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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무스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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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고국 땅에서 펼쳐진 그리스 뮤즈의 공연
황우창 (CBS-FM '황우창의 월드뮤직 DJ)
20년 만에 고국 땅에서 펼쳐진 그리스 뮤즈의 공연
나나 무스꾸리 / 헤로드 아티쿠스 공연 실황 (Nana Mouskouri / Live at Herod Atticus) 나나 무스꾸리의 고향 그리스 (Greece), 아테네 올림픽이 열리는 그리스. 108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이 위대한 인류의 제전은, 단지 스포츠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온다'는 '회귀'에 대해 화두를 던진다. 덕분에 2004년도에는 그리스 바로 알기 운동이라도 열린 듯 모든 곳에서 '그리스'를 연호한다. 굳이 월드 뮤직 애호가까지 아니더라도, 그리스는 부주키 (Bouzouki)의 고향이자 조르바 (Zorba)의 고향으로서 그다지 낯선 곳이 아니다. 하지만 의외로 우리나라와 그리스와의 관계는 그리 친숙한 사이도 아니다. 아테네에 거주하는 교민은 고작 250여 명. 이것은 머나먼 유럽과 아시아 국가의 관계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하나의 수치이다. 하지만 이제 음악을 통해서라도 그리스를 바로 안다는 것은, 그리스를 제대로 이해함과 동시에 그리스 음악의 아름다운 향취에 흠뻑 빠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세계 4대 문명 발상지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헬레니즘 (Hellenism)'으로 대표되는 그리스의 문화는 유럽 문화의 시발점이자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교두보로서 항상 중요한 지리적 위치를 차지하는 곳이다. 순수하게 음악 애호가의 입장에서는 설령 그리스 음악의 역사와 문화, 지리 등에 익숙하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음악, 이것이 바로 그리스 음악이다. 물론 그리스 음악을 이해하기 전에 언어의 장벽 - 심지어 그리스어 (일반적으로 헬라어, 또는 희랍어라고 부른다) 문자만 봐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지만, 최근 인터넷을 통해 헬라어 문자 음가(音價) 표기라든지, 기본 번역 등이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음악을 듣는 일과 그리스 음악의 전체적인 윤곽을 이해하는 일일 듯 싶다. 그리고 여기에 그리스 음악과 예술, 그리고 문화를 이해하는 데 열쇠를 쥐고 있는 아티스트가 바로 나나 무스꾸리 (Nana Mouskouri)이다. 나나 무스꾸리 (Nana Mouskouri) '사랑의 기쁨 (Plasir d'amour)', '어메이징 그레이스 (Amazing Grace)',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수많은 히트곡으로 세계 곳곳에 있는 음악 애호가들에게 음악의 감동을 선사했던 가수. UN 친선 대사를 비롯한 사회 사업 활동과 인권 운동, 그리고 가수로서의 활동을 병행했던 대가수가 바로 나나 무스꾸리이다. 1934년 생으로, 이제 올해 고희를 그녀는 대중성과 예술성이 결합된 음반들을 발표하면서 최고의 가수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사랑의 기쁨'을 비롯한 히트곡을 통해 '세미 클래식'이라는 단어를 유행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얼핏 생각하면 크로스오버 (Crossover) 또는 세미 클래식 장르에서 활동하던 가수로 알려진 나나 무스꾸리가 왜 그리스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들어야 하는 아티스트가 되는지 의아해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녀가 지금의 명성을 얻기까지는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그리스 음악을 가장 잘 부르는 그리스 가수'로 세계에 인정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런데 나나 무스꾸리가 프로 가수로서 미 대륙에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에는 '스탠더드 넘버들을 주로 부르는 그리스 출신 여성 재즈 가수(!)'