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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 그 이후
Part 1 혁명가의 아들 “우리 아버지는 남로당원이셨지!” / 도살장이 내려다보이던 사택 / 사회주의자 아버지 가족의 고통 / “보도연맹원 출두하라!” 가난과 고난의 삶 / “명렬아! 네가 바로 나의 등불이다” / 광주고등학교, 그리고 육군사관학교 Part 2 “아아 영용(英勇) 영용” 육군사관학교 죽을힘 다해 외치다 / 팬티 한 벌 때문에 / 육사 혼은 되살아날 것이다, “귀관들은 정말 형편 있다!” / 눈 하나 깜짝 않던 장기수들 / 5·16 군사반란 지지로 육사는 죽었다 / 기계 같았던 초임 장교 시절 Part 3 베트남에서 싸우고 타이완에서 배우다 서쪽으로, 서쪽 나라로! / 용감무쌍한 미군들 / 지옥 길에서의 탈출 / 육군본부 정훈감실로 발령받다 / 타이완 군대에서 길을 찾다 / 중공과 소련이 전쟁을 했다면 / 국군정신전력학교 창설 Part 4 강원도 현리에서, 대구 2군사령부에서 “그놈의 장군이 다 뭐다냐!” / 불의 앞에 무릎 꿇은 기자들 / 중국 선교사가 되라는 뜻일까 / 민간인 사살에 대해 훈장이라니 / 강자존, 적자존 / 기적처럼 찾아온 기회 Part 5 감시받고 견제당한 육군 정훈감 시절 김일성 사망 첩보가 열어준 기회 / “당신, 그러니까 문제 있는 장군이야” / 영화 〈폭풍의 계절〉 / “너 당장 보따리 싸!” / 여자 정훈장교제도 도입의 고민 Part 6 군문을 나서 새로운 길을 찾다 쫓겨나듯 마친 군대 생활 / “장군 망신시키지 마시오” / “너희들이 전쟁에 대해 뭘 알아” / ‘평화공원’과 ‘민족 진혼곡’ / 기업체 의식 개혁 특강 강사의 길 / 철없는 남편을 도와준 고마운 아내 Part 7 화해와 평화를 향하는 길 “기무사가 별것을 다 간섭하네요” / 진정한 안보단체, 평화재향군인회 / 남북 제대군인 화해 교류 사업 / 가장 강력한 ‘안보의식’은 ‘평화의식’이다 / 민간인 학살지를 찾아서 / ‘코발트 광산’에 쌓여 있는 유골들을 보았는가 / 친구들을 떠올리며, 의인(義人)들을 기리며 후기를 대신하여: 두 눈 크게 뜨고 정신 똑바로 차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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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놈이 진짜로 빨갱이 자식이었다면 어떻게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으며 장군 진급까지 할 수 있었단 말이냐? 더구나 장병들 사상교육 전담하는 정훈감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겠어?’ 이런 생각을 하는 이도 있었을지 모른다.
--- p.20 사관학교 시험은 1차 신체검사 합격한 자에 한해 2차 필기시험을 치르게 되어 있었다. 최종 합격자는 「서울신문」에 발표되었다. 눈 쌓인 새벽길 뽀드득 달려서 서울신문사 광주 지국에 도착 기차 편으로 오는 신문을 기다렸다. 떨리는 손으로 펼쳐보니 내 이름 석 자가 인쇄되어 있었다. 낙방한 다른 친구들의 입장은 생각지도 않고 “합격이다! 합격이다!” 소리 질렀다. --- p.53 조사 결과 모 생도의 옷장에서 문제의 팬티가 발견되었다. 즉시 명예위원회에 회부되어 토의 끝에 그는 생도로서의 명예를 지키지 못했고 몇 번의 기회를 주었음에도 양심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퇴교 조치되었다. 기초 군사 훈련 때 나는 그와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했다. 눈꼬리 약간 치켜 올라간 그의 두 눈은 항상 번쩍번쩍 빛이 났으며 동작은 매우 민첩했고 고된 축구 대표 선수를 하면서도 정리정돈, 선착순 등 모든 면에서 재빠른 생도였다. 퇴교당해 경북 산골 고향집 향해 가던 중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말았다. --- p.65 기분은 언짢았지만 우리는 별수 없이 5·16을 지지한다는 시가행진을 했다. 시청 앞에서 정재문 연대장 생도가 지지 선언문을 낭독했다. 이렇게 해서 육군사관학교는 쿠데타 세력의 협박에 굴복하여 5·16 군사정변이 성공하는 데 기여했다. 강한 자 앞에서는 손들고 항복하는 것이 일신의 안일을 위해 상책이라는 기회주의적인 사고를 사관생도 시절부터 체득하게 된 셈이었다. --- p.84 불꽃 튀는 접전이 벌어졌다. 포탄이 비 오듯 퍼부어지고 밀려오는 적을 향해 총을 너무 많이 쏘아 총신이 벌겋게 달아올라 엿가락처럼 늘어질 정도였다. 제1소대장 이춘식 소위는 분대장들을 독려하러 참호 속을 오가다 총탄에 맞아 피를 토하며 헐떡이고 있었다. 