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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샌정 최상아 이재헌 임충섭 정경빈 관객의 시간 작가의 말 나가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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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주, 샌정
화가가 흰 화면을 대하는 것처럼 실시간으로 공간을 넘나드는 이 이어짐은 나에게도 새로운 공유 방식 중 하나다. 이것이 어떤 감정적 변화를 만들어 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볼 것인가. 실시간으로 내보내지만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보려 하는가? 그것은 그림이 이야기하는 것인가 내가 얘기하는 것인가? 침묵과, 움직임이 거의 없는 정지에 가까운 화면을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내보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라이브에서 사람들은 전시를 관람할 때처럼 자유롭게 드나든다. 그러나 멈추지 않고 변화하는 움직임에 대한 기대에는 부응하지 못한다. 그들이 어느 시간을 누구와 함께 보냈는지는 나는 알 수 없지만, 머무름의 시간 안에서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내 역동적인 에너지를 누군가는 발견할 것이다. 이 공간에서 내가 그림을 보는 행위와 그 행위를 바라보는 것 사이가 존재한다. 두 세상은 과연 다른 것인가? 그림을 바라본다는 것은 일종의 시간을 역추적하는 것이다. 흔적을 따라가는 것, 그 순서를 아는 것이 과연 의미 있을까? 그림의 시작과 끝은 과연 중요한가? 만약 그렇다면 나는 길을 잃은 것일까? 그림은 과연 소용돌이치는 작가의 마음을 얼마만큼 담아내고 있는 것일까? 질문의 시작은 그림의 시작처럼 희미하다. 그저 방향을 가진 붓질이 있을 뿐이다. 어디서부터든 방향을 연상시킬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한다면 거기서부터 시작해보자. 내 호흡과 그림의 호흡이 일직선상에 놓이는 순간을 상상해본다. (중략) 공간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붓 끝을 통해 전달되는 추상적인 에너지는 마술적인 힘을 가진다. 염원 혹은 어떤 방향성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그것은 보는 이를 그리로 인도하려 노력하지만, 그 붓을 잡았던 이의 역사를 담은 레이어들과 붓의 움직임을 추측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어떤 답을 찾으려 한다기보다는 풀리지 않은 무엇인가가 나를 저절로 어디론가 이끄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