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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민아
2. 분노를 넘어서 3. 사람들 4. 긴 싸움 |
가만히 있어라.
어떻게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래서 죽어간 아이들이 남긴 동영상을 봅니다. 보는 게 너무도 고통스럽고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기 어렵지만 두 눈 똑바로 뜨고 봅니다. 보고 또 보면서 잊지 않으려고 말입니다. 차디찬 바다 속을 떠돌고 있을 맑디맑은 영혼들의 억울함을 깨끗이 씻어주려고 말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낱낱이 밝혀내는 게 진짜 어른들이 할 일입니다. 세월호를 만들어낸 건 우리 사회, 우리 어른들이니까요. 가슴을 치고 머리를 쥐어박았습니다. 얼마나 못난 아비이고 못난 시민이었던가를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빚에만 매달려 살다가 자신의 안전, 내 아이의 안전이 뿌리부터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외면과 방관, 나 힘들다고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에 눈 감고 있었던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적이 나타나면 땅에 얼굴을 묻고 나 몰라라, 등 돌리는 꿩처럼 말입니다. “아이들이 바람이 되어 광화문 광장을 누빌지도 모르는데 누군가는 그곳을 지켜야죠.” 중학교 1학년 아이가 어른들보다 훨씬 낫습니다. 많은 어른들이 세월호 참사와 이후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말할 수 없는 자괴감과 죄책감을 갖게 됐다고 합니다. 내가 세월호 선장이었어도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내가 해경이었어도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내가 정부 관료였어도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내가 피해자도 될 수 있지만, 얼마든지 가해자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는 것이죠. 그 충격과 죄책감을 못 견뎌서 눈물을 쏟는 것이라 합니다. 요즘은 유나한테 살아만 있어달라고 말합니다. 공부고 뭐고 그저 살아있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요. 하고 싶은 대로 살고, 건강하게만 살라고요. 그래야 사고 싶다는 거 사줄 수 있고, 먹고 싶다는 거 먹여줄 수 있고. 가고 싶다는 곳 데려갈 수 있으니까요. 아이가 죽고 나니까 못해준 것만 생각나고, 안 해준 것만 떠오릅니다.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유나가 지금 어려움을 잘 이겨내도록 만사 제쳐두고 도우려고 합니다. 유나는 살아만 있으면 됩니다. ---본문 중에서 |
“아이를 먼저 보낸 건
세상이 올바르게 제대로 굴러가는지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지 않은, 지켜보려고도 하지 않은 저 같은 사람들 때문입니다.” 2014년 본의 아니게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된 유민 아빠 김영오. 평생을 빈곤과 궁핍 속에서 허우적대며 살아야 했던 그는 두 딸에게는 언제나 못난 아비일 수밖에 없었다. 난생처음 정규직원이 되고서, 이제야 아비 구실을 해볼 수 있겠다는 소망도 허무하게 바스라지고 말았다. 딸 유민이의 꿈은 차디찬 바다 저 깊은 곳에 가라앉아 버렸고, 그에게 주어진 기회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으로 죽은 304명. 그 가족의 꿈과 소망이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뽑혀버렸다. 유민 아빠는 이유를 알고 싶다. 만신창이가 되더라도 진상을 알아내고, 아이들에게 사과하고 싶은 것이다. 김영오 씨는 딸 유민이를 보내고서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가슴을 치고 머리를 쥐어박았다. 얼마나 못난 아비이고 못난 시민이었던가를 깨달았다. 그동안 빚에만 매달려 살다가 자신의 안전, 내 아이의 안전이 뿌리부터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외면과 방관, 나 힘들다고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에 눈 감고 있었던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적이 나타나면 땅에 얼굴을 묻고 나 몰라라, 등 돌리는 꿩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한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곳이 큰 길이 되는 것이다.” 이제 김영오 씨는 이전과 다르게 살려고 한다. 대한민국이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로 구분되듯 말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성역 없이 책임자들이 처벌받을 때까지, 확실하게 재발 방지책이 나올 때까지,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둘째 딸 유나는 안전한 나라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어른으로서 시민으로서 자기 몫을 다하려고 한다. 하루를 버티기에 급급해서 세상을 등지고 살았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세상 속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작은 목소리라도 내는 것이 시민의 권리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유민이가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고 가슴에 묻은 자식이기에 평생 고통이 이어질 것이다. 그래도 버텨내면서 새로운 삶을 기꺼이 맞이하려고 한다. 못난 아비의 자격을 논하는 수많은 비난의 화살도 오롯이 자신의 몫임을 인정하면서 쉽지 않은 그 길을 계속 걸어갈 것이다. 이 책은 대한민국에서 진짜 ‘어른’이 되려는 한 아비의 이야기이다. 이제라도 철이 든 못난 아비의 간절한 마음을 이 책에, 글에 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