쏟아지는 사격을 무릅쓰고 미군 위생병이 “에이드맨(Aidman)! 에이드맨!(위생병이다! 위생병!)” 소리 지르며 이쪽 참호에서 저쪽 참호로 뛰어다니며 부상자를 응급처치하였다. --- p.101 내가 세상에 태어나 여러 많은 어려움도 겪어봤지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이처럼 모질게 고통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정신이 오락가락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처음에는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중에는 적이 쏘거나 말거나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냥 터벅터벅 뛰지도 않았다. 축 처져서 무겁게 끌려오는 병사의 시신을 바라보면서 그가 너무나 편안해 보였다. 차라리 저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 p.109~110 베트남전 참전은 군인으로서 나의 인생길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전장에서의 미군들 모습을 보면서 ‘우리 군대는 군대도 아니다’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전장에서 병사들에게 목숨을 요구하려면 상관이 어떤 생각과 자세로 부하를 대하고 어떻게 배려해야 하며 어떤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거기서 보았다. 우리 군대가 가야 할 길의 답이 거기 있었다. --- p.111 내가 이루고자 했던 군대 개혁의 이상은 인권을 존중하는 합리적인 민주군대였으며 그 시행모델은 일단 타이완의 군사제도였다. 군대 개혁의 핵심은 군을 직업으로 하는 상층 간부들의 의식과 리더십 행태가 바람직하게 달라지도록 관련 제도를 개혁하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서는 간부 양성 과정인 사관학교 훈육제도를 전면 개혁하고 고위간부 평가 및 진급제도를 획기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또한 지금의 군 정신교육을 완전 폐기하고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 p.123~124 타이완의 왕승 대장이 의형제나 다름없이 절친하게 지내던 김계원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표명렬 대령을 발탁 총통부(청와대)에서 활용하면 한국군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천거가 포함된 편지를 천수산 교장이 전하기 위해 청와대를 방문한 날 10·26 사건이 일어났다. 사람의 운명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 p.127 이로서 정신전력이라는 무형전력을 심리전력으로 개념화하여 한국군 독자적 심리전력을 건설하고 우리 군의 군대 문화와 의식을 대개혁하고자 쌓아놓은 나의 꿈도 허물어지고 말았다. 나는 한때 이를 회복하기 위해 국회에 진출하여 국방 분과 위원 자격으로 뜻을 관철하려 노력했지만, 마치 내가 여느 사람들처럼 정치에 눈이 어두운 사람으로 오해되어 모함만 받고 포기했다. --- p.172 정훈에서 여자 정훈장교제도를 채택한 이후 육사에서도 여자 사관생도를 뽑기 시작했고, 다른 병과에서도 여자 장교를 선발 운용하게 된 것을 보면서 마음 뿌듯했다. 그것이 당연한 시대의 흐름임에도 남성 위주 사회, 더구나 군대에서의 시작은 이렇게 어려웠다. ‘뜻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을 믿고 끈기 있게 추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 p.191 한 번은 국방과학연구소 간부들에게 특별 강의를 한 적이 있다. 3시간 연속 오후 강의였지만 한 사람도 졸지 않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나는 군 개혁의 필요성을 특별히 강조하였다. 이들은 군사과학 분야 연구를 하는 분들이었지만, 의식 및 문화 측면에서 우리 군이 나아갈 방향과 현재 문제점이 무엇인지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특히 간부 양성 과정의 중추인 사관학교의 훈육 실태와 간부들의 잘못된 가치관에 대해 문제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 대부분이 공감을 표시하였다. --- p.215~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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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군인 표명렬 장군의 군대 개혁 이야기★
