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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장 역시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장들 가운데 한 장이다. 성경에서 위대하지 않은 장이 어디 있으랴마는, 내가 매 장마다 위대하다고 언급하기보다는 어떤 장에 이르러 위대하다고 특별히 지적하는 까닭은 그 장이 다른 장들에 비해 한결 중요하고 풍부한 내용들을 함축하고 있어 그만큼 성경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기 때문이다. 성경의 각 책들마다 그 속에는 이처럼 다른 장들에 비해 특별히 비중이 큰 장으로 꼽히는 장이 한둘 있기 마련인데, 로마서에서는 여기 8장이 그러한 장으로서 전체 로마서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풍부한 내용이 담겨 있는 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서에서 중요한 곳 한 장만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8장을 꼽게 되는데, 이것은 고린도전서 중에서 그런 곳 한 장을 고르라고 할 때 15장으로 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령, 요한복음 같으면 아마 3장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고, 그 다음 또 17장이 그런 장에 해당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것은 성경 전체를 놓고 볼 때도 마찬가지여서 만약 성경 66권의 전체 책들 중에서 한 책만 고르라고 할 때 우리는 뭐니뭐니 해도 창세기에 손이 가지 않을 수가 없을 터인즉, 그 주된 이유는 창세기라는 성경책 속에 전체 성경을 통틀어 가장 풍부한 내용들이 가득 담겨 있는 창세기 3장과 4장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 3장과 4장으로 말한다면, 단 두 장에 불과하지만 40개 장으로 된 출애굽기 한 권 전체보다 훨씬 더 방대한 내용들이 잔뜩 압축돼 있다. 그래서 창세기 3장과 4장을 공부하려면 웬만한 책 한 권 전체를 공부하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 소요되는 게 보통이다. 로마서 8장에는 구원에 관한 교리가 총괄적으로 개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장이다. 전체 신약 중에서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대한 가장 위대한 약속을 담고 있는 부분 역시 바로 이 로마서 8장으로서 28절부터 마지막 39절까지에 걸쳐 무려 열 구절 이상을 여기에 집중 할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절부터 처음 열네 절에 걸쳐서는 그리스도인의 두 가지 성품에 관해 다루고 있는가 하면 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까지도 언급하고 있는 등, 그 비중이 대단히 큰 내용을 담고 있는 장이다. 이에 앞서 우리가 공부했던 두 장의 내용을 간략하게 개괄해 볼 때, 6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그리스도인과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죄의 몸을 멸하여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게 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도 죽고, 또한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일으켜지신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7장에서는 율법과 그리스도인의 죽음과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여기 8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죽음과 미래의 삶과의 관계를 공부하게 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죽음”이란 물론 그리스도 안에서의 죽음, 즉 죄에 대하여 죽은 죽음이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6장에서 상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7장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그리스도인이 율법에 대하여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여기 8장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죽음이 미래와 어떻게 관련되는지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게 될 것이다. 자,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던 우리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다시 일으켜져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지 공부해 보자.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느니라"(1절). 다른 번역본들, 예컨대 NASV나 NIV 등 변개된 역본들에서는 1절의 후반부, 즉 "그들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느니라."가 삭제되어 있다. 이 부분을 삭제한 나름대로의 이유는 “구원의 영원한 보장”의 문제가 그 동기였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여기 1절에서의 ?정죄함?이 “영원한 정죄”를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했던 것이다. 《킹제임스성경》의 로마서 8:1에서 언급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까지는 문제가 없지만, 후반부의 "그들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느니라."는 언급이 마치 “그리스도인들도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않고 육신을 따라 행하면 구원을 잃어버린다.”처럼 그들의 귀에는 들렸던 것이다. 마치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대한 부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오해했던 것이다.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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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는 신약성도들을 위한 교리서이다. 