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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의 변신
프랑스 태피스트리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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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여는 글

Ⅰ 서론

용어와 짧은 역사
제작 과정
왜 프랑스 태피스트리인가?
서사, 선전, 장식

Ⅱ 서사

1 『여인과 유니콘』 태피스트리
궁정풍 사랑과 그 기원
사랑의 단계
사랑의 장소
소망에서 욕망으로

2 『유니콘 태피스트리』
유니콘, 하나의 뿔
사냥의 정치학
사냥의 매뉴얼
유니콘, 왕의 사냥감

Ⅲ 선전

1 발루아 태피스트리
앙투안 카롱과 뤼카스 더 헤이러
발루아 축제
앙리 3세 치하의 카트린 드메디시스
축제, 귀족정치의 프로파간다

2 고블랭 태피스트리
고블랭 제작소
고블랭 제작소를 방문한 루이 14세
알렉산드로스로 그려진 루이 14세
됭케르크에 입성하는 루이 14세
프로파간다로서 태피스트리

Ⅳ 장식

1 『그로테스크』 태피스트리
그로테스크의 기원과 전개
베랭의 그로테스크
코메디아 델라르테
중국 취향
즉흥과 환상 속으로

2 『네 원소』 태피스트리
로카유 장식
태피스트리 디자이너로서 부셰
신들의 사랑으로 표현된 네 원소
궁정풍 사랑에서 갈랑트리로

닫는 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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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교육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인문대학 미술사학과에서 르네상스 전공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서양미술사를 가르친다. 저서 『기쁨을 전하는 그림』, 『하늘의 여왕』, 『미술과 성서』와 공저 『서양미술사 연구』, 『미술사의 시선』, 『18세기의 방』, 역서 『베네치아 미술』, 『로마, 절대권력의 길을 닦다』, 『미켈란젤로』, 『신약성서, 명화를 만나다』가 있다. 그리스도교 미술과 물질문화 연구에 관심을 두고 있다. INSTAGRAM @opuspau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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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8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182*240*20mm
ISBN13
9791167071200

책 속으로

이 책은 실의 변신(transformations)에 관한 이야기이다. 실은 안료를 만나 색이 되고 선과 면이 되어 태피스트리가 되었다. 실이 모인 태피스트리는 이야기가 되고, 선전을 하고, 벽을 장식한다. 태피스트리는 붓과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실로 짠 그림이고, 그 크기가 벽을 가릴 만큼 큰 것이 많다. 태피스트리는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쉽게 감상하거나 널리 향유할 수 있는 예술작품이 아니다. 제작 비용이 비쌀 뿐 아니라 감상을 하기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피스트리의 소유자는 대부분 왕과 귀족이었다. 요컨대 태피스트리는 궁정예술이며 귀족예술이다. 중세를 대표하는 고급예술이 필사본이라면, 르네상스 최고급 예술품은 태피스트리를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태피스트리의 매력은 무엇일까?
---「여는 글, 8쪽」중에서

중세 태피스트리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프랑스 앙제성(Chateau d'Angers)에 있는 태피스트리 연작 『요한계시록(The Apocalypse)』그림 7이다. (...) 앙제 태피스트리의 주제인 「요한계시록」은 신약성서의 맨 마지막 챕터로, 세상의 종말을 다루고 있다. 「요한계시록」은 1000년대를 전후로 필사본이 많이 제작되었는데, 같은 주제를 이미지로 재현한 앙제의 태피스트리는 벽으로 확장된 필사본이라 할 수 있다. 성서 같은 텍스트를 태피스트리로 제작한 것은 태피스트리가 이야기-그림(Narrative-Painting)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음을 알려준다. 크기가 작은 필사본이 개인용이라면, 거대한 규모로 제작된 태피스트리는 다수의 관람자를 위한 것이다. 따라서 태피스트리는 그 규모로 인해 공공성을 지닌다.
---「Ⅰ장 서론, 19~20쪽」중에서

