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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프롤로그 1천 년을 참은 신채호의 외침

제1편 총론

제2편 수두 시대


제1장 고대 조선 총론 | 제2장 대(大)단군왕검의 건국 | 제3장 수두의 전파와 문화의 발달

제3편 삼조선 분립 시대

제1장 삼조선 총론 | 제2장 조선 분립 이후의 신조선 | 제3장 삼조선 분립 이후의 불조선 | 제4장 삼조선 분립 이후의 말조선 | 제5장 삼조선 붕괴의 원인과 결과

제4편 열국쟁웅 시대(중국과의 격전 시대)

제1장 열국 총론 | 제2장 열국의 분립 | 제3장 한무제의 침입 | 제4장 계립령 이남의 두 신생국

제5편(一) 고구려의 전성시대

제1장 1세기 초반 고구려의 국력 발전과 그 원인 | 제2장 태조대왕·차대왕 두 대왕의 문치 | 제3장 태조대왕·차대왕의 한족 축출과 고토 회복 | 제4장 차대왕의 왕위 찬탈 | 제5장 차대왕의 피살과 명림답부의 집권 | 제6장 을파소의 재상직 수행

제5편(二) 고구려의 중쇠(中衰)와 북부여의 멸망

제1장 고구려의 대(對)중국 패전 | 제2장 고구려와 선비족의 전쟁

제6편 고구려·백제의 충돌

제1장 고구려·백제 관계의 유래 | 제2장 근구수왕의 무공과 고구려의 위축(백제의 해외정벌) | 제3장 광개태왕의 서진 정책과 선비족 정복 | 제4장 장수태왕의 남진 정책과 백제의 천도

제7편 남방 제국의 대(對)고구려 공수동맹

제1장 4개국 연합군의 전쟁과 고구려의 퇴각 | 제2장 백제의 북위 격퇴와 해외식민지 획득

제8편 삼국 혈전의 개시

제1장 신라의 발흥 | 제2장 조령·죽령 이북 10개 군의 쟁탈 문제 | 제3장 동서(同?) 전쟁

제9편 고구려의 대(對)수나라 전쟁

제1장 임유관 전투 | 제2장 살수 전투 | 제3장 오열홀·회원진 양대 전투와 수나라의 멸망

제10편 고구려의 대(對)당나라 전쟁

제1장 연개소문의 서쪽 여행과 혁명 | 제2장 요하 전쟁 | 제3장 안시성 전투

제11편 백제의 강성과 신라의 음모

제1장 부여성충의 위대한 전략과 백제의 영토 개척 | 제2장 김춘추의 외교와 김유신의 음모 | 제3장 부여성충의 자살 | 제4장 신라·당나라 군대의 침입과 백제 의자왕의 체포 | 제5장 백제 의병의 봉기(부여복신의 역사) | 제6장 고구려의 당나라군 격퇴와 백제 의병의 융성(부여복신의 역사) | 제7장 부여복신의 죽음과 고구려의 내란

저자 소개2

신채호(申采浩, 1880∼1936)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사학자, 언론인이다. 지금의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에서 신광식(申光植)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호는 일편단생(一片丹生), 단생(丹生), 단재(丹齋), 금협산인(錦頰山人), 무애생(無涯生) 등이다. 충북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조부에게 한학을 배웠는데, 13세에 사서삼경을 모두 읽어 신동으로 불렸고, 19세에 성균관에 입학해서 1905년 성균관 박사가 된다. 같은 해 장지연(張志淵)이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을 쓰고 투옥되자, 그의 뒤를 이어서 논설위원으로 활동한다. 이듬해 『대한매일신보
신채호(申采浩, 1880∼1936)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사학자, 언론인이다. 지금의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에서 신광식(申光植)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호는 일편단생(一片丹生), 단생(丹生), 단재(丹齋), 금협산인(錦頰山人), 무애생(無涯生) 등이다. 충북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조부에게 한학을 배웠는데, 13세에 사서삼경을 모두 읽어 신동으로 불렸고, 19세에 성균관에 입학해서 1905년 성균관 박사가 된다. 같은 해 장지연(張志淵)이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을 쓰고 투옥되자, 그의 뒤를 이어서 논설위원으로 활동한다. 이듬해 『대한매일신보』의 주필이 되었고, 『이태리 건국 삼걸전』을 광학서포에서 발행한다. 1907년 신채호는 비밀결사 단체 신민회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국채보상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앞장선다.

