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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와 나」 평범한 중학생 선규는 개학 날 옆자리에 앉은 것을 계기로 희귀병을 앓는 장애인 친구 정우의 도우미 역할을 맡는다. 주어진 역할은 성실히 해내지만 정우를 친구가 아닌 봉사의 대상으로 여기는 스스로가 찜찜하던 선규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스레 정우에게 마음을 열어 간다. 정우를 괴롭히는 또 다른 친구 ‘조커’ 조혁과 선규의 갈등이 깊어 가던 어느 날 정우는 병세가 심각해지면서 세상을 떠나게 되고, 선규는 정우와의 기억을 마음속 깊은 곳에 묻는다. 그러나 일 년 후 돌아온 정우의 기일에 정우가 남긴 일기를 열어 본 선규는 조커의 새로운 진실을 알게 되는데…….
「불편한 진실」 현서는 학교의 지나친 복장 규제와 선배들의 강압적인 통제, 그리고 이를 묵인하고 방조하는 선생님들에게 불만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현서가 같은 반 친구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이 장면을 목격한 현서 친구가 촬영한 동영상을 공개하자 학교가 발칵 뒤집히는데……. 「꿈을 지키는 카메라」 아람이는 학생을 성적으로 차별하는 우열반에 반대해 보충 수업을 거부한다. 명품반에 든 단짝 친구 연서마저 보충 수업을 신청하자 서운함을 느끼고, 억울하면 공부 열심히 하라는 언니 말에는 불뚝성이 나기도 한다. 한편 아람이네 만두 가게가 있는 시장에는 재개발 바람이 불어닥쳐 시장 상인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사라져 갈 시장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 블로그에 올리며 작은 기쁨을 찾던 아람이는 투쟁을 위해 옥상에 오른 이웃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사진기를 든다. 「주먹은 거짓말이다」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는 석이는 어느새 자신에게서 아버지의 무서운 모습을 발견하고 만다. 차마 아버지를 떠날 생각을 하지 못하던 어머니도 폭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석이의 몸부림에 함께 집을 떠날 결심을 한다. 「내게도 날개가 있었다」 오랜 시간 따돌림당해 온 단짝 수진이의 죽음 이후 가은이는 또 다른 친구 한결이와도 멀어진 채 혼자만의 힘든 시간을 보낸다. 가은이는 수진이의 기일을 앞두고 우연히 한결이를 만나 수진이가 남긴 편지를 뒤늦게 전해 읽는다. 그즈음 학교에서 수진이를 괴롭혀 죽음으로 몰고 갔던 상미와 또다시 사건에 휘말린 가은이는 수진이의 편지에 적힌 마지막 부탁을 떠올리며 용기를 내는데……. |
어쩌면 조커는 우리 모두였는지도 모른다
궁금증을 일으키는 제목의 표제작 「조커와 나」에는 희귀병을 앓는 장애인 소년 정우와 우연히 정우의 학교생활 도우미가 된 선규, 그리고 정우를 괴롭히는 ‘조커’라는 별명의 친구가 등장한다. 언뜻 장애인 소년과 비장애인 소년의 우정, 그리고 장애인 소년을 돕는 친구와 괴롭히는 친구의 선악 구도로 흐를 것 같던 이 작품은 그러나 정우의 죽음 이후 서서히 밝혀지는 정우와 조커의 사연을 통해 악하게만 보이던 조커의 숨겨진 아픔을 비춘다. 작가는 그 과정에서 보기 드물게 10대 소년들의 심리 변화를 섬세하고 핍진하게 묘사해 독자들의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한 문장 한 문장 쌓아 올린 그러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선규가 조커가 아닌 그의 본모습 ‘조혁’과 마주하는 마지막 장면은 읽는 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커다란 울림을 자아낸다. 「조커와 나」는 선규의 회상과 정우의 일기를 오가며 구성과 서사에서 모두 한 사건을 다양한 시점에서 파헤친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기존의 김중미 작품 세계와 비교했을 때 색다른 문학적 성취로 평가될 만한 부분이다. 한편 아버지의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소년 석이의 이야기를 다룬 「주먹은 거짓말이다」에서는 과연 폭력에 대응하기 위한 폭력은 정의로울 수 있는지, 청소년들이 감당하기에 다소 벅찰지 모르지만 반드시 고민해 보아야 할 물음을 과감히 던진다.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던 석이가 그 상처와 울분에서 비롯된 자기 안의 또 다른 폭력을 발견하는 순간은 섬뜩하면서도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들 작품을 통해 작가 김중미는 인간을 단순히 선인과 악인으로 구분 지을 수 없다는 것과, 또한 우리 모두가 폭력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일 수 있다는 진중한 고민거리를 던진다. 힘으로 이기지 않고, 희망으로 이기는 법 세 번째로 수록된 단편 「꿈을 지키는 카메라」에는 학생을 성적에 따라 우열반으로 가르는 보충 수업을 거부하는 아람이와 재개발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시장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용산 참사를 환기하는 마지막 옥상 투쟁 장면은 오랜 시간 낮은 곳에서 약자들과 함께해 온 작가의 삶이 묻어나 더욱 가슴 찡하다. 그 밖에 「불편한 진실」과 「내게도 날개가 있었다」 두 편의 소설에서 작가는 학교 폭력과 학교 현장의 부조리한 일면을 고발한다. ‘학교 폭력’은 일견 그동안 청소년소설에서 수없이 되풀이된 단골 소재처럼 보이지만 김중미 소설에서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김중미는 단순히 학교 폭력의 잔인함을 소설 안에 옮겨 놓거나 폭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렇게 된 원인과 해법을 찾는 일에 더욱 집중한다. 공부방 활동을 통해 묵묵히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온 작가의 생생한 체험과 취재가 녹아 있는 「작가의 말」은 이러한 믿음에 힘을 싣는다. 「작가의 말」에서 김중미는 거대한 집단에서 겨우 몇 사람의 용기만으로 폭력을 끊을 수 없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렇다고 해서 세상을 탓하며 불의에 눈감아 버려서는 안 되며, 한 사람, 또 한 사람의 작은 용기와 회심이 모여 언젠가는 이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힘주어 말한다. 김중미 소설집 『조커와 나』는 이렇듯 우리 안의 폭력을 이기는 내 안의 용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저절로 주어지는 허황된 희망이 아니라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으로부터 작은 희망이 싹틀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태도는 더없이 믿음직하다. 용기를 내려 하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다섯 편의 소설에서 청소년 독자들은 힘으로 이기지 않고, 희망으로 이기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