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부 서사와 시적 언어
오대혁 여리디여린 눈송이와 새가 피워 내는 불꽃 / 12 이광용 세상을 개념화하여 구분하는 경계를 넘어서 / 23 김양훈 지극한 사랑을 탐구한 소설 / 36 윤상희 공간을 시간으로 바꾸는 언어 / 51 2부 애도의 서사 양경인 연약한 생명에 바치는 영가(靈歌) / 64 임삼숙 연민은 다른 이의 고통과 내 고통의 결합 / 73 현민종 우리의 현재가 과거가 될 때 / 82 양영심 아픈 역사를 직시하는 한강의 사랑법 / 88 3부 역사와 문화의 서사 김영준 『작별하지 않는다』가 끄집어낸 국가폭력과 제노사이드 / 102 강법선 큰심방 한강이 풀어내는 4·3 굿 / 116 김정주 애도할 수 없는 섬의 유령들 / 131 4부 포토 에세이 김성례 성근 눈발 속에 만난 ‘작별하지 않는’ 사람들 / 144 |
|
그 숱한 죽음의 날짜, 시신의 숫자가 역사가들에게 소중한 것이라면, 문학가들에게는 죽음이 가져다 준 상처와 고통, 그리고 애도의 서사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문학은 살아남은 자들이 죽은 자들을 위해 베푸는 제의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 p.18 「오대혁, 여리디여린 눈송이와 새가 피워 내는 불꽃」 중에서 제주도민들은 실재하지 않는 개념의 세계에 갇혀 그들을 구분한 세상의 경계를 넘어가는 걸 두려워하며 죽은 것처럼 살아야 했다. 그 세상은 개념화로 구분하여 강요된 세상이었고, 도민들은 그 세상의 질서를 따르지 않으면 배척되었다. 지배층의 동일성 집단에 들어가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었다. 경계 밖의 세상은 절멸되어야 할 세상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 p.27 「이광용, 세상을 개념화하여 구분하는 경계를 넘어서」 중에서 사랑한 적도 없는 새를 필사적으로 구하려다 실패한 경하는 ‘아마’라 불리는 앵무새의 주검을 위해 예의를 갖추어 정성껏 묻어 준다. 폭설이 내리는 어두운 밤에 새를 장사 지내기 위해 삽을 들고 홀로 고투하는 장면은 학살자들에 대한 준엄한 고발이었다. --- p.41 「김양훈, 지극한 사랑을 탐구한 소설」 중에서 제주에는 바다에도 무덤을 쓴다는 작가의 상상이 제주4·3을 떠올리게 하며 송곳처럼 나를 찌른다. 제주 4·3은 한라산이나 오름이나 불탄 마을이나 쓰러진 산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눈 내리는 모든 곳이 제주4·3의 현장이다. --- p.53 「윤상희, 공간을 시간으로 바꾸는 언어」 중에서 제주4·3 영령들이 한강 작가를 영매로 선택하였구나 생각했다. 경하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칼이 허공에 떠서 몸을 겨누고 있는 형국이 자신의 삶을 당겨 말해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피할 수 없고 써야만 극복되는 천형과도 같은 작가의 운명을 생각해 보는 이 장면에서 박경리가 『토지』를 쓸 때의 심경을 토로한 글이 떠올랐다. --- p.67 「양경인, 연약한 생명에 바치는 영가(靈歌)」 중에서 이 소설은 고통에 대한 이야기다. 고통은 심리적, 육체적으로 기존의 안정과 평화가 깨어졌을 때 드러나는 감각이다. 소설 안의 인물들은 모두 고통을 가지고 있다. 경하는 작가로서의 고통과 새를 구하러 가는 과정에서의 고통을, 인선의 어머니 정심은 자신과 언니만 살아남고 동생의 죽음과 오빠의 시체를 찾지 못한 고통을, 인선의 아버지는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고통은 통증과 두려움으로 남을 수도 있지만 단계를 거치며 나아가기도 한다. --- p.76 「임삼숙, 연민은 다른 이의 고통과 내 고통의 결합」 중에서 눈은 차갑고 가볍고 연하고 부드럽다. 새는 작고 연약하고, 생명이고 영혼이고 사랑이다. 