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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밥이 되다
논물에 서서 기록한 쌀밥의 서사
김혜형
목수책방 2025.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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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에세이 top20 7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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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 밥 한 술이 꽃 한 다발

1장 이동하고 싶었다, 간절히


마치 처음 먹는 밥인 듯
초봄, 벼의 자리를 준비하다
의심 없는 반복, 그걸 답습이라 하지

2장 볍씨가 꿈꾸는 쌀밥의 무게


볍씨를 매만지는 마음
호찌민과 생일이 같은 그녀
이 많은 모판을 어찌 옮기지?

3장 풍년새우와 투구새우가 사는 논


뜬모 한 포기, 곡식 한 대접
청둥오리와 개구리가 사는 논둑
힘들기는 하지만 괴롭지는 않아

4장 벼꽃을 기다리며 꽃물을 대다


벼꽃 한 송이가 쌀 한 톨
자급자족의 허상과 정치의 부재
거미줄 논과 멧돼지 무덤

5장 벼멸구 들판에서 정치를 생각하다


까치밥과 불사조 할아버지
벼멸구는 왜 우리 논을 피해 갔을까
농경민의 후예들, 벼를 거두다

에필로그 - 보릿고개가 태산보다 높다

저자 소개 1

출판 편집자로 밥벌이하다 농사짓고 글 쓰는 삶으로 이동했다. 어지간한 일은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해결한다. 집을 설계하고, 가구를 만들고, 옷을 짓고, 폐품을 재생한다. 신상품이나 고가품보다 오래되고 손때 묻은 물건을 사랑한다.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덜 폭력적이기를 바란다. 쓴 책으로, 에세이 『꽃이 밥이 되다』, 『자연에서 읽다』, 어린이책 『암탉, 엄마가 되다』, 『일기 쓰기 싫어요!』, 『열일곱 살 자동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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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5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216쪽 | 328g | 152*195*15mm
ISBN13
9791188806669

책 속으로

이 책은 매일 밥상에 올라오는 쌀밥의 서사이자 논물에 발을 담그고 사는 농부의 분투기다. 벼농사와 인간사가 긴밀하다 보니 기후변화와 사람의 정치도 함께 짚었다. 원고를 쓰며, 밥심으로 사는 많은 이에게 벼 베는 들판의 구수한 나락 냄새를 부쳐 주고 싶었다. 새봄의 볍씨가 내미는 예쁜 촉, 못자리에서 자라는 파릇한 어린모들, 태풍과 병충해를 이겨 낸 황금빛 알곡도 보여 주고 싶었다. 벼 외에도 얼마나 많은 생명체가 논에 사는지 알려 주고 싶었고, 공손히 들여다보아야 보이는 덤덤하고 무심한 벼꽃도 자랑하고 싶었다. 여러분의 밥이 한때 꽃이었다고, 벼꽃이 바로 밥꽃이라고 속삭이고 싶었다. 밥 한 술에서 꽃 한 다발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pp.5-6 「머리말」 중에서

볍씨 한 가마가 이루어 낼 가을의 성과를 상상하는 일은 직장인일 때 가졌던 연봉의 기대감과 사뭇 다르다. 소득이 노동력 투여량에 비례하지 않고, 자연재해의 불확실성과 맹목의 정치에 영향을 받으며, 최선의 노력이 최선의 결과로 이어질지 미지수인 직업이 농부지만, 그럼에도 한 해 농사를 앞두고 볍씨를 매만지는 마음은 설렌다. 이것은 살아 있는 생명체, 장악하고 경쟁하고 앞서려는 강박 없이 오직 보살피고 아끼고 북돋는 과정이 농사니까. 그래서일까. 볍씨가 이룰 가을의 성과는 통장의 숫자가 아니라 쌀밥의 무게로 온다. 이 심리적 든든함을 남들이 이해할지 모르겠다.
--- pp.54-55

