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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덕호 : 니카의 집을 방문했을 때 _p9
게리 기딘스 : 세 가지 소원 _p19 나딘 드 쾨니그스워커 : 니카 _p25 재즈 거장들의 세 가지 소원 _p45 음악가 찾아보기 _p320 저자 소개 _p336 |
Pannonica de Koenigswarter
Gary Gidd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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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가 아니라면 그 누가 농담같은 질문으로 재즈 음악인들의 속마음을 드러내도록 만들 수 있겠는가. 저토록 무방비 상태로 있는 재즈맨들을 근접 촬영하는 것이 그들의 가족이 아니고선 니카 외에 누가 가능할까.”
--- p.10 “여기에 실린 니카의 사진은 마치 날아갈 것만 같은 기억을 붙잡고 싶어서 찍어둔 소소한 기록과도 같다. 일상의 기록이라는 제목 아래 핸드폰으로 인스타그램에 올려놓은 무수한 사진들보다도 니카의 폴라로이드 사진들은 그 아득한 세월처럼 엉성하다. 그녀는 마치 집안 식구들을 찍듯이 이 재즈 음악인들을 찍었다. 집안 식구가 아니라면 평범한 가족사진 한 장의 가치를 알 수 없듯이 니카의 사진들은 그 시대 그 무리가 아니라면, 적어도 재즈 팬이 아니라면 그 의미를 결코 알 수 없는 사진들이다.” --- p.16 "만약 내게 세 가지 소원을 꼽으라면, 내가 마음속에 담은 두 가지를 고른 후에, 마지막 하나를 놓고 세계평화와 니카의 회고록을 읽을 수 있는 기회 가운데 무엇을 고를 지 갈팡질팡 헤맬 것이다. - 하지만 아! 니카는 회고록을 쓴 적이 없었다.” --- p. 21 “응답자들의 일부는 극소수만이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 소니 니비어스, 린 홀리데이, 폴 위턴, 클로드 퍼비스, 하일러 존스 그리고 코야마 야스히보는 누구란 말인가? 그들을 아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들 각자는, 우리가 소원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소원 하나를 성취한다. 그들은 불멸의 인물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어울리게 된 것이다. 우리도 책장을 넘기면 마치 재즈의 남작부인과 함께 어울리는 가까운 사이가 된 것 느낌이 들 듯이. ” --- p.21 “마지막 대화에서 니카는 그녀가 유머 감각을 결코 잃지 않았다는 사실을 내게 증명했다. 그녀는 다음 날 클럽에서 예정되었던 만남을 취소하자고 내게 전화를 걸었는데 왜냐하면 전기 깡통 따개가 고장 나서 내일 밤 고양이 122마리를 위한 사료깡통을 손으로 직접 따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 p.37 “그녀는 크고 작은 방식으로 음악인들을 도왔다. 간질을 앓고 있음에도 혼자 살고 있던 콜먼 호킨스는 어느 날 밤 무대 위에서 고통을 느꼈다. 그는 입원하기를 거부했다. 그녀는 그의 집을 방문해 말벗이 되어주고 냉장고를 가득 채워주었다. 또 다른 날에는 우울증과 싸우면서 니카의 집에 머물고 있던 버드 파월이 사라졌다. 며칠 뒤 그가 다시 나타날 때까지 그녀는 모든 사람에게 그의 행방을 물으며 뉴욕을 샅샅이 뒤지고 돌아다녀야 했다. 