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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미나의 시간
- 오늘의 종착지는 따뜻한 온기 - 1인분의 사랑 - 길고양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 수수께끼를 푸는 심정으로 - 카프카의 시간 - 이제는 안녕이라고 말해야겠어요 - 새로운 신호를 감지했습니다 - 너의 세계에서 여전히 - 운명이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두드렸다 - 끝나지 않은 계절 속 우리는 2부 - 우리가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해 같이 음악 들어주는 사람 우리가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해 29살의 겨울 편지 핑크색 양말 그로부터 아주 먼 훗날 모기 안녕 3부 - 바다 고양이 어떤, 진실 같은 것 파인애플 바다 Ⅰ 바다 Ⅱ 인스타그램 사진을 영화로 만들어드립니다.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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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195개의 나라, 그중 인구 15만 명이 넘는 4,416개의 도시 중에 하필 이 시점에서 프라하가 나올 확률은 몇 퍼센트일까. 순간 강한 펀치 한 방에 쓰러진 복서가 보였다. 숱한 잽을 요리조리 잘도 피했으나 마지막 라운드에 가서 깊고 날이 선 펀치를, 복서는 기어이 맞고 말았다. 마지막 종소리가 울리지만 복서는 일어나지 못했다. 딱 지금 내 감정이 그랬다. 죽을 만큼 숨을 헐떡이며 링 위에 쓰러진 복서의 마음처럼. 망연자실한 채 누워서 까만 천장을 바라보다 결국 눈을 감아버리는 복서의 시간을, 나는 천천히 더듬고 있었다.
--- p.38 「미나의 시간」중에서 우리는 방향을 잃고 정처 없이 떠도는 낙엽의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때 깨달았어야 했다. 우리가 어떤 목적지도 없는 공허한 시간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음을. 절벽으로 끝없이 낙하하는 자물쇠 열쇠 뒤로 그저 아득한 밤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 p.55 「미나의 시간」중에서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횡단보도를 우르르 건너가고, 몰려왔다. 꼭 물결치는 큰 파도처럼 사람들이 밀려오고 쓸려가는 시간. 이 시간을 연속 촬영해 연결하면 우리는 머지않아 바다가 될 것이다. --- p.69 「미나의 시간」중에서 바래진 시간 속에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결정적 장면. 문득 그 애에게 썼던 부치지 못한 편지들을 떠올렸다. 일 년이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편지들을 갈기갈기 찢어서 버릴 시간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 편지들을 수없이 어디론가 내던졌으나 조각난 잔상들은 여전히 내 안에서 나뒹굴었다. 그로부터 수많은 계절이 지났음에도 나는 여전히 여기, 한겨울에 살고 있었다. 한 줌의 빛을 받아 자라나고 시들기를 반복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거리며. 겨울잠을 자는 짐승들 옆에서 눈이 쌓이고 녹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땅바닥을 짚은 손바닥에 미약하게 꿈틀거리는 봄의 태동이 닿길 바라며 나는 계속 이곳에 머물러있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내가 한때 소유했던, 영원할 것만 같았던 장면들이 차츰 사라졌다. 언 땅바닥에 뺨을 대고 누웠다. 어떠한 미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삶 속에서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그 애의 장면들을 수집하는 것뿐. 그 애의 세계 속에서 여전히 살고 있었다. 나는. --- pp.111-112 「미나의 시간」중에서 우리는 말없이 벤치에서 한강을 바라봤다. 물결은 갓 잡아 올린, 숨을 펄떡이는 생선처럼 출렁거렸다. 나는 한 손을 들어 허공에서 물결을 쓰다듬었다. 꼭 생선의 눈을 감겨주듯이,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추모하듯이. “우리가 친구가 되어서 그런가 봐. 기분이 너무 좋아졌어.” 쥐가 눈을 반쯤 감으며 말했다. “술 때문이야.” 나는 애써 그렇게 말했지만 술을 마시기 전부터 기분이 좋아진 것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잡히지 않았던 하루의 끝이 이제야 온전히 잡힌 것 같았다. --- p.239 「고양이」중에서 하늘에는 학생의 흰 손목을 닮은 낮달이 구름에 가렸다가 나왔다가 했다. 