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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들어가는 말 FOREWORD
12 노탄 N?TAN 23 대화 CONVERSATION 147 사진과 이야기 PHOTOGRAPHS AND STORIES 224 저자 소개 ABOUT THE AUTHOR |
Philip Per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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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예술과 주제의 관계에 관심을 쏟았다. 사진과 글쓰기에는 주제가 필요하다. "무언가"에서 반사되는 빛을 찍어야 하고?"무언가"에 대한 글을 써야 한다. 그림, 음악, 조각은 "무언가"에 관한 것일 필요는 없다. ("그림의 주제는 그림이다." - M. 로스코) 완전히 추상적인 사진은 항상 내게 무의미해 보였다. 묘사와 추상의 관계?그리고 그 관계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사진의 의미와 중대한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내 시력이 나빠진다고 생각하기보다 오히려 변화한다고 생각하니 위의 퍼즐이 완전히 새로운 차원에 놓인 것 같았다. 여전히 주제는 있지만 주제가 우위를 차지하진 않는다. (195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알게 된) 노탄의 개념이 이 작업에 적용되는 것 같다.
--- p.15 ...술을 정말 많이 마셨어. 정말 엄청나게 술에 절어 지냈고 마초 같은 행동들을 했고 흑인 친구도 사귀었지. ...그는 아미리 바라카로 이름을 바꿨고 유명해졌어. 그리고 그때 우린 책을 읽곤 했는데, 그가 읽는 법을 가르쳐 줬어 -- 물론 난 글을 읽을 줄은 알았지 하지만 그가 문학을 가르쳐 준 거야, 그리고 우린, 우리는 도서관에 같이 가서 함께 앉아 있곤 했어. 그는 나보다 1년 먼저 군대를 제대했는데, 하나님 사진을 아직도 못 찍었냐며 편지에 썼어. 그건 내 인생에서 중요한 질문이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친구는, 역시 흑인인데, 짐 미첼이란 이름의 사진가였어. 그가 사진 찍는 법을 알려줬고 난 카메라를 샀다. 니콘 S2. ...사진을 찍기 시작하자마자 내 세계를 찾았다는 걸 알았다. "기억과 욕망을 혼합하기" - T.S. 엘리엇 --- p.33 근데 내가 여전히 사진을 찍고 있는 거야. 재밌는 건 지금도 암실에 있고, 여전히 암실에서의 시간들을 즐긴다는 거고. 놀라운 건 종이를 현상 트레이에 넣으면 인화가 되는 걸 눈으로 본다는 게 아직도 그렇게 신기한 거야. 정말 재밌어. 오랜 세월 동안 수천, 수만 장의 인화를 해왔지만, 이 모든 게 어떻게 가능한지 여전히 신기해, 현상액에 담긴 하얀 종이에서 어떻게 사진이 나타나는지, 그걸 지켜보는 게 여전히 흥분되고. --- p.43 실력과 운이 합쳐지면 송어를 잡을 수 있지. 포커에선 실력과 운이 결합하면 이길 수도 있어. 사진에서도 실력에 운이 따라오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지. 헬렌과 내가 했던 포커 게임에서 큰돈을 걸지 않았단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아주 적은 금액이었지. 요컨대, 우린 오랜 세월 동안 게임을 했는데 정말 운이 좋고 똑똑해서 이겼다면 10달러를 딸 수 있어. 그리고 정말 멍청하고 운이 나빠도 10달러를 잃는 거야. 게임의 목적이 돈이 아니었던 거지. --- p.59 헬렌의 사진은 예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고, 눈에 띄는 그런 사진이 아니기 때문에, 알잖아, 안셀 애덤스와는 정반대의 사진들. 그래서 그녀의 작업과 교감하려면 심리적으로, 영적으로, 미학적으로 매우 가까이 다가가야만 해. 이해하려면 먼저 네가 노력을 해야 해. --- p.61 그냥 평범한 그릇이었어, 알잖아, 한낱 그릇에 불과한데, 난 그 앞에 서서 울 수 있었던 거야, 너무 완벽하고 너무 아름다워서, 그래서 -- 그건 진정한 예술 이었어. 왜냐면 그릇이 만들어진 문화에 대해선 아무런 생각도 나질 않았거든. 