아울러 니카는 음악인들의 권리를 위한 실질적인 공식 대변인이었다. 뉴욕에서 나이트클럽에 출연하는 음악인들은 파일에 남기는 지문채취에 응해야 했다. 니카는 이 차별적인 정책을 없애야 한다고 존 린지(John Lindsay) 시장을 설득했다. 아울러 그녀는 카바레 카드에 반대하는 음악인 230명의 서명을 모았는데, 당시 카바레 카드를 발급받지 않으면 누구도 뉴욕에서는 공개적으로 무대에 설 수 없었다. 결국 1967년에 이 모욕적인 요구는 폐지되었다." --- p.37 “이 동네에 니카가 온다는 건 즐거운 시간을 의미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그보다 더 좋은 건 없었으니까… 그녀는 재즈의 귀부인이었다. 우리 모두의 후원자였고, 편안하고 친밀한 친구였으며, 타고난 미적 감각은 흔들리지 않는 그녀의 나침반이었다. “ --- p.38 |
듀크 엘링턴: "제 소원은 간단해요! 최고가 되는 거죠!”, 마일스 데이비스: “백인이 되는 것!”, 디지 길레스피: “여권이 필요없는 세상”, 클라크 테리:”낡고 개똥같은 인종주의가 사라졌으면”, 루 도날드슨: “천식이 좀 낳았으면”, 매슈 지:”약간의 빵”, 행크 모빌리:”돈,돈,돈”, 아트 블레이키:”당신이 날 사랑하는 것”, 아서 테일러:”찰리 파커가 살아있는 것”, 찰스 밍거스:” 공과금을 낼 수 있을 만큼의 돈만, 하지만 그게 전부”
농담반 진담반 그들의 소원은 허황되고 절박하고 아프다. 제 아무리 뛰어난 사진가라도 찍을 수 없는 재즈 뮤지션들의 내밀한 모습들로 가득한 이 책 속에서 생전 니카의 집에 모여 밤새도록 연주를 벌였던 재즈 뮤지션들이 밤낮으로 잼 세션을 열고 있는 것 같다. 죽기 직전 그녀의 마지막 소원은 자정 무렵 허드슨 강에 그녀의 재를 뿌려달라는 것이었다. 멍크의 곡 〈자정 무렵Round Midnight〉 의 제목 처럼. 1988년 12월 9일, 성 베드로 교회에서 열린 니카 드 코닉스워터 남작부인의 추모식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렇게 니카를 기렸다. “제가 니카를 만나는 동안, 그녀가 정말 대단한 사람인걸 알게 되었어요. 니카는 재즈의 후원자이자 위대한 재즈거장들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은 인물로 기억될 겁니다. 제가 영화 '버드'를 준비할 때도 많은 도움을 주었죠. 이 생에서 니카를 만날 수 있었던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전 언제나 행복할 것입니다. 니카는 정말 위대한 여성이었어요.” 텔레니오스 멍크의 Pannonica, 소니 클락의 Nica, My dream of Nica, 케니 드류의 Blues for Nica, 토미 플래건의 Thelonica… 재즈 거장들이 오직 니카만을 위해 작곡한 곡의 수가 24곡에 이른다. 쟝르를 불문하고 한 특정인을 위해 이렇게 많은 예술이 만들어진 예가 있을까? 니카의 재는 강물따라 흘러갔지만 그녀와 300명의 재즈뮤지션들이 함께 만든 이 한 권의 즉흥연주는 영원한 니카의 현존을 증명한다. |
신비에 싸인 패노니카 드 쾨니그스워터 남작부인을 오늘날 조금이라도 기억한다면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 두 명의 죽음과 가까웠기 때문일 것이다. 1955년 찰리 파커는 5번가 패노니카의 자택 소파에서 사망했고, 27년 후 텔로니어스 멍크는 패노니카의 뉴저지 자택에서 수년간 은둔 생활을 하다가 사망했다.