태어나 살고 죽고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하며 생명의 역사는 이어진다. 과거의 사람들과 미래의 사람들 사이에 내가 잠깐 여기 있다. 생명계의 장엄한 명맥 안에서는 막간의 삶이되 개체에게는 유일하고 귀한 삶이다. 물에 떠서 분해되는 저 긴꼬리투구새우에게도 논물의 찰랑거림을 느낀 순간이 있었겠지. 한 마리의 긴꼬리투구새우가 한 생애를 의탁했던 논이 우리 논이어서 기쁘다. 옆사람이 말한다. 약 안 치고 농사짓는 보람을 이럴 때 느낀다고. 나도 그렇다.
--- pp.100-101

화학 약제를 잘 모르는 데다 관심도 없었던 우리는 처음부터 농약과 제초제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옆사람은 농약을 쓰지 않는 이유를 “그냥 나랑 안 맞아서”라고 말한다. 환경과 생태계를 살린다는 의미 부여는 다소 낯 뜨겁다. 우리 논밭에 농약 안 친다고 인류가 쉴 새 없이 착취해 온 지구 생태계가 살아나리라 여기지 않는다. 다만 잠시 땅에 발붙였다 떠날 존재로서 땅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를 생각한다. 무엇보다 작물을 건강하게 키워서 우리와 연결된 이들을 먹이고 싶다. 그것이 작은 보람이다.
--- p.145

한 해가 간다. 싹트고 자라서 열매 맺고 사라지는 일은 자연스럽다.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 내가 숨 쉬는 현재, 내 흔적조차 없을 미래……. 유장한 시공간의 흐름 속에 한 점으로 잠깐 머물다 가는 개체일 뿐이라는 생각이 분명해진다. 노동하고 거두고 먹고 사랑하고 돌보고 연민하는, 이것만이 전부라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몇 차례나 새봄을 맞이하고 추수 끝난 들판을 바라볼 수 있을까. 짧은 하루, 짧은 한 해, 짧은 인생의 순간들이 아깝고 귀하다.
--- p.204

농사는 순환하는 생명살이다. 종자가 발아해 싹이 나고 자라다가 가뭄으로 메마르고, 병들고 벌레 먹고, 장맛비에 휩쓸리고 태풍에 쓰러졌다 일어선 끝에 마침내 알곡을 낸다. 종자의 고난의 한 살이가 사람살이와도 닮았다. 조선시대 기록을 토대로 옛사람들의 농사를 더듬어 보니 노동과 고난, 굶주림의 정경이 선연하다. 목숨을 ‘붙이고’ 사는 일의 절박함, 목숨을 ‘이어 가는’ 생애의 무거움을 실감한다. 이 땅에서 앞서 살다 간 이들의 생명이 우리 몸으로 이어지고, 우리 논에 번성했던 곡식의 생명은 우리 밥으로 이어진다. 이 생명의 연속선상에 우리가 있다.

--- p.215 「에필로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벼꽃, 외모는 보잘것없지만 특별하고 값진 꽃

벼꽃은 우리가 떠올리는 ‘꽃’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모를 꽃, 누가 꽃이라고 일러 주지 않으면 눈치채기 힘든 꽃이 벼꽃이다. 벼는 꽃가루받이를 곤충에 의존하지 않는 자가수분 식물이라서, 곤충을 유인하는 화려한 꽃잎이나 달콤한 꿀을 만들 필요가 없다. 벼꽃의 외모는 보잘것없다. 당연하다.