누가 만들었는지, 언제 만들었는지, 그 당시 세상이 어땠는지도 전혀 모르고. 그저, 단순히 한낱 물건에 불과한데 그저 초월적이라는 단어로만 묘사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이건 사진보다 다양한 시각 예술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된 것과 관련이 있어, 객관적인 예술에 대한 생각, 즉 그것이 속한 문화를 초월해버리는 예술에 대한, 또는 ? ...내 작업으로 그런 지점을 건드릴 수 있다면 그게 나의 사명일 거야. --- p.69 더 이상 운전도 독서도 하지 않고 사진 작업도 끝나버린 생활을 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어. 이런 표현 싫지만, '삶의 의미'에 대해 많이 배워. 이 모든 게 뭘까? 우리가 여기서 뭘 하는 걸까? 우리가 왜 여기 있는 걸까? 여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아니면 우리 인간이란 그저 서로 치고받고 싸우고 죽이며 어쩌다 보니 말도 할 수 있는 동물에 불과한 걸까? --- p.75 아직 완전히 어두울 때 일찍 일어나서 수평선이 보이는 곳으로 나가 동쪽을 바라보고 의자에 앉으면 점점 밝아지기 시작하고 해가 뜨기 시작하고 해가 완전히 뜰 때까지, 거기 그대로 앉아 있으면, 한 시간 안에 해가 조금씩 밝아지고 조금씩 밝아지고 조금씩 밝아지고 그리고 마침내 태양의 가장자리가 보이고 그리고 태양 전체를 볼 수 있어. 그러면 낮이야. 그러고 나면, 여러 번 경험한 일인데, 네가 이 구체에 앉아 있고 그것이 돌고 있으며, 돌아가는 이 지구에 앉아 있는 자신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건 우리가 평소에 경험할 수 없는 일이야. 그리고 너는 같은 위도에 있기 때문에 나와 정확히 지구 반 바퀴 반대편에 있고, 난 그걸 거의 경험할 수 있고, 내게 정말, 아주, 가까운 이 사람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의 반대편에 있다는 걸, 거의 느낄 수 있어. --- p.91 그리고 사진, 예술, 글쓰기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건, 먼저 작업을 하는 거야. 그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공개할지 여부를 결정하면 돼. 왜냐면 안 보여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작업이 자유로울 수 있는 거야. --- p.97 ? 위에 작은 선이 하나 있다, N-?-T-A-N 과 선, ? 위에 작은 선 하나. 전경과 배경의 구분이 없는 일종의 디자인 개념을 지칭하는 일본 말이야. 만물은 동등한 가치를 갖고 있다. --- p.99 필립: 첫 번째는 구지프의 전체와 전부. 두 번째는 제임스 비어드가 쓴 좋은 요리의 이론과 실제. 계속할까? 태희: 좋아요, 죄송, 그거 요리책인가요? 필립: 뭐? 태희: 그거 요리책인가요? 필립: 요리책이야. 아주, 아주, 아주 오래전에 읽었고 지금도 갖고 있는데, 그 책의 좋은 점은 요리할 때 그렇게 조심하지 않아도 된다고 저자가 승인을 해줘. --- p.107 그래서 선불교에는 코안이라는 멋진 표현이 있는데, "깨달은 지금 이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비참하다"라는 승려의 말이야. 정말 좋아하는 말이고 내가 들어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말이야. 한국에선 어떤지 모르겠지만 서양에선 이런 식이지, 오, 당신이 하루에 20분씩 명상을 하면 돈도 더 많이 벌고 섹스도 더 많이 하고 외모도 더 좋아지고 항상 행복할 수 있다고. 다 헛소리야. --- p.111 이 얘기가 제대로 들리면 좋겠구나. 그러니까, 멕시코는, 마치 내가 생각하는 내 인생의 상징과도 같은 책이야, 난 늘 찾고 있어, 무엇을 찾고 있는지 모르지만 계속 찾고 있는 거야. 그래서 계속 무언가를 찾다가 그것을 찾게 되면, 바로 그게 내가 찾던 거라는 걸 알게 되는 거고. 다시 말해, 난 내가 원하는 걸 찾으면서 발견하고, 발견해왔고, 내 사진이 무엇인지 줄곧 생각하고 심지어 내 인생도 무엇에 관한 건지 생각하는 거야. --- p.115 몇 년 전, 터키 남동부에서 온 음악가들과 가수들이 성스러운 음악을 연주하는 콘서트에 시릴라와 함께 갔다. 