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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작가의 말_시골큐레이터 본풀이
Ⅰ. 출렁 일렁 꿈틀거리는 민중미술 Ⅱ. 함께가는 그림틀 01 송문익 : 우포의 오리들은 한갓지지 않다. 02 노원희 : 바위를 보면 ‘나는 굴리고 싶어진다.’ 03 홍성담 : 유현의 민낯, ‘ㄱㆍㅁ’에서 길어 올린 목숨소리들 04 하미화 : 소멸의 땅에 뿌리는 풀씨들의 노래 05 김경화 : 역사의 켜를 캐내는 재봉틀 소리 06 이선경 : 옆집에 사는 앨리스들 07 구헌주 : 늘 사랑하고 늘 상상하여 늘 청년하라. 08 방정아 : 네발과 두발 사이에서 오금이 저려? 09 김보경 : 아! 님아! 문디! (Anima Mundi) 10 정봉진 문디눈 칼붓 11 김은애 : 얼렁뚱땅 미술놀이터 2018 - 어디로든 구멍 12 김근숙 : 모티 빈 티지 - 반피에서 온거짜리로 13 박경효 : 잘려나갈지 모르고 춤추는 아버지-성기의 나라 14 박진효 : 동백의 말, 뭇생명들의 말, 나의 말 15 엄경근 : 아이들은 바람결에 아버지를 듣는다. 16 오민욱 : 만지는 공간, 더듬는 시간 17 노주련 : 춤추는 오뚜기, 구르는 깍두기 18 천아름 : 낯선 골짜기, 어둑한 얼룩 19 양호규 : 허수아비, 몸으로 노래하는 본풀이 20 박재열 : 식구들 장단 타고 동무들 추임새 추는 칼날벼랑 21 곽영화 : 광장에 걸린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 22 이인철 : 봉건과 근대가 함께 먹는 밥 23 유경애 : 만지고 쓰다듬고 기르는 비나리 손길 24 김형대 : 뼈살이, 살살이, 숨살이 꽃을 찾아가는 길 25 박영균 : 들여다 듣는 언덕 26 소정희 : 보일 듯 말 듯 가물거리는 탈 사이 처용 27 전기학 : 백구라가 뿌린 낯선 말자리 날선 예술자리 28 김병택 : 광장의 기억, 기억의 광장 29 설치류 : 늙은 설치류들이 걸어놓은 아슴푸레 빛줄기 30 최해솔 : 조용한 이웃집 투사들 31 김영순 : 바닥에서 피어오르는 살살이, 뼈살이, 숨살이 그림꽃 32 박불똥 : 전두환 부관참시 순회전을 제안한다 32 프리즘 : 선 회개 후 기원, 선 십자가 후 부활 34 배성희 : 시그림 그림시 서로에게 물들다 35 박주현 : 우리 아버지는 이어져 있다 36 김화순 : 화순이 화순이들을 불러일으키는 춤그림굿 37 박종범 : 우리는 한집에 살고 있다 38 백서원 : 촐래 촐래 춤출래? 39 김우성 : 예술을 부르는 주술, 주술에 맞선 예술 40 프레임+설치류 : 노는 오금 일하는 오금이 저리는 자리 41 이상호 : 우리가 낳고 기른 구토를 헤집다 42 류연복 : 토끼세욥~~~^^ 43 오치근 : 우리 모두는 해치다 44 천현노 : 씨앗을 뿌리다 씨앗 속으로 들어간 45 조정환 : 문명을 되짚으며 유목, 유랑, 유희하는 집 46 안중돈 : 일, 꾼, 몸이 춤추는 예술 47 윤은숙 : 토끼굴은 토낄 수 없다 48 최향자 : 눈길이 마련한 움 배꼽 틈 49 최신희 : 이어 붙인 개체, 이어 붙은 세계 Ⅲ. 동무치레 01 그림에서 길어올린 새 말, 새얼, 새 길_화가 홍성담 02 샤먼으로서의 예술가, 그리고 큐레이터십_미술평론가 김종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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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민주공원 큐레이터다. 나는 부산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자리잡은 민주공원에서 2011년부터 일하고 있다. 민주공원에는 천여 점이 넘는 그림목숨들이 살고 있다. 그림목숨들은 우리 시대 일, 꾼, 삶을 그림으로 말하는 ‘민중미술’ 그림목숨들이다. 나는 이 목숨들에게 늘 이야기밥을 주면서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기르고 때때로 그림이 제 얘기를 할 수 있게 그림마당을 여는 사람이다.