하지만 벼꽃은 세상 어떤 꽃보다 특별하다. 밥이 되는 꽃, 사람을 먹이는 꽃이기 때문이다. “벼꽃은 밥꽃”이고 “이삭은 벼의 꽃다발”이다. 우리가 먹는 밥 한 술에는 볍씨가 견뎌낸 자연의 시간, 땡볕 아래 풀과 씨름한 농부의 시간이 스며 있다. 쌀 한 톨에 응축된 생명 에너지를 받아 우리는 삶을 이어간다. 이삭 수(穗)라는 한자가 벼 화(禾)와 은혜 혜(惠)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꽃이 베푼 은혜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누구나 쌀밥을 먹지만 누구나 벼를 아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벼의 한살이와 농부의 한 해를 다큐멘터리처럼 교차 편집해 보여 준다. 빈 논에 퇴비를 넣어 써레질하고, 못자리를 만들고, 볍씨를 싹틔워 어린 모를 키우는 ‘봄논의 물빛’, 모판을 날라 모내기하고, 물 대기와 물 떼기를 반복하고, 이글거리는 불볕 속 김매기 끝에 만나는 ‘한여름의 벼꽃’, 비와 태풍, 벼멸구와 깨씨무늬병을 이기고 벼 베는 날 ‘가을 들판’의 구수한 나락 냄새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밥 한 그릇, 쌀 한 톨에서 경이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도시에서 몸을 뽑아 시골 흙에 옮겨 심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농사의 니은 자도 몰랐지만, 저자는 자연을 향한 열망과 “삶을 재배치”하고픈 열정으로 농부가 된다. 만만치 않은 농사일, 시도와 실패의 반복, 미미한 성과 앞에서도 “힘들기는 하지만 괴롭지는 않다. 인생 어느 때보다 지금이 좋다”고 고백한다. 시골살이에 대한 낭만적 시선을 경계하는 한편, 농부의 삶을 옥죄는 정치의 부재도 지적한다.

어려운 살림에도 도리를 다하고 사는 사람들 이야기는 책갈피에 숨겨진 소박한 선물 같다. 옆 마을 귀농자에게 선뜻 자기 못자리를 내어준 옆 마을 이장, 스무 살에 한국으로 시집온 “호찌민과 생일이 같은” 은주 씨, 90대 할아버지와 10대 청소년이 함께 일하는 뭉클한 장면, 내 논둑 베는 김에 남의 논둑도 베어 주는 계산 없는 인정이 아직 농촌에 있다. 역사에 빚지고 사람에 빚지고 생명에 빚지면서, 흙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가 곳곳에 담겼다.

땅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를 생각한다


농약과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으니 필연적으로 어려움이 따른다. 가장 힘든 것은 역시 풀이다. 풀과의 싸움에서 농부는 판판이 진다. 그럼에도 제초제를 쓰지 않는 것은 “잠시 땅에 발붙였다 떠날 존재로서 땅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물을 건강하게 키워서 우리와 연결된 이들을 먹이고 싶다”는 소망은 땡볕 아래 김매는 노고를 상쇄할 만한 가치다.

저자는 풍년새우와 긴꼬리투구새우, 논둑에 자리 잡은 청둥오리 둥지, 아침 이슬 맺힌 거미줄, 백로와 고라니 발자국, 심지어 논둑을 파헤친 멧돼지에게도 애정과 연민의 눈길을 보낸다. 인간이 멸종의 길로 몰아세우고 있는 숱한 생명체에 대해 인간으로서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다.

벼멸구가 급속도로 확산하여 추수기의 논을 초토화했던 지난가을, 저자의 논을 포함한 친환경단지 내의 논이 벼멸구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이야기에는 눈이 번쩍 뜨인다. 저자는 이 사건에 대해 “기후 위기 시대 농업의 작은 피난처를 본 듯하다”라고 썼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섬처럼 외로운 이야기다. 우리나라 친환경 농지 면적은 4.8퍼센트다”라고 덧붙인다. 결국 문제를 풀어야 할 영역은 정치라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추수 마친 빈 들판의 쌀겨 거름을 꿀벌들이 야금야금 퍼 나르는 장면으로 본문은 마무리된다. 이어지는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옛사람의 농사와 혹독했던 그들의 삶을 문헌 기록을 통해 펼쳐 보인다. 옛 농부와 지금의 농부를 잇고, 과거의 삶과 현재의 삶을 잇는다. 에필로그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이 땅에서 앞서 살다 간 이들의 생명이 우리 몸으로 이어지고, 우리 논에 번성했던 곡식의 생명은 우리 밥으로 이어진다. 이 생명의 연속선상에 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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