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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들어가는 글 루스 베네딕트: 인류학의 휴머니스트 유년 시절 인류학: 확신이 점점 더 커지던 시절 문화의 패턴 책임 있는 공적 활동의 시기 보아스의 은퇴: 전환기 전쟁 시기 현대 문화의 연구 논문(베네딕트의 대표적 논문) 북아메리카의 문화적 통합형태 주술 주니 족 신화 서문 원시적 자유 일본문화의 극기 훈련 유럽 국가들의 문화 패턴 연구 인류학과 인문학 부록 추천사1: 20세기 미국 인류학의 개척자 루스 베네딕트 추천사2: 여성 운동의 선구자 루스 베네딕트 루스 베네딕트의 저작 역자해설 |
Margaret Mead (190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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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너드 대학 4학년이던 1922년 가을에 루스 베네딕트를 처음 만났다. 그녀는 당시 프란츠 보아스 밑에서 대학원 과정을 막 마치고 1년간 바너드 대학에서 보아스의 조교로 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 학생들을 데리고 미국 자연사박물관에 데려가기도 했다.
이 당시, 소녀 시절에 그리고 그 후에 하나의 전설이 되었던 그녀의 미모는 완전히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아주 수줍음이 많고 정신이 산만한 중년 부인 같아 보였고, 가느다란 쥐색 머리카락은 잘 고정되어 제자리에 그대로 있는 법이 없었다. 여러 주가 지나가도록 계속 엉성한 모자를 쓰고 다녔고 칙칙한 색깔의 같은 옷을 입었다. 남자들은 매일 같은 옷을 입잖아, 하고 그녀는 말했다. 여자는 왜 그렇게 하면 안 돼? ―-- p. 25 루스 베네딕트가 『문화의 패턴』을 집필한 1930년대 초반, 살아 있는 문화들에 대한 현지탐사 작업은 아직 많이 이루어진 상태가 아니었다. 다양한 범위의 기질을 가진 개인들이, 규정된 아이 양육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적으로 승인되는 성격 구조를 갖추게 되는 문화적 방식들에 대해 상호 비교할 수 있는 바탕이 거의 없었다. 이 문제를 체계적으로 연구하자면 역동적인 인성 발달 이론을 수립해야 했다. 곧 프로이트의 다양한 이론 모델, (예일대학에서 막 연구가 시작된) 학습 이론 모델, 게슈탈트 심리학 모델 등이 나와서 생물학적 소여와 문화적 체험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해주게 되었다. 하지만 베네딕트가 미국 인디언 자료들을 가지고『문화의 패턴』을 집필할 때 이런 이론 모델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보아스의 학습 이론은 모방 이론과 “자동행동” ― 문화적 역할의 비반성적, 비자의식적 수행 ― 이라는 개념에 기울어져 있었다. ―-- p. 101 전쟁이 끝나가던 1945년 여름 그녀는 군부로부터 독일로 가서 점령 문제를 연구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군사 점령 초창기에 민간인 그것도 여자가 미군 점령 지역에 들어간다는 것은 엄청난 기회였으므로, 정말 흥분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정기 신체검사를 받은 그녀는 독일행이 거부되었다. 젊은 시절 그녀는 극심한 두통으로 고생한 적이 있는데, 이제 지난 몇 년 동안 갑작스럽고 까닭모를 심한 현기증으로 고생을 해왔다. 의사들은 그녀의 심장이 약하다면서 우려를 나타냈다. 그녀의 실망은 컸다. 원격 문화 연구를 몇 년 동안 수행해왔기 때문에 정말로 유럽 현지에 가서 그곳의 문화를 직접 보고 싶었다. 유럽은 1926년 이래 가보지 못했다. 그녀는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동유럽 지역의 국가들도 한 번 둘러보고 싶어했다. 유럽행이 좌절되자, 그녀는 일본에 관한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것을 위해 1945~1946년 학기 동안 컬럼비아 대학에서 전시 연가를 받아 캘리포니아로 가서『국화와 칼』을 썼다. ―-- p. 125 현대 문명에서도 주술적 개념과 절차는 아주 흔하다. 현대인의 세속화가 진행되면 종교와 그 신들은 피해를 입었지만 주술은 별로 피해를 입지 않았다. 