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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와 죽은 자
파헤쳐진 무덤 7 | 문정관 14 시대 출항 29 | 중인 36 | 영길리 45 | 인신무외교人臣無外交 50 중인의 꿈 일행 61 | 새남터 65 | 역관 75 | 추사의 제자들 83 | 연경과 서화 97 | 스승의 지인들 103 | 천죽재도天竹齋圖 113 서양 선상 쟁론 119 | 화란인의 후예 127 | 해국도지海國圖志 134 | 상하이의 조선인 크리스천 147 | 황제의 가원 156 | 아씨 162 각성 이와다의 여인들 169 | 불타는 원명원 173 | 열하문안사熱河問安使 179 | 연암의 손자 184 | 북경의 봄 195 | 왜관 201 교난 파리에서 온 조선인 213 | 운현의 사람들 220 | 아라사 228 | 위험한 시도 235 | 사학죄인 245 | 천주의 뜻 248 | 폭풍 전야 257 실기 숨겨진 기억 265 | 씁쓸한 승전보 274 | 엘리베이터를 탄 청국인 280 | 두 문도 289 | 실기失機 294 | 만국공법 301 | 서계 310 | 신미년 321 | 원정 329 전운 개화파의 탄생 339 | 천진기기국 352 | 부산에 온 군함 360 | 삼산무 371 | 기묘한 희망 381 | 대원군의 실각 392 | 전운 398 급진 암살자 409 | 투쟁과 공방 415 | 노대신의 간청 424 | 결렬 427 | 줄탁동시 ?啄同時 443 병자년 인력거 안의 대화 449 | 이양선 458 | 강화도 467 | 회선포 493 | 암약 509 | 술을 따르거나 침을 뱉거나 550 | 처단, 세 발의 총성 559 외전 外傳 작가의 말 581 사실과 허구 5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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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장대를 돌며 죄인의 머리를 살폈다. 총탄이 오른 턱뼈를 부수며 지나간 자국이 있었다. 얼굴을 움켜쥐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옥균의 모습이 보였다. 뒷머리에도 정통으로 뚫린 총탄 구멍이 있었다. 저 일발이 숨통을 끊어놓은 게 틀림없었다. 뒤통수를 저토록 정확히 맞출 정도면 몸이 포박되어 있었거나, 가까스로 꿈틀대는 정도였을 것이다.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 뒤통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 곤두박질치는 머리. 이 모든 광경이 남자의 머릿속에서 펼쳐졌다.
--- p.7 “귀국의 대신은 강화에 도착하면 가능한 한 위엄을 과시하시오. …… 최대한 국위를 펼치시오. 그대들은 이 뜻을 잘 이해하길 바라오.” --- p.28 “선생께서 알고 계신 오역매 선생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모리야마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글쎄요……, 홀로 무언가를 본 사람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뭔가 그만의 특별한 사명을 짊어진.” --- p.125 “남자 세상에서 아녀자는 종처럼 살아왔고 양반 세상에서 상놈들은 소처럼 살아왔습니다. 그것은 남자들과 양반들이 지식을 독점해왔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여자들과 상놈들이 무식해서지요. 여자들도 스스로 배워야 합니다. 계속해서 종처럼 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연희는 대치의 말에 가슴이 뛰고 눈앞이 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 p.167 “다묵 형제님, 대원위 대감께서 주교님을 만나겠다고 하셨습니다! 형제님은 빨리 두 주교님을 서울로 모셔 오세요.” “아! 이제 조선에도 천주님의 은총이 내리게 되었군요. 요한?翰(남종삼) 형제님도 고생하셨습니다. 그런데 주교님들이 지방에 비밀 순회를 하고 계시니 연락이 닿는 데 시간이 좀 걸릴 듯합니다.” “이런 일은 지체되면 안 됩니다. 형제님, 서두르십시오.” --- p.242 그날 경석의 꿈에 멀리 석양을 등진 대원군이 나타났다. 분명 대원군의 모습이었는데 윤곽일 뿐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손에는 무언가를 들고 있었는데 붓 같기도 했고 칼 같기도 했다. 그를 부르는 것 같았으나 대원군이 맞는지 모호해서 다가가지 않았다. 괜히 다가갔다가 저자의 칼에 맞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난감해서 버둥거리다가 잠에서 깼다. --- p.279 “우리나라의 개혁을 이루려면 뭘 해야 하는가?” 경석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사실 경석의 얼굴은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곤 시종 진지했다. “먼저 동지를 구해 혁신의 기운을 일으켜야 하네. 우리끼리 떠드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 혁신의 기운……. 조선인들은 여태껏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유가의 경전에서도 보지 못했고 부처의 말에서도 듣지 못했다. 인仁의義예禮지智충忠으로 풀이되는 조선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던 말이었다. --- p.310 “서양인들은 이렇게 인사를 한다네. 양인들 말로 ‘셰이크 핸’이라 하지.” 그러고는 위아래로 흔들었다. “셰이크…… 핸……?” “그렇다네, 셰이크핸. 셰이크핸에는 양반도 상놈도 다 똑같다네.” 그의 왼손이 맞잡은 옥균의 손등을 덮었고 옥균도 그 위에 왼손을 올려놓아 그들은 두 손을 포갠 채 맞잡고 흔들었다. 순간 옥균도 웃음을 터뜨렸다. --- p.350 인력거의 위대함은 그 기술에 있지 않다고 역매는 말했다. 그것은 양반이나 상놈이나 심지어 기생도 돈만 주면 탈 수 있으며, 그 값도 누구에게나 똑같다는 것에 있다는 것이었다. 개화는 서양의 교묘한 물건을 들여오는 일이 아니었다. 누가 먼저 서양과 통교하느냐의 싸움도 아니었다. 개화는 스스로의 손으로 봉건과 구제를 깨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문제였다. 역매는 평생 차마 입에 담지 못했지만, 실은 이 말을 하고 싶어 했다는 걸 이와다는 언제부턴가 알 수 있었다. --- p.412 이 모든 건 그간의 무지와 오류에 대해 우리나라가 치러야 할 대가이고, 자신은 누군가 해야 할 일을 떠안는 것뿐이라 마음먹기로 했다.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굴욕적이면 굴욕적일수록 조선이 받을 충격과 각성은 클 것이었다. 하지만…… 경석은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사사문안의 문구가 머릿속을 감돌면서 차오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 눈물은 분함이기도 했고 죄책감이기도 했으며 지난 무지의 시간에 대한 원망이기도 했다. --- p.544 이것이 민승호를 날렸던 운현의 비기인가. 경석은 몸을 숙여 상자에 귀를 가져다 댔다. 상자 안에서 기계음 같은 미약한 소리가 들렸다. 과연 운현이 날 죽이려는 건가? 경석은 비장한 목소리로 아내에게 말했다. “식구들을 다 데리고 대문 밖으로 나가시오! 하인들까지 전부 다!” --- p.547 “조선이 개혁되리라 믿는가?” 대치가 물었다. “조선이 개혁될 것을 장담하진 못하지만 개혁되지 않으면 민족의 대재앙이 올 거라는 건 확신하네.” 대치는 고개를 돌려 경석을 쳐다보았다. 저 친구는 대체 무엇을 본 걸까? --- p.5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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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애국이란 무엇인가.