로서라고 한다. 1962년 당시 미국에서 발표되었던 음반은 '그리스 처녀 노래하다 (The Girl from Greece Sings)'였고, 이 음반은 이후 '뉴욕의 나나 무스꾸리 (Nana Mouskouri in New York)'이라는 제목으로 CD화되었는데, 수많은 클래식과 대중 음악, 그리고 그리스 전통 대중 음악을 세계에 알렸던 그녀의 경력을 생각한다면 의외의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도 자신은 재즈로 음악을 시작했고, 한편으로는 엘비스, 프랭크 시나트라, 마할리아 잭슨, 그리고 마리아 칼라스를 들으며 꿈을 키웠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당시 나나 무스꾸리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역시 청순한 그리스 처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 데뷔 음반을 프로듀스한 인물이 당시 촉망받는 신인 가수, 작곡가 겸 프로듀서였던 퀸시 존스(Quincy Jones)였다는 점이다. 당시 미국의 '차세대 재즈 거물'과 그리스의 '원조 수퍼스타'가 만나 'The Girl from Greece Sings'를 만들어 낸 셈이다. 이 음반의 커다란 성공에 힘입은 나나 무스꾸리는 이후 최정상의 인기를 달리면서 발표하는 음반마다 커다란 성공을 거둔다. 이후 그녀는 자신의 조국 그리스의 음악만으로 구성된 음반을 기획한다. 나나 무스꾸리는 그리스 사람들의 정서를 세계에 소개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어했는데, 결국 이 기획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와 함께 그리스 국민 작곡가로 추앙받는 마노스 하지다키스의 작품을 중심으로, 1967년, '내 조국의 노래 (Chant du mon pay)'라는 제목으로 정식 공개된다. 여기에는 마노스 하지다키스의 작품 'Manoula Mou (마눌라 무; 나의 어머니)'와 함께, '하얀 손수건'이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Me T'aspro Mou Mantili (메 따스프로 무 만띨리)'를 만날 수 있다. 이후 그리스의 전통 음악을 포함해 세계 곳곳의 민요와 히트곡, 클래식을 보다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데 앞장섰던 나나 무스꾸리. 이제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그녀의 모습은 단지 노래를 부르는 아티스트로서가 아니라 사회 사업과 자선 사업에 앞장서는 훈훈한 인간애를 지닌 따스한 사람으로 다시 바라보게 된다. 헤로드 아티쿠스 공연 실황 Live at Herod Atticus 1964년, 그리스를 떠난 이후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곳은 프랑스 파리 올랭피아(L'Olympia) 극장이었다. 조국 그리스를 떠난 이후 올랭피아 무대에 선 숫자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의외로 나나 무스꾸리의 실황 음반은 경력이나 음반 발매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다. 이 가운데 특히 1970년에 '70년 리사이틀(Recital '70)'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음반은 이후 나나 무스꾸리의 대표적인 실황 음반으로 알려져 있고, CD로는 발매되지 않은 '나나 무스꾸리와 함께하는 저녁(Une Soir e avec Nana Mouskouri)' 역시 전성기를 확인할 수 있는 절창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음반은 프랑스에서만 발매되었고, 발매 연도가 명확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으나, '70년 리사이틀'과 함께 나나 무스꾸리가 올랭피아 극장에서 가졌던 최고의 명반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녀의 음악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공연 실황이 바로 1984년 7월 24일에 있었던 '헤로드 아티쿠스 공연 실황'이다. 헤로드 아티쿠스는 연극 또는 오페라 등 '극(劇)'으로 불릴 수 있는 최초의 형태가 올려진 유서 깊은 그리스의 무대이다. 