『여인과 유니콘』 태피스트리는 클뤼니 중세 박물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큰 방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그림 13 이곳에 소장되기 전에는 프랑스 남서부 리무장(Limousin) 지역의 부삭성(Chateau de Boussac)에 있었다. (...) 쇼팽의 연인으로 알려진 조르주 상드(George Sand, 1804~1876)는 소설 『잔(Jeanne)』(1844)의 부삭성을 배경으로 한 부분에서 이 태피스트리를 “기이한 태피스트리curious enigmatic tapestry”라고 언급하였다. (...) 한편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는 1910년 발표한 『말테의 수기』에서 여섯 점의 태피스트리를 ‘벽걸이 양탄자’라 칭하며, 미각, 후각, 청각, 소망, 촉각, 시각 순으로 묘사하였다. 이러한 문인들의 관심은 이 작품이 이국적이고 신비한 분위기로 상상력을 자극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여인과 유니콘』을 다룬 문학작품은 19세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2004년 트레이시 슈발리에(Tracy Chevalier)가 동명의 소설을 발간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Ⅱ장 서사, 36~37쪽」중에서

‘Mon Seul Desir’라는 글귀가 수놓인 천막 앞에 목걸이를 들고 있는 여인이 등장하는 작품 〈소망〉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이를테면, 여인은 목걸이를 상자에서 집어 든 것인가, 아니면 목걸이를 풀어서 상자에 넣으려는 것인가? 또 목걸이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나 이와 같은 질문들에는 아직 합의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소망〉과 관련하여 현재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해석은 프랑스 미술사학자 알랭 엘랑드-브랑당뷔르(Alain Erlande-Brandenburg)의 것이다. 그는 목걸이가 세속적인 욕망을 상징하며, 그것을 내려놓는 여인의 행동은 감각적인 삶을 추구하던 현세의 삶을 버리는 자유의지(Liberum arbitrium)를 보여준다고 보았다.
---「Ⅱ장 서사, 40쪽」중에서

르브룅의 회화 〈그라니쿠스 전투〉가 전투를 마치 파노라마 모드로 사진을 찍은 것 같다면,그림 65 태피스트리는 클로즈업 모드를 사용한 것처럼 알렉산드로스와 적장들의 대결이 부각되었다.그림 66 회화에서 화면 오른쪽에 등장하는 알렉산드로스를 향해 창을 들고 달려오던 미트리다테스는 태피스트리에서는 삭제되었고, 알렉산드로스 뒤에서 도끼를 들고 있는 로이사케스만 남겨졌다. 강을 건너는 군사들의 역동적인 모습과 함께 영웅이 위기에 처한 순간이 회화보다 강조되었다. 한 사람이 고안한 동일한 주제의 회화와 이를 근간으로 제작된 태피스트리란 점을 염두에 두고 비교해보면, 회화와 태피스트리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회화와 달리 태피스트리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장식성이다. 태피스트리에서 장식이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프레임이다. 특히 왕실 문장과 엠블럼으로 꾸며진 화려한 프레임 안에 묘사된 장면은 연극무대를 보는 것처럼 입체적이다.
---「Ⅲ장 선전, 146~147쪽」중에서

〈악사와 무희〉는 보베 제작소의 『그로테스크』 태피스트리 시리즈 중 그 폭이 가장 넓은 것으로, 바닥에 석조 타일이 깔린 세 부분의 아케이드 아래서 일어나는 연극적인 오락을 묘사했다.그림 81 화면은 낮고 모양이 제각각인 좌대, 허물어질 듯한 물방울 모양 기둥과 사각기둥, 비연속적인 아키트레이브 그리고 두 개의 아치로 구성되었다. 좌우 아치에 매달려 있는 각 파라솔은 태슬과 사슬, 푸른 리본으로 장식되었고, 바로 아래 푸른 천을 늘어뜨려 걸쳐놓은 긴 막대 위에는 향로가, 아래쪽에는 얼굴이 묘사된 커브가 진 장식(cartouche), 그리고 월계수 가지가 매달려 있다. 화면 중앙의 아키트레이브 위에는 바깥쪽은 푸른색이고 안쪽은 분홍색인 두꺼운 커튼이 걸쳐 있다. 그 아래에는 육각형 캐노피가 매달려 있는데, 위에서 늘어뜨린 사슬처럼 생긴 보석줄이 양쪽에 연결되어 있다.