멋진 공연이었다. 콘서트가 끝날 무렵 무대 담당자가 나와서 무대 중앙에 가는 나무 의자를 놓았다. 몇 분간의 침묵이 흐른 후, 시각장애인으로 보이는 한 노인이 작은 현악기와 활을 들고 나와 의자에 앉았다. 그는 96세이며 90년 동안 매일 이 악기를 연주했다는 안내가 이어졌다. 그는 바이올린을 무릎 위에 수직으로 들고 왼손으로 활을 잡았다. 그가 무릎으로 악기를 지탱하는데 어려움을 겪자 무대로 단원이 올라와 그를 도왔다. 그는 몇 번의 실수를 했고 몇 번 연주를 중단할 뻔하며 약 5분간 연주를 했다. 남은 것은 예술의 본질뿐이었다. 여태껏 경험한 가장 아름답고 심오한 순간이었다. --- p.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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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퍼키스의 마지막 사진집 [노탄]
“1만1천킬로미터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스승과 제자. 그것은 지구 반대편까지의 거리가 아니라, 대화 의 깊이다." _박미경 (갤러리스트, 작가) 75년 동안 사진가로 살아 온 필립 퍼키스는 2007년 한 쪽 눈을 실명하고 양쪽 시력이 모두 악화된 2021년 말, 더이상 암실 작업을 할 수 없게 되자 사진 중단을 선언했다. 〈사진강의 노트〉를 시작 으로 스승의 사진집을 7권 만들어온 제자 박태희는 스승의 중단된 사진 작업이 이야기로 지속되도록 15주간의 인터뷰를 기획했다. 이를테면 어린 시절의 가장 기억나는 장면들이나, 군대 시절 이야 기 같은 인생 전반에 관한 질문부터 가르치는 직업이 예술작업에 도움이 되는지, 자신의 사진에 대 한 글을 사진가가 직접 쓰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같은 구체적인 질문들을 매주 이메일로 보냈고 토요일 전화통화로 1시간 가량 이어진 답변을 녹음했다. 시릴라 모젠터가 녹취된 원고를 반복적으로 읽어주었고 필립 퍼키스가 직접 책에 들어갈 내용을 발췌했다. “인생의 여러 시기에 찍은 오랜 필름들을 점검하며 인화를 하고 있었다. 많은 고민이 있었고 시릴라와 상의 끝에 작은 자동 카메라로(라이카로는 더 이상 숫자를 볼 수 없기에)― 매일 사진을 찍고 작업의 질이 떨어질 때까지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기로 결정했다. 시릴라가 돕기로 했다. 1년을 예상했는데 결국 16개월 동안 지속했다. 이 작업에서 고른 사진들을 책에 실었다.” P13 필립 퍼키스는 시력의 악화를 예감한 2019년 말 부터 하루에 한장씩 사진을 찍고 인화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년 6개월간 지속된 마지막 사진 작업 33장이 [노탄]에 실렸다. [노탄]은 서문, 대화, 사진과 이야기들 총 3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고 서문에서 '노탄'이란 생소한 제목에 대해 설명한다. "노탄은 음양의 원리처럼 주제와 배경 중 어느 것도 우세하지 않은 일본의 디자인 개념이다. 검은색이 흰색보다 중요하지 않고 흰색은 검은색보다 중요하지 않다. 교토에 있는 갈퀴 모양의 정원에 대해서도 생각했는데, 정원의 무언가가 다른 것들보다 더 "중요" 하게 부각되면 그 정원은 실패한 것이다. 발레를 볼 때, 특히 파 드 되에서, 두 무용수의 몸과 몸 사이의 모양은 각자의 몸 자체의 모양 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P17 이어서 그는 오랫동안 예술과 주제의 관계에 관심을 쏟았다고 밝힌다. '무엇'을 찍어야 하는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아니라 '무엇'에 대한 묘사와 추상이 만들어내는 긴장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시력이 악화되는 동안, 그는 자신의 현실을 악화가 아니라 변화로 받아들이며 사진에서 주제가 차지하는 의미를 오래 전에 발견한 [노탄]의 개념과 연결시킨다. 