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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아마도, 아마도
어느 나라에나 철수와 영희가 있다 Bienvenue! 전공 불문입니다만 알리앙스여 안녕!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Willkommen! 데어 데스 뎀 덴 디 데어 데어 디 안녕히 계세요, 또 만나요, 잘 가요 어제의 세계 ¡Bienvenido! ‘바르셀로나의 모험’ 같은 제목을 걸고 내 사랑, 내 마음, 너의 눈 우나 세르베자, 포르 파보르 ようこそ! 그것은 일본어의 첫 키스니까 듣기와 말하기만이라도 어떻게 좀 안 될까? 아무튼, 계속 쓰고, 뛰며, 싸워나가는 歡迎! 미국식 커피를 마신다 애타게 청명검을 찾아서 등려군의 달, 왕페이의 달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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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배울 때 고생문이 열리는 지점은 그러니까 바로 이런 순간, 시제를 배울 때다. 성과 수와 시제를 일치시켜야 할 때, 정확하게는 우리에게 없는 것을 배울 때다. 무엇이든 일대일 대응이 된다면, 어렵지 않다. 엄마와 아빠와 친구들, 책과 눈과 비와 사랑같이, 형태가 같고 개념이 같은 것들은 그대로 외우면 된다. 그러나 우리에게 없는 말들은 곧 우리에게 없는 개념들이다.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에서 수학했고, 후일 러시아어 통역을 오래 했던 일본의 에세이스트 요네하라 마리는, 열네 살에 일본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열등감’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감정이 무엇인지도 몰랐다고 생전에 술회했다. 심지어 체코에서는 '어깨 결림'이라는 말도 들은 적이 없으니, 말이 없으면 신체 감각도 없게 마련이라고 했다. ---「어느 나라에나 철수와 영희가 있다」중에서
졸업 이후 지금까지, 프랑스어는커녕 문학의 ‘문’과도 일절 상관없는 매일매일을 20년 가까이 뚜벅뚜벅 지내오고 있다.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고 야근을 하고 기안을 올리고 결재를 하고 보고를 하고, 다시 출근을 하고…. 그런 일상의 틈새로 불현듯 마들렌 쿠키가 출몰할 때면, ‘아, 내가 그래도 불문과를 나왔는데…’ 하는 뜻 모를 상념에 젖곤 한다. 가령, 여름이 끝나갈 무렵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들을 때처럼.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중에서 ‘독일=재미없음’이라는 인식은 새삼스럽지도 않았지만, 라디오에서 [맨해튼의 선신]을 듣고 동네 술집에라도 모여서 “어제 라디오 들었어?” 하면서 드라마 얘기를 나눴을 옛날 독일 사람들을 생각해보니 이상한 흥미가 돋았다. 진지함을 재미로 소비할 수 있는 성향이랄까, 문화랄까 그런 국가적(?) 특징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궁금했다. 독일 책들은 재미없었지만 그 책들을 재미있게 읽고 있을 독일 사람들에게는 왠지 모를 호감을 느꼈다. 어렵고 복잡하고 깊고 진지한 것들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 같았다. ---「데어 데스 뎀 덴 디 데어 데어 디」중에서 쿠바 사람 글로리아 에스테판의 노래를 뜻도 모르면서 가끔 따라 부르기도 한다. ‘마음’이라는 뜻을 가진 스페인어 ‘corazon’은 영어의 ‘heart’나 프랑스어의 ‘coeur’보다 어쩐지 더 마음에 근접한 느낌이다. 스페인 여행 중에 버스 정류장에서 ‘esperar’ 동사를 자주 보았다. 프랑스어라면 ‘기대하다’, ‘생각하다’ 같은 뜻이 먼저 떠오르니, 여기서 버스를 기대하라는 것일까, 추측해보기도 했지만, 스페인에서는 ‘기다리다’라는 뜻이 좀 더 우선된다고 한다. 어쩐지 기다리면 좋은 일이 생길까 기대하게 되는 건가 싶어서 기다림에 지치면서도 낭만을 느꼈다. 게다가 ‘나는’, ‘너는’ 같은 주어를 굳이 표기하지 않아도 되는 스페인어적 화끈함도 마음에 들었다. 아직까지도 그 유명한 『백년 동 안의 고독』을 읽지 못한 것은 괜히 혼자만 품고 있는 비밀이다. ---「¡Bienvenido!」중에서 이제 일본 아니라 어디에서도 그런 이상주의를 찾아보긴 어렵지만, 그때의 기무라 타쿠야를, 그 조각 같은 얼굴로 사랑한다 말하고, 약속을 지키겠다 맹세하고, 누가 뭐래도 이 길을 가겠다 다짐하던 목소리를 떠올리면 어쩐지 다시 10년 전, 20년 전의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던’ 시절이 소환된다. 늙지 않을 것 같았던 그 배우도 주름이 켜켜이 많아졌고, 해체하지 않을 것 같은 그룹도 흩어졌고, 나는 무엇도 되지 못하였으나, [뷰티풀 라이프]의 첫 키스는, 영영 잊히지 않을 것이다. 소레와 니홍고노 하지메테노 키스카라(그것은 일본어의 첫 키스니까). ---「그것은 일본어의 첫 키스니까」중에서 하루키는 그래서 늘,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유일한 단독자 같은 사람이 결국 세계에 작은 균열이라도 내고 마는 이야기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것 같다. 