1908년 신채호는 여성 계몽 잡지 『가정잡지』의 발행인이 됐고, 같은 해 『대한매일신보』에 5월부터 8월까지 『수군 제일 위인 이순신전』을 연재한다. 5월에는 『을지문덕』을 광학서포에서 발행했고 다음해 『동국거걸 최도통전』을 출간했다. 1910년 한일합방 후, 신채호는 안창호(安昌浩), 이갑(李甲) 등과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 독립사상의 전파를 위해 『해조신문』를 발간한다. 1914년에 『조선사』의 저술을 시작한 신채호는 만주를 여행하면서 광개토왕 왕릉 등 고구려 고적을 답사한다. 다음해 북경 도서관에서 『조선상고사』의 집필을 위한 연구 자료를 수집한다. 또 박은식(朴殷植), 문일평(文一平) 등과 박달학원을 설립한다. 1919년 신채호는 임시정부 전원위원회 위원장으로, 비밀결사 대동청년단 단장으로 추대된다. 같은 해 『신대한』의 주필로 독립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는 글을 썼고 대한 독립청년단 단장, 신대한동맹단의 부단주가 된다. 다음해, 보합단(普合團)의 내임장으로 추대된 그는 독립군 자금을 모집한다.

1921년 북경에서 김정묵(金正默), 박봉래(朴鳳來)등과 통일책진회(統一策進會)를 만들어 『통일책진회 발기 취지서』를 발표한다. 다음해 북경에서 조선 역사를 연구해 『조선상고사』, 『조선상고문화사』, 『조선사연구초』를 저술한다. 그리고 1923년 의열단(義烈團)의 요청으로 『조선혁명선언』을 만들었고, 국민대표자회의에 참석해 임시정부의 창조파로 활약한다. 다음해 관음사(觀音寺)에서 역사 연구에 몰두한다. 1925년에는 1월부터 10월까지 『동아일보』에 『조선사연구초』를 연재하면서, 무정부주의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미발표 작품인 『전후 삼한고』를 쓴다. 1928년 대만의 무정부주의 비밀결사 사건에 연루된 신채호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0년 형을 받아 뤼순 감옥에서 복역한다. 다음해 『조선사연구초』가 동지들에 의해 서울에서 출판된다.

1931년에 그는 『조선일보』에 6월부터 10월까지 『조선사』를 연재했고, 10월부터 12월까지 『조선상고문화사』를 연재한다. 1936년 2월, 신채호의 나이 57세, 뤼순 감옥에서 뇌일혈로 의식을 잃은 후,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타국 땅에서 옥사한다. 1945년에는 신채호학사가 설립되었고, 다음해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조선사』의 서문을 『조선사론』으로 표제하여 광한서림에서 출판한다. 1948년 『조선상고사』를 종로서원에서 발행했고, 1955년 단재유고출판회에서 『을지문덕』을 순 한글로 번역 출판한다. 1962년 신채호에게 대한민국 건국 공로훈장이 수여되었다. 그리고 2007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단재 신채호 전집』이 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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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사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월간 「말」 동북아 전문기자와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방문학자로 활동했으며, 문화재청 산하 한국문화재재단이 운영하는 [문화유산채널](구 [헤리티지채널])의 자문위원과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문화유산채널]에 명사 칼럼을, 「민족 21」과 웅진씽크빅의 「생각쟁이」에 역사 기고문을 연재했으며, 「오마이뉴스」에 [김종성의 히,스토리], [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등을 비롯한 여러 개의 시리즈를 연재 중이다.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에서 기업인들에게 한국사를,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외부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사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월간 「말」 동북아 전문기자와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방문학자로 활동했으며, 문화재청 산하 한국문화재재단이 운영하는 [문화유산채널](구 [헤리티지채널])의 자문위원과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문화유산채널]에 명사 칼럼을, 「민족 21」과 웅진씽크빅의 「생각쟁이」에 역사 기고문을 연재했으며, 「오마이뉴스」에 [김종성의 히,스토리], [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등을 비롯한 여러 개의 시리즈를 연재 중이다.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에서 기업인들에게 한국사를,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외부강사로 삼성 신입사원들에게 역사를 강의했고 기독교방송(CBS), 교통방송(TBS), 불교방송(BBS) 등 여러 방송의 역사 코너에도 고정 출연했다. 지금은 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대논쟁 한국사』, 반일 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나는 세종이다』,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 『패권 쟁탈의 한국사』, 『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조선 노비들』, 『왕의 여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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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2월 20일
이용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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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TS 가능 ?
  •  저작권 보호를 위해 인쇄 기능 제공 안함
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79.02MB ?
ISBN13
9791171252978

출판사 리뷰

지난 1천 년간 역사가들이 감추고 축소한
우리 고대사의 진실을 규명하다!


