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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메테우스 9
2. 만리장성을 쌓을 때 11 3. 도시의 문장 30 4. 거절 33 5. 양동이를 탄 사내 42 6. 단식 광대 46 7. 포세이돈 61 8. 공동체 63 9. 사냥꾼 그라쿠스 65 10. 시골 의사 73 11. 법 앞에서 83 12. 「법 앞에서」에 관한 대화 86 13. 법에 대한 의문 96 14. 변호사 100 15. 변신 104 16.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180 17. 요제피네, 여가수 또는 생쥐 종족 195 18. 어느 개의 연구 224 19. 튀기 282 20. 술 취한 자와의 대화 286 21. 나이 든 독신주의자, 블룸펠트 292 22. 가장의 근심 327 23. 인디언이 되고 싶은 마음 330 24. 세이렌의 침묵 331 도슨트 이진경과 함께 읽는 『변신·어느 개의 연구』 세계의 바깥 혹은 알 수 없는 것들의 매혹 7 끝없는 길, 끝없는 소설 · 7 시선 바깥의 고독과 흡혈귀 카프카 · 14 감각의 외부, 세계의 외부 · 21 법 앞에서, 아니 법 안으로 · 29 변신의 기술들 · 40 생각 바깥에 있는 것, 혹은 세계 바깥의 사물 · 53 외부의 매혹, 침묵의 매혹 · 60 |
Franz Kafka
이진경,본명 : 박태호
이 거대한 장성으로 누구를 막으려 했을까? 북방 민족들이다. 나는 중국 남동부 출신이다. 거기선 어떤 북방 민족도 우리를 위협할 수 없다. 우리는 옛날 책들에서 그들에 관해 읽게 되는데, 그들이 본성대로 자행하는 잔혹한 짓들은 평화로운 정자에 있는 우리를 탄식하게 한다. 예술가들이 사실적으로 그런 그림들에서 우리는 저주받은 얼굴들, 쭉 찢어진 아가리들, 이들이 날카롭게 솟아 있는 턱, 아가리로 짓찧고 으스러뜨릴 약탈물을 노려보는 듯한 일그러진 눈을 본다. 아이들이 심통을 부릴 때 이 그림들을 들어 보이면 아이들은 금방 울음을 터뜨리며 날듯이 우리 목에 매달린다. 하지만 이것 말고 우리가 북방 민족에 관하여 아는 것은 없다. 그들을 본 적도 없고 우리는 마을에 머물러 있으니, 설령 그들이 거친 말들을 타고 우리를 향해 곧장 쫓아와서 덤벼들려고 해도 이 나라는 너무도 광대해 그들이 우리에게까지 오게끔 해 주지 않는다. 그들은 허공 속을 달리다 말 것이다.
--- p.19 「만리장성을 쌓을 때」중에서 “여보!” 하고 석탄 장수가 말한다. “있어, 누군가가. 내가 이렇게 심하게 착각하지는 않아. 오랜, 아주 오랜 단골이 틀림없어. 이렇게 내 가슴에다 말을 할 줄 아는 걸 보니 말이야.” “무슨 일이야, 여보?” 하고 아내는 잠깐 쉬며 뜨개질감을 가슴에 끌어안는다. “아무도 없어. 골목은 텅 비었고, 우리 손님들은 다 받아 갔잖아. 우리도 며칠 동안 가게를 닫고 푹 쉴 수 있다고.” “아니, 내가 여기 양동이를 타고 있다고요” 하고 소리치는데 추위 때문에 저절로 눈물이 흘러 두 눈을 흐린다. “제발 이 위를 좀 보세요. 금방 나를 발견할 거예요. 딱 한 삽만 가득 좀 부탁해요. 두 삽을 주면이야 정말 기쁘겠지요. 다른 단골들한테는 전부 벌써 주었다면서요. 아, 양동이에서 석탄 딸그락 소리가 들리면 좋겠네!” --- p.44 「양동이를 탄 사내」중에서 물론 그것은 단식이라는 행위에 당연한 듯 따라붙는 의심에 속했다. 누구도 날마다 밤낮없이 단식 광대 곁에서 감시인 노릇을 하며 지낼 수는 없었다. 정말 단식이 계속되는지 아무도 자기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다. 오직 단식 광대 자신만이 사실을 알았고, 그러므로 그만이 자신의 단식에 완전히 만족하는 관객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결코 만족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그의 몰골을 감당하지 못해 공연을 멀리할 만큼 그가 바짝 말라 버린 것은, 어쩌면 단식 때문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불만 때문인지도 몰랐다. 단식에 대해 좀 안다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으며 오직 그만이 단식이 얼마나 쉬운지 알았다. 단식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었다. 그런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믿지 않았고 기껏해야 겸손한 것으로 쳐주었으며, 대부분은 그가 광적으로 자기를 선전하려 한다고, 심지어는 그가 어떤 비결을 알기 때문에 쉽게 단식을 할 수 있으며 게다가 그런 사실을 적당히 고백하는 요령까지 갖춘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모든 일들을 그는 감수해야 했고 해가 가면서 익숙해지기도 했지만, 불만은 언제나 그의 마음을 갉아먹었다. 