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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계절, 나의 날씨
이신조
문학동네 2025.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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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봄밤의 번개와 질소
여름철 기압 배치
펫로스, 겨울 편지
오늘 서울은 하루종일 맑음
세탁기 속의 그녀-『인어공주』 외전(外傳)
숲그늘의 개와 비
스필버그와 나

해설 | 너는 날씨를 바꾼다
양윤의(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1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98년 『현대문학』신인추천에 단편소설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나의 검정 그물 스타킹』 『새로운 천사』 『감각의 시절』, 장편소설 『기대어 앉은 오후』 『가상도시백서』 『29세 라운지』 『우선권은 밤에게』 『크리에이터』가 있다.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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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5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133*200*30mm
ISBN13
9791141601782

책 속으로

다른 많은 사람처럼, 나 역시 딱히 입춘이니 경칩이니 하는 절기를 대수롭게 여긴 적은 없다. 경칩 때 천둥 번개가 치며 비가 내린다는 속설도 알지 못했다. 물론 경칩이라고 해서 매년 빠짐없이 비가 내린 것도 아닐 터였다. 그러나 어쨌든 사 년 전 그날의 일이 현재의 내 삶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온전히 인지하지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것들이 지금의 나를 여기에 이러한 상태로 존재하게끔 하고 있다.
--- p.30「봄밤의 번개와 질소」 중에서

고소한 확신과 비릿한 망설임, 뜨겁고 끈적하게 물크러지는 먹이, 맵고 짜고 달고 시고 쓴 삶의 맛을 아직 모르면서 알게 되는 순간, 죽음이 다른 식으로 변환된다. 속절없이 다급하면서도 안일한 낙관이 자리를 잡는다. 하품이 나고 눈물이 맺힌다. 한솔은 할머니의 등에 매달려 늙은 어깨와 함께 흔들리며 퇴행의 안온감에 휩싸인다. 에그그그그, 할머니는 신음소리를 내며 손자의 포대기를 바싹 추어올린다.

“밖에 비 온다.”

생의 첫 기억, 머지않아 식구들이 돌아와 할머니 김난옥이 마련한 삶과 죽음을 먹을 것이다.
--- p.63「여름철 기압 배치」 중에서

나는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섭지 않았으면 좋겠다,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에 대한 내 고마움을 네가 알았으면 좋겠다, 너에 대한 내 사랑을 네가 알았으면 좋겠다. 묘조야, 언니는, 묘조야, 언니가. 나는 네게 꼭 들려줄 얘기가 있다.

길고 요란한 청춘이 끝나고, 혼자 끝없이 어두운 지하로 내려가던 시절에 너를 만났다. 내가 지리멸렬한 삶의 대가를 치르는 동안 너는 나와 함께 있어주었다. 네가 없었다면 나는, 소금 기둥으로 부서져 땅 밑을 흐르는 검은 강 속으로 녹아 사라졌을 것이다.
--- p.122「펫로스, 겨울 편지」 중에서

이 강은 이 도시의 삶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 강은 그렇게 하고 있다. 아주 오래 아주 많이 아주 깊이 그렇게 해온 것이다. 그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지수는 티 없이 맑은 하늘 아래 양화대교 보행로를 걸으며 한강을 바라보았다. 한강도 지수를 바라보았다. 양화대교를 내달리는 자동차들,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 서강대교와 성산대교, 마천루와 아파트 군락, 서울도 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감당할 수 있을까. -
-- p.145「오늘 서울은 하루종일 맑음」 중에서

인어공주는 자신이 이제야 왕자를 알게 된 것에 대해, 왕자를 그토록 알지 못한 채 그토록 사랑했던 것에 대해 생각하며 차가운 돌벽의 거친 표면을 피처럼 흘러내렸다. (…) 설혹 목소리를 되찾아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해도, 그에게 결국 아무 말도 할 수 없으리란 것을 인어공주는 깨달았다. 그가 수십 년 전의 자신을 떠올리고 있지 않다는 것,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었다.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고야 만다. 인어공주는 그를 떠났다.
--- p.178「세탁기 속의 그녀-『인어공주』 외전(外傳)」 중에서