---「Ⅳ장 장식, 180~181쪽」중에서

출판사 리뷰

이동하는 프레스코이자 가장 값비싼 직물, 태피스트리
15-18세기 프랑스 사회를 재현하다


『실의 변신: 프랑스 태피스트리 읽기』(이하 『실의 변신』)는 국내 최초로 태피스트리를 본격적으로 탐구한 책이다. 태피스트리는 실로 짠 그림으로, 가로실(위사)과 세로실(경사)을 교차시켜 다채로운 색채로 그림을 표현한다. 태피스트리를 제작하려면 긴 시간과 공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는 가격으로 반영된다. 같은 면적의 벽을 장식한다면 태피스트리의 제작비는 프레스코(벽화)의 약 10배가 든다. 때문에 태피스트리는 ‘가장 값비싼 직물’, ‘이동 가능한 프레스코’로 여겨졌고 태피스트리의 소유자는 대부분 왕과 귀족이었다. 태피스트리는 궁정 예술이며 귀족 예술이었다. 필사본이 중세를 대표하는 고급 예술이라면 르네상스의 최고급 예술품은 태피스트리라 할 수 있다. 벽을 장식한다는 점은 태피스트리와 프레스코가 동일하지만, 태피스트리는 이동이 가능한 매체라는 점에서 당시 성을 이곳저곳 옮기며 생활했던 귀족들에게 아름다운 장식품으로 선호되었다.

『실의 변신』은 특히 15~18세기 프랑스에서 제작된 태피스트리에 주목한다. 이 시기 프랑스는 중세에서 벗어나 근대로 진입하였고, 봉건사회에서 절대왕정으로, 발루아 왕조에서 부르봉 왕조로 교체되었으며, 1789년에는 대혁명이라는 격변을 맞았다. 큰 변화의 시기에 프랑스의 왕과 귀족들은 자신의 성을 화려하게 장식할 태피스트리에 어떤 장면을 담으려 했을까. 이 책은 여기에 착안하여 태피스트리를 당대의 사회변화를 보여주는 텍스트로 읽고자 한다. 넓은 공간을 장식하는 태피스트리는 장식적인 기능과 함께 관람자에게 이야기를 전달한다. 태피스트리는 벽의 냉기를 막아 방안의 온기를 보존해주고, 부드럽고 유연한 시각매체로서 효과적인 선전 도구로 사용되었다. 저자는 유명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태피스트리 연작을 한 작품씩 상세하게 해석한다. 파리 클뤼니 중세 박물관의 대표적인 작품인 『여인과 유니콘』부터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중세 미술 분관 클로이스터스에 소장된 『유니콘 태피스트리』,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의 『발루아 태피스트리』, LA 게티 미술관의 『그로테스크』까지. 커다란 고화질 도판을 함께 수록한 이 책은 독자에게 마치 전시실을 관람하는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여인과 유니콘』 : 궁정풍 사랑 이야기

태피스트리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에는 등장인물이 있고 테마(주제)와 플롯(구성)이 있다. 파리 클뤼니 중세 박물관에 소장된 여섯 점의 태피스트리 『여인과 유니콘』 연작은 1500년경 제작되었고, 다홍색 배경과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이다. 19세기 문인부터 현대 작가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가들이 이 작품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쇼팽의 연인으로 알려진 조르주 상드는 소설 『잔(Jeanne)』(1844)에서 이 태피스트리를 “기이한 태피스트리”라고 언급했고,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말테의 수기』(1910)에서 이 연작을 “벽걸이 양탄자”라고 칭하면서 한 작품씩 자세히 묘사했다. 『진주 귀고리 소녀』(1999)로 유명한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동명의 소설 『여인과 일각수』(2003)를 펴내기에 이른다.

