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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편, 사랑의 시
오세영
황금알 2023.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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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알 시인선

책소개

목차

서시 - 누군가에게·10

1부

눈 내리는 아침엔·16
그리움에 지치거든·17
편지·18
이별의 말·20
통영에서·21
보석·22
목련꽃 1·24
너, 없음으로·25
너를 보았다.·26
푸르른 봄날엔·27
그리운 이 그리워·28
라일락 그늘에 앉아·30
너의 목소리·31
태평양엔 비 내리고·32
이별 후·34
바람의 노래·36
언제인가 한 번은·37
이별의 날에·38
첫눈 내리면·40

2부

결별·44
사랑하는 사람아·45
첼로를 위하여·46
봄 하루·47
부탁·48
파경破鏡·49
바람 소리·50
연서·51
기다림·52
그 한 밤·53
보낸 후 1·54
보낸 후 2·55
꽃잎·56
원시遠視·57
결별 후·58
푸르른 하늘을 위하여·60
봄날에·61
왜 비켜 가지 않는가·62
5월·63

3부

님은 가시고·66
멀리서·68
종적·70
텅 빈 나·72
그 길을 따라·74
나를 돌려주세요·76
역설·78
봄은 무엇 하러 오는가.·80
푸르른 날에·81
나는 무엇입니까·82
당신의 피리·84
문밖에서·85
그렇게 끝났습니다·86
참다운 거짓·88
천년의 잠·90
겨울밤·92
6월·94
홀로가 아니랍니다·96
바위 하나 안고·98

4부

먼 사람·100
돌비석·101
발자국·102
먼 후일·103
어이할거나 2·104
봄밤은 귀가 엷어·105
사막·106
동백꽃 피는·108
아카시아·109
아득히·110
신기루·112
사랑한다는 것은·113
정인情人·114
소식·115
또 하루·116
이별·117
춘설·118
등燈·119
너를 찾는다·120

저자 소개 1

吳世榮

인간 존재의 실존적 고뇌를 서정적·철학적으로 노래하는 중견시인이자 교육자다. 1942년 전라남도 영광(靈光)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1968년 박목월에 의해 『현대문학』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시집 『사랑의 저쪽』 『바람의 그림자』 『마른하늘에서 치는 박수 소리』 등 29권, 학술서 및 산문집 『시론』 『한국 현대시 분석적 읽기』 등이 있다. 만해문학상, 목월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소월시문학상, 고산문학상 등과 국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시집 『밤하늘의 바둑판』 영역본은 미국의
인간 존재의 실존적 고뇌를 서정적·철학적으로 노래하는 중견시인이자 교육자다. 1942년 전라남도 영광(靈光)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1968년 박목월에 의해 『현대문학』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시집 『사랑의 저쪽』 『바람의 그림자』 『마른하늘에서 치는 박수 소리』 등 29권, 학술서 및 산문집 『시론』 『한국 현대시 분석적 읽기』 등이 있다. 만해문학상, 목월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소월시문학상, 고산문학상 등과 국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시집 『밤하늘의 바둑판』 영역본은 미국의 문학비평지 Chicago Review of Books에 의해 2016년도 전 미국 최고시집(Best Poetry Books) 12권에 선정되었다. 영어,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 체코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 등으로 번역된 시집들이 있다.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예술원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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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9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190g | 153*225*20mm
ISBN13
9791168150607

책 속으로

봄이 어떻게 오던가.
실없이 부는 훈풍에 실려 오던가. 아롱아롱 아지랑이 숨결에 묻혀 오던가. 밤새 속살거리는 실비를 타고 오던가. 새벽부터 짖어대는 딱새들의 울음소리로 오던가. 얼음 풀린 갯가의 차오르는 밀물로 오던가. 먼 남쪽 푸른 바닷가에서 온 완행열차의 기적소리로 오던가. 막 도착한 그 열차는 실어온 동백꽃잎들을 축제처럼 역두에 뿌리고 떠나는데……

봄이 어떻게 오던가.
먼 산 방울방울 눈 녹는 소리로 오던가. 바싹 깊은 계곡 얼음장 깨지는 소리로 오던가. 묵은 옷들을 빨래하는 아낙네의 방망이질 소리로 오던가. 살픗 내리는 가랑비에 와르르 무너지는 산사태로 오던가. 가슴에 하이얀 손수건을 단정히 찬 신입 초등학생들의 그 경쾌한 등굣길로 오던가. 거리의 좌판대에 진열된 봄나물의 향기로 오던가.

봄이 어떻게 오던가.
밤새 앓던 몸살이 그친 이 아침, 온몸에 피어오르던 열꽃들로 오던가. 첫 고백을 들은 처녀의 속살거리는 귓속말로 오던가. 그네의 맑은 눈동자에 어리는 별빛처럼, 노을처럼 오던가. 첫 아이를 가진 어머니의 부풀어 오르는 젖살처럼 오던가. 먼바다를 건너 온 사내들의 푸른 힘줄에서 불끈 솟구치는 혈류로 오던가.