고전주의 시대 (신고전주의 시대와 구분되는 기원전 헬레니즘 시대의 고전주의를 말한다)에 발표된 수많은 희곡들이 헤로드 아티쿠스에 올려졌고, 이후 그리스를 대표하는 무대 예술 양식 - 연극이든 음악이든 - 이라면 이 곳에 올려져야 했다는데, 현재 이 곳은 클래식과 대중 음악을 아우르면서 그리스 문화에 획을 그은 아티스트라면 누구나 서고 싶어하는 꿈의 무대라고 할 수 있다. 마치 프랑스 샹송 가수가 올랭피아 극장 무대에 서고 싶어하는 것처럼. 20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와 헤로드 아티쿠스 무대에 오른 나나 무스꾸리의 마음은 어땠을까. 1984년, 그녀는 자의든 타의든, 1964년에 그리스를 떠났다. 프랑스와 미국, 그리고 세계 곳곳의 무대에서 노래하며 인기를 얻었지만, 그녀는 고국 무대에는 결코 서지 않았다. 이것은 당시 불안했던 그리스 정세와 함께 1967년에 발발한 그리스 군사 쿠데타와 군사 정부의 등장이 결정적 이유였다. 당시 미국에서 퀸시 존스와 함께 스탠더드 재즈 음반을, 프랑스에서 '내 조국의 노래' 등을 비롯해 마노스 하지다키스 (Manos Hadjidakis)의 작품을 중심으로 음반 활동을 벌이던 나나 무스쿠리는, 결국 프랑스에 뿌리를 내리고 제 2의 인생을 살게 된다. 그리고 그로부터 20년. 1984년 7월 24일, 그리스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유서 깊은 연극 무대 헤로드 아티쿠스 무대에 그녀는 올라선다. 이때 관객석에서는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멜리나 메르쿠리(Melina Mercuri)가 이 공연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공연은 나나 무스꾸리가 그리스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최후의 종착역이자, '크로스오버' 또는 '세미 클래식 가수'로서 대중성에만 편승한다는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었던 공연이기도 했다 (물론 이런 편견은 우리나라와 미주 등에 국한되는 편견이기도 하다). 덕분에 수록곡을 살펴보면, 당혹스러울 정도로 그리스 작곡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입부에서 등장하는 그리스 전통 음악 렘베티코의 대가 바실리스 치차니스 (Vasilis Tsitsanis)의 작품으로 시작해, 그리스 현역 작곡가로서 명성을 얻고 있는 스타우로스 하르하코스 (Stauros Xarchakos)의 작품을 나나 무스꾸리의 목소리로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마노스 하지다키스의 페르소나 (persona)로서 수많은 곡들을 취입한 나나 무스꾸리답게 '엔나스 미토스 (Enas Mithos),' 종이달 (Hartino To Fengaraki; 하르티노 토 펭가라끼)', '아테네의 흰 장미 (White Rose of Athens)' 등 마노스 하지다키스의 대표 작품들을 이 음반에서 만날 수 있다. 물론 보는 관점의 차이겠지만, 그녀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해 준 작품들 - '어메이징 그레이스'나 슈베르트 작 '아베 마리아 (Ave Maria)',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 (Norma) 중 아리아 '카스타 디바 (Casta Diva)' 등은 마치 팬 서비스 차원으로 삽입한 듯한 인상까지 풍긴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 작품이든 클래식 편곡 작품이든, 기복 없이 최고의 음악성을 담아내는 거장의 면모가 물씬 풍긴다는 점. 이것이야말로 나나 무스꾸리가 헤로드 아티쿠스에서 펼쳐낸 최고의 예술이다. 그리고 나나 무스꾸리는 그리스를 대표하는 가수로서 우리에게 그리스 음악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있다. 그리스의 전통 음악을 소개하고 클래식을 보다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데 앞장섰던 나나 무스꾸리도 이제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모습과 긴 생머리를 휘날리는 나나 무스꾸리는 단지 노래를 부르는 아티스트로서가 아니라 사회 사업과 자선 사업에 앞장서는 훈훈한 인간애를 지닌 따스한 사람이며, 지금도 꾸준히 음반 활동을 통해 '현역'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가수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귓전에 맴도는 아름다운 목소리와 함께. 그 노래가 '하얀 손수건'이나 '엔나스 미토스'든, 아니면 '사랑의 기쁨'이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