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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 4
프롤로그 / 11 1. 나는 애초부터 소년이 아니었다 / 21 2. 내 생에 단 한 분뿐인 선생님 / 37 3. 그때 나는 이랬었다 / 53 4. 엄마를 생각한다 / 66 5. 다시 그날들을 생각한다 / 86 6. 돌아가는 길을 알았다 / 106 7. 탱자나무 지팡이만 들고 다니신 할아버지 / 131 8. 기철이란 친구가 있었다 / 146 9. 그해 겨울, 또 다른 인연 / 165 10. 갑질하는 공돌이 / 192 11. 나의 전성시대 / 205 12. 고마운 사람이 있었다 / 218 13. 꿈을 향해 가는 소년공 / 238 14. 지금 나는 / 253 15. 기억에 없는 아버지를 찾아봤다 / 275 16. 1979년, 그해 겨울 / 287 에필로그 / 3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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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기차를 타던 13살, 그해 봄이 되기 전 나는 습관처럼 서울 용산에서 출발해 목포를 향하는 완행열차가 지나가는 그 시간이면 외갓집 울타리 측백나무 가지를 붙잡고 올라가 철둑 길을 바라보았다. 저녁밥을 먹을 시간 바로 전이었다. 저녁 5시 몇 분이었을 것이다.
목포행 완행열차는 늘 그 시간에 멀리 보이는 철둑길에 나타났고, 정확하게 13초 동안 나의 시선 속에 있다가 산모퉁이 속으로 사라졌다. 용동역(내가 조금 더 어렸을 적에 사는 동네가 용안면에서 용동면으로 분리되며 역전 이름도 용안역이었는데 바뀌었다)에 도착하기 1분 전이었다. 기차가 산모퉁이를 돌아가면서 뿌우 뿌우, 기적 소리로 역무원에게 도착을 알렸다. 그 기적 소리는 키 큰 측백나무 가지 사이에 숨어 있는 나에게도 들렸다. --- pp.22-23 선생님은 내가 6학년에 올라가는 그 겨울방학 동안 서울 집에 가시지 않고 나를 위해 관사에 머물렀다. 오전에는 학교 일을 자처하시고 오후에는 내 공부를 지도해준 선생님이 나는 좋았다. 그래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선생님 관사로 달려갔다. 동네 친구들이 골목에서 구슬치기도 하고 삼치기도 하고 놀았지만 나는 선생님에게 배우는 중학교 수학이 정말 재밌었다. 선생님은 중학교 일이삼 학년 단원별로 이어지는 수학을 집중적으로 가르쳐주었다. 나는 선생님이 하라는 내용을 모두 복습하고, 암기하고, 문제를 풀어냈다. 한번은 동네에서 공부 좀 한다는 중학교 2학년 경종이 형이 이모한테 붙잡혀 왔다가 내가 푸는 문제를 보고 기겁을 하고 도망간 적도 있었다. 자기는 풀지 못한다면서 문제만 읽고, 너무 어려워요, 하고는 도망간 것이었 .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한 이모는 내가 정말 공부를 잘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 p.44 그나마 권투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처음 출전한 ‘김명복 박사배 신인 복싱선수권 대회’에서 준결승에 오른 성적이 괜찮은 성적이었다. 대회 우승을 한 인천 제물포고등학생 박형일(훗날 국가대표 선수로 잠시 활동함)에게 판정패했지만 잠깐 아쉬운 장면이 있기도 했다. 아마추어 복싱대회는 3분 3회전 경기로 치러지고, 내가 2회전 초반에 복부 공격 후 스트레이트를 인중 정면에 맞췄을 때 상대 선수는 휘청했다. 순간 동공이 감기는 것을 봤는데도 나는 더 강하게 몰아세우지 못했다. 그때 죽기 살기로 코너에 그 선수를 몰아세웠으면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었는데 승부 욕심도 체력도 부족했다. 아니, 그 선수와 어느 순간 눈빛이 마주쳤는데, 내가 순간 주춤한 것이다. 더 때리면 죽을 것 같은 생각이 순간 나를 멈칫하게 했던 것이다. --- pp.109-110 할아버지는 청년이었던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소 장수였다고 한다. 돈도 많이 벌었다고 했다. 할아버지 형제 중에 힘이 제일 셌다. 밀양 박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인 마을에서도 단연 강자였고, 인근 강경과 함열 장터에서 알아줄 정도였다. 흔한 말로 깡다구가 대단해서 일본 순사들도 할아버지는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정도였다고 했다. ‘니네 할아버지는 말이다’로 시작하는 동네 분들 얘기가 그걸 증명했다. 그중에 엄마 소꿉친구였던 과수원집 아들 주평이 아버지가 가끔 할아버지의 대단함에 대하여 말해주었다. 주평이 아버지는 엄마와 동갑내기 소꿉친구였다. 너무 일찍 아버지는 죽고, 가난한 외갓집에서 살고 있던 어린 나를 보면 소꿉친구인 엄마 생각이 나서 짠한 마음이 든다며 하는 말끝에는 매번 ‘니네 할아버지 정말 대단하셨다’로 끝냈다. --- p.135 나는 보따리 같은 가방 하나를 챙겨 공장 기숙사를 나가면서 같이 가자는 기철이를 끝내 혼자 보냈다. 기철이가 여기는 사람이 일할 곳이 아니라고 간곡하게 나를 설득했지만 나는 오직 정숙이 누나 생각만 했다. 그렇게 사라졌던 누나는 그다음 날에도 공장에 나오지 않았고, 다음 날에야 출근했다. 