봄이 온다는 것은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 준다는 것이다. 이름이 없으므로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이름이 없으므로 있는 것이 아닌 것에, 이름을 불러 주어 이제 그를 그 아무것이, 그 무엇이 되도록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꽃이라 불러 주고, 나비라고 불러 준다는 것이다. 처녀라 불러 주고 사내라고 불러 준다는 것이다. 처녀라 불러 주어 처녀가 되는 처녀와 사내라 불러 주어 사내가 되는 그 사내. 봄이 온다는 것은 그 무엇이 된다는 것이다. 새록새록 눈 녹는 소리에 여기저기 언 땅을 밀치고 솟아오르는 새순들.

봄이 온다는 것은
누군가가 흔들어 깨워준다는 것이다. 잠들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잠들어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을 누군가가 깨워서 이제 존재하는 것으로, 의미를 갖는 것으로 살아 있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아침에 늦잠 든 아이를 어머니가 흔들어 깨우듯 잠든 돌멩이는 흐르는 물이 깨우고, 잠든 나무는 따뜻한 봄볕이 깨우고, 잠든 절벽은 산사태가 나서 깨운다. 흔들어 깨워서 마음이 되는 나의 마음, 봄이 온다는 것은 누군가가 흔들어 깨워 의미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바람에 하나씩 눈 뜨는 나무의 잎새들.

봄이 온다는 것은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무심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을, 무심해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을 그리움은 누군가를 고귀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흐르는 물속의 돌멩이는 먼 하늘의 흰 구름을 그리워하고, 갓 피어난 여린 새싹들은 태양을 그리워하고, 무너진 절벽은 감싸 안을 수풀을 그리워한다. 봄이 온다는 것은 누군가를 ‘당신’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아른아른 취해 아지랑이 먼 하늘을 황홀하게 우러르는 꽃들의 눈빛.

봄이 온다는 것은
아득히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리움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를, 그리움만으로는 그 무엇도 아닌 의미를 이제 내 것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아니 당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내가 곧 당신이 된다는 것이다. 사랑함으로써 비로소 내가 되는 나. 봄이 온다는 것은 아득히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가지에 물오르듯 아아, 초록으로 번지는 이 슬픔.
---「서시 - 누군가에게」중에서

「1부」

눈 내리는 아침은 아름다워라.
창밖은
눈이 부신 순은純銀의 정원,
하늘나라 만개한 벚꽃잎들이
일시에 흩날려 쌓임이던가.
길 잃은 별들이 실수로 내려
온 천지 환하게 밝힘이던가.
아득한 전설 속의 공주님처럼
그대
홀연 은하에서 찾아 왔거니,
앳되고도 순결한 그 하얀
웨딩드레스는
신이 당신의 화실에서 펼쳐 드신, 빈
화폭 같구나.
눈 내리는 아침은 신비롭나니
나 이제 이 지상에서
가장 경건하고도 아름다운 그림 한 폭을
그대의 가슴에 담고 싶어라.
하이얗게 눈 덮인 이
아침엔………
---「눈 내리는 아침엔」중에서

그리움에 지치거든
나의 사람아,
등꽃 푸른 그늘 아래 앉아
한 잔의 차茶를 들자.
들끓는 격정은 자고
지금은
평형을 지키는 불의 물,
청자 다기茶器에 고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구나.
누가 사랑을 열병이라 했던가.
들뜬 꽃잎에 내리는 이슬처럼
한 모금,
마른 입술을 적시는 물.
기다림에 지치거든
나의 사람아,
등꽃 푸른 그늘 아래 앉아
한 잔의 차를 들자.
---「그리움에 지치거든」중에서

나무가
꽃눈을 틔운다는 것은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찬란한 봄날 그 뒤안길에서
홀로 서 있던 수국,
그러나 시방 수국은 시나브로
지고 있다.

찢어진 편지지처럼
바람에 날리는 꽃잎,
꽃이 진다는 것은
기다림에 지친 나무가 마지막
연서를 띄운다는 것이다.

이 꽃잎, 우표 대신 봉투에 부쳐 보내면
배달될 수 있을까.
그리운 이여,
봄이 저무는 꽃그늘 아래서
오늘은 이제 나도 당신에게
마지막 편지를 쓴다.
---「편지」중에서

설령 그것이
마지막의 말이 된다 하더라도
기다려 달라는 말은 헤어지자는 말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별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하는 것이다.
“안녕”,
손을 내미는 그의 눈에
어리는 꽃잎,
한때 격정으로 휘몰아치던 나의 사랑은
이제 꽃잎으로 지고 있다.
이별은 봄에도 오는 것,
우리의 슬픈 가을은 아직도 멀다.
기다려 달라고 말해 다오.
설령 그것이
마지막의 말이 된다 하더라도,
---「이별의 말」중에서

바람에 꽃들이 피어나고
바람에 꽃들이 진다.