로마서에는 인간이 왜 죄인이며,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의를 얻어 구원받는가, 구원받은 성도들은 어떻게 날마다 죄와 싸워 승리해야 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은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 잘 제시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구원과 성화에 관한 모든 신약적 교리가 잘 집약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옛성품과 새성품의 갈등이라든지 성령 안에서 얻는 자유에 대해서는 영적 전쟁을 경험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실제적인 지침을 주고 있다. 또한 복음전파에 대해서도 필수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에, 복음의 열정을 지닌 성도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로마서에 대해서는 많은 주석서들과 강해 설교집들이 있다. 또한 로마서를 강론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그러나 로마서를 공부하고 또 가르치면서도 정작 로마서에서 말하는 믿음으로 얻는 의를 실제적으로 경험하지 못하며, 날마다 죄와 싸워 승리하지 못하고, 결국 성령 안에서 얻는 자유를 체험하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로마서를 신약 성도들의 실제적인 교리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로마서는 성경의 다른 책들과 차별된 책이다. 예를 들어 구약의 성경들은 율법의 경륜 가운데서 쓰여진 책들이며, 복음서들도 역시 아직은 구약적인 상황 가운데서 진행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또한 사도행전은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을 다루는 일종의 역사서이기에 그 책으로는 신약 교회의 교리를 잡을 수 없고, 히브리서나 야고보서 같은 책들은 유대인적인 내용이 강하기 때문에, 역시 교회 시대의 교리를 잡는 데서는 약간 거리가 떨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 서신들은 교회가 완성되고 신약적 교회에 대한 내용들이 사도 바울에게 충분히 계시된 상태에서 기록된 책들이기에, 우리들에게 아주 적합한 내용들이다. 그 중 로마서는 특히 신약 교리에 충실하고도 체계적이다. 따라서 로마서를 공부하면서도 야고보서와의 사이에서 갈등한다든지, 행위냐 믿음이냐 사이에서 혼동하는 사람들은 로마서를 제대로 공부하거나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또한 구원만 받으면 모든 것이 완성된 것이기에 옛성품과의 갈등도 무시하고 성령충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역시 로마서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다. 구약과 신약을 혼동하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 다시 말하거니와 로마서는 철저하게 신약적인 책이다. 따라서 본서도 역시 철저하게 신약적인 교리에 입각해서 쓰여졌다. 독자들은 로마서의 한 구절 한 구절을 읽어 가면서 이 시대를 향하신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피터 럭크만의 주석을 하나하나 읽어 가면서 로마서의 깊이를 더욱 풍성히 알게 될 것이다. 그의 주석에는 많은 특징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만을 존중하며, 성경 구절들을 하나하나 비교해가며 해석, 적용하기 때문에 더욱 깊이가 있다. 그래서 그의 주석을 읽은 사람들은 성경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 주석서를 읽고 나서, 로마서를 다시금 몇 번이고 읽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본 주석서는 원래 책의 형태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피터 럭크만 박사가 펜사콜라성경신학원(Pensacola Bible Institute)에서 강의한 내용을 테잎에서 직접 번역하여 책으로 낸 것이다. 이미 1997년에 초판을 낸 적이 있지만, 당시에는 테잎의 내용을 다소 요약한 내용이 많아서, 이번에 다시 원래의 강의에 충실하게 보완해 증보판을 내게 되었다. 이에 독자들이 더욱 생생한 그의 강의를 지면으로나마 대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아무쪼록 이 책으로 진리를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깊이를 더욱 깨달아, 그분의 성도들로서 온전한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란다. 서문 로마서는 신약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책 가운데 하나이고 신?구약 전체로 보아도 가장 위대한 책들 가운데 하나이며, 신약적 구원 계획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교리서가 특히 로마서인데, 바로 이 점 때문에 이 시대의 설교자들이 도리어 로마서를 기피하게 되었다. 이 시대에 살면서 이 시대를 위한 구원 계획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설교자들 가운데도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그들은 구원을 설교했다 하면 의레 로마서를 외면하고 사도행전에서만 맴돈다. 요즘 아침저녁으로 라디오를 틀기만 하면 기독교 선교방송 채널에서 하고많은 날 반복적으로 귀따갑게 흘러나오는 말이 “사도행전 몇 장 몇 절, 사도행전 몇 장 몇 절” 하는 소리다. 왜 그런지 아는가? 사도행전은 신약의 구원 교리를 다루는 책이 아니기 때문에 신약 시대에 사는 설교자들이 구원을 설교하면서 사도행전만 뇌까린다는 것은 대단히 역설적인 현상이지만, 모든 게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이고 보면 기독교 방송인들 예외가 아니다. 이 시대의 구원 계획에 관한 교리서라면 누가 뭐라 해도 로마서다. “믿음으로 의롭게 됨,” 이것이 로마서의 핵심 주제다. 마틴 루터가 성경책들 가운데서 유달리 좋아했던 책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두 서신서였던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바로 이 두 서신서가 마틴 루터를 움직여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했다는 말이 있다. 