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이해경의 다른 상품
|
미아의 얘기는 하염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더이상 태연함을 가장할 필요가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이, 나는 앞을 똑바로 바라본 채 미아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뜻을 새기지 않고 노래를 들을 때처럼, 미아의 목소리는 듣고 싶던 멜로디로만 내 마음을 움직였다. 취하고 나면 으레 그렇듯이, 미아는 내 반응일랑 신경쓰지 않고 쉼없이 혀를 굴리고 있었다. 나는 문득 코디어가 미아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가슴이 아파오지 않았다. 가슴이 아팠다면 그것은 아마도 동정이었을 게다. 자신을 사랑하려 애쓰는 사람에게 질투심이라 야속한 마음 따위를 품을 까닭은 없었으므로.
---p. 135 |
|
전인권의 ‘들국화’와 청춘을 함께했던 존재들의 광시곡
‘들국화 세대’라는 게 있지 않을까. 지금으로부터 한 이십 년 전 약속 없던 이 땅 위에 피어나서 아직 시들었다 할 수 없는 노래의 꽃 들국화. 그 긴 머리의 아름다운 사내들을, 이름처럼 거칠고도 여린 그들의 소리와 몸짓을, 대책 없이 사랑했고 여전히 사랑한다 아니할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을 하나의 세대로 묶을 수 있는 연대의 밧줄 같은 게 있지 않을까. 그 세대는, 나이와 학번과 출생연도 따위 팍팍한 숫자들과 상관없는, 그러나 그 숫자들의 조합으로 일컬어지는 어떤 세대와 아주 상관없다 할 수는 없는…… 겁이 많아 물러서기 잘하고, 정도 많아 취하면 울기도 잘하는데, 돈은 많지 않아 추위를 잘 타기도 하는. 어쩐지 흔히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세대가 어디 숨어서라도 존재하기만 한다면…… 나는 거기 꼭 끼고 싶다. 그 속으로 들어가 함께 ‘우리’가 되고 싶다. 우리는…… 혼자 있기 좋아하지만 혼자서 오래 가지는 못하는 사람들. 외로움을 견디기에는 궁금한 게 너무도 많다. 전화를 걸까 말까 망설일 때 걸려오는 전화만큼 반가운 게 또 있을까. 반가움은 언제나 두려움이다. 떨리는 손, 뛰는 가슴, 그렇게 뛰다가는 멎어버리고야 말 것만 같은. 어떤 종류의 통신이란 그토록 치명적이다. 그리고 만남, 만남들. 둘이 만나서는 말이 없다가도 여럿이 모여들면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어떤 날은 저마다의 십팔번이 지겨워서 시름시름 넋두리나 중얼대다가, 썰물처럼 하나 둘 떠나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기도 했던. 우리는 같이 있어야 안심이 되는 마음의 병이랄까, 해묵은 짐 같은 거 내려놓지 못하면서, 같이 있으면 또 짐이 되는 병든 마음 품고 살았다. 누구는 그것을 역사라 했고, 누구는 그것을 허무라 말했지만, 이제 와서 그것은 차라리 사랑이 아니었을까. 그 사랑의 때늦은 약속이 이제야 우리 앞에 다가온 것은 아닌지…… 광장에 피어나는 촛불처럼.--‘작가의 말’에서 ‘들국화’는 삼사십대만의 추억이 아니다. 김광석이 그렇고 유재하가 그렇듯, 들국화는 이십대의 추억이며 우리들의 추억이다. 1989년 해체 후 1998년 들국화가 재결성되었을 때의 반가움은 십 년, 이십 년 그들을 보아오고 또 기다려온 오래된 팬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형들, 누나들의 시디를 훔쳐듣던 이십대, 십대의 모든 우리들이 반가워했다. 『머리에 꽃을』은 바로 그런 우리들의 추억에 관한 이야기이다. 삼사십대가 그리워하는 추억의 이야기, 곧 우리 모두의 추억이 될, 이미 우리의 추억인 그런 이야기. ‘카투사’로 복무했던 나, 상현에겐 그 시절 만난 인디언 친구 ‘꼬뎨’가 있다. 빈센트 코디어. 그와의 질긴 인연은 군대 시절에만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닌다. 내가 제대를 얼마 앞두지 않고 있을 때 입대한 직속 부하인 심약한 청년 임기와 코디어의 자살 기도 사건, 임기의 죽음, 임기를 돌봐주던 기완과 결혼한 후에 임기를 괴롭히던 선임 오경택을 좋아하게 된 임기의 여동생 연기. 코디어와 운명 같은 만남으로 엮인 ‘미아’와 나의 만남, 그리고 코디어의 죽음…… 그리고, 이 모든 사건들과 함께한 ‘들국화’. 한때 상처였던 인연이 사랑으로 이어지고, 또 한때의 사랑과 추억은 다시 상처가 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우리들의 추억 이야기로 작가 이해경은 한 발짝 더 독자들에게 다가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