바람에 구름이 모이고
바람에 구름이 흩어진다.

통영은 그 바람의 항구,
꽃과 새와 구름의 기항지.

꽃과 새와 구름의 출항지,
통영에서는
선아,
머리에 석남 꽃 꽂고
수평선 너머 먼
하늘을 날아보자.

운명 같은 것, 사랑 같은 것 꽃잎에 싣고,
이별 같은 것, 만남 같은 것 구름에 싣고.
― 이영 미술관 소장, 전혁림의 「통영 갈매기」를 보고
---「통영에서」중에서

그것을 불러 보석이라 이름한다.
햇빛에
눈부신 그 반짝거림,
강변 모래 언덕에
사금파리 하나 반쯤 묻혀 있다.
보석이란 가장 소중한 마음을 이르는 것이려니
우리 어린 날
네게 바친 이 순수한 영혼의 징표보다
더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 이 세상 또
어디에 있으랴.
깨진 것은 모두 보석이 된다.
한때 값진 도자기였을지라도,
한때 투박한 사발이었을지라도
그것은 한낱
장에 갇힌 그릇일 뿐.
깨지는 것은
완전한 자유에 이른 까닭에
보석이 된다.
그 봄날의 풀꽃 반지도,
그 강변의 모래성도
지금은 모두 강물에 씻겨갔지만
우리들의 강 언덕엔 눈부신 보석 하나
푸른 하늘을 지키고 있다.
영원처럼……

---「보석」중에서

출판사 리뷰

인간은 두 가지의 세계에 관계를 맺고 있다. 하나는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요, 다른 하나는 모순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과학과 학문으로 해명될 수 있는 세계는 전자에 해당하고 문학과 종교로 해명될 수 있는 세계는 후자 해당한다. 오세영 시집 『77편, 그 사랑의 시』는 후자에 있다는 걸 가늠할 수 있다. 즉, 본질에 사랑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누구를 사랑할 때 사람들은 논리로 사랑하는가?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 우리는 모순과 역설과 비논리로 사랑한다. 그런데 모순의 진리는 논리적 진리를 규정하는 토대이다. 컴퓨터나 항공기를 만드는 지식보다도 어머니의 어진 손길이, 연인의 따뜻한 입맞춤이 인간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논리적 진리는 다만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줄 수는 있지만, 정작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사랑이다.

우리 국어의 고유어에는 ‘아름다움’이라는 말의 반대말이 없다. ‘추醜’나 ‘미움’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전자는 한자어漢字語이고 후자는 ‘증오憎惡’라는 뜻을 지닌 사랑의 반대말이지만, ‘아름다움’의 반대말은 아니다. 왜 그런 것일까. 하르트만N. Hartmann이 주장하는 미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추’도 ‘미’의 일부라 한다. 그는 미의 종류를 나누는 도식에 버젓이 ‘추’를 포함하고 있다. 삼라만상 개체의 영혼설을 부여하여, 영적인 세계를 전개한 애니미즘(animism)의 눈길로 본다면, 미추를 뭉뚱그린 집약체는 아름다움이고, 그 모든 아름다움은 사랑을 낳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랑’이란 자신에게 결여된 아름다움을 충족하고자 하는 갈망이라 하였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가 아름답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누군가를 축복할 때 ‘잘 살라’고 말한다. 돈을 많이 벌라는 뜻인가. 높은 권세를 누리라는 뜻인가. 아니다. 아름답게 살라는 뜻이다. 그리고 사랑하라는 뜻일지도 모을 일이다.

한국시단을 대표하는 오세영 시인은 시집 『77편, 그 사랑의 시』를 통하여, 다시 사랑이 시작되는 시간과 공간을 노래하고 있다. 그 사랑은 늦고 빠름이 없이, 무작위로 오는 절절하면서,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허상의 타자와 존재자의 타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영원한 노래일 것이다.

시인의 말

우리나라 고유어에는 ‘아름다움’의 반대말이 없다. ‘추醜’나 ‘미움’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전자는 한자어漢字語이고 후자는 ‘증오憎惡’라는 뜻을 지닌, 사랑의 반대말이지 ‘아름다움’의 반대말은 아니다. 왜 그런 것일까. 하르트만의 미학에 의할 것 같으면 ‘추’도 ‘미’의 일부라 한다. 그는 미의 종류를 나누는 도식에 버젓이 ‘추’를 포함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선조들은 이 세상에 ‘추’는 아예 없다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모든 아름다움은 사랑을 낳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랑’이란 자신에게 결여된 아름다움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어떤 갈망이라 하였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가 아름답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축복할 때 ‘잘 살라’고 말한다. 돈을 많이 벌라는 뜻인가. 높은 권세를 누리라는 뜻인가. 아니다. 아름답게 살라는 뜻이다.

2023년 7월 7일
오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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