그래서 그는 단식 기간이 끝난 뒤에도-그에게 증명서까지 만들어 주어야 했는데-자진해서 우리를 떠나 본 적이 없었다. --- p.49 「단식 광대」중에서 하지만 그러고 나서 그는 중얼거렸다. “일곱 시 십오 분 종이 울리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침대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해. 그때까지는 분명 회사에서 누군가가 내가 뭘 하는지 물어보려고 올 거야. 회사는 일곱 시 전에 문을 여니까.” 그는 이제 반동을 이용해 길게 편 몸 전체로 동시에 침대 밖으로 벗어나 보려고 했다. 이런 방법으로 침대 밖으로 떨어질 경우, 머리를 바짝 쳐들고 있으면 머리를 다치지 않을 것 같았다. 등은 단단한 듯하니 양탄자로 떨어지면 괜찮을 것이다. 가장 걱정스러운 일은 틀림없이 큰 소리가 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면 아마 다들 문 너머에서 질겁할 정도는 아니라 해도 걱정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이것은 감행해야만 했다. --- p.111 「변신」중에서 당시만 해도 아직 나는 오로지 견족에게만 부여된 창조적인 음악성에 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때까지 겨우 서서히 발달하고 있던 나의 관찰력으로는 당연하게도 그 음악성을 알아채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미 젖먹이 시절부터 음악은 자명하고도 필수 불가결한 삶의 기본 요소로서 나를 에워싸고 있었고, 그 무엇도 이런 음악을 나의 삶으로부터 강제로 격리하지는 않았고, 다만 유년기의 이해력에 걸맞게 암시적으로만 그것을 알려 주려 했기에, 저 일곱 마리의 위대한 음악가들은 나에게 그만큼 더 놀랍게, 그야말로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말하지 않았고 노래를 부르지도 않았으며 대개 완강할 정도로 침묵을 지키기 일쑤였지만, 그러나 마법의 힘으로 텅 빈 공간에서 음악이 솟아나게 했다. 모든 것이 다 음악이었다. 그들이 발을 올리고 내리는 것, 머리를 돌리는 방식, 그들의 달리고 멈춤, 그들이 서로에게 취하는 자세, 원무(圓舞)를 출 때처럼 서로 연결하여, 이를테면 한 개가 다른 개의 등에 앞발을 얹어 디디고 맨 앞의 개는 꼿꼿이 서서 다른 모든 개의 하중에 버티도록 정렬한다든가, 또는 바닥에 닿을 만큼 몸을 낮게 움직여 복잡하게 짜맞춘 형상을 이룰 때 그들은 결코 헛갈리는 일이 없었다. --- p.229 |
한 번도 완전히 이해된 적 없는 ‘카프카’라는 세계
질문과 수수께끼 그 자체가 답인 역설의 세계를 향하여 문학과 철학의 만남으로 나의 삶과 세계를 확장하는 법,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 6: 프란츠 카프카, 『변신 · 어느 개의 연구』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 여섯 번째 권으로 출간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어느 개의 연구』에서 도슨트 이진경은 답을 지우거나 아무 답도 제시하지 않고 끝나버리는 카프카의 소설들이 말하는 바가 무엇일지 얘기한다. 카프카는 닫힌 세계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을 역설과 익살로 묘사함으로써 세계를 비판하며, 세계에 저항하고 투쟁했다. 어둠 속의 삶, 소수자의 삶에 시선을 두고 끊임없이 물음을 던진 그의 소설은, 존재했으나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하고, 뻔하다고 여겼던 세계를 전혀 새로운 감각으로 대면하도록 만든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모든 질문은 결국 ‘나의 삶’으로 수렴된다 문학은 우리가 살지 않은 삶을 경험하게 하고, 만나지 못한 인물을 만나게 하며, 겪지 못한 일을 체험하게 한다. 문학을 통해 우리는 작가와 나만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낸다. 이 세계가 없으면 우리의 삶은 온갖 정보와 소음 속에서 더욱 축소될 것이다. 문학의 세계가 만드는, 현실과 개인의 삶 사이의 이 완충지대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틈을 보여 준다. 그러나 문학의 상징과 비유는 독자들을 난관에 빠뜨리기도 한다. 작품을 표면적으로만 이해하거나 읽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은 철학과 인문학자의 시각을 빌려 세계문학의 고전을 읽게 해 준다. 이를 통해 저마다의 읽기가 수없이 많은 갈래를 만들고, 거기서 수없이 많은 세계가 생겨난다.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의 해설은 문학에 딸린 부록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한 권의 책과 같은 가치를 담고 있다. 