신채호는 ‘역사는 역사 이외의 다른 목적 때문에 기록해서는 안 되지만’ 우리 상고사는 ‘작자의 의도에 따라 많은 사실 관계가 달라진’ 불완전한 역사라 규정한다. 특히 묘청이 유교도 김부식에 패배한 이후 이 땅에는 유교도가 득세하게 되었으며, 그 영향으로 중국을 높이고 스스로를 낮춰 역사를 서술하는 경향이 지배하게 되었다고 단언한다. 이는 신채호가 ‘유교도 김부식’과 그가 서술한 『삼국사기』를 비판하는 주된 이유다. 또한 “내란의 빈발과 외적의 출몰이 우리나라 고대사를 쓰러뜨리고 무너뜨렸다”는 안정복의 의견에 대해 “내란이나 외환보다는 조선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조선사가 쓰러지고 무너졌다”고 밝힌 까닭이기도 하다. 이에 신채호는 그 당시 “현존하는 서적들을 갖고 장단점을 파악하고 대조”하여 1천 년 이상 역사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되거나 축소된 우리 고대사를 바로잡고자 했다. 신채호가 『조선상고사』에서 『삼국사기』에서는 찾을 수 없는 단군의 시대를 많은 부분 할애해 서술하고, ‘대중국 투쟁’의 선봉에 선 고구려의 역사를 중요하게 기록한 것 등은 ‘작자의 의도로 사실 관계가 달라진 불완전한 역사’를 제대로 서술하고자 한 그의 의지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대단군조선, 삼조선, 부여, 고구려로 이어지는
새로운 역사인식 체계를 수립하다!


『조선상고사』에서 신채호는 단군, 기자, 위만, 삼국으로 이어지는 기존의 역사인식 체계를 부정하고, 대단군조선, 삼조선, 부여, 고구려로 이어지는 새로운 역사인식 체계를 설립했다. 훼손된 단군의 시대를 재조명함으로써 고조선이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었음을 명확히 규명했으며, 동부여와 북부여의 역사를 서술함으로써 두 나라를 우리 민족의 근원으로 포함시켰다.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에 존재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한사군은 한반도가 아닌 요동반도에서 찾아야 한다’고 일축했다.

신채호의 새로운 역사인식 체계는 삼국시대 서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신채호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처럼 신라 중심으로 서술된 상고사를 개탄하며, 그 대신 하나의 민족이라는 관점에서 고구려와 백제, 가야, 신라 등의 역사를 균등히 기록하고자 노력했다. 『삼국사기』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백제가 『조선상고사』에서는 부여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로 중요하게 서술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단재 신채호의 독립투쟁 활동의 사상적 근간!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에 관한 기록이다”는 『조선상고사』의 머리말 격인 총론에 나오는 명제다. 신채호는 계속해서 “‘비아’를 정복하여 ‘아’를 드높이면 투쟁의 승자로서 미래 역사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반면에 ‘아’가 파멸되어 ‘아’가 ‘비아’에게 바쳐지면 투쟁의 패자로서 역사의 흔적 정도로 그치고 만다”고 강조한다. 즉, “조선 민족이 그렇게 되어온 상태(아와 비아와 투쟁해온 상태)에 관한 기록”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신채호는 우리 역사를 우리 민족인 ‘아’가 ‘비아’인 다른 민족과의 투쟁의 과정으로 인식했다. 이와 같은 ‘역사는 투쟁의 과정’이라는 인식은 일제강점기 당시, 신채호가 행한 다양한 독립투쟁 활동의 사상적 근간이었다. 또한 신채호는 『조선상고사』를 통해 “기대와 달리 승자가 아니라 패자가 되는 사람들이 항상 생겨나는” 까닭을 역사로 살펴봄으로써 ‘지금’을 경계하고 ‘훗날’을 준비하고자 했다. 신채호에게 한국사 연구는 독립투쟁의 또 하나의 방편이었던 셈이다. 이와 같은 신채호의 역사 인식과 시대 인식이 담겨 있는 『조선상고사』는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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