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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 대하여
이 책에 대하여 제2판의 서문 제1부 쥐 이야기(디아누스의 일기) 제2부 디아누스(몬시뇰 알파의 비망록에서 발췌한 메모들) 제3부 오레스테이아 옮긴이의 글 조르주 바타유 연보 |
Georges Bata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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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회환도, 불안도 없는 몰상식한 불행아! 격렬하게 이글거리는 그 불길 속에서 나는 타오르고자 하는 욕망으로 타오른다. 죽음과 육체적 고통을 놓고 ― 그리고 죽음보다, 고통보다 심오한 쾌락도 함께 ― 침울한 밤, 나는 잠의 경계를 어슬렁거린다.---p.43
다리 중간에서 허리까지 계집들의 신체 부위란 ― 기대에 왕성하게 부응할뿐더러 ― 쥐의 종잡을 수 없는 통로처럼 부응한다.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은 현기증을 동반한다. 역한 냄새, 우글우글한 주름, 하수구는 사람을 혹하게 만들어 추락을 부르는 협곡의 심연과 동일한 본질을 가진다. 심연 역시 나를 끌어당긴다. 그렇지 않으면 현기증을 느낄 리 없다 ― 한데, 떨어지면 죽을 것이요, 또 떨어지지 않으면 심연이 내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만약 추락하고도 살아남는다면, 나는 욕망의 덧없음을 증명할 수 있으리라 ― ‘작은 죽음’을 겪으면서 무수히 그랬듯이. ‘작은 죽음’은 단번에, 즉각적으로 욕망을 소진해(없애), 우리를 협곡 가장자리에 조용히 서 있는, 심연의 마법에 무감각한 인간으로 만들어준다.---p.p48~49 언젠가 나는 이 세상을 버릴 것이다. 그때 비로소 밤은 밤이 되고, 나는 죽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 있는 지금, 내가 사랑하는 것은 밤을 향한 삶의 사랑이다. 내 삶이, 그나마 필요한 힘이 남아 있어, 자신을 밤으로 이끌어갈 대상에 기대를 품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는 행복을 찾아 괜한 고생을 한다. 밤 자체가 자신을 사랑할 힘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계속 살아남을 경우, 밤을 사랑하는 데 필요한 힘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58~59 내가 시에 다가갈수록 시는 내게 결핍의 대상이다.---p.188 시는 미지의 것에 깃든 힘을 드러내준다. 그런데 미지의 것이란 욕망의 대상이 아닐 경우, 별 볼 일 없는 공허에 지나지 않는다. 시는 하나의 절충안이며, 미지의 것으로 기지의 것을 은닉한다. 시는 태양의 외관과 눈부신 색채로 치장된 미지의 세계다. ---p.195 |
에로티슴을 향한 선언
“조르주 바타유는 이 책을 생전 세 차례 출간했다. 1947년 9월, 『쥐 이야기(디아누스의 일기)』가 미뉘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갈리마르에서 “윤리상” 출간을 보류했던 책이었다. 같은 달 역시 미뉘에서 『시의 증오』가 발행되는데, 이 책에는 「쥐 이야기(디아누스의 일기)」, 「디아누스(몬시뇰 알파의 비망록에서 발췌한 메모들)」, 「오레스테이아」가 엮여 있었다. 이어 1962년 4월, 『시의 증오』 재판본이 발간되었다. 새로운 판본의 제목은 ‘불가능’이었다.” (「이 책에 대하여」 중에서, 본문 9쪽) 바타유의 소설 『불가능』은, 그 첫 단편만을 헤아리자면 세 번, 단편 2편과 시 1편 등 전 작품으로 따지자면 두 번 그의 생전 출간되었던 작품이다. 바타유는 다채로운 작품만큼 다양한 필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두 얼굴의 신 야누스, 즉 ‘디아누스’의 이름을 빌어 여러 차례 글을 썼다. 이 책 『불가능』에 수록된 첫 단편의 제목은 ‘쥐 이야기(디아누스의 일기)’이다. ‘디아누스의 일기’라는 부제대로, 이 단편은 바타유의 목소리임이 분명한 그 내밀한 말들을 담고 있다. 바타유 연보에 따르면 “당시 이 책에 실린 자코메티의 에칭화 세 점은 코제브, 디안, 그리고 바타유 자신의 내밀한 관계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림에 나타난 세 개의 알파벳 A, B, D는 각각 알렉상드르 코제브(Alexandre Kojeve, 바타유에게 영향을 끼친 철학자), 디안 보아르네(Diane Beauharnais, 바타유의 두 번째 아내) 그리고 디아누스(Dianus, 조르주 바타유)를 가리킨다.” 