얼굴에 멍이 들어 있었다. 그 예쁜 얼굴이 시퍼렇게, 그리고 피가 뭉쳐버린 듯한 상처가 눈 옆에 있었다. 그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고 말년이가 귀띔을 해주었다. 나는 그 누나의 웃지 않는, 아니 아파서 슬퍼 보이는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곤욕이었다. 내 가슴이 아팠다. 누나는 그날 이후 며칠 동안 나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일만 열심히 했다. 웃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누나의 뒷모습만 보며 일을 했다. 정말이지 이상한 공장이었다 --- pp.183-184 여기서 나만의 기술 하나를 지금 공개한다면, 코너를 돌릴 때 오른발 무릎으로 작동하는 노루발을 살짝 들어 올리는 것이 내가 하는 특별한 기술이었다. 팽팽하게 할 때는 손으로 잡아 주는 PP선을 살짝 밀어주면 코너가 확연하게 살아난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마무리 작업을 남들이 흉내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빨리하는 편이었다. 그것은 기술이 아니어서 말로 설명하기 어렵고, 안에 들어가 있는 PP선을 잘라서 시작된 부분과 연결하는 동시에 원단을 접어 박음질하는 손이 빠르고 정확해야 한다. 굳이 내가 가진 특별한 기술이라면 미싱을 하는 동안 남들처럼 쪽가위를 놓지 않고 손에 들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쪽 가위를 들었다 놨다는 시간을 절약하는 것도 반복되는 일을 할 때는 생산량에서 큰 차이가 났다. --- pp.208-209 나는 누니와 가족이 준비한 찹쌀밥에 산나물과 메콩강에서 잡았다는 물고기탕에 저녁을 먹었다. 이미 그곳으로 가기 전 한 국식당 ‘요리’ 사장에서 충분히 들은 사전 지식이 있어서 나는 누니 아버지와 짧은 영어가 가능하고 매우 능동적인 그의 친구 현지인과 인터넷이 되지 않아도 태국어 동시통역이 가능한 휴대전화기가 있어서 다소 답답하기는 했지만 소통할 수 있었다. “나는 당신의 딸이 훌륭한 의사가 되도록 도와줄 것이다.” 나는 매우 사무적인 어투로 말했다. 측은지심이나 일시적인 동정심이 아니라는 것을 표정으로 말해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우리는 공부시킬 돈이 없다. 저 아이가 돈을 벌지 않으면 우리 가족은 굶어 죽어야 할지도 모른다.” 누니의 아버지는 서른여덟 살의 젊은 사람이었지만 불안해하고 있었다. 직접 돈을 벌 수 있는 처지가 아니어서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무너진 가장의 모습이었다. --- p.2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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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끝나도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소설 속 주인공이자 작가 자신이기도 한 ‘종원’은 성남의 가방 공장을 전전하면서 매우 뛰어난 가방 기술자가 된다. 어떻게 보면 한 입지전적 인물의 자기 서사 같기도 하지만, 작가가 강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학교 공부는 못 했지만 버릴 수 없는 꿈에 대한 절실함이다. 이 절실함이 주인공을 소설가로 만들어주기도 했고 대학교를 졸업하게도 했다. 그렇다고 경제적 궁핍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도리어 대학교에 합격하고도 등록을 못 하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역설적으로 이것은 가방 제작에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게도 해준다. 주인공이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을 찾은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역경과 역경을 넘어서고자 하는 의지로 다져진 주인공은 드디어 먹고사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때 만난 운명같은 존재가 라오스의 소녀, 누니다. 이 소설은 라오스에서 주인공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구조로 짜여졌다. 라오스의 현재와 역사를 중간중간에 가져오는 것은 뜻밖에도 라오스라는 거울을 통해서 경제 발전을 이룬, 혹은 경제적 궁핍에서 벗어난 자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부자가 된’ 대한민국 중년 남자가 라오스와 라오스의 소녀 누니에 대한 동정심이었나? 버뺀냥, 그 한마디에 나는 많은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싸우지 말자, 우리 따지지 말자, 우리 서로를 존중하자, 살아가다 보면 다 괜찮아지지 않느냐, 등등. 수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버뺀냥이었다. 