밤은 죽음이고 바다 밑과 같이 어둡다. 불꽃은 사랑이다. 꺼질 것 같이 가녀리지만 과거와 현재를 이어 가는 사랑이다. 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신의 공백 위로 인간의 유한성을 환기하며 작가는 묻고 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고. --- p.87 「현민종, 우리의 현재가 과거가 될 때」 중에서 먼 곳에서 내렸던 눈송이가 구름 속에서 응결된다. 살육이 벌어지던 날 얼굴에 쌓였던 눈이 오늘 내리는 눈과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어디선가 결국 다시 이어지고 닿는 관계, 인드라망의 세계다. 그 살상이 결국 내 가족을 해치거나 어쩌면 나 자신을 죽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폭력과 살상으로 뒤엉킨 세계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 p.90 「양영심, 아픈 역사를 직시하는 한강의 사랑법」 중에서 계속 피가 흐르고 통증을 느끼게 하려면 주인공 인선이 한 것처럼 신경이 죽기 전에 삼 분에 한 번씩 봉합된 손가락에 바늘을 찔러야 한다. 우리가 단지 당장 아프기 때문에 제주도의 비극을 기억하지 않고 고통과 마주하기를 외면한다면 역사의 신경 한 부분은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N차 회독은 계속되어야 한다. --- p.115 「김영준 『작별하지 않는다』가 끄집어낸 국가폭력과 제노사이드」 중에서 산 자들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며, 그 고통은 쌓이기 마련이다. 그게 한이 된다. 그 한을 풀어 주는 사람이 무당이다. 무당은 마음속에 앉은 아픔을 치료해 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을 제주에서는 심방(心房)이라 한다. 심방은 마음의 방이다. 마음의 방이기에 마음을 거울처럼 맑게 가꾸는 이가 심방이다. 그렇기에 심방은 거울에 비친 타인의 아픔을 읽어 주고 치료해 주는 영적 존재다. --- p.118 「강법선, 큰심방 한강이 풀어내는 4·3 굿」 중에서 제주4·3을 둘러싼 항쟁의 서사가 지워짐으로 인하여 생길 수 있는 문제의 하나는 애도의 위계일 것이다. 즉 애도할 수 있는 죽음과 애도할 수 없는 죽음이 구별된다. 소설 속에서 종종 언급되는 노인과 어린아이를 비롯하여 이른바 무고하게 희생된 양민의 죽음은 애도의 대상으로 인정받지만, 항쟁을 주도했거나 이에 동조하여 입산하거나 입산자들을 지원한 이들의 죽음에 대한 애도는 금지되거나 보류된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에서 왕의 명령을 어기고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몰래 매장한 안티고네의 항변을 크레온은 아마도 현실적인 이유에서 뒤늦게나마 인정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외국 군대를 끌어와 조국을 혼란에 빠뜨렸다는 폴리네이케스의 반역죄가 테베 시민들의 기억에서 지워진 것이 아니라면 과연 그의 죽음은 애도를 받은 것인가? --- p.135 「김정주, 애도할 수 없는 섬의 유령들」 중에서 경하가 새 아마에게 찾아가는 길의 눈보라 속에 버스에서 내려 미끄러진 건천이 가시천이며, “폭우와 폭설에만 흐르는 마른 물길(127쪽)”을 경계로 마을이 나누어진 곳에 바로 이 새가름공원과 위령비가 있다. 한때 20여 가호에 100여 명의 주민들이 살았던 새가름 마을은 제주4·3으로 전소되었고, 재건되지 못한 마을을 굳이 위령 공원 이름으로 채택한 것은 사라진 마을의 기억을 회복하기 위함일 것이다. --- p.148 「김성례, 포토 에세이, 성근 눈발 속에 만난 ‘작별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