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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우리들』은 29세기를 배경으로 한 환상과 리얼리티, 의식과 무의식을 그리는 소설이다. 『우리들』의 배경이 되는 곳은 끔찍한 〈2백 년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지구 위에 세운 나라 〈단일제국〉이다. 단일제국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개인〉이라는 가치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들 속의 하나〉만이 있다. 그들에게는 이름이 없고 대신 번호가 부여되며, 똑같은 청회색 제복을 입고, 완전히 투명하게 드러나 보이는 유리 건물에서 산다. 단일제국은 지상의 신으로 군림하는 독재자 〈은혜로운 분〉의 영원한 통치를 받으며 〈보안요원〉들의 철저한 감시 속에서 유지된다. 단일제국 사람들의 삶 전체는 〈시간 율법표〉의 통제 안에 있는데 동일한 기상·취침 시간은 물론 한시간 한시간이 시간표로 짜여 있다. 심지어는 음식을 삼키기 전에 몇 번을 씹어야 한다는 것조차 규정되어 있으며 성(性)에 대한 것조차 적절한 번호끼리 〈등록〉하는 형태로 국가에서 철저히 통제한다. 이 소설은 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 미지의 존재들조차 단일 제국의 권력아래 복속시키기 위하여 우주선 〈인쩨그랄〉을 만들면서 힘이 닿는 번호들에게 단일제국에 대한 글을 남기라는 명령에 따라 남성 번호 D-503이 기록한 글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모든 변호들과 마찬가지로 D-503은 단일제국과 〈우리〉를 절대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는 번호며 우주선 〈인쩨그랄〉 호를 만들고 있는 조선(造船) 담당 기사다. 그는 단일제국의 통치 형태가 인류에게 가장 적절하고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단일제국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독특함〉을 지닌 여성 번호 I-330을 만난 후 그의 가치관에는 조금씩 틈이 생기게 된다. 처음에는 단일제국의 규칙을 무시하는 그 여성 번호의 행동에 반발했으나 결국은 굴복하여 I-330의 부탁이나 명령이라면 시간 율법표를 어기기도 하고 거짓 진단서를 받아 작업에 불참하기도 한다. I-330은 완벽하고 철저한 통제 속에서도 생겨난 단일제국에 반대하는 무리 〈메피〉들 가운데 하나인데, 그들은 단일제국을 무너뜨리고 〈개인〉의 가치를 찾으려는 계획을 진행시킨다. 독재자 〈은혜로운 분〉을 다시 지도자로 선출하는 〈만장 일치의 날〉 행사장에서 그들은 반대 거수를 하여 혼란을 일으키지만 보안요원들의 감시 속에서 흐지부지되고 만다. 계속해서 자기가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억제하려고만 했던 D-503은 이날 혼란 중에 부상당한 I-330을 구출해 내면서 자기가 I-330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D-503이 자기에게 완전히 빠져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 I-330은 D-503에게 〈녹색의 벽〉 너머에 〈인간〉들이 사는 곳을 보여 주고, 우주선 인쩨그랄의 시험 비행을 하는 날 인쩨그랄을 탈취하려는 그들의 계획에 시험 비행 책임자인 D-503이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메피〉들의 계획은 D-503이 기록해 오던 글을 읽고 사건을 짐작한 또다른 여성 번호 U가 잘못된 길(?)로 빠지려는 D-503을 염려하여 보안국에 신고하는 바람에 실패한다. I-330은 그 동안 갈팡질팡하던 D-503이 신고했다고 의심하지만 U는 D가 사랑하는 여성 번호 I-330을 신고하면 자기를 미워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D-503의 번호만을 신고하였기에 그만 〈은혜로운 분〉에게 불려가게 된다. 〈메피〉들이 자기를 이용한 것이라는 의혹에 빠지기도 하기만 D-503은 끝내 아무것도 밝히지 않은 채 돌아온다. 그러나 단일제국에서는 〈위대한 수술〉이 개발되어 모든 번호들을 강제로라도 수술시켜 단일제국의 가치 기준에 절대 복종하도록 만든다. D-503 또한 끌려가 수술을 받게 되고, 깨어난 후에는 자기가 관여했던 모든 사실을 〈은혜로운 분〉에게 털어놓는다. 그는 자기가 I-330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들, 혼돈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만 자기가 병에 걸렸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잡혀 와서 죽어 가는 I-330을 보면서도 아무런 느낌을 갖지 않았고, 〈메피〉들의 처형을 보면서 오직 〈이성을 배신한 사람들〉을 하루빨리 처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기록을 끝낸다. 구 소련은 『우리들』을 소비에트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간주하였으며, 자먀찐은 〈마지막 숫자가 없듯이 마지막 혁명도 없다〉라고 단언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자기가 속한 부르주아 계급을 파멸시킨 사회주의 혁명에 반대하고 있다고 지적해 왔다. 따라서 『우리들』은 소련 내에서 출판이 계속 금지되어 오다가 고르바초프의 뻬레스뜨로이까 선풍을 타고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다. 『우리들』은 전형적인 반(反)유토피아 소설로 헉슬리A. Huxley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오웰G. Orwell의 『1984』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 〈단일제국〉은 집단화와 획일화를 지향하는 소비에뜨 체제에 대한 풍자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독자는 자먀찐의 비판 대상이 어떤 특정한 권력 구조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일 수 있음을 방해하고 압살하는 모든 제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또한 이 소설에서 제시되는 인간의 소외와 순응, 자유와 행복의 배타적 관계, 균등주의와 개인성의 말살 등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하는 문제이다. 특히 자유에서 도피하려 하고 군중 속의 고독과 자아의 상실을 체험하며, 개인의 존재감이 파괴된 고도의 산업 사회를 사는 현대인에게 그것은 더욱 절실한 문제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