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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열며
1부 | 나를 기다리는 설렘 나의 부족함도 나다운 아름다움입니다 ―그림이 나에게 일러준 말 스스로 알고 있는 나보다 더 아름다운 나 ―자기소개서가 말한다 세상의 답보다 자신의 물음이 더 소중하다 아내를 아는 만큼,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타고르의 제목 없는 그림 자유로워지십시오. 아름다운 존재가 됩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Q형에게 누드 드로잉, 나 자신을 잊는 순수한 시간 ―누드만큼 아름답고 건강한 인간의 모습은 없다 자기 치유의 생활 습관을 가지십시오. 행복이 커집니다 ―새봄, 결혼을 앞둔 J양에게 미술치료와 부부간의 대화 ―아내가 그린 그림이 아내를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 ―“기도해 드릴게요.”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행복입니다 ―치유와 희망의 선물, 시가 내게로 왔다 축복이 함께한 노년의 나날들 ―삶의 마지막 날까지 내 안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기쁨 삶을 완성하는 날, 나의 마지막 기도 세상은 언제 어디서나 나를 초대하고 있다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보고 싶은 그림이 나를 찾아왔다 ―오랜 기다림, 큰 기쁨 2부 | 나를 찾아가는 기쁨 홀로 걸으라, 그대 행복한 이여 자신이 카메라에 담는 것이 바로 나다 ―내 안의 나를 찾아 준 사진 좁은 얼굴은 무한히 넓고 신비한 공간 ―아내의 얼굴에서 나를 본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평범한 삶이 비범한 삶 텅 빔은 그리움과 치유의 공간 ―나를 채워 준 텅 빈 운동장 해질녘 한 어린이를 위한 기도 세상을 넓혀 준 손자의 생일 케이크 어둠은 결코 빛보다 어둡지 않다 ―침묵이 가져다준 안복眼福 ‘달팽이’ 그림이 살아 숨쉰다 ―여백의 삶이 향기롭다 소리는 사라져도 감동은 영원한 것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 3부 | 안복의 즐거움 우연한 만남, 신비한 선물 ―모네와 함께한 봄날의 지베르니 빛이 살아 숨쉬는 치유와 구원의 공간 _192 ―마티스의 작은 로사리오 성당 두잉Doing의 땅에서 빙Being의 세계를 그리다 ―사막의 침묵은 신비한 선물 색의 아름다움에 빛의 아픔이 있다 ―역광의 신비한 아름다움 낡아지는 것은 늘 새로워지는 것 ―세월의 향기가 밴 생폴 드 방스 하늘을 끌고 가는 호수, 시심을 부르다 ―외로움이 시가 되고 그림이 된다 침묵의 말, 천지의 언어 ―영겁의 아픔이 녹아 있는 천지의 아름다움 흙을 만질 때 나는 저절로 착해진다 ―첼시 플라워 쇼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미소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은 영원한 봄길 ―에이번 강변의 셰익스피어 시혼 화해와 긍정의 목소리 ‘그래’ ―바닥이 발에 닿아야 발을 딛고 일어서는 것 마음에 담은 그림은 내 안에서 영원한 것 ―오랜 기다림, 세잔의 사과 정물화 아름다움만 사랑하지 말고, 아름다움이 지고 난 뒤의 정적까지 사랑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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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아침이었다. 동네 뒷산 눈 덮인 언덕에 올라 텅 빈 학교 운동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홀연히 화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이 생각났다. 지금 저 눈 덮인 텅 빈 운동장에 그가 서 있다면 어떤 그림을 눈 위에 그릴까. 미국 현대 회화의 대표적 작가인 그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흘리고 뿌리며 그때마다 생기는 우연적 현상을 그림으로 완성해가는 소위 행위 미술 작가다. 그가 그림에 몰두할 때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오직 무아의 경지에서 그림 그리기에 몰입하여 자기 원형의 아름다움을 찾아간 화가라고 할 수 있다. 폴록을 생각하니 홀연히 나도 눈 덮인 운동장에 내려가 장대 같은 큰 붓을 들고 내 안의 율동적 느낌에 따라 손과 몸이 움직이는 대로 맘껏 휘저으며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다. 농익은 색감의 물감을 마음껏 칠하고 뿌려 보고 싶다는 충동이 솟구치지 않는가. 세상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몸과 마음 가는 대로 온전히 자유롭게 그림을 그려내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니 갑자기 내 마음이 환해졌다. 온전히 ‘나다움’을 운동장에 토해내는 멋진 순간이 아니겠는가. 나를 찾은 환한 아침이었다. -19쪽