나경은 길을 걷다 낯선 감각에 압도되어 번번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코나 입이 바닥에 툭 떨어지는 것 같은 생생한 착각, 그럴 리가 없음에도 눈과 귀가 제자리에 붙어 있는지 얼굴을 더듬거리며 황망하게 바닥을 살피는 일이 반복되었다. 꿈인지 잠인지 모를 상태로 어두운 방에 누워 있을 때면 갑자기 흙이나 모래가 얼굴 위로 흩뿌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내 마취 주사의 여운 같은 졸음에 잠겨 있어야만, 오물이 가득한 늪으로 까마득히 가라앉는 듯한 공포로부터 다소나마 무뎌질 수 있었다.
--- p.225「숲그늘의 개와 비」 중에서

아버지가 암 수술을 받고 한참 투병생활을 하던 즈음, K는 부모가 제 아들과 딸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았다. 제법 진지하게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았다. (…) 우린 어려서부터 같이 영화를 아주 많이 볼 거야, 매일매일 음악을 들을 테고, 자주 서점이나 전시회를 찾겠지. 그런 아들과 딸을 키우며 한세상 살 수도 있는 인생, 오직 그렇기만 한 인생, 당신들이 내 자식이었다면, 일어난 적 없는 삶의 노스탤지어, K는 목이 메었다.

--- p.279「스필버그와 나」 중에서

출판사 리뷰

“이 사랑과 섭리만을 위한 다른 언어가 필요하다.”
너와 내가 함께 쓴 내밀한 역사로서의 일기日記/日氣

『너의 계절, 나의 날씨』의 특별함은 서로 다른 정체성을 지닌 존재들을 따스하게 아울러내는 넓은 품에 있다. 「오늘 서울은 하루종일 맑음」에서 눈부시게 맑은 5월의 한강을 따라 걷는 ‘지수’의 머릿속은 지난겨울 겪었던 교통사고의 트라우마, 예상치 못한 임신, “통증과 충격과 고립감이 느껴지는 청혼”, 그리고 “사는 것처럼 살고 싶어” 서울로 왔지만 끝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하늘’에 대한 생각으로 복잡하다. 얼핏 인간을 환대하는 듯한 강변의 화창한 풍경과는 달리 연약한 이들을 잔혹하게 집어삼키는 도시의 생리,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한 폭의 유화처럼 어우러져 인간에 대한 너른 묘사를 전한다.

「세탁기 속의 그녀-『인어공주』 외전(外傳)」은 고전 동화를 신화적 상상력으로 이어 쓴다. 물거품이 된 후에도 266년간 물처럼 흘러다니며 세상을 관찰해온 인어공주는 어느 늦은 밤, 코인 빨래방에서 피 묻은 침대 시트를 세탁하는 한 젊은 여성을 발견한다. 목소리를 잃고 인간의 다리를 얻었지만 결국 사랑에 실패했던 인어공주의 비극이 빨래방에 앉아 밤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는 그녀에게 투사될 때, 시대를 초월하여 반복되는 여성들만의 역사가 파문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한편 「숲그늘의 개와 비」의 ‘나경’은 아버지와 자신의 커리어에 연이어 찾아온 커다란 스캔들로 삶의 최저점에 다다랐을 때, 외딴 숲속 펜션을 찾는다. 그곳에서 그녀는 7년 전 맞선 상대였던 의사 ‘인준’과 조우하는데, 당시 나경을 밀어냈던 그는 이제 약초꾼이 되어 은둔자처럼 살아가고 있다. 아직 그들 사이에는 “어둠 그 자체” 같은 커다란 검은 개, 계곡과 숲길, 섣불리 넘어가기에는 서로 너무나 다른 아픔의 역사가 있지만, 오직 단둘이 남는 어떤 밤이 이윽고 찾아온다.

