볼지, 어느 미친놈의 일탈로 바라볼지는 끝끝내 당신 몫으로 남는다.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 없는 세상이라지만 다름과 틀림을 구분 짓는 경계선 하나만큼은 제 분별력으로 확실하게 두자. 시대 흐름에 편승해서 한 명의 인간을 틀렸다고 규정하기에는 그 말의 무게가 절대 가볍지 않으니.
---「다름과 틀림 사이, 그 모호한 경계」중에서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 가족. 아무 상관이 없던 낱말에 ‘우리’라는 관형어가 붙을 때 대상은 비로소 삶을 비집고 들어온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는 세상 만물에 ‘우리’라는 표찰을 붙이고 자기 것인 듯 여기며 살아간다. 떠날 때는 다 두고 가야 할지언정 표찰 하나 붙이는 행위는 가없이 숭고하다. 한없이 가볍고 허무한 세상에서 오직 그것만이 자기 삶에 무게 를 더하기 때문이다.

---「우리라는 표찰」중에서

출판사 리뷰

“어느 날, 내 삶에 대바늘과 털실이 굴러들어 왔다.”
부들부들 실타래와 잔잔한 클래식, 달콤한 호두파이 사이를 유영하는 작가 이성진의 포근한 자기 고백


가방 한편에는 언제나 뜨개질거리가 자리한다. 지하철이든 카페든 틈만 나면 바늘에 실을 얽어낸다. 집에서는 클래식의 은은한 선율에 맞춰 반죽을 만진 다음 호두파이를 구워낸다. 사람들과 진득하게 부대끼는 것도 좋아하지만 대체로 집 안에서 시간을 보낸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공간과 장소를 탐구하는 데 할애하고 틈이 날 때면 사르트르와 니체의 생각을 꺼내 먹는다.

이렇듯 다채로운 한 사람, 이성진 작가는 좋아하는 대상들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하며 삶의 궤적을 그려가고 있다. 그 헤엄의 시작에는 ‘뜨개질’이 있다. 뜨개인으로서 그의 출발 지점을 찾아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행위와는 상당히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군부대가 튀어나온다. 여가 시간에 우연히 접한 ‘뜨개’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 부대로 배송시킨 실타래와 대바늘은 온 부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역설적으로, 별스러운 대접과 그 유난스러운 시선들이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원하는 삶의 모양에 대해 생각하는 출발점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데 쏟아지는 세상의 삐뚜름한 눈초리가 비로소 불편해지던 지점에 와서야 그는 오래전부터 ‘~다움’이라는 접미사에 어렴풋이 느낀 쌉싸름한 기분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이제는 눈 감고도 대바늘을 조금씩 만지작거릴 수 있는 오늘에 이르러 그는 각종 ‘~다움’을 떼어내고 그저 ‘나다움’이라는, 즉 ‘이성진다움’이라는 수식어 하나면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남자가 뜨개질하며 살아도 괜찮을까?’라는 세상의 질문에 뜨개실은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어도 뜨개질하는 나는 무엇이라 딱 잘라 말할 수 없으며, 그저 순간순간 미래로 나를 내던지는 와중에 뜨개질이라는 행위를 선택할 뿐이고 “오늘은 뜨개질하며 사는 게 내 존재 자체다. 그 안에 괜찮음의 잣대가 들어갈 틈은 없다”라고 단호한 표정으로 답한다.

그러나 이성진 작가는 우리에게는 “스펀지 케이크처럼 살든, 생크림 케이크처럼 살든 우리의 삶이 맛있게, 그저 멋있게 구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다정한 언어로 그의 지나간 시간들을 고스란히 건넨다. 그 궤적에는 무해하고 무용한 몸짓이 만들어내는 기쁨과 슬픔과 더불어 여전히 붉게 물든 상흔들까지 자리하고 있으나 이성진 작가는 우리에게 민낯 그대로 내보인다. “‘나다움’, 어쩌면 영원히 닫지 못할 종착점이자 시시각각 바뀌어 가는 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여정은 설령 무용할지라도 빛이 난다. 그런 이유로, 나답다는 말의 상자를 들여다보는 연습의 자취를 여기에 소복하게 담았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다움의 여정은 무용할지라도 빛이 난다.”
뜨개질로 찾아가는 나다운 삶과 무용한 몸짓이 만들어내는 나만의 색깔


이 길에서 우리는 삶을 꾸려가는 작가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쓸모 있는 인간이기를 바라는 세상의 압박, 타인이 판단하는 유용함으로 도배된 일상 속에서 그는 “유용한 말들은 곧잘 관형어의 기능을 한다”며 우리는 어쩌면 “‘좋은 아파트에 사는’, ‘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한’ 등등의 자신의 값어치를 높여줄 관형어 뒤에 몸을 감춤으로써 존재의 의미마저 뒷전으로 밀어내고 있는지는” 않은지 의문한다. 그리고 그 의문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유용함과는 다른 가치를 가지는 무용함을 깨닫는다. “내가 세상을 지탱하는 쓸모 있는 기둥임을 알려준 게 유용이라면, 나라는 인간이 그저 존재한다고, 그거면 됐다고 담담히 알려주는 건 무용이었다.”

하지만 이성진 작가는 냉혹한 현실에서 세상의 언어로 이루어진 어떤 설명에도 기대지 않고 자유로이 살겠다는 건 공허한 몸부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외부의 언어를 전부 떼어내고도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설령 무용할지라도 그게 바로 나의 알맹이가 아닐까. 알맹이를 불리고 키우는 일은 시루에 콩나물을 키우는 일보다는 어렵겠지만, 수확의 기쁨은 비길 데가 없겠다”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는 그는 비로소 무용한 몸짓의 중요성을 깨달은 어른으로 거듭난다.

그 어른은 누군가를 위해 준비된 사람이고 싶다는 일념으로 겨울을 마주할 사람에게 목도리를 선물하기 위해 여름부터 뜨개바늘을 잡으며 “뜨개질을 시작하기는 여름이 좋다”는 사실을 새긴다. 그 다정한 어른은 각종 관계의 허물어짐에 슬퍼하며 그럼에도 그 끝이 “얼마는 둘러 오느라 퍽 늦을지도 모른다”는 감친 마음으로 애물단지 위의 먼지를 쓸어내린다. 그 사랑스러운 어른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은 마치 염색을 반복하는 것과 같고 그리하여 삶은 비로소 제 색을 찾아가니 “내 삶은 나의 어법에 따라” 계속해 가기를 바라며 우리를 응원한다. “그러니까, 오늘도 한껏 무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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