세상에 개인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선언, 하나하나의 개인이 우주이며 알파고 오메가라는 다짐이 더욱 강력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돌파력을 응원한다.?[…] 아무튼, 계속 쓰고, 계속 뛰며, 계속 싸워나가는 그 '계속해보겠습니다' 정신을 사랑한다. 체념하지 말고, 순응하지 말고, 투항하지 말고, 다른 그 어떤 존재에게라도 나를 방치하지 말라는, 어찌 보면 잔소리 같은 메시지가 아직은 질리지 않는다. 그렇게 ‘언제 적’ 하루키는 ‘그래도’ 하루키가 된다. ---「아무튼, 계속 쓰고, 뛰며, 싸워나가는」중에서 중국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는 명쾌한 것 같았다. 중국에 오는 사람이라면 응당 중국어를 알아야 된다고 믿는 태도 혹은 중국어 모르는 사람은 패스(!) 한다는 의지 같은 것이 느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애칭의 느낌으로 ‘사과폰’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공식적인 매체에서는 당연히 ‘아이폰’ 이라고 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공식적으로 ‘?果(사과)手机(핸드폰)’이라고 쓴다. ‘아이폰’이라고 하면 못 알아듣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그럴 만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도 든다. 자국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세상천지에 그렇게 많은데 중국어 외의 다른 언어를 굳이 왜 해야겠다고 생각하겠는가?? ---「미국식 커피를 마신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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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뜬금없는 질척거림, 말에 대한 쓸데없는 동경이
때때로 한국어로 가득 찬 지루한 일상의 마라톤을 버티게 해준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우리에게 없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이런 순간들 때문에 책을 금방 덮기도 하지만, 간혹 입으로 읊조렸던 단어들이 귀에 들릴 때, 여행지의 안내문에서 아는 단어가 튀어나왔을 때 반가워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 괜히 혼자 뿌듯해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순간은 극히 드물고, 평소에는 사실 그냥 크게 쓸 일이 없을 외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면서도 대견하고 어쩐지 시간을 좀 가치 있게 쓰는 것 같아 미묘한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아마도 모든 외국어 방랑자들의 마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집요한 습관 혹은 미련은 무엇일까? 저자는 말한다. 아무래도 이번 생에 외국어를 잘하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이런 뜬금없는 질척거림, 모르는 말에 대한 쓸데없는 동경이 때때로 한국어로 가득 찬 지루한 일상의 마라톤을 버티게 해준다고. “떠나지 않고 떠난 척해보고 싶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같은, 모든 외국어 방랑자들의 마음” 그렇게 여러 언어를 기웃거리다 마흔이 훌쩍 넘어버린 저자는, 잉에보르크 바흐만이 로마로 떠나거나, 나무를 심거나 혹은 아이를 낳게 되리라 예언(?)했던 나이가 놀랍게도 ‘삼십 세’였다는 생각에 흠칫 놀라며, “로마로 떠나지도 못했고, 나무는커녕 작은 화분 하나 제대로 키워본 적이 없고, 엄마가 되지 않은 채 마흔도 가볍게 넘어버린 지금은, 솔직히 말해서 로마로 떠났다가도 돌아와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자우림의 [샤이닝]의 첫 구절,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나를 받아줄 그곳이 있을까”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크게 일렁인다. 하지만, 그 일렁임의 파장이 예전만큼 아주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자신이 늙어가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지나가버리는 부모의 시간들 때문이다. 왜 그때, 훌쩍 떠나지 못했을까, 떠나서 돌아오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지금과는 다르게 살고 있었을까 감상에 빠지다가도, “주말에 집에 오냐?”, “카톡으로 온 사진 저장이 안 된다”, “집에 와이파이가 끊긴다” 하시는 엄마의 시시콜콜한 VOC를 듣고 있으면 한편으로 깊은 안도가 된다. 