그가 오죽이나 이 두 서신서를 사랑했으면 이런 말까지 나왔겠느냐마는, 루터는 갈라디아서를 일컬어 “사랑하는 케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케이”는 그의 아내 카타리나의 애칭이었다. 마틴 루터는 갈라디아서를 자기 아내로 여길 만큼 사랑했던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게 됨,” 마틴 루터는 여기에 주목했고, 그가 이것을 강조하고 담대하게 역설하고 나선 데서부터 종교개혁은 비롯되었다. 사람이 구원받는 데에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은혜만이 필요할 뿐, 다른 어떤 것도 여기에 덧붙여질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책이 로마서라면, 구원받은 사람이 영원히 구원받은 사람으로 지탱되는 것은 오직 믿음 때문이요 여기에 다른 어떤 것도 덧붙여질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책이 또 갈라디아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시대에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설교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게 된 것이다. 예컨대, 캠밸주의자들은 로마서 6장을 싫어하는데, 그 이유인즉 로마서 6장에서 “침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물침례”는 거론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들은 갈라디아서 3장도 싫어하는데, 이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갈라디아서 3장은 “침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물침례” 이야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로마서를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누기도 하고 그 외에 몇 부분으로 장들의 내용을 세분하기도 하는 등, 그 개요의 윤곽을 정리하는 데 꽤나 신경을 쓰지만, 그런 식의 개요 구분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런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이 책에서 언급되는 “이방인”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예컨대 1장의 “이방인”이 누구를 말하는지 갈피를 못잡고 우왕좌왕한다든지, “유대인”이 과연 누구를 말하는지 몰라 엄벙덤벙 헤매다가 결국 수렁에 빠져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한다든지 하는 점들이 오히려 문제라면 문제다. 로마서가 유대인과 구원받은 이방인들, 그리고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들까지 모두 상대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만, 그 전에 구원받은 이방인과 그렇지 못한 이방인, 그리고 구원받은 유대인과 그렇지 못한 유대인 사이의 차이점도 제대로 알지 못해 쩔쩔 매고 있는 것을 내가 늘 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바울은 로마, 고린도, 갈라디아, 에베소, 빌립보, 골로새, 그리고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회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도 어떤 중대한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도 바울은 둘과 넷과 하나의 순으로(2-4-1) 편지를 보냈으며, 이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와 일맥상통한다. 즉 로마와 고린도가 처음 둘이며, 다음 네 곳이 갈라디아와 에베소와 빌립보와 골로새로 한 그룹을 이루고, 마지막으로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보낸 서신이 나온다. 결국 정리해 보면 이러한 배열 방식은 둘, 넷, 하나의 순으로(2-4-1) 전개되며, 이는 둘(2)은 ?한 때(a time)?와 둘 곱하기 둘인 넷(2×2=4)은 ?두 때(times)?와 하나(1)는 ?반 때(an half)?와 짝을 이루게 된다. 로마서는 모두 16장 433절로 구성돼 있고 영어 《킹제임스성경》의 경우 총 9,477개의 단어로 기록되었는데, 이 책의 기록 연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A.D. 58년으로 잡는 게 보통이다. 원래 바울 서신서들의 기록 연대를 정확하게 짚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로마서의 경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도행전 25장 이전의 어느 시점, 즉 바울이 아직 로마를 방문하기 이전에 이 편지를 썼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로마서를 읽어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바울은 이 편지에서 로마에 한번 꼭 가고 싶다는 심경을 토로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제는 내가 언제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너희에게 나아갈 형통한 여정을 갖게 되기를 간구하노라.?(롬 1:10)고 쓰고 있다. 이러하던 그가 드디어 로마로 떠날 수 있는 계기가 사도행전 25장에서 마련되는데, 유대인들에게 고소 당했던 바울이 예루살렘의 법정에 서기보다는 로마의 법정에서 재판 받기 위해 로마의 아우구스토에게 상소함으로써 로마로 이송될 수 있는 빌미를 만든다. 이렇게 볼 때,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시점은 사도행전 25장 이전의 20장이나 21장 또는 22장 언저리였을 게 분명해지는데,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자들이 A.D. 58년경으로 그 기록 연대를 추정하고 있는 것이다. C. I. 스코필드는 《스코필드 주석성경》 난외주에 이보다 훨씬 늦은 A.D. 60년으로 기록 연대를 명기해 놓았는데, 설사 이때로 기록 연대를 잡더라도 사도행전 25장은 물론 24장보다도 이전인 것은 변함이 없다. 로마서의 기록 연대를 될 수 있는 한 정확하게 밝혀낸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로마서에서 “몸의 신비”가 계시되기 때문이다. 바울은 로마서 16장 끝 부분에서 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제는 이 신비의 계시대로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에 따라 너희를 견고케 하실 능력 있는 그분께, 이 신비의 계시는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감추어졌다가 이제 나타났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선지자들의 성경을 통하여 믿음으로 순종하게하고자 모든 민족에게 알려진 것이니?