반면에 애니미즘과 외부 세상의 개인화는 세련된 사고방식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배제되었고 어린아이들에게도 이런 쪽으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주술의 경우, 비(非)초자연적 행동에 대해 별로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종교적 전통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난 사람들도 근본적으로 주술에 바탕을 두고 있는 다양한 복점 컬트에 의존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투자가의 고객들은 점성술사의 판정을 믿고 최신 기계공학을 훤히 아는 비행기 조종사는 별점을 보면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 ―-- p. 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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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및 성장
베네딕트는 1887년 뉴욕시에서 태어나 두 살 무렵에 외과 의사이던 아버지가 급사하는 바람에 뉴욕 주 섀턱 농장(외할아버지 집)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교사와 도서관 사서 등으로 일하면서 힘겹게 두 딸을 키웠다. 그 때문에 베네딕트는 내면적으로 깊은 고뇌를 느끼며 성장했다. 과부 생활의 어려움을 지속적으로 호소하던 어머니에게 심한 염증을 느꼈고, 발작 비슷한 격심한 신경질을 부리기도 했다. 어린 베네딕트가 아버지의 관 옆에 서 있는데 어머니가 신경질적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라고 채근하는 바람에 그런 신경질적인 여자가 되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신체적 장애도 있었다. 아주 어릴 적에 열병을 앓아 한쪽 귀의 청력을 잃었다. 이 때문에 성격이 우울해졌는데, 두 살 아래 여동생 마저리는 성격이 밝고 예쁘고 활달한 아이여서 더욱 대조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우울한 성격을 혐오하여 심적으로 대혼란을 겪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침착하고 눈물 없는 외양을 꾸며야 했기 때문에 더욱 자기 혐오감이 깊어졌다. 베네딕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를 썼고 1909년 배서 대학 영문과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그녀는 한때 문필업에 전념할 생각도 있었으나 문화인류학에 입문하면서 시 쓰기는 중단했다. ● 결혼과 학문 베네딕트는 1914년 여름 스탠리 베네딕트와 결혼했다. 이 무렵 남편은 뉴욕 시 코넬 의과대학에서 생화학자로 근무하는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결혼 후에도 자기 정체성의 확립이라는 문제를 두고 남편과 갈등을 빚었다. 그녀는 그런 갈등을 해결해줄 촉매제로서 아이의 출생을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1919년 결정적 전환점이 찾아왔다. 이 해에 그녀는 아주 위험한 수술을 받지 않으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남편이 그 수술에 반대하면서 부부 관계는 더욱 틀어지게 되었다. 이제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안 베네딕트는 더욱 자신의 길을 가야겠다고 각오하게 되었다. 그녀는 32세가 되던 1919년 일반인을 위한 인류학 강의를 들으면서 그것이 아주 흥미로운 학문임을 알게 되었다. 평소 늘 갖고 있던 질문들, 가령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런 성격의 소유자인가?” “나는 왜 인생에 많은 두려움을 느끼는가?” “나는 왜 현대 미국 사회에서 소외감을 느끼는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을 문화인류학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학문에 매진했고 이후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가 되었다. 루스 베네딕트 전기는 하나의 감동적인 이야기다. 절반쯤 청각장애인이 된 아이, 조울증 기질을 가진 소녀, 결혼에 실패하여 별거한 여자, 성 정체성에 심한 혼란과 갈등을 느낀 여자, 남성 주도의 대학 사회에서 차별 대우를 받으며 경쟁해야 하는 여성 학자 등 온갖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고 세계적 인물이 되었으니 말이다. 비록 베네딕트 생존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녀의 성 정체성 또한 독특한 인생의 에피소드이다. 미드가 이 책을 집필했던 1974년 당시만 해도 미국 내에서 동성애는 반드시 숨겨야 할 혐오 사항이었다. 