돌이켜보면, 분망함으로 살아온 삶, 나를 보지 못하고 살아온 부족한 삶이 아니었는지 스스로 묻고 싶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또 내 안에 ‘너무 많은 내’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온 삶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제야 ‘내 안의 나’를 보면서 어느 날 자신의 허물과 거짓 자아에 자괴하며 이를 외면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나의 나약함과 이중성, 단순하다가도 한없이 복잡한 나, 너그럽고 관대하다가도 마음씀이 각박한 나, 진솔하다가도 가식과 과장을 버리지 못한 나, 겸손을 말하면서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나, 이런 양면성을 가진 나를 보게 됩니다. -22쪽 자신을 정직하게 본다는 것은 치유의 시작이었고, 나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침묵 중에 내 안의 상처와 아픔, 나약함을 보고 이것들에 정직히 다가가 ‘아픈 나’, ‘외로운 나’를 보듬어 주면 내가 왠지 편해짐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주위 사람들도 나에게 편안함으로 다가옴을 느낍니다. 모두가 상처받고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기에 이들에게 작은 연민의 정으로 다가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 상처와 아픔에 시달리는 사람은 있어도 나쁜 사람은 없다고 믿고 싶어집니다. 자신의 아픔과 상처가 치유되면 누구나 선한 본성이 되살아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23쪽 세상은 그 아름다움을 마음에 여백과 단순함을 지닌 사람에게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단순함이 아름다움이라고, 보이지 않는 것이 더 큰 아름다움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아픔이 없는 아름다움은 없다고 말합니다. “어둠은 결코 빛보다 어둡지 않다.”는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말을 생각합니다. -26쪽 삶에서 행복이란 무엇일까? 세상 사람이 말하는 행복을 찾기보다 행복에 대해 스스로 물으며 살아가는 것이 어떨까 싶다. 행복은 각자가 나다운 삶 에서 끊임없이 확장될 수 있는 무한의 세계다. 행복의 참 경지를 누가 감히 언어로 온전히 표현할 수 있겠는가. 행복을 “이것이야.”라고 말하다 보면 스스로 그 테두리 안에 얽매이게 된다. 프랑스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Jean Marie Gustave Le Clezio는 “지혜로운 사람은 삶에 대해 끊임없이 쉬지 않고 질문을 던지는 자다.”라고 말했다. 물음은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확장해 준다. -28쪽 제목이 없는 그림이 좋다. 제목이 없는 그림 앞에 서 있으면 자유롭다. 제목이 없는 그림은 작가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나 느낌을 강요하지 않고 자유롭게 그림을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림을 직관적으로 보는 편이다. 그림에서 어떤 느낌이나 의미를 찾으려 하기보다는 그저 그림 앞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이렇게 그림 앞에 서 있다 보면 순간 느닷없이 그림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 조금은 황홀한 느낌이어도 좋고 지나간 아픔의 기억을 살려 주는 느낌도 좋고 작가와 잠시 공명하는 느낌으로도 좋다. 제목 없는 그림이 홀연히 가져다주는 느낌, 이러한 미적 경험은 무의식 안에 살아남아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36쪽 누드화를 공부하면서 사람의 아름다움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람들의 눈은 세상의 연출된 아름다움에 길들여 있다. 흔히 균형미나 표준 관념에 얽매여 사람의 아름다움을 보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의 참 아름다움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닐까.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것, 그것이 참 나의 아름다움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 원형의 아름다움이 있다. 이보다 더 높은 아름다움이 어디 있겠는가. 누드가 아름다운 것은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원형의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삶이 가장 훌륭한 순간은 당신이 순수할 때, 당신 자신이 참 모습으로 있을 때다.”라고 말한 멕시코 출신의 미국 영성가 돈 미켈 루이스의 말을 마음에 새기고 싶다. -53쪽 오늘날 한국인의 부부관계는 우리 사회의 외형적이고 경쟁적인 의식구조로 부부가 내면적으로 성숙되어 진정한 자기실현의 삶을 살아가기보다는 흔히 ‘아내는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남편은 사회적 성취를 위해 ‘성취중심의 생활’을 하는 삶에 열중해왔다고 하겠다. 