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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죽으려는 결심이 결국에야 섰을 때, 불현듯 네가 떠올랐어.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너. 웅크려 앉은 그 둥그런 등과 목덜미를 덮은 머리카락 끝자락. 떨고 있는 내 손을 잡아 주었을 때 내게 감기던 온기. 내 눈가 아래를 스윽 훔치던 손가락 등의 무른 감촉이 차례로 뇌리를 스쳤지. 우습게도 그런 건 기억이 나면서 네 얼굴이 기억나질 않지 뭐야. 고왔고, 몽글몽글했고, 가느다란 얼굴선과 눈썹이 짙었다는 것 빼고는 좀처럼 너를 떠올릴 수 없더라고. 그 사실이 얼마나 슬펐는지 알아? 내가 죽기로 결심했다는 사실보다도 더. 그즈음 나를 억누르고 있던 끔찍한 진실들보다도 훨씬. 너를 만났던 그곳은 내가 한때 살던 곳도 아니었거니와 내 인생의 단 하룻밤, 그 하룻밤을 지낸 것 외엔 아무런 연관도 없었는데, 난 우습게도 내 죽을 자리가 거기라고 생각했어. 곧장 로프를 엮어다가 목을 맬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던 건, 정말이지 네 얼굴을 다시 떠올릴 수 없다는 것이 가슴이 갑갑해질 정도로 괴로웠던 데다가 집에서 목을 매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객사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었어. 한낱 짐승도 제 죽을 자리를 고른다던데, 내게 그만한 권리는 있지 않을까. 너를 만났던 그곳으로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건, 그런 이유였지.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난 뒤에서야 내가 아주 멍청한 짓을 했다는 걸 깨달았어. 하다 하다 나는 네 존재 자체가 실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마저도 망각하고 말았던 거야. 그것마저 잊다니, 정말 어리석었지. 아마도 나는 그 한여름 밤의 꿈같던 일들을 자라면서 정말 내가 겪은 일이라고 믿어 버렸는지도 몰라. 어차피 버스 안에 갇힌 몸, 나는 창가에 옆머리를 기대고는 차근차근 그 한여름 밤의 꿈을 되짚어 보기로 했어. 골똘히 무언가에 잠기지 않으면, 방심한 틈을 타 어떤 사악한 것이 나를 삼키려 할지도 모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