--- p.11 언어는 인식의 집이다. 관념화된 지도를 그리지 않으면, 남북, 동서로 이동하는 것은 언덕을 넘어가고, 다리를 건너고, 바다를 가로질러 가는 것이다. 서울이 중심이라는 바탕은 허깨비다. 둔갑한 허깨비굿에 눈이 휘둥그레 마음이 홀려버린 것이다. 서울도 시골이다. 부산도 시골이다. 나는 어떤 시골, 모든 시골 사이를 넘어가고, 건너고, 가로질러 예술동무들을 만나러 가고 싶다. 내 마음의 그림에 내가 바라본 언덕도 그리고, 언덕 너머 보고픈 순이도 그리고 기어이 나도 그려 넣고 싶다. 내 흩은 눈들이 모여 모든 눈시울을 밝힌다. --- p.12 재치는 기술이 아니다. 태도이다. 세상을 낯설게 볼 수 있어야 한다. 낯설게 보아야 생활세계의 구멍이나 틈을 들여다 들을 수 있다. 보이지 않던 그것은 어쩌면 누군가 일부러 숨겨두었거나, 알고도 짐짓 모른 체하거나, 다들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예술은 구멍이나 틈의 소리에 길을 내는 일이다. 예술가는 구멍이나 틈에 입을 달아주는 이다. 예술작품은 입들의 문이다. 예술세계의 입들이 사람들을 만나는 입길이 열린다. 입길이 출렁 일렁 꿈틀거리는 사이에 예술세계와 생활세계는 만난다. 이것이 광장이다. 광장은 내 것이 아니다. 광장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우리 광장은 이어져 있다. --- p.13 그림틀이 못마땅했다. 그림을 바라보는 틀이 뒤틀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뒤틀린 그림틀은 예술사, 미학, 비평 곳곳에서 또아리 틀고 있었다. 나 홀로 어찌 할 수 없었다. 함께하자고 했다. ‘함께가는’ 그림틀이었으면 한다. 그림판에서 동무들과 함께 살고 싶다. 주례사를 하고 싶다. 주례사는 신랑과 신부를 이어주는 말이다. 작가와 작품과 감상자를 이어주고 싶었다. 작가의 창작의도를 비틀어 제 말만으로 덮어버리는 글, 제 말이 온통 남 말로만 이루어져 복화술을 보는듯한 글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다. --- p.14 민중미술은 제 경계를 낯설게 알아차려야 한다.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닌 어지자지한 사이에서, 있지만 없는 듯, 보일 듯 말 듯, 여전히 늘 그 낌새와 조짐으로 머물다가, 때때로 어느덧 재빨리 골탕먹이고 놀려주는 것이야말로 민중미술가들이 마련한 민중미술의 꿈틀이다. 나는 민중미술이 만들어낸 장난꾸러기, 악동들, 도깨비, 귀신들이 전시공간과 거리를 활개치며 우리 시대 마초, 꼰대들이 퍼질러놓은 ‘터전을 불사르고’(Burning Down the House_Talking Heads) 새로운 말의 씨앗을 뿌리기를 꿈꾼다. 나는 그 마당에서 너희들의 놀림을 받으며 춤추고 노래하며 놀고 자빠질 것이다. Peace!!! --- p.33 탈들은 탈난 것들이라 탈탈 털어버려야 할 것들이 아니다. 내게 가까이 붙어 있거나 심지어 철퍼덕 달라붙어 있어 때로는 멀리 두고 싶은 탈들 모두가 나를 둘러싼 세계를 이룬다. 탈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탈들과 내가 맺고 있는 고리를 낯설게 알아차리는 것이 창작자의 몫이다. ’탈잡아‘야 한다. 탈의 꼬투리를 잡아 탈의 말꼬리를 끄집어내어야 탈은 제 실마리를 풀어놓는다. 탈의 실마리와 가려진 얼굴의 조짐 사이에 탈짓이 언뜻 비친다. 탈과 탈짓으로 춤추는 골짜기에서 이선경이 수상하다. --- p.53 박정희가 세우려던 나라는 봉건의 가부장을 이어받은 거대한 아버지-성기의 나라이다. 아버지에게 향한 효(孝)의 가족차림은 나라-아버지에게 바치는 충(忠)의 국가차림으로 이어진다. 효가 떠받들고 있는 가족이 충이 떠받들고 있는 국가로 확대, 재편되어 가는 길에 아버지-성기는 제 몸을 굳건히 곧추 세우고 있었다. 박정희는 아버지-성기의 얼이며 몸이다. --- p.83 문제아에서 문제학생으로, 문제학생을 가르키는 문제선생으로, 문제여인을 만나 세 아이의 아비로, 이제 세상의 문제에 문제를 던지는 대안 중학교 미술샘이 되었다. 문제투성이의 길이 몬땐 놈 엄경근 삶의 길이다. ‘낳아준 아버지’를 들여다 듣는 것은 세상의 모든 아버지를 들여다 듣는 일이다. 아버지의 발자국 소리를 들여다 듣는 일이다. 저~기 아버지가 거친 언덕길을 올라오고 있다. 