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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 노트
김선오
문학동네 202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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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 | 연결하기

비―소리
피아노―비유
봄―터널
바다―리듬
집―픽션
돌―글
기억―(기억)
잠―이동
개―얼음
도서관―꿈
유령―얼굴
시―향
눈―손

저자 소개1

KIM SONO

199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좋아하는 것이 많지 않지만, 무한히 변주되고 갱신되는 피아노와 시만큼은 자신 있게 좋아한다 말하는 시인. 시집 『나이트 사커』와 『세트장』, 에세이 『미지를 위한 루바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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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04쪽 | 124*188*20mm
ISBN13
9788954696739

책 속으로

이 해변은 너무 넓어서 바람이 불어오는 왼쪽을 과거, 바람이 떠나가는 오른쪽을 미래라고 불러볼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공간에 비유해본다. 비유가 한 대상을 다른 관념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하는 일이 아니라 두 대상 간의 유사성을 발굴함으로써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내는 행위로 기능할 수 있다면. 두 개의 단어를 비슷하게 생긴 두 개의 사물처럼 다루고 바라볼 수 있다면. 그러한 단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이 너의 일이라면. 시간과 공간의 닮음 속에 네가 서 있다. 해변의 왼편과 오른편으로 비유되고 있는 과거와 미래 역시 이곳에서는 서로 꽤 닮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다―리듬」중에서

돌을 보기 위해 공간을 지을까. 그곳은 나의 머릿속 공간이다. 그러나 내 몸이 지나온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과거의 공간이라 부를 수 있고 동시에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글을 통해 도달할 예정인, 글자로 주어지는 미래의 공간이다. 과거와 미래가 함께 있다는 사실은 하나의 공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시간이 있다면 어렵지 않게 이해되는 명제다. 그러나 상상이 공간을 지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공간이 상상을 급습한다. 공간은 상상이 찢어진 자리에 흉터처럼 생겨난다.
---「돌―글」중에서

더 좁은 쪽을 안쪽이라고 부르는 언어 습관. 외부와 내부라는 개념은 ‘오다’와 ‘가다’라는 동사처럼 주체의 위치를 희미하게 드러낼 뿐이지만 주체가 누구든 자신의 외부보다 내부에 더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내부는 언제나 외부보다 좁은 장소다. 애정이란 언제나 더 작은 것을 향하기 때문이다. 누구도 이 세계를 통째로 사랑하거나 인류 전체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도 언제나 자신의 개를 더 좋아한다. 그렇다면 터널의 안쪽은 터널의 바깥쪽보다 더 좁고 작기에 안쪽이라 불리는 것일까. 안쪽이라는 단어가 가진 온기를 생각한다. 내 마음대로 터널의 안쪽을 세계의 바깥쪽이라 불러도 될까. 세계를 주체의 자리에 놓아보아도 될까. 터널의 안이 세계의 밖이라면 이곳은 아주 작은 밖, 드물게 안보다 작은 밖이다. 안과 밖이 뒤바뀔 때 출구는 입구가 입구는 출구가 될 것이다.
---「봄―터널」중에서

무궁화호 열차 구석에서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잠에 빠져 있는 서른한 살의 내가 어떤 노인이 꾸는 꿈이라면? 세상의 밖 어딘가에서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 노인의 얼굴에 팬 주름들이 나의 탄생과 어떤 방식으로든 결부되어 있다면? 그러한 가정은 놀랍게도 자유를 준다. 나의 우주가 항구적인 실재가 아니라는 기분좋은 감각. 환상과 가상이 휘저어놓은 덕분에 함부로 고착되지 않는 시공간. 진리가 사물 위에 군림하지 않음으로써 발생되는 유동성과 가벼움. 하염없이 내리는 창밖의 눈발들이 모두 꿈의 질료라면, 폭설 덕분에 이 여행은 꽤 좋은 꿈의 전개가 된다.

