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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_사진으로 보는 막달레나의 기록
머리말 1부│수녀와 아줌마, 수상한 집을 열다 냄비 혹은 기계로 불리는 여성들│문 열어 주는 수녀 |업주들과 치른 힘겨루기 싸움│‘콩알’에 취하는 엄마│새벽 귀신과의 해후│우리 집 박사 1호 |기술원으로 간 저금통장│큰 언니 포주 아니에요?│담뱃불 붙여 주는 추기경│막달레나가 ‘성녀’야, ‘석녀’야? 2부│소금벼락 맞으며 떠난 아름다운 동행 벽제 화장터의 단골손님│이제 편안히 천당으로│하늘도 무심한 인태와 경희의 죽음│성매매집결지의 아이들과 이상한 이모│현숙이가 부른 소복행렬│수녀와 밴드│노름판돈이 되어 버린 나의 미국 출장비│용산역 깡패 금순이가 맺은 부부의 정│참기름과 아이스크림│포주 전 씨를 위한 기도 3부│어디에 있든, 어떤 삶을 살든 당신을 응원하리 나도 애기 낳을 거야│가두는 것이 능사?│신문지 매타작│손님 맞는 혼례 한복│슬픈 대물림│하늘 길의 오이 마사지│노름 금지 각서│정신 장애인과 함께 살기: 국가 보안 위기 |켜는 버릇보다는 끄는 게 백 번 낫다│축복이 된 이름, 레나와 요한│꿈에 관한 보고서 4부│맛있는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나 반장과 손목 긋는 선아│보듬네 안달자의 기적│암이 아니라 똥, 떵, 어, 리!│순옥이의 가출수난사│“돈 많이 버세요, 딸꾹~”| ‘따락길’ 현미 다시 돌아오다│성매매방지법 때문에 배신자가 된 막달레나│청파동 시스터즈│하늘 아래 우리 집 한 칸│어떤 죽음을 추모하기│판도라, 우리 동네 사진작가들│오, 신기한 밥상 부록_희망의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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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문요안나 수녀님과 나를 일컬어 ‘환상의 커플’이라고 불렀다. 내가 생각해도 문 수녀님과 내가 꼬박 15년 동안 함께 살며 언어, 문화, 생활방식의 차이를 뛰어넘어 처음의 바람처럼 막달레나의집을 여성들의 공동체로 꾸렸으니 그것만으로 우리는 이미 좋은 파트너였던 것은 분명하다. 영어 한 마디 못하는 내가 미국인 수녀님과 가족을 이루어 살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문 수녀님 덕분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문 수녀님은 세상 어디에 가서도 하하호호 웃을 수 있고, 또한 세상 모든 가난하고 아픈 이들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그런 분이었다. 처음에는 문화가 다른 미국 수녀님과 살 생각에 한숨이 나왔던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들은 어느덧 눈빛만 보아도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는 ‘영혼의 동반자’가 되었다.
---「1부 수녀와아줌마, 수상한집을열다」중에서 다들 추기경님께 세배를 드렸는데, 어린아이처럼 세뱃돈 타령을 했다. 그런데 언제 준비를 하셨는지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하고 건강하라는 덕담과 함께 오천 원씩 세뱃돈을 주었다. 누구에게건 똑같이 오천 원씩 주었다. 그러자 식구 한 명이 문제 제기를 했다. “추기경님. 이건 좀 불공평해요. 애들도 오천 원, 어른도 오천 원. 어른은 좀더 주셔야지요.” 추기경님은 눈이 안 보일 정도로 껄껄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셨다. “나한테는 자네들이 다 어린아이라네.” 몇 명이 나가더니 세뱃돈으로 막걸리를 사와 판을 벌였다. 물론 추기경님은 술을 드시지 않았지만 꼼짝도 않고 같은 자리에 몇 시간이나 앉아서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1부 수녀와아줌마, 수상한집을열다」중에서 금순이가 살아 있을 때 자기가 장사 나가고 있는 용산 가족공원에서 막달레나의집도 장사를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집에서는 동네 건달이 갖다 준 기계로 참기름 짜는 일을 했다. 우리 일을 잘 아는 금순이는 가족공원에서 장사하는 것이 집에서 참기름을 짜 파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참기름 짜는 일을 시작하게 된 건 순전히 쟈니 때문이었다. 그는 동네 건달로 돌아다니면서도 기계를 유통하거나 깨 볶는 일을 했다. “누나. 이거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닌데 한번 해보시지 않을래요?” 어느 날 쟈니는 제가 하는 일이 어떻다는 둥 말하다가 우리에게 그런 제안을 던졌다. 자기가 기계도 주고, 깨도 볶아서 댈 테니 해보라고 했다. 지난 번 문 수녀님의 환갑 잔치 때는 밴드를 불러줘 우리를 한바탕 신나게 놀게 해 주더니 이제는 또 참기름을 짜 보라니, 하여간에 쟈니 덕분에 우리는 계획에 없던 일을 또 벌이게 되었다. 큰 손해는 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집에서 아이와 함께 살고 있던 현자에게 좋은 일이 될 것 같았다. 현자는 공장에서 일하며 기숙사 생활을 하던 시절에 이것저것을 외상으로 구입했다. 어느 날부터 집으로 날아오는 대금 지불 청구서를 보고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늘은 이 회사에서, 내일은 또 다른 회사에서 독촉장을 보냈다. 그렇게 외상을 져서 돈을 갚지 못한 게 한두 건이 아니었다. ---「2부 소금벼락 맞으며 떠난 아름다운 동행」중에서 결혼 뒤 자영이는 성매매집결지 자활지원센터의 도움으로 공공근로 일자리를 얻어 청소를 다니기 시작했다. 종종 자영이는 마대자루와 집게를 들고 막달레나의집에 물을 마시러 들르곤 했는데 까맣게 그을은 얼굴 위로 떨어지는 땀방울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러더니 어느 날엔가는 와서 내게 이런 부탁을 했다. “언니, 나 무료급식소에서 공짜로 밥 좀 먹게 해주면 안 될까?” 