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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ichi Sato,さとう けんいち,佐藤 賢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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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이 무겁고 진지하다는 편견을 버려!
소설은 '위대하신 선조 드니 쿠르팡이 남기신 회상록의 번역 출간을 특별히 허락한다'는 '벡생 후작 드니 9세 드 쿠르팡'이라는 인물의 엄숙한 서문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웬걸, 주인공 드니 쿠르팡은 부잣집 아들이란 것 말고는 내세울 게 없는, 작달막한 키와 볼품없는 외모에 늘상 야경대 부하들에게 무시당하고 걸핏하면 훌쩍거리기나 해 ‘울보 드니’라고 놀림받는데다 스물두 살이 되도록 여자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소심하고 한심한 청년. 그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옛 가정교사인 마지스테르 미셸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한다. 명석한 두뇌와 천재적인 추리력으로 사건을 척척 해결해나가는 미셸은 카르티에 라탱에서 가장 촉망받는 수도사이자 모든 여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희대의 바람둥이. 구두 장인 자크 루브르의 실종 사건을 시작으로 이들이 파리 곳곳에서 발생한 몇 건의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생 테스프리 기숙사를 중심으로 하는 모종의 세력의 존재가 드러나고,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갈등 속에서 사건은 기독교 신학의 근간을 위협하는 거대한 음모와의 싸움으로 확대되어간다…… 16세기 파리의 역사와 풍속에 대한 자세한 고증, 신-구교의 갈등과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인 논쟁, 그리고 의문의 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 등 언뜻 무겁고 난해하고 철학적인 소설일 것 같은 냄새를 풍기는 내용이지만, 『카르티에 라탱』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코믹한 인물 설정과 익숙한 장르적 관습의 차용, 때로는 만화적 상상력과 과감한 성(性) 묘사까지 역사소설의 관습을 뛰어넘는 온갖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뒤섞어놓음으로써 역사소설에 대한 우리의 기대(?)와 통념을 유쾌하고 경쾌하게 비틀어놓는다. 소설 속에서 되살아나는 교과서의 위인들 1530년경, 카르티에 라탱은 신-구교 사이의 갈등으로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그런 가운데 프로테스탄트 운동의 지도자 장 칼뱅을 비롯, 예수회 창설자 이그나티우스 로욜라, 일본에 기독교를 전파한 프란시스코 사비에르 등 훗날 역사에 이름을 떨치게 될 위인들이 실제로 모두 비슷한 시기에 이곳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카르티에 라탱』에서 이들은 주인공 드니 쿠르팡과 마지스테르 미셸을 돕는 비중 있는 조연으로 등장해 친근한 모습을 보여준다. 음울하고 깐깐한 칼뱅, 단순 무식 과격한 대머리 아저씨 로욜라, 선량한 인상의 모범생 사비에르 등, 교과서에 등장하는 성인(聖人)을 소설 속에서 살아 있는 인물로 접하는 것은 역사소설을 읽는 또다른 재미다. 또, 이야기 곳곳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노트르담 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 등도 카메오로 슬쩍 등장한다. 역사학자와 소설가의 길 사이에서 작가 사토 겐이치는 일본 작가로는 특이하게 서양 중세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가이다. 도호쿠 대학 대학원에서 서양 중세사를 전공하던 중 워드프로세서 연습 삼아 석사논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대사를 붙여본 것이 소설 스바루 신인상 최종심까지 오른 것을 계기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는 역사학자와 역사소설가의 길 사이에서 한동안 고민하다 결국 소설가의 길을 택한다. 그 이유에 대한 작가의 답은 이렇다. "조금 억지스런 비유지만, 역사학자의 작업이 역사적 사실의 시체를 해부하는 것이라면, 역사소설가는 역사적 사실을 살아 있는 것으로 붙잡을 수 있다는 거지요." 역사학을 전공한 만큼 그는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 풍속에 대한 완벽한 고증을 바탕으로 역사의 전면에 드러나지 않은, 그러나 가능할 법한 틈새의 이야기를 소설의 소재로 끌어올린다. 『카르티에 라탱』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쳐 씌어진 소설이다. "파리에 가서 카르티에 라탱을 찬찬히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아주 좁은 곳이더라구요. 교과서적으로는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이 전혀 다른 흐름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칼뱅이 있던 곳 맞은편에 사비에르가 살고 있었으니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일 수도 있었을 겁니다. 교과서는 결과밖에 나와 있지 않지만, 당시에는 여러 가지 가능성들이 얼기설기 얽혀 있었던 것이지요." "신학이 가치관을 규정하고 파리 대학이 지성의 중심이던 시기였습니다. 칼뱅도 사비에르도 당시의 카르티에 라탱에서는 이단이었습니다. 혼돈의 시대에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내는 것은 전통 속의 엘리트가 아니라 그곳에서 뛰쳐나올 에너지를 가진 인물이 아니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