꼭 심폐소생술 박자에 맞춘 것처럼. --- p.247 「어떤, 진실 같은 것」중에서 우리 앞에 펼쳐진 한강은 조용했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사실 파인애플 같은 사람들이라고. 그런 생각을 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 p.257 「파인애플」중에서 소녀가 다녀간 다음, 또 며칠을 거기 있던 기억들을 주워 담아 간신히 살아갔어. 소녀를 생각하는 일, 춥고 어두운 밤 언저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으니까. --- p.268 「바다 Ⅱ」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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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두드리는 애틋한 연애소설 「미나의 시간」,
한강을 배경으로 한 짧은 소설 열네 편. 그리고 작가가 직접 촬영한 꽃 사진까지 다채로운 서사가 인상적. 표제작 소설 「미나의 시간」은 이별을 경험한 여성 내면의 흐름에 집중하면서 그녀가 지나온 겹겹의 계절을 섬세히 그려냈다. 작가는 눈부시고도 아릿했던 시절을 뒤로 하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주인공을 통해 사랑으로 아파하는 이들에게 위로와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며 그들을 따스한 세계로 인도한다. 또한 오랫동안 꽃을 응시하며 찍은 작가의 사진들은 소설의 온도를 높인다. 운명이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불쑥 찾아오는 것을 나는 경계하고 또 경계했다. 어쩌면 지금껏 그 애로부터 쌓아온, 내가 만든 모든 의미가 한순간에 사라질까 봐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내게 다가온 운명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그 애와의 시간 속 아무 의미 없던 것들에 나는 이름을 붙이고 또 생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그 애의 세계 속에서 매일 나무 한 그루씩을 심었다. 마침내 나무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것을 천천히 지켜보면서 속으로 기뻐했다. 언젠가 그 애가 이곳에 찾아와 우거진 저 나무들을 마주하게 되리라.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오만한 생각도 하게 되었다. 어느덧 고개를 돌려보니 내가 서 있던 그 애의 세계는 거대하고 울창한 숲이 되었다. 나의 운명은 지도를 들고 이 숲을 개척해나가는 것. 그리고 동시에 그 애의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온전한 나의 길을 찾는 것. 문득 프라하에 함께 가자고 했던 그 애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 시절 끝내 이루지 못했던 우리의 약속이 지금 내 앞으로 굴러온다. 나는 그것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어떤 맑고 애틋한 빛을 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한없이 푸른색이기도 했다. 고심 끝에 그것을 잡기로 마음먹었다. - 「미나의 시간」 124p 생경함 대신 익숙함으로, 경쾌한 문장으로 서술된 산뜻한 이야기들. 세계를 확장시키는 힘. 열네 편의 짧은 소설은 모두 한강을 배경으로 진행되며 익숙하면서도 다채로운 서사가 돋보인다. 재기발랄한 문체로 섬광처럼 지나가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은 물론, 독자들에게 안개가 걷힌 아스라한 생의 풍경을 선사한다. 나는 버스가 지나는 방향을 바라보며 웃으려고 노력했다. 얼굴이 조금 일그러진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손도 흔들었는데 잘 찍혔으려나. 740번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내가 온전히 잡을 수 없었던 과거의 어떤 시간들처럼. 마음 붙일 곳 없던 요즘에 불씨 하나가 튀어 연기가 피어올랐다. 점차 해가 기울어지자 윤슬이 한강 전체를 감쌌다. 사방에서 플래시를 터트리듯 아른거리며. - 「안녕」 225-226p 물살을 가르며 천천히 나아가는 일. 세상에 무엇 하나 하찮은 존재는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나는 끊임없이 물방울 사이로 미끄러지고 부딪혔다. 어떠한 기약도 없이 최선을 다하는 삶에 대해. 드넓게 펼쳐진 바다에 다다르기를. 그리고 바다를 꿈꾸는 일은 멈추지 말 것. 물속에 떠다니는 분절된 문장을 잡아 가파른 호흡으로 내뱉었다. 들을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 「바다Ⅰ」 262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