‘궁정풍 사랑’은 11세기 남프랑스에서 활동한 트루바두르(음유시인)들이 부르던 여인을 숭배하는 시가에서 시작된 사랑의 전통이다. 결혼한 귀족 여성을 미혼의 젊은 기사가 좇는 내용이 많았고, 대체로 기사는 상대 여성에게 절대복종했다. 여성은 태양이나 달처럼 인간이 닿을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지며 남성의 존경과 숭앙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여성과 남성의 지배?종속 관계는 봉건제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성은 봉건영주로서 가신인 남성의 헌신을 받으면서 그 대가로 사랑을 선사한다.

『여인과 유니콘』의 각각의 제목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그리고 〈나의 유일한 소망〉이다. 저자는 이 작품을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과 프랑스의 작가이자 성직자 안드레아스 카펠라누스의 『사랑에 대하여』를 바탕으로, 여성이 남성과 사랑에 빠지는 단계에 맞춰 해석을 제시한다. 프랑스의 귀부인은 애인을 찾고(시각), 사랑을 속삭이고(청각), 화관을 선물하고(후각), 애인을 사로잡아(미각) 육체적 결합(촉각)에 이른다. 다섯 가지 감각이 명확하게 묘사된 것과 달리 〈나의 유일한 소망〉은 그렇지 않아 해석이 분분한데, 〈나의 유일한 소망〉에서 여인은 머리카락이 거칠게 잘려 있다. 저자는 신체 일부분인 머리카락을 애인에게 선물로 보낼 만큼 여인이 적극적이며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궁정풍 사랑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의 존재감이 크다는 점인데, 실제로 궁정에 살던 귀부인들이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사랑해서 결혼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로 얽힌 결혼이 대다수였다. 또한 주로 밀회를 즐기는 쪽은 아내가 아닌 남편이었다. 어쩌면 궁정풍 사랑은 귀족 여인들의 소망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여인과 유니콘』의 주문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지만, 작품의 내용으로 보면 귀족 가문의 여성일 가능성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발루아 태피스트리』 : 쇠약해가는 왕권과 귀족의 득세를 보여주는 시대화

프랑스 궁정에서 주문한 여덟 점의 태피스트리로 구성된 『발루아 태피스트리』는 귀족들의 축제 장면을 담고 있다. 각 작품의 제목은 〈마상 시합〉, 〈창던지기〉, 〈장애물 경기〉, 〈퐁텐블로 축제〉, 〈바욘에서의 수상 축제〉, 〈튀일리 축제〉, 〈코끼리 행렬〉, 〈여행〉이다. 1574년 프랑스 궁정화가 앙투안 카롱이 디자인한 이 연작의 주문자를 학자들은 프랑스의 왕비이자 섭정으로 권력의 중심에 있던 카트린 드메디시스로 추정한다. 그녀는 남편이 사망한 후 검은 드레스만 입어 ‘검은 왕비’라는 별명이 있는 카트린은 태피스트리에서도 검은 옷을 입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남편인 앙리 2세가 세상을 떠난 뒤 처음에는 축제를 개최할 생각이 없었다가, 샤를 9세의 통치기에 섭정을 하게 되면서 왕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축제를 열었다고 한다.