두 뮤지션의 죽음으로 남작부인은 타블로이드 헤드라인의 즉각적인 표적이 되었고, 오랫동안 구설수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1988년 사망할 때까지 재즈인들의 친구이자 관대한 후원자로 재즈를 수호했던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재즈계 외에는 거의 아무도 알지 못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상속녀였던 그녀는 수많은 재즈 뮤지션들에게 자신의 집을 작업실과 심지어는 숙소로 제공했으며,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재즈 뮤지션들의 생활비를 묵묵히 지불해 주었다. 뉴욕 공연에 운전기사를 대절해주고, 일종의 인종적 보호자로서 함께 투어를 다녔으며, 흑인이라는 이유로 뮤지션들을 이용한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정면으로 맞서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색소포니스트 소니 롤린스는 전화 인터뷰에서 "나는 항상 그녀를 모차르트나 바그너 시대의 위대한 왕실 후원자들에 비유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자신의 행적을 드러내려하지 않았어요. 저는 재즈계에서 알고 지낸 사람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남작 부인에 대해서는 한 마디 해야겠어요. 그녀는 우리 음악을 정말 사랑했어요." 1950년대 초 뉴욕 재즈 클럽에서 처음 등장한 남작부인은 까마귀 머리에 긴 담뱃대까지, 마치 필름 느와르의 사이렌처럼 등장했고 그녀는 비밥 시대의 혁명가인 음악계의 거장들과 우정을 나누며 그들의 뮤즈가 되었고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마일스 데이비스, 텔로니어스 몽크 등 수많은 음악가들과 함께했다. 그녀의 저명한 가족은 오랫동안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거부해 왔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책, *“재즈 거장들의 세가지 소원”은 그녀의 사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을 제공하며, 그녀의 재즈 지인들조차 알지 못했던 세부들을 드러낸다. - 뉴욕타임즈 |
아름다운 책이다. 물론, 이 책이 품은 아름다움에 젖으려면 책 속으로 뛰어들어 그 속살을 느껴야 한다. 겉만 봐선 짐작하기 어렵다. 예술서로서, ‘재즈 거장들의 세 가지 소원’은 경이롭다. 이런 예술서는 전무(前無)했으며 후무(後無)할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하고, 서문 ‘니카의 집을 방문했을 때’를 쓴 황덕호 재즈 칼럼니스트의 안내로 ‘재즈 거장들의 세 가지 소원’을 간추려본다. 패노니카 드 쾨니그스워터(1913~1988)라는 여성이 살았다. 런던 태생이며 로스차일드 가문의 직계 자손이자 상속녀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재력·명성·영향력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 만큼 큰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패노니카는 젊은 시절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서 주로 아프리카 지역에서 나치에 저항했다. 패노니카는 1950년대 뉴욕으로 이주한다. 뉴욕에서 ‘패노니카 드 쾨니그스워터 남작 부인’은 니카로 통하며, 재즈 음악인의 소탈하고 소중한 친구가 되고 재즈 음악계의 중요한 후원인이 된다. 그가 사들여 가꾼 ‘캣하우스’는 당시 뉴욕 재즈 음악인의 보금자리이자 성지가 된다. 재즈가 예술로서 폭죽처럼 꽃 피던 시기였다. 그때 재즈 음악가는 대부분 흑인이었다. 흑인은 인종차별에 시달렸다. 재즈는 아직 ‘예술’로서 위상이 확고히 서지 못했다. 유럽에서 온 백인 귀족 갑부 여성이 흑인 재즈 음악가들과 더없이 친밀하게 지내며 후원인으로 활동하는 건 눈길 끄는 일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이 책에 실린 놀랍도록 자연스럽고 평범한 재즈 음악가 사진이 탄생했다. 패노니카는 오랜 기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재즈 음악가들 모습을 가장 자연스럽게 찍었다. 패노니카가 아니라면 접근할 수도, 찍을 수도 없는 장면이다. 평범하고 사적이며 그래서 희귀하고 영감 넘치는 재즈 음악가 사진을 이 책은 풍성하게 실었다. 정색하고 찍은 앨범 재킷이나 홍보 사진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 책을 전무후무로 표현하는 첫 근거다. 패노니카는 1961~1966년 편한 자리에서 재즈 음악인 300여 명에게 “세 가지 소원”을 묻고 답을 모았다. 모아 놓고 보니 이 답변은 엄청난 가치를 생성했다. 예술가의 내면·욕구·이상, 이들이 처한 사회 상황을 절묘하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어떤 답변은 죽비처럼 빛나고 어떤 소원은 속되다. 재즈 음악인을 넘어 모든 예술가의 내면을 폴라로이드 카메라처럼 보여준다. 조선 후기로 돌아가, 높은 예술성에 도달한 국악 시나위 연주단 구성원에게 마이크를 들이대고, ‘내 예술, 내 삶, 내 바람,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을 수집한 듯한 기분도 들었다. 이들 음악가의 답변을 통해 재즈의 속살이 손에 잡히고, 당시 사회가 보인다. ‘전무후무’의 두 번째 근거다. - 국제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