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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꼭두각시는 결코 인간이 되지 않았다 8
천상(혹은 지옥)의 프롤로그 15 모험들 60 에필로그 200 부록 - 피노키오의 모험 216 |
Giorgio Agamb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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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눈앞에는 1911년 피렌체 벰포라도 출판사에서 출간된 『피노키오의 모험』이 있다. 카를로 키오스트리의 삽화가 포함된 이 책의 여섯 번째 장은 다음과 같은 운명적인 단어로 시작한다.
--- p.15 ‘일상을 뚫을 수 없는 것으로, 뚫을 수 없는 것을 일상’으로 인식할 줄 안다면, 피노키오 동화는 바로 그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고 볼 수 있다. 상징과 원형이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매번 새로운 인물에 새 옷이 입혀질 뿐이라면, 이는 교리 문제가 아니다. 이는 상징과 원형에 스며 있는 상상력 때문이다. --- p.25 조금 더 주의 깊게 읽으면 첫 번째 장이 문학적으로뿐 아니라 철학적, 신학적으로, 그러니까 총체적으로 풍부한 함의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갑자기 나타났다’라는 부분이 그렇다. --- p.44 꼭두각시 내면에서 제페토의 지시에 완강하게 반항하는 심리는, 무의식적으로 콜로디의 마음에서 즐겁게 작동하는, 온갖 상상이 난무하는 영지주의 신화에서 말하는 빛의 꾸러미 혹은 빛의 조각이 나무 재료에 갇힌 채 남아 있다는 것을 뜻할 수 있다. --- p.59 꼭두각시와 인간, 둘 사이의 이러한 오해를 낳는 관계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이 문제는 속임수는 아니겠지만, 이야기에 보이지 않는 골격 중 하나일 수 있기 때문이다. --- p.71 피노키오가 인형극 대극장에서 맞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은 아를레키노와 풀치넬라를 우연히 만난 것이다. 이들은 피노키오를 ‘형제’라고 인식하는데 이는 꼭두각시로 인정한다는 것으로 이를테면 ‘절반의 혁명’이라 볼 수 있다. --- p.84 귀환과 전진. 꼭두각시 인형의 행동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귀환’은 아버지, 요정, 말하는 귀뚜라미 그리고 선생님을 의미한다. 책 속에서 피노키오는 독백하면서 속내를 드러낸다. --- p.102 단숨에 약을 삼킨 피노키오는 요정이 며칠 안에 나을 것이라고 말한 것과는 달리 즉시 회복되는데, 이는 커크가 증명했듯 이따금 갑자기 죽을 수 있지만 ‘질병에 걸리지 않는’ 엘프와 피노키오가 같은 존재라는 게 밝혀진 것이다. --- p.123 이제 우리는 루치뇰로가 의미하는, 놀이와 의식 사이의, 그리고 장난감 나라와 경험의 연대기적 순서 사이의 역학관계를 가설로 세울 수 있다. --- p.166 신비를 운반하는 당나귀는 신비의 혜택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이 신비를 운반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피노키오는 신비를 짊어진 당나귀이기도 하다. --- p.181 피노키오의 두 본성은 분리돼 있지 않고, 콜로디가 새로이 엄선한 혼합체며, 결합해 있지도 않다. 오히려 이들 사이를 나누는, 가능한 표현이 없다는 의미에서 ‘접촉한다’고 볼 수 있다. --- p.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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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를 통해 본 ‘인간다움’의 의미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기제는 무엇인가 나무 인형은 무엇을 충족해야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피노키오를 그저 동화 속 캐릭터로 알고 있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나무 인형. 그러나 동화 같은 서사를 한 꺼풀 벗겨보면 놀라운 알레고리가 곳곳에 숨겨져 있다. ‘생명철학’으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 사상가 조르조 아감벤은 작가 카를로 콜로디의 피노키오 이야기를 통해 근대(성)를 사유했다. 많은 이가 그저 어린이 동화로만 여기는 꼭두각시 이야기가 실은 인간 존재에 관한 놀라운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감벤은 인간 내면에 야생성, 동물성, 인간성이 있는데 섞여 있지 않고 접촉해 있을 뿐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 그는 인간이 야생으로부터 동물로, 그리고 현재 모습의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피노키오가 그렇듯 변한 적이 없다고 역설한다. 그런 의미에서 꼭두각시가 인간이 된 적은 없는, 둘이 분리된 채 끝나는 피노키오 서사는, 인간을 정의하는 근대성이라는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거나 혹은 오작동 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언제나 그렇듯 ‘생명철학자’ 아감벤만이 전할 수 있는 놀랍고 충격적인 메시지다. 근대성이 성립하는 시기에 쓰여진 『피노키오의 모험』은 동시대인, 다시 말해 ‘우리’라는 존재의 서사를 알리는 시작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콜로디의 소설은 동화면서 동화가 아니고, 우화면서 우화가 아니며, 기독교와 이교도를 은유하면서도 종교적 해석을 배제하는 문학작품이다. 분명 인간의 조건과 그 경계를 묻는 『피노키오의 모험』은 인류 역사가 이어지는 한 끊임없이 비평과 해석을 낳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