내가 경험한 라오스 사람들은 말 그대로 순박했다. 그 순박함이 평화로움을 만들고 있는 듯했다. 서로를 존중하고 경쟁하지 않는 사람들. 라오스에서 사는 서민들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들과 섞이고 싶었다. 그들에게 존중받는 듯한 라오스에서의 경험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에서 63년을 치열하게 살면서도 존중받지 못했다면 라오스에서는 일상이었다.(151) 일단 「프롤로그」부터 가볍게 주인공 자신의 처지를 고백하지만, 정작 현재 서 있는 곳은 라오스다. 그리고 첫 문장이 라오스어 ‘버뺀냥’의 뜻인 “괜찮아”로 시작하는 것은 라오스가 주인공 자신의 삶, 그 삶을 살게 했던 대한민국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자전적 성장 소설이다 보니 소설의 주 내용은 라오스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겪어온 풍파와 그 풍파의 디테일이다. 라오스 소녀 누니와의 만남이 신파적으로 빠지지 않은 이유도 한편으로는 주인공이 살아내야 했던 1970년대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1970년대의 가난이 가졌던 순박함을 경제가 발전하면서 잃은 것 같다는 고독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혼자’ 라오스 여행을 하는 것이고 여행도 여기저기 관광을 하는 게 아니라 한곳에서 라오스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로 소일하는 이유이다. 이 독특한 자전적 성장 소설은, 주인공의 1970년대, 즉 가난과 불합리의 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 암시하면서 마무리 된다. “그날의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내가 살아온 삶은 늘 낯선 곳을 향해 걸었다.”(323) 그러면서 동시에 주인공의 현재는 라오스에서 돌아온 “먼지 자욱한 한국 하늘”(327) 아래다. 소설은 끝났지만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일까? 작가의 말 이 소설을 쓰는 내내 생각했다. 내가 살아온 그 시절, 1970년대를 소년공으로 살면서 정신만 온전하게 차린다면 학교 교실에서는 배우지 못할 가치관과 세계관을 몸으로 습득하게 된다는 사실을. 절실함으로 노력했다면 꿈을 향해 가는 길은 언제나 열려 있던 시절이었다. 그중에 한 사람이 이 소설의 출간을 앞둔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로 다시 나섰다. 나는 그가 휘청거리는 대한민국을 바로 세워놓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 시대를, 같은 공간에서 살아온 사람으로서 믿지 않을 수가 없다. 1970년대 좁고 비탈진 골목의 달동네였던 성남시에서 소년공으로 살아온 사람이라면 그를 믿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소년 시절을 학교 교실에 앉아 세상을 공부한 사람과는 다른 절실함을 몸으로 체득했을 것이기 때문이고, 일머리를 본능적으로 습득해야 했기 때문이다. 소년공은 혼자 오늘 할 일을 선택해야 하고, 살아내야 하고, 책임져야 했다. 정의롭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꿈을 꾸는 소년공은 늘 그래야 했다. 그가 바로 그런 사람이고, 나 역시 그렇게 소년공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믿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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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공, 1974』는 마음에 꽃을 품은 복서(boxer)의 삶, 그리고 공장노동자의 삶을 살면서도 끝내 자신의 사랑을 지키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의 삶은 치열했고 아팠으나 사람에 대한 깊은 사랑이 있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내가 이 소설을 읽지 못했다면 이종하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거다. 책을 통해 그의 삶 전부는 아니지만 내밀한 부분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나를 아프게 했고, 눈물 흘리게 했다. 읽는 동안 몇 번이나 숨을 멈추고 내 삶을 떠올려야 했는지 모른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치유해 가는 과정이 나를 울음에서 웃음으로 나아가게 했다. 사람 이종하를 알고 싶고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 이음 (이음마음치유센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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