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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이방인 - 열린책들 세계문학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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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2011.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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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품의 시리즈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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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서문
제1부
제2부

역자 해설: 정직함, 또는 죽기로 하는 것
알베르 카뮈 연보

저자 소개1

알베르 까뮈

관심작가 알림신청
 

Albert Camus

그 모든 것에 항거하며 인간의 부조리와 자유로운 인생을 깊이 고민한 작가이자 철학자.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몽드비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알사스 출신의 농업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중 전사하고, 청각 장애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가난 속에서 자란 카뮈는 유년 시절의 기억과 가난, 알제리의 빛나는 자연과 알제 서민가의 일상은 카뮈 작품의 뿌리에 내밀하게 엉기어 있다. 구역의 공립 학교에서 L. 제르맹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났다. “나는 자유를 빈곤 속에서 배웠다.”라고 하기도 했는데, 알제리에서 보낸 유년기는 그가 작가적 양분을 공급받
그 모든 것에 항거하며 인간의 부조리와 자유로운 인생을 깊이 고민한 작가이자 철학자.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몽드비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알사스 출신의 농업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중 전사하고, 청각 장애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가난 속에서 자란 카뮈는 유년 시절의 기억과 가난, 알제리의 빛나는 자연과 알제 서민가의 일상은 카뮈 작품의 뿌리에 내밀하게 엉기어 있다. 구역의 공립 학교에서 L. 제르맹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났다. “나는 자유를 빈곤 속에서 배웠다.”라고 하기도 했는데, 알제리에서 보낸 유년기는 그가 작가적 양분을 공급받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의 도움으로 장학금을 받고 1923년 프랑스 중등학교 리세에 입학했고, 이후 알제리 대학에 입학했으나 1930년 폐결핵으로 자퇴를 했다. 결핵 발병으로 누구보다 좋아했던 축구를 포기했다.

바칼로레아 준비반에서 철학 교수이자 에세이스트인 장 그르니에를 만나 큰 영향을 받고, 이후 평생 그와 교류를 이어갔다. 어렵게 대학에 진학해 고학으로 다니던 알제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철학을 전공하는 동시에 정치 활동과 연극 활동에 집중했다. 1932년 장 그르니에가 주도한 조그만 월간 문예지 [쉬드Sud]를 통해 처음으로 첫 에세이 『새로운 베를렌Un Nouveau Verlaine』을 발표했다. 대학시절에는 연극에 흥미를 가져 직접 배우로서 출연한 적도 있었다. 결핵으로 교수가 될 것을 단념하고 졸업한 뒤에는 진보적 신문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 한때 공산당에 가입했던 그는 비판적인 르포와 논설로 정치적인 추방을 당하기도 했고, 프랑스 사상계와 문학계를 대표했던 말로, 지드, 사르트르, 샤르 등과 교류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몰입했다.

1937년 첫 산문집 『안과 겉』을 발표하고, 이듬해부터 [알제 레퓌블리켕]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1940년에 파리로 활동 무대를 옮겨 [파리수아르]의 기자가 된다. 독일에 점령당한 파리에서 검열을 피해 지방으로 옮긴 [파리수아르]를 따라 이동하는 동안에도 집필 활동에 매진한다. 초기의 작품 『표리(表裏)』(1937), 『결혼』(1938)은 아름다운 산문으로, 그의 시인적 자질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1942년 7월, 자신의 첫 소설이자 대표작이 되는 문제작 『이방인(異邦人) L' tranger』을 발표하면서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이즈음 레지스탕스에 가담하여 프랑스 해방 운동에 참여한 카뮈는 철학 에세이 『시시포스 신화』(1943), 희곡 작품 「오해」(1944) 등 다양한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저항운동에 참가하여 레지스탕스 조직의 기관지였다가 후에 일간지가 된 [콩바]의 편집장으로서, 모든 정치 활동은 확고한 도덕적 기반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에 바탕을 둔 좌파적 입장을 견지했다. 또 집단적 폭력의 공포와 악성, 부조리함을 알레고리를 통해 형상화한 소설 『페스트』로 문학계의 대반향을 일으켰고 1951년에는 마르크시즘과 니힐리즘에 반대하며 제3의 부정정신을 옹호하는 평론 『반항적 인간』을 발표하여 지성계에 큰 논쟁을 촉발한 사르트르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가 10년 가까운 우정에 금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1956년 『전락』을 발표하면서 사르트르에게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방인』, 『시지프의 신화』를 발표하며 문학가를 넘어 사상가로도 인정받기 시작했고, 실존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엄마, 무명인, 그리고 나의 ‘죽음’을 연달아 맞닥뜨리며 삶의 부조리를 고뇌하는 모습은 이후 오랫동안 수많은 독자를 실존주의의 세계로 이끈다. 「오해」와 「칼리굴라」라는 희곡을 쓰며 희곡 작가로도 활동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57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대문호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알제리 독립을 둘러싼 논쟁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 가지만, 카뮈는 생전 인터뷰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보다 더 부조리한 죽음은 상상할 수 없다.”라고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960년 1월 4일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이때 사고 차량에 있던 가방에서 초고 형태로 발견된 『최초의 인간』은 1994년에야 빛을 보게 된다.