---「잠―이동」중에서

출판사 리뷰

“김선오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그걸 대번에 알아보았다.
척력이 깃든 세계의 아름다움, 그걸 이미 이해해버린 시인.”
_김소연(시인)

두 단어 사이를 오가거나
그것을 발판삼아 더 멀리 가는 글쓰기


시인 김선오의 두번째 산문집 『시차 노트』를 펴낸다. “사랑이 끝났다고 집요하게 말함으로써 오히려 사랑의 불가능을 파괴하려는 것 같다”(시인 황인찬)는 추천사와 함께 첫 시집 『나이트 사커』(아침달, 2020)를 펴낸 뒤, 두번째 시집 『세트장』(문학과지성사, 2022), 첫 산문집 『미지를 위한 루바토』(아침달, 2022) 등을 통해 언어로써 가능해지는 새로운 세계를 담담하고 성실하게 탐색해온 그가, 이번에는 두 개의 단어 사이를 오가거나 그것을 발판삼아 더 멀리 가는 글쓰기를 시도한다. 봄과 터널, 피아노와 비유, 집과 픽션, 도서관과 꿈 등 얼핏 성분도 다르고 연결점도 없어 보이는 두 단어 사이의 영향 관계를 가늠하거나 혹은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며 쓰인 산문이다.

보이고 들리는 것을, 단어에서 느껴지는 것을 믿으려고 했다. 그리고 연결하려 했다. 연결 지점은 공간이라기보다 속도를 가늠할 수 없는 이동 그 자체에 가까웠다. 어지럽고 자유롭다, 그런 느낌이었다.
_서문에서

첫번째 꼭지는 ‘비―소리’로, “비가 온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화자가 있는 곳에 실제로 비가 내리지 않지만 이처럼 작가는 “씀으로써 발생시키”는 사람이다. “단지 비가 온다는 문장 때문에 (…) 빗소리가 들”리고, “비가 온다는 말을 흔들 때 내가 조금 흔들린다는 사실”과 “내가 흔들릴 때마다 말이 나를 붙잡는다는 사실”, 그러는 와중에도 “비는 그저 오고 있다는 사실”을 글이 진행됨에 따라 작가와 독자는 점차 느낄 수 있다. “어디로? 여기로.” ‘여기’라고 쓰인 두 음절의 활자에, ‘여기’라는 단어가 박힌 지면에, ‘여기’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저마다의 공간에 비가 온다.

한편 ‘비’라는 글자를 읽는 소리와 빗소리를 흉내내보는 소리로 ‘비’와 ‘소리’는 이어진다. 전자는 수많은 동음이의어들과 함께 쏟아지는 비를 넘어선 의미를 품으며, 후자는 빗소리를 딴 언어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전혀 다른 세계로 확장된다. 이처럼 “비가 온다”라는 얼핏 심상한 문장을 쓰고 그 안에 들어앉아 골몰한 시인은 “하나의 언어가 탄생하고 서서히 소멸하는 시간을 상상”하기에 이른다.

내리는 비를 위해 비, 라고 발음할 때 우리의 상상은 물기와 빗소리와 어두운 하늘 같은 비의 요소들을 불러오지만 상상의 이면에서, 음성의 역사적 차원에서 우리가 발음했던 모든 비, 아닐 비나 슬플 비나 꿀벌 비 등이 비라는 말 속에 잠재되어 있고, 그렇기에 비는 아닌 것, 슬픈 것, 꿀벌과 뒤섞이며 내리는 비를 넘어서게 될 수도 있다.
_「비―소리」 20~21쪽

나는 문장으로 비를 해체하고 싶지도 않고 비로 문장을 해체하고 싶지도 않다. 비를 대체할 만한 어떤 문장을 쓰고 싶지도 않다. 비와는 그저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 그래서 비가 나에게 오고, 비가 나로부터 가고. 앞으로도 영원히 비가 내리는 시를 쓰고. 그런 시들이 꿈이 되고. 그런 것들을 내내 반복하고 싶다.
_「비―소리」 18쪽

주체와 객체의 위계를 지울 때 새로이 누릴 수 있는 감각은 김선오 시인이 특별히 잘 감지하는 것 중 하나다. 이번 산문에서도 그는 섬세하게 ‘나/너’ ‘주체/타자’ ‘안/밖’의 위치를 뒤바꾸어 독자로 하여금 전과 다른 눈으로 세계를 인식하게 한다. “봄볕은 개나리와 우리에게 공평하게 쏟아진다. 개나리와 우리는 공평하게 서로 마주본다. 우리의 눈동자가 노랗게 차오른다. 개나리에게 눈동자가 있다면 그 속에 우리가 차오를 것”(「봄―터널」)이라거나 “터널의 안쪽을 세계의 바깥쪽이라 불러도 될까. 세계를 주체의 자리에 놓아보아도 될까. 터널의 안이 세계의 밖이라면 이곳은 아주 작은 밖, 드물게 안보다 작은 밖이다. 안과 밖이 뒤바뀔 때 출구는 입구가 입구는 출구가 될 것”(「봄―터널」)이라는 대목, “글의 입장에서 나의 삶은 글의 숱한 직업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글은 평생에 걸쳐 나를 하고 있는 것이다. (…) 만약 그렇다면, 글에게 그런 입장이 있다면, 어쩐지 조금 좋다. 내가 글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비―소리」)와 같은 대목은 단단하게 굳은 인식론에 구멍을 내고, 그 안으로 상쾌한 바람이 불어든다.