『너의 계절, 나의 날씨』를 닫는 소설은 스쳐지나간 인연들, 떠나보낸 소중한 존재들과의 사적인 역사를 영화를 매개로 풀어낸 이야기 「스필버그와 나」이다. 소설은 우리에게 영화는 단순히 괴로움을 덜고 즐거움을 주는 오락이 아니라 실로 “영화필름처럼 흘러”가는 현재의 시공간을 기억하게 하고 과거에 생기를 부여하는 예술임을 증명하는 동시에, 어느 누구의 생이든 수많은 관계와 사연들을 통해 마치 영화처럼 정교하고도 근사하게 이루어져 있다는 진실을 설득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신조의 소설은 고요한 정동으로 가득하다. 고요하지만 격렬하고 잔잔하지만 끊임없이 요동하는 그것은 보이지 않으면서도 지상에 머무르는 공기와도 같다. (…) 그런데 『너의 계절, 나의 날씨』에서 날씨나 계절은 특정한 정념이나 주제를 암시하거나 은유하는 것을 넘어서, 소설을 구성하는 로직이기도 하다. 날씨가 정념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날씨 자체가 정념의 소유자인 것이다. 따라서 이신조에게 날씨나 계절은 소설의 행위자이기도 하다. _양윤의 해설, 「너는 날씨를 바꾼다」에서

『너의 계절, 나의 날씨』 전체를 감싸는 날씨와 계절의 은유는 단순한 배경을 넘어, 인간의 내면과 삶의 조건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때 인물들은 날씨의 변화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때로는 서로에게 서로의 날씨를 바꾸는 존재가 되어준다. “어긋난 인사(人事)를 감싸안”고 “서로가 서로의 돌봄의 주체”(해설에서)가 되어갈 때, 마침내 “겨울을 통과해 봄에 닿”(「펫로스, 겨울 편지」)을 수 있을 것이므로. 인간은 누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불어오는 날씨를 느끼고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몫만큼의 삶을 살아내려 애쓸 것이다. 다만 『너의 계절, 나의 날씨』가 그러하듯 유형무형의 고난들 끝에 아스라하게 불을 밝히는 삶의 의지까지도 능숙하게 감각할 때에야 독자는 비로소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오래 곱씹고 마음에 담아둘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너의 계절, 나의 날씨』는 변화무쌍한 삶의 기후 속에서 길을 찾아나서는 우리 모두에게, 다정하고도 든든한 우산이 되어준다.

추천평

나는 이신조를 몰랐던 것일까. 이토록 차가운 문장으로 이토록 뜨거운 사랑을 말한다니. 이토록 무심한 화법으로 이토록 애달픈 서정을 전한다니.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과 섭리를 기어이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애쓴 흔적들이 이토록 사무치게 독자의 가슴을 울린다니. 이신조의 소설을 한 권도 빠짐없이 읽어왔건만 마치 아는 채 몰랐던 사람처럼 나는 책장을 덮으며 새삼스럽게 울컥했다. 사랑에도 이별에도 전부를 걸어본 사람만이 아는 환희와 고통에 대해, 젊은 날의 불안과 혼돈을 넘어 삶을 관조하는 여유에 대해, 그럼에도 끝내 떨쳐낼 수 없는 존재의 불안과 혼돈 속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는 자의 쓸쓸함에 대해, 과연 이보다 절실하고 단단하며 아름다운 기록이 또 있을까. - 김미월 (소설가)
독자는 이 단 하나의 문장을, 스타카토와 크레셴도를 곳곳에 넣어가며 읽어야 할 것이다. 청록색 화폭을 앞에 둔 ‘나’의 붓은 육체와 영혼을, 그것의 활력과 무력을, 떨림과 요동을, 에고와 이드 혹은 의식과 무의식을, 환희와 공포를, 이성과 광기를, 삶과 죽음 등을 모두 포착하려는 욕망과 무기력으로 가득하다. 내면의 폭풍우가 칠 때, 문장은 저처럼 문법 바깥으로 나가려는 힘으로, 휘몰아치는 정동으로 충만해진다. 체계의 와해는 정신의 붕괴다. 문법의 파괴는 이성의 소실이다. (…) 이 들썩임―붕괴 직전까지 이르렀다가, 탈진한 채 돌아오는―에서 소설은 정동의 힘에 의한 회복과 통일을 성취한다 - 양윤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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