기러기 아빠의 아픔과 고뇌는 부부의 삶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 아닌가 싶다.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 부부관계는 상호간의 역할 만이 강조됐을 뿐 부부간의 진정한 대화나 삶의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기회도 갖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중, 노년부부는 진정한 자기가치를 발현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각자의 삶에 대해서 회의를 갖는가 하면 미래의 자기생활에 대해서도 자신감이 부족하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경우가 적지 않다. 행복한 부부관계는 마음의 대화에서 출발한다. 부부간의 진솔한 대화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샘물과 같은 역할을 한다. 미술치료는 미술을 매체로 부부간에 자연스런 대화와 이해를 깊게 해준다. -61쪽 사람은 스스로 기도와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누구나 소망을 갖고 삶을 살아간다. 소망은 그 자체가 기도다. 사람이 희망과 소망이 없다면 삶을 지탱할 수가 없다. 프랑스 현대시의 원로인 르네 샤르와는 “시는 인간의 끼니다. 그리 고 시는 인간에게 있어 새와 산과의 관계와 같다.”라고 말했다. 구상 시인은 이에 대해 “시는 인간에게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양식이요, 보금자리”라고 말했다. 기도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기도는 인간의 삶을 지탱해 주는 양식이며 보금자리라고 말하고 싶다. 기도가 있는 곳에 삶이 보다 풋풋한 생명력으로 살아 있기 때문이다. -67쪽 신명과 원형의 땅 진도를 찾았다. 보리와 파꽃이 물결치는 밭길 을 걷다가 잊혀졌던 상여 행렬과 마주친 적이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나 한참을 지켜보았다. 상여 행렬에는 여인들의 애 절한 만가가 있어 토속적이면서도 원형의 울림이 있다. 선생님이 돌아가셨는지 학생들과 제자들로 보이는 행렬이 꽤나 길게 이어졌는데 진도 아낙네의 만가와 함께 시야에 멀리 사라지던 상여 행렬 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진도 만가는 망자가 한을 풀며 멀리 떠남을 노래한 것이라고 한다. 젊은 시절과는 달리 상여 행렬이 친 근하게 느껴졌다. 죽음이 삶의 한 형태임을 깨닫는 나이가 됐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93쪽 나이 들수록 오래됨은 나에게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친구가 그렇고 집이 그렇고 마을이 그렇다. 여행 중 세월에 빛바랜 마을을 만나면 고향에 온 듯 마음이 편안하다. 10여 일 간의 긴 스코틀랜드 여행 끝에 들른 고도 케임브리지의 느낌도 그러했다. 대학로에서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들어서는 5월의 공원 숲길은 바람결이 싱그러웠다. 오솔길을 따라 캠퍼스 방향으로 걷다 보니 케임 강의 다리 아래 한가로이 카누 젓는 사람들이 보였다. 북유럽의 베니스라는 벨기에의 브뤼헤의 전경을 연상케 하는 평화로운 전경이다. 8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대학 캠퍼스. 중세 수도원 느낌의 골목길을 걷다 보니 나도 모르게 시간을 거슬러 잠시 그 시대에 돌아간 느낌이었다.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들이 매일 다녔다는 킹스 칼리지의 채플 건물에 들렀을 때 더욱 그런 느낌이었다. -108쪽 사람과 그림과의 만남은 신비하여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을 구입하여 소장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림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에 태어난 자기를 진정 좋아하는 영혼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케인스가 세잔의 그림을 소장할 수 있었던 것은 케인스가 좋아했던 그림이 그를 찾아간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케임브리지에서 세잔의 그림을 만날 수 있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 나를 찾아와 준 것이 아닌가 싶다. 살면서 그리움과 꿈을 간직하고 간절히 기다리면 언젠가는 반드시 그것이 나를 찾아온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움과 기다림의 삶은 그자체가 아름다움이고 축복이다. -115쪽 안복은 원래 세상 아름다움을 눈으로 보고 즐기는 일이지만 오감으로도 느끼고 누릴 수 있는 복이 아닌가 싶다. 남도 땅끝, 진도에 가면 고려 삼별초군의 진지였던 남도석성 앞에 아담한 쌍홍교가 놓여 있다. 