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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가 미르엘 공작의 앞에 다소곳이 섰다.
“그래, 그때 네 계획까지만 들었었지. 나간다는 이유가 뭔지나 들어 보자.” “추쌩의 비미리여…….” “그래, 그걸 한번 말해 보라고 하지 않느냐.” 어쩐지 오늘따라 관중석……, 아니 회의실이 더 뜨거운 느낌이었다. ‘사람이 조금 많아진 건 착각인가?’ 마치 한창 재밌을 때 끝난 막장 드라마 다음 화를 보러온 아줌마들 같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시답잖은 생각에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집 나갈 만반의 준비는 다 했으니까.’ 혹시 인간화가 풀릴 때를 대비해서 도마뱀이 들고 갈 수 있는 보석류도 몇 군데 숨겨 놓고 왔다. 무사히 나갈 경우엔 그 보석을 전부 회수해서 보따리에 싸서 나갈 생각이었고. “저가, 사시른여…….” 그때였다, 등 뒤로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사실은 그 아이가 내 따님입니다. 이렇게 밝힐 때가 됐군요. 그렇지?” “네, 마자여……. 사시른 제가 따……알……? 넹?” 바짝 긴장한 나머지 들려온 말을 고스란히 따라 하던 나는 뒤늦게 이상함을 감지하고 굳어지고 말았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에르노 에탐이 특유의 느긋한 걸음으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눈앞에서 초원을 거니는 배부른 맹수에게 언제 먹힐지 모르는 먹잇감이 이런 기분일까? “아가, 제대로 말해야지. 네가 내 아비다, 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