바타유 소설의 대부분이 그렇듯 「쥐 이야기」에 이어 「디아누스」 또한 자전적 단편이며, 마지막에 실린 「오레스테이아」 역시 그의 독백이라 할 시와 단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모두는 바타유가 전 생애에 걸쳐 본질 회복을 위해 몸바쳤던, 세상 모든 이가 의식하지 못한 채 누려왔던 바로 그 에로티슴(Erotisme, 에로티시즘)을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 바타유가 논하는 에로티슴의 세계는 삶을 꿰뚫는 주제이며, 이는 우리가 익히 안다고 믿어왔던 바로 그 천박하고 선정적인 에로티시즘의 세계와 일맥상통한다. 바타유의 에로티슴이란, 그의 여러 작품들과 같이, 이렇게 인간에게 진정 심오하고 절박한 성(性)의 세계에 진지하게 접근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그의 자전적 글들은 단순히 내밀한 고백에 그치지 않는다. 여러 저서를 통해 공개적으로 드러난 바타유의 성적 고백들은 차라리 에로티슴을 향한 선언에 가깝다. 이렇듯 바타유가 생전 여러 차례 제목을 바꾸어가면서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출간했던 이 책은 ‘시의 증오’를 말하고자 했지만 바타유 스스로 밝혔듯 당시 이 제목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 이는 아무도 없는 듯했고, 그리하여 바타유는 ‘불가능’이라는 새로운 제목을 내세워 책을 다시 출간하게 된다. 그리고 약 3개월 후 생을 마친다. 이 책은 이렇게 1962년 4월 1일 미뉘 출판사에서 재출간된 『불가능』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불가능’이 된 ‘시의 증오’ “나는 15년 전 이 책을 처음 펴냈다. 그때는 ‘시의 증오(La Haine de la Poesie)’라는 모호한 제목이었다. 오로지 증오만이 진정한 시에 도달한다는 것이 당시 나의 생각이었다. 시는 반항의 폭력 안에서만 강력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그 폭력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불가능을 환기하는 수밖에 없다. 첫 번째 제목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불가능(L’Impossible)을 말하기에 이르렀다.” (「제2판의 서문」 중에서, 본문 14쪽) 바타유에게 시는 어떤 의미였던가. “내가 시에 다가갈수록 시는 내게 결핍의 대상이다.” 고백에 뒤이은 선언. “시의 무의미로까지 치솟지 않은 시는 시의 공허, 그저 아름다운 시에 불과하다.” 즉 ‘시의 증오’란 ‘시가 시에 대해 느낄 수밖에 없는 증오’다. (「이 책에 대하여」 중에서, 본문 9쪽) 시의 무의미로까지 치솟고자 한 소설 두 편과 시 한 편. 바타유는 인간 앞에 펼쳐진 두 가지 전망을 ‘시의 전망’과 ‘현실 세계의 전망’으로 구분했다. ‘시의 전망’은 ‘격렬한 쾌감, 공포, 죽음’이다. 그 정반대는 ‘과학 혹은 유용성의 현실 세계’다. ‘진실’이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휘두르는 전권, 그것을 지움으로써만 가 닿을 수 있는 저 ‘불가능’. ‘시의 증오’는 이렇게 ‘불가능’으로 향한다. 그리하여 “바타유에게 ‘에로티슴’, ‘죽음’, ‘불가능’은 인간이라는 숙명을 받드는 3단성화(三段聖畵, triptyque)다. 이 책은 결국 그 제단에 바쳐진 한 편의 장시로 읽힐 것이다.” (「이 책에 대하여」 중에서, 본문 10쪽) 바타유(Bataille)와의 전투(bataille) ‘제안들’ 2권 『불가능』의 번역 후기에서는 작품을 관통하는 다섯 단어를 둘러싼 사고 논리가 전개되었다. ‘욕망(le Desir)’, ‘불안(l’Angoisse)’, ‘죽음(la Mort)’, ‘공허(le Vide)’, ‘불가능(l’Impossible)’이라는 다섯 단어를 택한 번역가는 이 단어들을 통해 벌인 바타유(Bataille)와의 전투(bataille)를 논리 정연히 기록했다. 또한 이 책의 경우, 바타유 전공자가 발췌 번역한, 특별히 상세한 연보를 실었다. 도서관 사서로서 문헌에 민감한 삶을 살았고 당대 프랑스 사상계를 주도했던 여러 잡지들을 창간하고 운영했던 주체였음을 반영한 결과다. 바타유와 그 주변의 세세한 활동이 낱낱이 기록된 연보를 통해 바타유 개인은 물론 그와 동시대를 산 사상가들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