편마암으로 지어진 작은 무지개 모양의 다리다. 세월의 향기가 배어 있는 편마암의 색채와 음영이 회화적이고 음악 적이다. 봄날 다리 옆에 앉아 재잘거리는 개울물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홀연히 고향 전경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자연의 소리가 고향 풍경으로 다가오니 안복을 누리는 즐거움이 아닌가 싶다. -164쪽 정원의 수목과 꽃들은 다양해도 서로가 서로에게 배경이 되어 주어 분위기가 순하고 평안하다. 화려한 아름다움보다는 절제된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공간이다. 그대로 머물러 안기고 싶은 모네의 정원은 쉼과 정화의 공간이다. 정원 끝자락 지하도를 지나 작 은 냇물이 흐르는 대나무 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니 수련 연못이 이어진다. 연못 주위를 거니는데 수면에 흔들거리는 주변의 풍광이 그림으로 다가온다. 연꽃 봉오리가 오른 수면에 나무다리 위 의 등꽃이 향기로 아른거린다. 수면에 비치는 나무와 꽃무늬가 그림이 되어 흔들리는데 수면에 반영되는 하늘 구름은 흰 여백을 만들고 있다. 수면의 바람결과 그림자는 수시로 변하는데 그 안에 빛 과 색의 떨림이 있다. -185쪽 5월의 방스는 화사하고 한적했다. 지중해 연안의 햇살은 더없이 해맑고 남프랑스의 정겨운 시골길 풍경은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왔다. 세월에 빛바랜 작은 집들 사이로 미풍에 실려 온 은은한 꽃향기가 지친 마음을 생기로 적셔 준다. 투명한 햇살에 어디를 보아도 꽃들이 저마다의 색깔로 영혼의 노래를 들려주는 듯하다. 경사진 시골길을 한참 달리니 방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길 옆에 로사리오 성당이 숨어 있었다. 조금은 의외였다. 유럽의 당당한 성당들을 기대했던 나에게 그곳은 그야말로 숨어 있는 작은 성당이었다. 간이 성당 같은 느낌조차 주는 나지막한 백색 건물에는 입구에 청색의 로사리오 성당 표지와 마티스의 성모자상이 그려져 있을 뿐이다. 대가의 그림이라기보다는 어린아이의 그림 같다. -193쪽 새소리에 잠을 깬 이른 아침이다. 스코틀랜드의 고요한 아침에 창문을 여니 엊저녁 신비한 노을을 받쳐 들고 있던 구릉 너머에 멀리 호수가 보인다. 평화롭고 고요한 아침 전경이다. 민박집 아침 식사는 푸짐한 음식에 주인의 정성을 담아 따뜻했다. 여행길 시골집에서 아내와 아들 내외, 그리고 손주들과 함께 하는 아침 식사 시간이 즐겁고 행복했다. 식당에서 우연히 한 영국인 가족을 만났다. 런던에 살면서 매년 시골길을 찾아 자전거 여행을 즐긴다는 이들 가족은 풋풋하고 건강해 보였다. 자연을 오감으로 즐긴다는 부부와 중학생으로 보이는 딸의 표정이 소박하면서도 활기차 보였다. 여행 중에 만나는 사람의 표정은 삶의 표정이다. 대지에서 자연을 맘껏 즐기고 감사하는 그들의 삶이 행복해 보였다. 스코틀랜드의 아름다운 아침이었다. -231쪽 셰익스피어의 삶이 살아 숨쉬고 있는 도시 스트랫포드 에이번을 떠나며 강변 선상의 ‘바지 갤러리The Barge Gallery’를 찾았다. 진홍색깔의 긴 배를 갤러리 전시실로 개조한 것인데 유화 그림과 사진첩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갤러리에서 마주한 동화집 그림과 과일 정물화의 화사한 색조가 여행자의 마음에 생기를 돋아 준다. 선상 갤러리 코너에 뜻밖에 세기의 여우 오드리 헵번의 사진첩이 전시되어 있다. 셰익스피어 고향에서 만난 청순한 모습의 오드리 헵번. 그녀의 얼굴 표정은 맑고 선하기에 그지없이 아름답다. 말년에 아프리카에서 봉사의 삶을 살고 떠난 그녀의 삶은 영원한 사랑을 살다 간 삶이다. 그녀는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간 사람이다. 셰익스피어 고향에서 마주한 오드리 헵번의 얼굴 표정이 고향의 봄길처럼 푸근하다. 에이번 강가에서 만난 그녀의 선한 눈빛이 환한 목소리가 되어 봄날 강변을 곱게 수놓고 있다. -254쪽 엑상프로방스의 한적한 교외 길가에 위치하고 있는 세잔의 아틀리에는 입구에 세잔 이름이 새겨진 돌판이 돌담에 설치되어 있다. 입구문을 들어서니 단조한 2층 건물이 숲 속에 세워져 있다. 계단을 올라 2층 화실 입구 창문을 내다보니 탁 트인 시야로 멀리 남프랑스의 아름다운 산세가 눈에 들어온다. 높은 천장의 화실은 오른편에 작은 창살을 이어 만든 큰 창문이 보이고 맞은편 창문으로는 조용한 숲길 정원이 보인다. 아틀리에 실내는 세잔이 자주 그렸던 정물화의 사과 모형과 그가 생전 사용했던 화구들이 놓여 있다. 이 화실에서 세잔은 사과 정물화를 비롯한 여러 작품들을 제작하였는데 그 가운데 1906년의 ‘대수욕도’는 절제된 색채와 리듬감 있는 터치로 벌거벗은 여인들과 하늘과 물, 그리고 나무들을 균형 잡힌 구도로 배치하여 새로운 공간 질서를 창조한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실로 백여 년 전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공간에서 수욕도 제작에 몰입했을 세잔의 모습을 상상하니 홀연히 화가와 함께하는 느낌이다. 화가는 세상을 떠나 있어도 나는 지금 여기서 그 삶의 언저리를 맴돌면서 세잔의 향기를 느낄 수 있으니 살아 있는 자의 축복이다. -265쪽 ---본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