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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트
아침은 함부르크로 온다 …… 11 산책, 109 …… 45 저기 소수가 있다 …… 73 기유 이야기 …… 107 대기맨 …… 135 한밤의 세마젠 …… 173 法그릇 …… 203 무인도 랩소디 …… 233 작품해설 함께 가요, 기이하고 다정한 세계에 / 강민희 …… 263 |
李根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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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함부르크로 온다
아버지의 졸음운전 이후 우리 가족은 여러 가지 일을 겪은 후에 장례식장이 내려다보이는 요양원 7층의 구석진 곳에 있는 병실에서 살게 된다. 어려서부터 몸이 서서히 마비되는 병을 앓아 서른 살부터는 목 위쪽에만 감각이 살아남은, 그러나 터치펜을 입에 문 채, 그것으로 노트북의 화면을 조정하는 동생 병우와 졸음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내고 엄마가 돌아가시자 정신줄을 놓쳐버린 아버지가 전부다. 좀처럼 변화가 없을 것처럼 보이는 일상을 뒤흔든 것은 대학 시절에 보았던 안젤라다. 그녀는 ‘아버지와 동생과 나까지 사내 셋만 살고 있는 우리의 대기권’, 좀처럼 포장할 수 없는 가족사에 거의 무단으로 진입하여 전에 없던 변화를 이끌어낸다. 안젤라가 알려준 병우의 비밀 덕분에 나는 야간 경비 일을 그만두었고, 요양원 근처에 빌라를 샀으며, 요양원이 정한 날짜 이전에 병실을 비울 수 있었다. 산책, 109 여강은 작업실과 계곡마을인 적동을 오가는 인물이다. 그리고 ‘나’는 ‘여강’의 산책이 몇 회인지를 헤아릴 수 있고, 그녀의 육체는 물론, 감정변화마저 포착할 수 있는 그녀의 태아다. 여강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산책을 반복하는 이유는 그녀가 만철과 살고 있는 적동의 재개발로 두 사람의 의견차가 좁힐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고, 속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친구 ‘수’에 대한 그리움이 가볍지 않아서이다. 나의 생각이 여강에게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과 달리, 여강은 나에게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영향력은 나의 방대한 기억이 티끌처럼 흩어져버릴 미래 즉, 자궁을 벗어나는 순간에야 멈출 것이다. 문제는 여강과 나에게 이 순간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을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한 형태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앞으로 세 사람은 어떻게 될까? 기유 이야기 물이 고여 있는 못이 일상성을 유지하려면 쉼 없는 자정작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못의 한 귀퉁이에 어린이가 누워있다면 어떨까?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슨 일인지 알고 싶었다. 왜 고개를 돌릴 수 없고, 손과 다리를 굽힐 수도 없으며, 눈을 감을 수 없는 건지도. ‘엄마’는 ‘기유’의 헤져서 너덜너덜한 비니 조각을 입에 물고 온 강아지 ‘기유’를 “쓰레기 뒤지지 마. 더럽잖아.” 라며 혼내기까지 한다. 지척에서도 ‘기유’를 발견하지 못하는 ‘엄마아빠’. 이런 두 사람이기에 그들이 한참을 옥신각신한 후 경찰서로 가는 순간 ‘기유’는 물속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기유’로 은유되는 ‘아주 소중한 것을 잃어버려’ 장차 후회할 ‘엄마아빠’의 모습으로 우리가 잃어버린 ‘아주 소중한 것’이 있지 않는지……. 대기맨 사장 할머니의 운전기사였던 아버지는 경찰이 마약 밀매업자 황 씨를 검거하기 위해 황 씨의 어머니인 이 씨의 저택을 급습했던 날, 마약견에게 다리를 물어뜯기는 바람에 수술을 세 번이나 받았다. 엄마가 ‘소심한 남자가 고용주에게 과잉 충성을 바친’ 결과라고 말하는 이 사건 이후 아버지는 사장 할머니에게 다가오는 낯선 이를 막기 위해 내내 긴장해야 했던 운전수이자 경호원이라는 자리를 잃고, 저택 앞 골목과 주변을 비추는 CCTV의 녹화 테이프를 다시 돌려 보고 얻은 정보 즉, 저택을 주시하는 잠복 경찰이나 수상한 사람의 동태를 살핀 후에 보고하는 것. 아버지 말에 의하면 세상을 구경하는 일을 얻는다. 아버지는 옥상에 앉은 채 고깔모자의 뾰족한 꼭대기 또는 하늘의 일부거나 집의 연장선으로 보이는 ‘대기 씨’가 되어가는 대신 자신과 가족의 일상을 지키는 데 성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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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단편소설 「아침은 함부르크로 온다」로 현진건문학상을 수상한 이근자의 두 번째 소설집 『산책, 109』가 출간되었다.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 다양한 면모를 지닌 인간 군상들을 다층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보면서 우리가 아름다운 세계가 아니라 폭력이 날로 입지를 넓히는 세상에 발 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여기에 일상이 된 탓에 다시 보기가 피로함에도 소설이 일상화한 폭력을 다루는 이유가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기준은 늘 상대적이고 가변적이기에 폭력의 주체를 제외하면 누구도 알 수 없고, 현실에서 대비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우며, 일어난 뒤에는 되돌릴 수 없다. 이 때문에 우리는 소설 속의 타자와 그들을 향하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마주하면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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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대체로 어떤 교훈적인 메시지를 포함하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이야기를 읽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결말을 기대하고 예상한다. 우리는 불청객들이 뒤흔들어 한층 더 생경해진 세계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그리고 어렴풋하나마 이 낯설고 섬뜩하며 피로한 불편함은 형형히 빛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은 관성으로 유지되어 온 모순을 벗겨 내고 우리 안에 숨죽인 채 은거하였던 부정적인 측면들, 그래서 한층 본능에 가까운 면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이제 이근자의 손과 혀를 따라 그가 직조한 기이하고 소박한 윤리의 세계로 갈 시간이다. - 강민희 (문학평론가. 대구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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