그리고 존 케이지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는 인용으로 서문을 마무리하며 제목의 의도를 짧고 강렬하게 요약해낸다. [대화]편에는 사진을 시작하기 전부터 마지막 사진 작업을 끝낸 시점까지, 생애의 사이 사이를 관 통하는 이야기들이 부유하는 공기처럼 우리 곁을 맴돈다. 질문을 적시하지 않고, 먼 곳에서 보이는 풍경처럼 단편적인 이야기들만 채취해 드러내기에, 마치 우연히 발견한 낡은 사진처럼 독자에게 제시될 뿐 몰입을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음조가 맞지 않게 연주하듯 이 말하는 방식 속에 명징하게 증명할 수 없는 삶의 비밀이 담겨 있다면 어떨까. 다른 모든 것과 분리된 각각의 프레임들이 벽돌처럼 쌓여 직조해내는 세계, 나즈막하게 들려오는 가장 사적인 순간들로부터, 목적을 지니고 길을 잃고 떠돌아다닌 한 사진가의 궤적이, 그 의도가 묵직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사진과 이야기들]편에는 사진들과 더불어 5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사진들은 주로 집 주변과 작은 공원에서 촬영한 것이다. 직접 암실에서 인화한 67장의 사진 가운데 최종 33장의 사진이 [노탄]에 수록되었다. 사진들 사이에 자리한 5편의 이야기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의 답변처럼 읽힌다. 한편에는 예술이 있고 한편에는 삶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증언. “그가 포착하는 선율은 점점 무조에 가까워지고 템포는 점점 느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그가 노년에 들어섰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육체와 영혼의 활력이 줄어들어 관조하는 자의 시선으로, 보다 정 적인 세계로 옮겨 갔다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 변화가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떨림을 찾아 빈 공간을 떠도는 순례자이므로 그 틈새로 더욱 깊이 들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더 넓은 광야는 더 많은 정적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는 계속 걸어가고 있다.”_최원호 ([혼자가 되는 책들] 저자) 바라본다는 것, 사진을 찍는다는 것, 암실에 있다는 것, 기억한다는 것, 요리한다는 것, 인화한다는 것, 앞이 안 보인다는 사실을 경험한다는 것 … 대체 이 모든 작업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1935년생 필립 퍼키스는 우리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나가는 방식이 작업이란 사실을 여전히 증명해보이는 중이다. 그 작업이 무엇이든, 만약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 보이지 않는 고통마저도 바라보는 작업으로 극복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초라한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야기하자면 오로지 작업의 실행 밖에 답이 없다는 것. 세상에서 잃어버린 빛으로 자신의 컴컴한 내부를 환하게 비출 때 바라보던 나는 빛 속에 존재한다는 것. 이것이 필립 퍼키스가 말한 바라보기의 신비다. 하루 종일 앉아 자신에게 주어진 육체의 고통마저도 바라본다는 이 눈 먼 사진가는 오직 바라보기를 통해 삶의 신비를 깨닫는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필립 퍼키스는 마지막 사진집 [노탄]으로 사진가로서의 임무를 마무리하고 있다. “노탄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필립의 자유로움이었다. 태희는 '뼈만 남은 것 같다'고 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두려워 마지 않는 그런 자유 아닌가." _빈센트 만지 (사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