영구 집권 야욕의 친위 쿠데타에 던지는 21세기 군대 개혁을 위한 표명렬 장군의 암구호 현직 대통령의 탄핵 이후 군 개혁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참군인의 전설로 불리는 표명렬 장군의 신간 『개혁에는 마침표가 없다』가 출간되었다. 전쟁기념관 기획이사를 지냈고, 평화재향군인회를 창립하여 상임대표를 맡았던 저자는 국가 안보와 민족 번영에 헌신해온 진정한 보수주의자로 평가받는다. 표명렬 장군은 베트남의 정글에서 사선을 넘나든 참전용사이자 진보의 가치를 수용하여 평화운동을 펼쳐왔다. 이번 책에는 육군사관학교의 체험과 군인으로서 걸어온 과정을 자전적 이야기로 소개함으로써 친위 쿠데타 세력에게 발사하는 핵폭탄급 개혁의 일성이 담겼다. 이번 책을 통해 검찰, 사법부 등의 개혁을 넘어 군의 개혁까지 단행하는 21세기 민주화의 완성된 설계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003년 6월, 표명렬 장군은 군대 개혁에 관한 생각의 조각들을 모아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라는 책을 내놓았었다. 대한민국 군대는 친일 간부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상실한 국군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되찾아 바로 세움으로써 군의 자존심과 명예를 회복하자는 저자의 주장에 반발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정훈 장교 출신의 친목 단체와 육사 동기회의 제명을 시작으로 조직적인 군의 텃세와 따돌림은 물론이고 출간한 책마저 군 장교들의 금서로 낙인찍히는 결과를 낳았다. 저자가 이루고자 했던 군대 개혁의 이상은 인권을 존중하는 합리적인 민주군대였으며 그 시행모델은 일단 타이완의 군사제도였다. 특히, 군대 개혁의 핵심은 군을 직업으로 하는 상층 간부들의 의식과 리더십 행태가 바람직하게 달라지도록 관련 제도를 개혁하는 작업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간부 양성 과정인 사관학교 훈육제도를 전면 개혁하고 고위간부 평가 및 진급제도를 획기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또한 지금의 군 정신교육을 완전 폐기하고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군 개혁의 당위성과 방향성 제시 금서와 양서의 경계를 넘나드는 노 장군의 회고록 표명렬 장군의 이번 회고록은 군 장교들의 금서이자 희망의 불씨를 살리는 양서의 이중성을 띠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로부터 월남전 파병, 타이완 정치작전학교, 육군 군단, 작전사령부 정훈참모, 육군 정훈감을 역임하면서 군의 개혁과 당위성, 그리고 방향을 제시하는 과정이 소설의 속도감으로 질주한다. 정훈에서 여자 정훈장교제도를 채택한 이후 육사에서도 여자 사관생도를 뽑기 시작했고, 다른 병과에서도 여자 장교를 선발 운용하게 된 계기를 마련한 것은 오히려 표명렬 장군의 가벼운 성과다. 20여 년 전, 군대 개혁의 출사표를 알린 책의 출간 이후로 못 다한 말들을 정리하기 위해 이번 원고를 마무리하고 있던 저자는 하마터면 나라가 완전 파탄날 뻔한 충격적인 사건에 직면했었다. 무지무능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사실상 영구 집권 야욕에 불타 기상천외한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었다. 군인들은 철저히 이용만 당했고, 그의 가족이나 지인들은 함께 마음의 감옥에 수감되는 형국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번의 회고록을 통해 이 참담한 국가적 불상사는 인류 문명사의 혁명적 변화에 조응하여 우리가 완전히 새로운 나라를 건설할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한다. 위대한 우리 국민은 이번 반란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기필코 새로운 발전을 이룰 것으로 믿는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군 개혁은 21세기의 정치와 민주사회의 안전을 보장하는 마지막 설계도다. |