아버지의 발자국 소리는 아이들을 부른다. 아이들은 바람결에 아버지를 듣는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 p.92 작두를 탄다. 서슬 퍼렇게 선 칼날 위를 무른 발이 디디고 섰다. 흔한 장단도 없이 동무들 추임새도 없이 홀로 선 발들이 위태롭다. 삿된 마음을 먹으면 벨 수 있다. 하늘의 중력을 이고 선 발바닥 아래는 날카로운 칼날 벼랑이다. 벼랑 아래 식구들 잠자리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발들에 입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함께 칼날을 탄다.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고 입들이 내는 소리를 발바닥으로 듣고 칼벼랑 위를 서슴없이 타야 한다. 칼날 우에 얹힌 듯 만 듯 입들이 내는 장단을 타고 동무들 추임새를 추며 위태로이 흥겹게 더불어 함께 가야 하는 칼날길이다. 당신의 발은 ‘외롭고 높고 슬프다’(시인 백석의 말을 빌어). --- p.111 치유된 치유자이다. 이미 많이 아파서 아픔을 품고 있는 채로 나은 이가 또 다른 아픈 이를 낫게 한다. 아픔이 아픔을 만나 눈을 맞추고 소리를 쓰다듬고 말을 들여다 들어 아픔의 본풀이를 함께 읊조린다. 전라남도 바닷가에서는 바다를 ‘바닥’이라고 한다. 바닥을 치고 바닥에서 피어오르는 살살이, 뼈살이, 숨살이 그림꽃 사람꽃이다. --- p.145 ‘비니루 마고(Vinyl Mago)’는 ‘미술행동 프리즘’이 던지는 고요한 묵시록이다. 비니루 드레스를 차려입고 핵우산을 쓴 이는 모든 마고할미이며 설문대할망이며 물할미이다. 땅거미 지는 지구를 등지고 비장하게 서있는 우리 우주 할미들의 비극적 숭고 앞에서 ‘비나리’를 읊조려야 한다. ‘비나리’는 (용서를) ‘비는’ 것과 (복을) ‘비는’ 뜻이 뭉쳐 있는 말이다. ‘선 회개 후 기원’이며, ‘선 십자가 후 부활’이라는 말이다. 우리 비나리는 이어져 있다. 인샬랴 아미타불 아멘~ --- p.162 기르는 아버지가 그립다. ‘기러운’ 것, 옛날 내가 가졌었지만 지금 갖고 있지 않아 빈 것. 기러운 것을 기르는 것이다. 아이의 우물 안에서 나의 우물을 길어내어 누리를 촉촉이 적시는 마음이다. 그렇게 우리는 아버지가 된다. 우리 아버지는 이어져 있다. --- p.170 두둥실 떠오른 달을 맞아 어깨를 들썩여 두손을 활짝 들고 달춤을 춘다. 두손을 들어 우주를 내 안으로 모셔 뭇 생명 함께 추는 생명의 춤이다. 내 안에서 솟구치는 비나리와 우주 본풀이가 두손 더듬이를 타고 만나는 우주굿춤이다. 두손이 부르는 생명의 노래다. 생명을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보듬는 손이다. “니 배는 똥배고 내 손은 약손이다” 읊조리며 아이의 아픈 배를 쓰다듬는 할머니 손이며, 신새벽 장독 위 물 한 그릇 놓고 빌던 비나리 손이다. 오래된 미래의 손이다. --- p.174 가진 땅과 짓는 집과 모는 차들은 없다. 디딘 길과 열린 하늘과 걷는 다리가 우리 땅이고 집이고 차다. 우리는 집이다. 갖가지 집들이 모여 집들의 숲을 이룬다. 집들은 문턱을 사이에 두고 길길이 이어져 있다. 길 위로 하늘이 하늘거린다. 지구별은 지구벌들이 뭇생명들과 함께 잉잉거리는 출렁이는 일렁이는 꿈틀거리는 집이다. 우리는 한집에 살고 있다. 우리는 이어져 있다. --- p.179 비참과 참혹의 굿판이다. 주술적 사실들이 예술의 눈을 불렀다. 제 눈을 찌르고 싶은 마음이다. 예술은 우리 안에 도사린 주술적 사실들을 일깨우는 신탁이다. 그리하여 주술적 사실들에 맞서 예술적 진실을 불러일으키는 맞바람이다. 예술가는 마음을 불러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이다. 예술가들이여 눈을 뜨고 가슴을 펴고 떨쳐 일어나라! 우리 예술은 이어져 있다. --- p.187 입으로 욕망의 태아를 토해내고 싶다. 우리 스스로가 태아를 잉태했다. 태아는 우리 몸을 빌려 기생할 뿐이다. 탯줄은 승리와 패배를, 역사와 사회를, 중세와 근대를 넘나들며 얼기설기 이어져 있다. 