『발루아 태피스트리』의 화면 구성은 크게 전경의 인물, 그리고 배경이 되는 놀이와 축제 풍경으로 나뉜다. 전경의 인물들은 이 작품의 주문자로 짐작되는 카트린 드메디시스를 포함한 발루아 가문의 귀족,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이다. 촘촘하고 정교하게 그려진 배경에는 당시 궁정의 풍속을 엿볼 수 있는 축제와 놀이가 재현되어 있다. 여기서 눈에 띄는 점은 전경의 인물이 과도하리만치 크게 묘사된 것이다. 크게 묘사된 인물은 누구일까. 태피스트리를 주문한 군주일까? 〈튀일리 축제〉에서 축제를 개최한 카트린 드메디시스는 원경에 작게 등장하지만, 폴란드 대사를 맞이하는 기즈 공작 앙리는 전면에 커다랗게 서 있다. 한편, 앙리 3세가 아네성으로 여행을 떠나는 행렬을 묘사한 〈여행〉에서도 앙리 3세는 두드러지게 표현되지 않았지만, 전면 오른쪽에 오라녀나사우 가문 귀족 세 명이 마치 주인공처럼 당당히 등장한다. 즉, 왕실의 권력을 재현하는 태피스트리에서 그 권력의 중심이어야 할 왕은 부재하거나 희미하게 표현되었다. 『발루아 태피스트리』는 발루아 왕조의 권력보다는 당시 득세하던 귀족정치를 보여주는 프로파간다이다.

『그로테스크』 : 극장 무대를 재현한 태피스트리

그로테스크는 동굴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그로타(grotta)에서 유래한 프랑스어로, 15세기 말 로마를 비롯하여 이탈리아 곳곳에서 발굴된 고대 장식미술을 지칭하는 용어다. 로마시대에 그로테스크 장식이 등장할 당시, 제국 로마는 이민족의 침입이 빈번했다. 혼란과 불안은 난잡한 잎사귀와 소용돌이 장식, 물고기 꼬리를 한 사람 같은 이미지로 재현되었다. 그로테스크는 장식을 지칭하는 용어에서 시작되어 18세기에 그 개념이 미학적 범주와 문학으로 확장되었지만, 이 책에서는 그로테스크를 장식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한다.

1690~1730년 보베 제작소에서 제작된 『그로테스크』 중 〈낙타〉에는 소용돌이 모양의 장식과 만개한 꽃병, 잎이 무성한 덩굴이 나타난다. 이를 배경으로 곡예를 하는 인물, 악사, 무희가 나타나는데, 이는 ‘코메디아’라는 당시 유행하던 대중극 무대를 재현한 것이다. 특히 〈낙타〉에서 세 부분으로 구성된 구조물은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삼면 양식 무대장식술의 영향을 받았다. 삼면 양식 연극 무대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17세기부터 프랑스에서 인기를 얻은 양식이다. 이 이탈리아식 무대는 원근법을 적용하여 이론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장소가 존재하는데, 바로 전면에 있는 첫 번째 관람석에서 극장의 대칭축 위에 있는 왕의 좌석이다. 프랑스에서 이탈리아식 극장 무대는 루이 13세, 루이 14세의 절대왕권의 표현인 동시에 그 도구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이처럼 특권을 가진 관람자를 위한 무대장식은 18세기에 들어 변화를 맞는다. 프랑스 왕실 밖에도 이탈리아식 극장 건축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왕의 자리를 위해 소실점을 구현한 17세기 이탈리아식 무대 배경은 원근법의 깊이감이 얕아진다. 코메디아의 무대를 재현한 〈낙타〉에서도 무대 배경에 해당하는 건축물들은 깊은 원근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이러한 변화는 절대 권력을 추구했던 왕의 시선이 사라지고 다양한 취향을 추구한 귀족들의 시선으로 변화된 사회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로테스크』 태피스트리가 유행한 시기는 루이 14세 사후, 어린 루이 15세를 대신한 필리프 도를레앙의 섭정기였다. 또한 이 귀족의 섭정기는 코메디아의 시대라고도 불렸다.

실은 사랑의 이야기였다가 선전매체가 되고, 극장의 무대를 재현하기까지 다양하게 변신하였다. 15세기부터 18세기에 이르는 프랑스 사회의 변화를 태피스트리로 읽고자 한 『실의 변신』은 태피스트리가 장려한 예술품 이상으로서 귀중한 사료이자 시각매체임을 흥미롭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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