이 외에도 『여름』, 『유배지와 왕국』, 『행복한 죽음』, 『정의의 사람들ㆍ계엄령』, 『결혼, 여름』, 『태양의 후예』, 『젊은 시절의 글』, 『스웨덴 연설ㆍ문학 비평』, 『최초의 인간』, 『여행일기』, 『단두대에 대한 성찰ㆍ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전락·추방과 왕국』, 『안과 겉』 등의 작품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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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김예령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파리 7대학에서 루이페르디낭 셀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의와 번역을 병행하며 『숭고에 대하여 ― 경계의 미학, 미학의 경계』, 『아귀』, 『육체의 악마』, 『조커,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 등 다수의 이론서와 소설, 어린이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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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9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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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50.36MB ?
ISBN13
9788932961361
KC인증

책 속으로

그냥 그 자리에서 뒤돌아서기만 하면 모든 게 쉽게 끝나리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그런데, 태양으로 전율하는 해변 전체가 뒤에서 나를 압박했다. (……)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그 뜨거움 때문에 나는 앞으로 한 발짝 움직였다. 나도 그것이 어리석은 행동임을, 그러니까 한 발짝 자리를 옮긴다고 해서 태양을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한 걸음을, 딱 한 걸음을 내딛고 말았다. (……) 나의 존재 전체가 송두리째 팽팽하게 긴장했다. 나는 경련을 일으키며 권총을 쥔 손에 발작적으로 힘을 주었다. 방아쇠가 굴복하고, 나는 권총 손잡이의 매끈한 배를 건드렸다. 그리고 모든 것이 거기서부터, 무미건조한 동시에 귀를 찢는 듯한 그 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 버렸다. 나는 내가 방금 낮의 균형을, 스스로 행복감을 느꼈던 해변의 그 예외적인 고요를 파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나는 꼼짝하지 않는 아랍인의 몸에 대고 또다시 네 발을 더 쏘았다. 총알들은 바깥으로 흔적을 드러내는 대신 몸뚱이 깊숙이 박혀 들었다. 그 네 발의 총성이 내게는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와도 같았다. --- p.84-85

어느 날이었다. 간수가 내게 말을 걸더니 내가 감옥에 들어온 지 다섯 달이 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을 믿기는 했지만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내게는 모든 게 언제나 독방 안에서 펼쳐지는 똑같은 하루, 한결같이 수행해야 하는 똑같은 임무였으니 말이다. 그날 간수가 떠나고 난 뒤, 나는 쇠 밥그릇에 얼굴을 비춰 보았다. 밥그릇에 비친 내 모습은, 심지어 미소를 지어 봐도 여전히 심각함을 잃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그릇에 비친 내 영상을 눈앞에서 마구 흔든 뒤 다시 미소를 지어 보았다. 내 얼굴은 여전히 방금 전과 똑같은 엄숙하고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날이 저물어 갔다. 이 무렵이야말로 내게는 언급하고 싶지 않은 시간, 감옥의 전층으로부터 저녁의 소리가 침묵의 행렬을 이루며 타고 올라오는 이름 없는 시간이었다. 나는 채광창에 다가가 사그라져 가는 마지막 빛 속에 반사되는 내 얼굴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얼굴은 여전히 심각한 빛을 띠고 있었다. 하긴, 뭐가 놀라운 일이겠는가? 그 순간의 나 자신이 그만큼 심각했는데. 동시에, 그리고 몇 달 만에 처음으로 나는 내 음성이 내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나는 그 목소리가 이미 오래전부터 내 귓가에 들려오던 말소리와 같은 것임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이 모든 시간 내내 내가 혼자서 말하고 있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엄마의 장례식 날 간호사가 했던 얘기가 비로소 머릿 속에 떠올랐다. 그렇다. 출구는 없었다. 그리고 감옥에서의 저녁나절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 p.111-112

지금 죽든 20년 후에 죽든, 어쨌든 죽는 것은 항상 나였다. 다만, 추론을 하면서 그 대목에 이르렀을 때 약간 곤란했던 것은, 앞으로 살 수 있을 20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 어마어마한 흥분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나로서는, 그 20년을 살고 어쨌든 다시 이런 상황에 이르렀다 할 때, 그때 내 생각은 과연 어떠할 것인지를 상상하며 흥분을 억누르는 방법밖에 없었다. 사람이 죽는 순간을 놓고 보면, 언제 어떻게 죽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따라서…… (난점은 추론에서 이 〈따라서〉라는 말이 대변하는 모든 것을 결코 시야에서 놓치지 않는 데 있다) 따라서, 나는 항소를 거부하는 편을 택해야 했다.

--- p.156-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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