(롬 16:25,26). 이로 미루어 바울은 아무리 늦어도 사도행전 28장 훨씬 이전부터 이미 “몸의 신비”에 대해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바울이 “몸의 신비”에 대해 쓴 것은 어쩌면 사도행전 20장 이전이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코넬리우스 스탬이나 베이커, 오헤어 등 “드라이 클리너”(극단적 세대주의) 일파가 사도행전 28장 이전에는 그리스도의 몸이 없었다고 믿도록 어떻게든 당신을 설득하려 했지만, 바울이 벌써 사도행전 22장 이전에 이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저들은 자신들이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계속 근거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로마서를 읽다 보면 우리는 아주 중요한 핵심 어구 하나를 자주 접하게 되는데, “하나님의...”(of God)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으로서, 예를들면, “하나님의 의”라든가, “하나님의 믿음,”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복음,”,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심판” 등과 같은 서술들이 다 그런 예에 속한다. 성경의 다른 책에 비하여 유난히 로마서에서 이런 어구가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1장만해도 ?하나님의 사랑?(7절), ?하나님의 뜻?(10절), ?하나님의 능력?(16절), ?하나님의 의?(17절), ?하나님의 진노?(18절), ?하나님의 진리?(25절), ?하나님의 심판?(32절) 등의 어구들이 나오고 있고, 2장에서는 ?하나님의 선하심?(4절),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5절), ?하나님을 자랑?(17절), ?하나님의 이름?(24절) 등이 서술되는가 하면, 3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2절), ?하나님의 신실하심?(3절), ?하나님을 두려워함?(“fear of God,” 18절), ?하나님의 영광?(23절) 등이, 그리고 15장에서도 이런 식으로 7, 8, 16, 18절에서 이런 표현들이 나오고 있다. 로마서 전체를 통틀어 어림잡아도 이런 형식의 어구가 최소한 스물 다섯 번 이상은 족히 될 것이다. 로마서는 로마에 있는 사람들, 즉 로마제국의 시민권을 가진 로마제국 사람들에게 써 보낸 서신서인데, 이 사실 자체만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바울이 이 서신서를 쓰던 당시에는 이태리뿐만 아니라 스페인과 프랑스도 로마제국에 포함돼 있어 이들 나라들이 오늘날까지도 로마의 언어였던 라틴어 계열 언어를 사용하게 된 연유가 되었고, 그밖에도 스위스라든가,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오스트리아는 물론 서부 독일과 심지어 잉글랜드 지방 및 일부 아일랜드 지역까지도 로마제국의 영토였다. 그 결과 튜턴족과 게르만족이 사용하던 북방 언어들 가운데에도 상당수의 라틴 계열 언어가 유입되었는데, 아무튼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서부 유럽의 거의 모든 지역과 일부 동유럽까지도 로마제국의 영토였다. 바울은 바로 이러한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였다. 로마서 15장에 보면 이 사실을 명백하게 천명하고 있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나로 이방인들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게 하시어 하나님의 복음을 수행케 하심으로써 이방인들을 제물로 드리는 일이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수 있도록 하심이라.?(롬 15:16)는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바울은 ?이방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일꾼?이었다. 그는 분명히 그리스도의 일꾼이었으되, ?이방인들을 위한? 일꾼이었다는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대등한 위치에서 대조를 이룬다. 8절을 보라. ?이제 내가 말하노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진리를 위하여 할례의 일꾼이 되셨으니?라고 천명한다. 그리하여 할례자들을 위해 사역하셨던 그리스도와 이방인들을 위해 사역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도로서의 자신을 대조하고 있다. 로마서를 읽으면서 또 한 가지 유의해 두어야 할 것은 이 책에서 이방인들을 거론할 때, 우리가 바로 그 이방인들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로마서를 읽으면서 “이방인” 이야기가 나오면, 그것이 구원받고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온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지칭하는 것인지, 아니면 구원받지 못한 순수한 이방인을 지칭하는 것인지 잘 분간해서 읽어야 한다. 이것은 비단 로마서뿐만 아니라 신약성경 어느 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를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그리고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의 세 부류로 나누어서 상대하신다. 이방인이 구원받으면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된다. 유대인도 구원받으면 더 이상 유대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온 그리스도인으로 그 신분이 바뀐다. 반면 이방인이 구원받지 않은 채 그대로 있으면 그냥 이방인이다. 유대인도 복음에 순종하고 구원받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유대인으로 남는다. 그래서 유대인과 그리스도인(교회)과 이방인, 성경에서는 이 세 부류 외에는 그 누구도 다른 데 속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누구를 막론하고 이 셋 중 한 가지에 속하도록 되어 있다. 자, 그럼 로마서 1장 1절부터 공부를 시작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