자영이가 일을 다니고 있는 지역에는 천주교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베들레헴의집’이라는 노숙인들을 위한 식당이 있었는데 밥값을 빼고 나면 월급이 남는 게 없다며 나에게 그런 부탁을 했다. 나는 그 말을 하는 자영이가 다르게 보였다. 하룻밤 화투로 몇 십만 원을 우습게 날리고, 가까운 곳을 가더라도 힘들어서 혹은 누가 알아볼까봐 택시를 잡아타던 그였다. 그런데 고작 밥값을 아끼기 위해 스스로 노숙인 식당에서 줄을 서겠다고 하다니. 그 때 이후로 나는 자영이가 다시 성매매 일을 할까봐 염려하는 마음이 없어졌다. 이제 자영이는 무슨 일이건 해내며 앞으로의 삶을 끌어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4부 맛있는 우리집에 놀러 오세요!」중에서 막달레나의집, 나아가 우리 막달레나공동체(2005년에 사단법인 설립)의 미션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나눔, 존중, 상생을 통한 희망의 역사’를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거창한 미션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우리집 밥상에 앉아 보면 알 수 있다. 밥 앞에 상하가 있을 수 없고, 밥 앞에 오해와 편견도 없다. 밥시간에 이 집을 찾은 사람이라면 식구건 아니건 간에 일단 밥솥이 허락하는 한 밥상 앞에 앉아야 한다. 흔히 쉼터로서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장소상의 특성을 떠올린다면 “쉼터 맞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낯선 이들의 등장에도 관대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는 분명 쉼터로서의 일부 기능을 이미 상실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집에는 만든 지 이십 년이 넘은 나무로 된 밥상이 하나 있는데 그 밥상이 얼마나 신기한지 정원이 따로 없는 완전 고무줄 밥상이다. 셋이 앉아 먹으면 넉넉하고, 네다섯이 앉아 먹으면 화기애애하고, 일고여덟이 앉아 먹으면 풍요롭다. 더 이상 앉을 수 없을 것 같다가도 숟가락 들고 끼어 앉으면 열다섯도 가능한데 이쯤 되면 옆으로 돌린 몸은 밥상과 거리를 두어야 하며 손은 열심히 밥상 안으로 향해야 한다. 인원이 많아질수록 손놀림은 더욱 빨라지며 한 그릇 먹을 밥이 두 그릇 되고, 말은 더욱 많아져 정치에서부터 연예, 학원에서 있었던 일, 자녀교육, 사무행정에 이르기까지 한 밥상 안에 몇 가지 화제가 한꺼번에 자유롭게 부유한다. 밥을 통한 소통의 향연이랄까. 박사님이건 외국인이건, 신부님이건 누구건 간에 이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나누었다면 공평하게 밥상을 정리해야 하는 것도 우리집 밥상의 미덕. ---「4부 맛있는 우리집에 놀러 오세요!」중에서 우리는 오늘도 밥상을 차린다. 우리가 먹을 밥이건 손님이 먹을 밥이건 구분하지 않고 좋은 재료들만을 고집하며 모자람 없이 누구든 행복하게 배를 채울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 식구들이 먹을 밥상에는 미래에 대한 꿈과 용기를, 손님들이 먹을 밥상에는 나눔과 희망이라는 특별한 찬이 놓이니 이 얼마나 풍요로운가. 나는 매일같이 기도한다. 이 밥 먹고 더 많은 여성들이 용감하게 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용기에 힘찬 박수를 보태 주기를. 나는 나눠 먹는 것이라면 최고로 자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람들에게 “우리집에 밥 먹으러 오세요!”라고 말하며 당당히 초대한다. 식욕이 없는 분들, 용기를 얻고 싶은 분들, 나눔이라는 처방이 필요한 분들, 희망의 박수를 함께 치고 싶은 분들 언제든 우리집으로 오시라! 예수님도 꿀꺽 침 삼키며 둘러앉는 이 신기한 밥상에! ---「4부 맛있는 우리집에 놀러 오세요!」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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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의 말
“막달레나의집이 여성들과 함께 보낸 세월을 회상해 본다. 여성들은 우리집의 둥근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잠을 자며, 건강을 회복했다. 미뤄 둔 공부를 해서 더 큰 세상으로 나갔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새로운 삶을 선언하며 나갔다가 몇 번이고 되돌아오기도 했지만 우리는 언제나 환영하며 다시 밥을 먹고, 잠을 자며, 건강을 회복했다. 세상 먼저 떠나는 이들을 배웅했고, 명절이면 둘러앉아 그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웃었다. 때로는 슬프고, 안타까운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행복하고 신명나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함께했던 사람들은 성매매 공간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들이 전통적인 관점의 ‘피해 여성’이 아닌 경우도 많았다. 그들이 어떻게 규정되건 우리는 누구와도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았다. 용산 성매매집결지 한복판에서 업주의 집을 빌려 여성들과 회의를 하거나 집단상담훈련도 했다. 맘 내키면 밤샘 영업을 마친 여성들과 새벽 바다를 보러 떠나기도 했다(돌아오는 길이 멀고도 험했지만). 용산을 배경으로 다큐멘터리도 만들고, 인터뷰를 해서 책도 여러 권 만들었는데 그들은 ‘증언자’, ‘피해자’를 넘어 스스로 주인공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들은 이게 다 막달레나의집 때문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