이는 문학 작품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독자들과 자신만의 독특한 사유를 개척하려는 독자들에게 중요한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특히 해설이 시작되는 뒤표지에서부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함으로써, 문학과 맞물려 있는 철학 혹은 사유의 긴밀함을 표현했다. “내가 죽어 가는 것은 굶주림이 아니라 고독 때문인 것 같았다. 아무도, 땅 밑의 누구도, 땅 위의 누구도, 공중의 누구도 내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어느 개의 연구」 중에서) 『변신·어느 개의 연구』에는 알쏭달쏭한 수수께끼를 던지며 시작하는 단편 「프로메테우스」를 시작으로, 한없이 연기되는 시간적 끝없음을 한없이 넓은 공간의 공간적 끝없음으로 바꾼 상상력을 불어넣은 「만리장성을 쌓을 때」, 최대한의 높이에 이르려는 욕망의 무의미함을 다룬 「도시의 문장」, 대중의 몰이해 속에서도 자신의 단식을 예술적 경지까지 이어 가려던 「단식 광대」, 보던 대로만 보는 시선 속에서 없는 존재가 되어 사라져 버리는 「양동이를 탄 사내」, 배타적 공동체에 대한 단상 「공동체」, 이승과 저승 사이를 떠도는 「사냥꾼 그라쿠스」, 바로 옆에 있어도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는 사건을 겪는 「시골 의사」를 비롯하여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흉측한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의 이야기 「변신」, 인간을 모방하다가 인간의 말까지 하게 된 원숭이를 등장시킨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연구자 내지는 철학자처럼 생각하는 개가 등장하는 「어느 개의 연구」 등 총 24편의 작품이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이어져 있다. 종착지에 도달한 줄 알았는데 둘러보니 시작점으로 돌아와 있는, 마치 ‘끝없는 소설’을 쓰고 싶어 했던 카프카의 소망처럼. 닫힌 세계에 낯선 균열을 만든 카프카가 보여 주는 매혹적인 출구들 『변신·어느 개의 연구』에 실린 24편의 작품에서 주목한 것은 ‘바깥 혹은 외부’이다. 짧고 간결한 작품부터 장편에 이르기까지 카프카의 시선은 언제나 바깥을 향해 있다. 관심의 바깥, 감각의 바깥, 인식의 바깥. 세계의 바깥, 법의 바깥 등. 바깥이란 눈 밖에 난 것, 생각 밖에 있는 것, 뜻밖에 오는 것들이다. 다시 말해 바로 옆에 있었으나 보지 못했던 것, 눈으로 보았지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 무언가 해야 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은 것들이다. 이것들은 닫힌 세상에서 나가기 위한 출구들이다. “몇몇 작품을 발표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발표하지 않았고, 발표된 작품들 또한 독자의 시선 바깥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지요. 그것은 사실 스스로 택한 ‘운명’이기도 합니다. 강한 의미의 예술이란 널리 공유된 감각이나 통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면 안 되니까요. 그렇기에 대중의 지지가 있을 때에도 실은 충분히 이해되기 힘든 것이기 마련입니다. 그런 점에서 카프카는 고독이 자신에게 운명적인 것임을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카프카는 환한 대낮의 어둠 속에 있는 작가입니다. 그러나 그 고독은 자기만의 남다른 세계를 추구하는 자의 고독이 아니라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으로 그들의 시선을 돌리게 하고, 사람들이 열지 않는 출구로 그들이 빠져나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내면’에 빠져 있는 내면주의자의 고독이나 자신만의 자유에 심취한 ‘실존주의자’의 고독이 아니라 벌건 대낮에 캄캄함 어둠에 갇힌 이들과 더불어 닫힌 세계의 출구를 찾는 작가였습니다.”(도슨트 이진경과 함께 읽는 『변신·어느 개의 연구』 해설 중에서) 즉 카프카는 닫힌 세계에 끊임없이 낯선 출구를 낸 작가인 것이다. 그가 낸 출구로 언뜻 보이는 풍경들은 낯설 뿐 아니라 황량한 대지나 악몽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질문이며 수수께끼이기도 하다. 수수께끼는 세계 바깥에 있는 것들이 존재하는 방식이다. 매혹적이다. 매혹이란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간 카프카는 닫힌 세계를 끊임없이 낯설고 새롭게 만들며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무수한 뱃사람들을 자신에게 이끌던 세이렌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