그러므로 쓸 일도 없는 프랑스어를 기억하려고 애쓰고, 뜬금없이 독일어 관사와 씨름을 해대고, 일드의 명대사를 반복하거나 스페인어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중국어 성조를 외우며 고개를 위아래로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은, 떠나지 않고 떠난 척해보고 싶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도 같다. “모든 언어는 그 언어가 그 언어일 수밖에 없는 개성과 그 개성이라는 예쁜 말 뒤로 어마어마한 협곡이 있다” Bienvenue! 과거 시제만 다섯 개가 돼 프랑스 사람들도 헷갈린다는 이상한(?) 언어. 마치 중력을 거스르듯이, 온갖 형식미와 문법을 사랑하는, 심지어 구어체로는 쓰지 않는 시제도 있는 고고한 언어를 짝사랑했다. 애초에 한국어 네이티브가 잘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희박하고,?프랑스에 놀러 갈 일이라도 없으면 죽을 때까지 쓸 일이 없을 것 같은 말인데, 꼭 하나만 잘하고 싶은 말을 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프랑스어를 선뜻 택하게 될 것 같다. 프랑스에 갈 때마다 그 불친절함에 기겁하면서도 또 가고 또 가게 되는 희한한 마음과도 닿아 있다. 너무 어렵고 도도한 말. 이루어질 수 없는 첫사랑처럼. Willkommen! 관광객 주제에 너무 관광지 같지 않았던 그 분위기가 좋아서, 듣다 보면 은근히 매력 있는 그 발음이?폭스바겐 광고의 그 ‘das Auto’ 같은?좋아서 독학을 시도했다.?강박적으로 모호함을 싫어하는, 융통성 없는 이 언어를, ‘어제의 세계’를 기억하는 말들을 알고 싶어졌다. 쓸모없는 진중함, 효용을 바라보지 않는 진실함 같은 것, 1+1=2처럼 딱 떨어지는 에누리 없는 말들의 매력을 느껴보고 싶었다.? ¡Bienvenido! 스페인어는 정다운 언어라고 생각한다. ‘한’이라든가 ‘정’이라는 정서, 혹은 ‘효’라는 개념이 우리한테만 있는 특산품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코코]만 봐도, 거기도 있을 거 다 있다. 한도 있고, 정도 있고, 심지어 그 효도 있고 그렇다.?스페인어를 들으면, 정말이지 독일어는 세상 무뚝뚝하고, 프랑스어는 살짝 간질거리는 것 같고, 영어는 새삼 밍밍하다. 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스페인어는 확실히 모음으로 끝나는 단어가 많아서인지 부드럽기도 한 느낌이다. 언어에서 전해지는 무작정 밝은 양지의 느낌, 그 특유의 명랑한 템포도 좋았다. 물음표도 느낌표도 괄호 열고 괄호 닫는 느낌으로, 심지어 거꾸로 세워둔 표시도 장난스러워서 재밌다. ようこそ! 어쩐지 일본어는 ‘마음만 먹으면’ 금방 할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그냥 두고(?) 있는데, 마치 ‘우리 애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금방 성적이 올라갈 것’ 이라고 생각하는, 공부 못하는 자식을 둔 부모의 심정이 혹시 이런 건가, 싶다. 한참 기무라 타쿠야의 일드를 빠져서 볼 때는 자막 없이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고 착각할 때도 있었지만, 정말 자막 없이 본 적은 없다. 나도 일본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주문하기 위해 일본어 능력시험 1급을 땄다는 가수 이적과 같은 스토리를 가져봤으면 좋으련만. ?迎! 차마 [화양연화] 때문이라고는 못했지만, 그야말로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던 그 미지의 언어를, 조금이라도 엿보고 싶었다. 프랑스어처럼 시제가 괴물 같지 않고, 독일어의 무시무시한 관사 같은 것도 없지만, 중국어는 보어가 복잡하다. 자괴감만 아니라면, 조급함만 없다면, 오래오래 배워볼 수 있는 언어라고 생각한다. 병음이 적혀 있지 않은, 띄어쓰기 없는 기나긴 한자의 행렬을 보고 있자면, 그 자체로 만리장성이나 자금성의 위용이 느껴진다.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 아무튼, 00 ‘생각만 해도 좋은, 설레는, 피난처가 되는, 당신에게는 그런 한 가지가 있나요?’ 아무튼 시리즈는 이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시인, 활동가, 목수, 약사, 일러스트레이터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개성 넘치는 글을 써온 이들이 자신이 구축해온 세계를 각권의 책에 담아냈다.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라는 교집합을 두고 피트니스부터 서재, 망원동, 쇼핑, 게스트하우스, 계속, 스릴러, 스웨터, 외국어 같은 다양한 주제를 솜씨 좋게 빚어 한 권에 담아 마음에 드는 주제를 골라 읽는 재미를 더했다. 길지 않은 분량에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져 부담 없이 그 세계를 동행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이 시리즈는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출판사가 하나의 시리즈를 만드는 최초의 실험이자 유쾌한 협업이다. 색깔 있는 출판사, 개성 있는 저자, 매력적인 주제가 어우러져 에세이의 지평을 넓히고 독자에게 쉼과도 같은 책 읽기를 선사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