따라서 미드는 이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깊은 관심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했다. 이 책의 행간을 읽어보면 그런 관심사가 배어 나오는데, 가령 미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대학 시절 그녀는 영문학을 전공했고 아주 외로운 학생이었으나 기이한 방식으로 다른 외로운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베네딕트가 외로운 여성에게 강하게 어필하는 사람이었음을 암시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 21페이지의 사진 캡션은 “그녀의 아름다움이 시들어가던 1924년 무렵”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때는 베네딕트가 자신의 성 정체성과 관련하여 커다란 시련을 겪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26페이지의 사진은 “그녀의 아름다움이 회복된 1931년”이라는 설명을 달고 있는데, 이때는 베네딕트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고 미드와의 사랑이 절정에 도달했던 시기였다. 베네딕트는 이런 온갖 어려움을 헤치고 문화인류학 연구에서 자신의 고민에 대한 답변과 인생의 의미를 발견했다. 그런 만큼 그녀의 글에는 자기 지칭성(베네딕트 자신의 문제를 문화의 분석에 원용하는 것)의 경향이 강하다. 전기 뒤에 붙어 있는 6편의 논문도 이런 자기 지칭성의 관점에서 읽어볼 수 있다. ● 성 정체성, 그리고 여성으로 산다는 것 베네딕트가 미국 사회에 대해 깊은 소외감을 느꼈다는 사실은 파격적 성 정체성이라는 자기 인식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녀는 1930년대 초반에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새로운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방황과 고뇌의 세월을 청산하고 『문화의 패턴』을 썼다. 이 책에 붙어 있는 논문집의 첫 번째 글인 ?북아메리카의 문화적 통합형태?은 문화의 패턴 이론을 정립하는 데 획기적 역할을 한 글이다. 이 글과 두 번째 논문인 ?주술?에는 이런 주장이 나온다. 문화는 판타지, 공포구성물(fear-constructs), 열등감 등에 바탕을 두고서도 얼마든지 조화롭게 또 견고하게 구축될 수 있고, 또 위선과 허세에 탐닉할 수도 있다. 진실을 대면하고 위선을 회피하려는 드라이브를 가진 개인이, 나름대로 균형 잡히고 조화로운 문화 내에서 범법자로 지목될 수도 있다. 잘 정의된 문화적 통합형태는 정직한 것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북아메리카의 문화적 통합형태?). 현대 사회는 성과 관련된 까다로운 문제와 관련하여 주술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다시 말해 기존의 계시종교와 전통적 도덕이 용인한 것 이외에 다른 바람직한 섹스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주술?). 비록 이 책이 집필된 1974년에는 베네딕트의 성 정체성이 밝혀지지 않아, 위에 인용한 문장들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그 주장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문화의 극기 훈련』이라는 논문은 『국화와 칼』의 한 챕터를 가져온 것이다. 이 논문은 극기에 도달하는 선불교의 정신과 수행을 기술하고 있다. 선불교는 인생의 의미를 추구하는 베네딕트에게 하나의 해결안을 제시했다. 베네딕트는 퓨리터니즘과 감성의 부흥이라는 모순적 경향을 가진, 복음주의적 침례교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인류학을 공부하면서 이런 어릴 적 신앙을 버렸고, 그 이후 꾸준히 대안을 찾아왔는데 선불교에서 그것을 발견했다. 선불교는 ‘지금 여기’라는 현재성, 개인의 자아, 내세와 신비주의의 거부, 선정(禪定)과 명상, 공안(公案)이라는 화두, 무술의 정진 등을 통해 개인의 극기를 유도하고 또 행위자와 관찰자라는 분열된 자아의 치유와 화해를 강조한다. 이런 선불교의 훈련을 통해 통합된 자아를 성취한 개인은 그 어떤 긴장이나 구속, 수치심과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다시 말해 진정한 자유인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인이라는 가르침은 인생의 의미와 관련하여 깊은 고민과 갈등을 되풀이 해온 베네딕트에게 분명 하나의 빛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