이렇듯 ‘시차 노트’라는 제목의 ‘시차’란 이 책에서 다양한 층위의 차이를 아울러 쓰인다. 물론 사전적 의미에 가까운 ‘시차’ 또한 아름답게 수놓여 있는데, 가령 이런 대목. 행위 이후에는 그 이전의 시간이 기록처럼, 기억처럼 새겨져 있다는.

접혀 있던 종이를 손이 펼칠 때 종이학, 종이꽃, 종이상자는 사라지고 투명한 직선들만이 형상의 흔적이자 기호로서 종이 위에 남는다. 종이라는 불투명을 가르는 투명, 불투명과 불투명을 구분하는 투명이다. 종이 옆에 놓여 있는 손의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종이 안에 잠재되어 있는 형상들을 본다. 손의 움직임이라는 과정 속에 놓일 때 복원과 파괴의 개념은 같은 얼굴의 다른 표정처럼 쉽게 뒤척인다.
_「눈―손」 196~197쪽

오늘은 선물받은 양말을 신자. 발목 부분에 손바느질로 돌고래 무늬를 수놓은 네이비 양말. 그러니까 선물한 이의 손이 앞뒤로 움직이는 모습이 이 양말에 새겨져 있는 셈이다. 손의 진자운동을 상상하며 양말을 신으면 두 발이 커진 것처럼 밟고 있는 땅이 좀더 안전하게 느껴진다. (…) 도에서 레를 끄집어내며 연습을 시작한다. 나의 몸에 반복이 새겨진다. 시간이 새겨지고 울림이 새겨지고 근육이 새겨진다. 바느질하는 손놀림이 양말에 새겨져 돌고래 모양이 되듯 반복은 내 몸의 무늬가 된다.
_「피아노―비유」 25쪽, 34쪽

이처럼 단어와 단어 사이는 규정하거나 가늠할 수 있는 것들로 메워져 있지 않고, 시인은 그 안에서 자유롭다. 한정된 시공간에 잠시 머무르다 가는 유한한 존재에게 언어란 단순히 도구에 그칠 수 없음을, 그것은 우리를 아주 멀리까지 데려가고, 흔들고, 우리가 우리 아닌 것이 되도록 하는 신비로운 무언가임을 시인은 즐거이 탐색한다. “단어와 단어 사이, 무엇과 무엇 사이의 ‘인력’이 아니라 ‘척력’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넘쳐흐르는 아름다움들. (…) 척력이 깃든 세계의 아름다움, 그걸 이미 이해해버린 시인”(김소연 시인, 추천사에서) 김선오의 ‘시차 노트’는 이제 독자에게 건네어졌다. 우리 두 손에 쥐인 ‘시차 노트’에 어떤 멀고도 가까운 두 단어가 가장 먼저 쓰일지 궁금해진다.

추천평

김선오는 아름다움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어떨 때에는 아름답지 않을 수 있는 것에 골똘해져서 기어이 아름다운 쪽으로 데려가고 마는 사람이다. 『시차 노트』는 김선오가 오래 애착해온 것들을 유예하는 방식으로 다룬다. 테두리를 어루만지면서. 드러낼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드러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발생된 유예. 단어와 단어 사이, 무엇과 무엇 사이의 ‘인력’이 아니라 ‘척력’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넘쳐흐르는 아름다움들. 그러나 이런 말들은 아무 소용이 없다. 김선오가 너무나도 무궁무진해서다. 김선오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그걸 대번에 알아보았다. 척력이 깃든 세계의 아름다움, 그걸 이미 이해해버린 시인. 그가 탐색할 다음 주제를 궁금해하지 않을 수가 없다. 벌써부터 아름답다. -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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