무너진 몸을 끌고 고군분투했던 조선역관 오경석. 조정의 뜻에만 따랐다면 애국했다 기록됐겠지만, 뻔히 보이는 백성의 고통과 나라의 멸망은 어찌하는가. 백성을 위해 방도를 구하는 일이 과연 매국인가. 차라리 우리에게 대포를 쏴라. 조선역관 오경석 선생은 묫자리가 명확하지 않다. 김상규 작가는 몇 줄 근거를 들고 묘지 인근을 여러 차례 찾았지만, 분명한 자리를 발견할 수 없었다. 강화도조약 관련해서 매국노로 몰려 파헤쳐졌거나 해주 오씨 문중의 사정 때문으로 보인다. 작가는 오세창과 오경석의 이름과 사연 사이에 묘한 일이 있다는 것을 어느날 발견했다. 특히, 오경석이 일본 배에 올라 차라리 대포를 쏘라는 대목에 이르러 눈이 번쩍 뜨였다. 당시 조선의 상황이 답답했고 청의 몰락이 놀라웠으며 서계 문제로 다투던 일본과의 관계가 긴장으로 팽팽했는데, 문정역관이라는 조선의 관료가 대포를 쏘라니, 이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지 작가는 놀라움과 설렘으로 조사에 열을 기울였다. 작가는 말한다. 오경석 선생은 여타의 단순 역관이 아니었다고. 그의 주변을 둘러싼 인물들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하나같이 조선 말의 마루지로서 부족하지 않았다. 고종, 대원군, 박규수, 김정희, 김옥균, 유대치 등과 청의 관리들과 일본 외교관들 그리고 사랑하는 스승들까지. 당시의 신분으로 있을 수 없는 인맥과 식견을 갖춘 인물이었다. 특히 서화에 대한 식견은 아들 오세창에게 고스란히 이어져 간송 전형필로 건너가는 역사적인 작업으로 마무리될 정도였다. 작가는 그렇게 꽤 오랫동안 선생을 붙들고 있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선생을 제대로 알려야겠다고. 우리는 이 작품에서 거대한 산봉우리 두 개를 마주했다. 하나는 역관이자 선각자 오경석의 삶이었고, 하나는 상하이로 향하는 망명자 김옥균의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박규수의 사랑방에서 사제가 된 사이였으니 어쩌면 둘이면서 하나같고 하나인 듯 둘인 느낌이었다. 문정관으로 일본 배에 올라 차라리 대포를 쏴달라고 했던 오경석 선생이나 나라를 뒤집어 통교와 개화를 실현하려던 김옥균이나 어쩌면 도달해야 할 지점은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흔한 주제와 흔한 인물의 영웅적 서사는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다.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며 애를 끓이던 지식인으로서의 고심과 분투가 전체를 관통하는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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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전형필에게 국보 환수를 깨우친 이가 오세창이라는 증거들이 있다. 오세창이 서화에 눈을 뜨고 가치를 매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부친 오경석 덕택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애국자인가 하면 대부분 고개를 갸웃한다. 심지어 오경석의 묘는 묘비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폄하되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매국노인가 했을 때 나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에는 우리가 알만한 유명인이 모두 등장한다. 대원군, 김정희, 박규수, 유대치, 김옥균, 고종까지. 당시 조선의 수구세력과 세계 정세에 밝은 통교 세력을 아우르는 사람들이다. 놀랍게도 그 중심에 오경석이 있다. 오경석은 역관이었다는 사실만 기록되었을 뿐 내면까지 들여다본 글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번에 이 책이 나오지 않았다면 선생에 대한 무관심은 더욱 깊어졌을 것이다. 이 책은 현대 애국의 의미를 새삼 일깨운다. 특히,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불리함의 상황에서 애국인가 실용인가의 문제도 고심하게 만든다. 역사서나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책이 아니므로 물론 재미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흥미롭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고 나만 몰래 읽고싶은 책이다. 그럼에도 적극 읽으시기를 추천드린다. - 원동우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