김건희가 윤석열을 낳고, 윤석열이 이명박을 낳고, 이명박이 박근혜를 낳고, 박근혜가 박정희를 낳는 무성생식의 무한생식이다. --- p.193 천현노의 〈분노 Ⅱ〉는 불편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 현장을 지배하는 제국의 국기를 뚫고 나오며 지배와 피지배의 탈을 찢어버리는 민중의 분노는 불꽃이다. 제국의 심장으로 던지는 꽃병(화염병)이다. 1987-1988년 사이에 만든 판화는 6월민주항쟁을 통과하는 민중의 통과의례를 보여준다. 통과의례는 이야기의 구조 속으로 들어가는 고통스런 제의다. 때로는 제 아가리 속으로, 제 눈알 뒤로, 제 나온 구멍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입문의례이다. 제국이 우리의 오래된 미래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 p.206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통과의례이다. ‘이상한 나’를 만나는 입사의례이다. 의례는 예배이며 미사이며 제사이며 축제이며 굿이다. 우리는 늘 때때로 성속을 넘나들었으며, 이상과 정상 사이에 끼어 있었으며, 비정형과 정형 사이에 놓여 있었다. 우리는 앨리스이며 체셔 고양이며 토끼이며, 우리들 스스로 토끼굴을 낳은 토끼굴이다. 우리 모두는 토끼굴이다. 토끼굴은 토낄 수 없다. --- p.221 다시 그림틀 앞에 섰다. 시각은 가장 늦게 태어난 감각이고 가장 일찍 사라지는 감각이다. 그 꼭대기에 원근법이 자리잡고 있다. 원근법을 사이에 두고 원근법으로 달려가던 흐름과 원근법으로부터 달아나는 흐름이 등을 맞대고 있다. 사실의 재현을 두고 재현으로 달려가던 흐름과 재현으로부터 달아나는 흐름이 등을 맞대고 있었다. 원근법과 사실의 재현은 손을 잡았다 놓았다, 엉겨붙었다 떨어지며 따로 또 같이 걸어왔다. 작가 최향자의 그림틀에서 미술사의 오랜 그림은 무너진다. 원근법이나 사실의 재현이라는 미술사의 결과 켜는 가뭇없이 사라진다. 다만 틈이 놓여 있을 뿐이다. 틈을 사이에 두고 세상과 우리가 서로 떨리고 있다. 떨리는 마음이 설레는 틈이다. 틈서리를 짓고 틈서리 어름에서 눈귀를 열어 이녘저녘을 들여다 듣는다. 틈을 들여다 듣는 이가 작가이다. 틈을 사이에 두고 예술세계와 생활세계는 이어져 있다. 그 틈에 가고 싶다. --- p.225 낯선 눈으로 우주와 지구의 시공간을 들여다 들으며 목숨의 깨어지고 찢어진 조각들을 만났다. 본디 이어졌던 목숨들 숨길이 흩어지고 헤어진 자리에서 알아차렸다. 우리말 ‘알아차리다’는 ‘알다’와 ‘차리다’ 두 말이 붙은 말이다. ‘알다’는 몰랐던 것이나 가려졌던 것이나 다르게 알고 있던 것을 새로이 아는 것이다. 새로이 알면 새 눈이 열린다. 새 눈은 새 누리를 ‘차린다’. 차리는 것은 ‘상을 차리다’, ‘살림을 차리다’의 쓰임새를 보듯이 새 누리를 만드는 일이다. 새 누리를 만드는 바느질이다. 바다목숨과 뭍목숨과 하늘목숨을 이어 붙이는 바느질 그림이다. 바느질이라는 미적 전술은 지구와 우주의 시공간을 이어 붙이고 엮는 미적 전략이다. --- p.229 신용철의 비평은 새로운 단어들에 새로운 미학적 개념을 담아내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일정하게 성과를 얻고 있다. 우리 땅에 이식되면서부터 오염되어버린 서구미학의 언어를 빌려서 논증의 모래탑을 쌓는 무상한 짓 대신에 새롭고 싱싱한 단어들에 새로운 미학적 개념을 불어넣는 것에서 이미 그가 추구하는 새로운 철학과 사상의 세계로 향하는 문을 활짝 열었다. (홍성담) (236 신용철은 늘 마당에 서 있었고 ‘마당’이라는 우물눈으로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이 책에 초대한 ‘긔림’들을 보고 읽는 눈 또한 그랬죠. 이 글은 그 눈으로 들어가 좀 더 깊고 넓게 파고들 수 있는 그물을 덧대는 장치일 뿐입니다. 그의 글이 한 벼릿줄이라 할 때 그 벼릿줄에는 반드시 벼리가 있고 그물이 있고 그물코가 있을 것입니다. ‘서로주체’로 마주하는 이 글이 그의 벼리를 살피는 손길이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김종길) --- p.2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